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에 관한 4가지 정의
오늘날 구원의 가장 직접적인 통로인 "믿음"에 대한 가치관이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돈이 심해지고 있으며 슬픈 현상들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가장 좋은 길에서 가장 슬픈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 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첫째, 믿음이란 "후포스타시스"입니다.
후포스타시스란 희랍말로 "아래에 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understand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희랍어의 원어적 의미로는 "거인 아래에 서는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거인 아래에 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코 두려움이 없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란 어떤 사실의 아래에 서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겁 많은 예쁘장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락부락한 남자들만 보면 지레 겁을 먹고 벌벌 떨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가 결혼할 시기가 되어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태권도 9단이었습니다.
그 뒤로 그 여자는 어떤 남자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남편 밑에서 서서, 즉 남편에 대한 믿음으로 안전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 아래에 선다면, 즉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믿는 자가 두려움을 버려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 믿음이란 영적인 세계를 포착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에 대한 유일한 정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이 구절을 보면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질세계를 포착하는 5가지 통로가 있습니다.
눈, 코, 귀, 입, 피부가 바로 5가지 관문으로 보통 "오관" 또는 "오감"이라고 불립니다.
눈으로는 보고 코로는 냄새 맡고, 귀로는 듣고, 입으로는 맛을 느끼고 피부로는 촉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 오관으로는 영적인 세계를 도저히 포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이 영적인 세계를 포착할 수 있게 함으로 영적인 감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옛날 사람들은 "오감" 다음의 여섯 번째 감각이라고 해서 "육감"이라고 지칭하기도 했지만,
육감은 그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아 정확한 영적인 감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만이 영적인 감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음 생활을 영적인 감각인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오관에 의지하게 되면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도마가 실패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5절에서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이르되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말했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도마는 오관 중에 촉각과 시각을 만족시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7일 후에 다시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이 없는 자가 되고 믿는 자가 되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29절에서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님은 영적인 감각인 믿음을 오관에 의한 체험보다 훨씬 중시하셨습니다.
셋째, 믿음이란 감정을 십자가에 못박는 일입니다.
인격의 보통 지성, 의지, 감정으로 형성됩니다.
자신이 책망 받을 때 지성은 "맞아! 내가 책망 받을 만해"하고 반응합니다.
그리고 의지는 "다음부터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반응합니다.
그리고 감정은 "아니! 나를 우습게 알아"하고 반응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보통 90% 이상 감정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헛된 지성과 허망한 의지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우선적으로 감정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온전하고 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환경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정이 격해져서 진동하는 것을 진실한 믿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온전한 믿음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위에 우리의 신앙을 세우라고 하시지 감정 위에 우리의 신앙을 세우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믿음은 의지적인 순종을 말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때 감정과 의지의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39, 42, 44절에서 세 번이나 "나의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며
결국 의지가 승리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의 의지적 순종이 바로 믿음입니다.
바다에서 항해하는 도중 순풍이 불 때는 돛을 올려서 기분 좋은 "감정"으로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라고 찬송을 하며 갑니다.
그러나 역풍이 불 때는 돛을 내리고 소매를 걷고 두 팔에 힘을 주고 "의지적인 행동"으로 노를 저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역풍이 불 때도 의지적인 순종을 펼치는 행위입니다.
어부들이 말하길 순풍이 불 때 보다 역풍의 풍랑이 있을 때
태킹(Tacking)이라는 기술을 이용하여 배를 더 빨리 진행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합니다.
"큰 물결 인하여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의지적인 순종의 믿음을 통해서 우리는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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