[히 4장] 믿음으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안식
강해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안식에 대할 설명입니다(1-13절). 둘째 부분은 5장의 서론격으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설명입니다(14-16절). 이러한 히브리서 기자의 논리 전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1. 믿음으로 들어가는 안식
1) 방심하지 말라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배교의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귀가 믿음을 버리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에서 무사안일이나 자기도취와 같은 방심은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첩경이 되기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적당한 긴장이 요구됩니다.
a.안식할 때가 남아 있는 성도들(히4:9)
b.악을 떠나라(잠14:16)
2) 복음을 알고도 믿지 않는 자
동일한 환경, 동일한 여건에 처해 있다 하여 그들의 운명이 동일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충분히 좋은 환경과 여건을 가지고도 인생을 실패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최악의 환경과 여건 가운데서도 훌륭하고 가치 있는 일들을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과 불신의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연히 볼 수 있습니다. 불신의 사람들은 약속을 받고도 이에 참예하지 못했으며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칭이 되었음에도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특권에서 제외되었습니다.
a.약속을 먼저 받았던 이스라엘(롬9:4)
b.복음을 받고도 순종치 않은 이스라엘(히4:6)
3) 안식에 들어가는 자들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습니다. 믿음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참조, 엡2:8-9). 믿음은 사망을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을 구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것은 행위로 나타나고 아는 것은 탁상공론에 그치는 것처럼 믿는 것과 아는 것의 분별은 그 열매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a.자기 일을 쉬게 됨(히4:10)
b.끝까지 진리를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함(히3:14)
2. 영혼의 안식
1) 구약시대의 안식일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제7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율법적 안식이었습니다(참조, 출20:8-11). 이처럼 구약 시대의 율법적 안식은 노동으로부터의 안식이었으므로 육적 안식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의 안식은 불완전한 안식이고, 신약 시대에 이루어질 완전한 안식의 초보이고 예시이며 그림자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입을 통하여 참 안식의 날이 앞으로 남아 있다고 증언하게 하셨습니다(참조, 시95:11). 영적인 안식만이 참 안식이 될 수 있습니다.
a.창조 칠 일째 쉬신 하나님에 의해(창2:3)
b.일곱째 날을 복주고 안식하신 일에 의해(창2:3)
2) 두 종류의 사람
히브리서 기자는 앞장에 이어 계속해서 안식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안식은 하나님의 안식에 근거하고 있고,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의 원리에 근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안식에 근거하여 인간들도 안식할 것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기구상에는 각양 각색의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 마귀의 자식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면 안식에 들어갈 수가 있고 믿지 아니하고 불순종하면 안식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참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a.믿음으로 화합치 못했음(히4:2)
b.말씀을 듣고 그것에 순종해야 함(벧전1:22)
3)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식에 들어감
가나안 땅에 정착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안식을 얻었다고 하면 어째서 다윗이 안식할 때가 아직 남아 있다고 하였겠느냐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참 안식에 대한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속 사역에 의한 사죄의 은총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이미 안식에 들어간 성도들이나 앞으로 들어갈 성도들이나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참조, 눅6:5).
a.가나안 땅을 얻는 것을 뜻함(수1:15)
b.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참예함(히3:14)
3. 말씀과 믿음으로 나아가라
1)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증거는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중요한 영향을 기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과 축복의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를 믿는 우리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의 삶에 있어서 유일한 척도가 됩니다. 삶의 척도란 단순한 도덕률이나 윤리적인 규범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죄를 지적하거나 정죄하는 율법이 아니고 그것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로 하여금 생명과 구원의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a.말씀은 만유의 주인을 밝히심(신10:14)
b.사람의 모든 걸음도 감찰하심(욥34:21)
2)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라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하신 인격을 증거하던 히브리서 기자는 이제 승천 하셔서 큰 대제사장으로 계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성도는 우리 속에서 자신을 유혹하고 괴롭히는 인간의 죄성과 자연성과 그 경향성 즉 모든 구습을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려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얻은 새 생명을 매순간 확인하면서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a.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히3:1)
b.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눅24:51)
3) 담대히 보좌 앞에 나아가라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은 인간은 때를 따라 도우시는 은혜를 필요로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으로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음으로 수용하고 그 은혜의 필요성을 인식한 인간들은 그 은혜의 원천인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내어 쫓을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참 빛이십니다.
a.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분임(사55:7)
b.만날 만한 때에 찾아야 할 하나님(사55:6)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하나님의 안식은 믿음으로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귀중한 것임을 알고 더욱 믿음에 가치를 두고 믿음으로 모든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안식 에 들어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내용개요
하나님께서는 안식의 약속을 주셨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였으나 참된 안식에의 인도는 아니었다. 참된 안식의 때는 아직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1-10절).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인격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케 하며, 자신의 추한 모습을 깨닫게 해준다(11-13절). 이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우리의 큰 대제사장으로 선포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제사장 기독론을 전개하려고 한다(14-16절).
단어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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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 화합지. '혼합하다, 연합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사실이나 사상을 인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4절.일. 원어 <e[rgwn:에르곤>은 죄의 결과로서의 인간의 노동이나 하나님의 사역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가리킨다.
11절.힘 쓸지니. '서둘다, 열심히 하다'라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끈기 있게 관심을 가지고 일에 몰두하는 태도를 말한다.
12절.예리하여. '더 날카로운, 더 예리한'이라는 의미로 여기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역사함으로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무를 갈라낼 정도로 예리하시며 인간의 마음 구석 구석에 있는 것도 다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13절.벌거벗은. 원어 <gumna:귐나>는 '감추어지지 딴은, 분명히 드러난'이란 의미로 여기서는 만물 이 하나님 앞에 분명히 드러남을 의미한다.
15절.체휼하지. '동정하다, 마음 아파하다'라는 뜻으로 고난에 처한 자를 말로만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고난에 실제로 같이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신학주제 - 히브리서의 구약 해석은 알레고리인가?
본장에서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입성을 안식으로 본다. 그러나 참된 안식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수아에 의한 가나안 입성은 참된 안식에 대한 하나의 모형도 아니고 하나의 상징도 아니다. 이러한 점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히브리서를 전체적 관점에서 파악해야만 한다. 특히 히7장-히10장까지에서 구약의 내용들을 어떤 식으로 적용하고 있는가를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얼핏보면 히브리서 전체에 나타나고 있는 구약 인용은 알레고리적인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10:1>에서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것의 그림자라는 말과 8:5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하늘에 있는 성전의 모형이라는 말은 헬라적인 이원론인 듯이 보인다. 헬라적인 이원론이란, 본래의 것은 하늘에 있고 땅의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그림자라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헬라적 이원론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히브리서 기자가 구약 성경의 율법들과 여러 가르침들은 땅 위의 것들로서 하늘의 본질적인 것에 대한 그림자나 비유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늘과 땅을 공간적으로 구분 짓는 헬라적 이원론을 전혀 사용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히브리서의 사고방식은 헬라적 이원론이 아니라 종말론적 이원론이라는 것이다. 히브리서의 종말론적 이원론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를 구분 짓는 이원론이다. 현재의 세대와 장차 올 완성의 세대를 구분 짓는 이원론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에는 구약의 가르침이 앞으로 올 종말론적인 실재에 관한 예언적인 가르침이라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히브리서는 본질적인 위의 구도와 모조품인 아래의 구도로 보려는 사고방식은 없고, 다만 시간적인 차원에서 종말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현재의 예비적 상태와 미래의 완성적 상태로 보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영적교훈
하나님의 말씀은 힘있고 좌우에 날 선 검과 같이 예리하다. 우리가 말씀 앞에 서면 우리의 내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말씀이 우리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어 고발할 때 우리는 회개하고 새롭게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의 날에 들어가리라고 선포해 준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대로 성실한 삶을 살 때 우리에게는 영원한 안식의 축복이 주어질 것이다. 이같이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와 고발도 하지만 위로와 축복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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