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열왕기하6 - 왕하 17장(이스라엘의 멸망)

JORC구원열차 2009. 7. 1. 00:48

6. 열왕기하 17장 / 이스라엘의 멸망

 

이 긴 장에서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과, 어떻게 하여 북왕국이 결국 유배당하게 되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앗수르는 주전 722년에 그 민족을 정복한 후에 사마리아(북왕국의 수도)를 빼앗았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큰 승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 패전으로 바뀌어 졌고, 이 일은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가장 보잘 것 없는 일로 만들어 놓았다.

 

1. 사마리아의 함락 (왕하 17:1-6)

 

호세아는 앗수르의 협력을 얻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는 앗수르왕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약속했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사악한 왕으로 알려져 있으나(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20명의 사악한 왕이 있음), 그의 죄들은 그의 선조들만큼 나쁜 것은 아니었다. 2절은 호세아가 그 민족을 보다 나은 길로 인도하고 싶어한 것을 암시한다.

 

역대하 30장 6-11절은 그가 경건한 히스기야왕이 초청한 큰 유월절에 그의 백성이 참가하도록 허락한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왕은 자신을 앗수르에 팔았으며, 바꾸기에는 때가 너무 늦었다. 말하기는 슬프지만, 그는 연례적인 조공을 바치기를 거절하고 애굽과 은밀한 협정을 맺음으로써 앗수르에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스라엘이 도움을 청하려 “애굽에 내려가기를” 얼마나 좋아하였는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원을 받기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예레미야 17장 5-7절과 호세아 7장 11-13절에는 애굽과의 동맹에 대한 선지자의 태도에 대해 묘사되어 있다.

 

앗수르는 이 반역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그들의 군대는 북왕국을 짓밟았으며, 마침내는 수도인 사마리아에 집결하였다. 사마리아는 방비가 든든한 성이었으며, 앗수르가 그 성을 점령하는 데에는 3년이 걸렸다. 그러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백성은 여호와를 버렸고, 하나님은 이미 그들이 포로 될 것을 말씀하신 터였다.

 

앗수르는 “농작물의 정수”(최고의 시민들)를 그들의 땅에서 데려가는 것과 다른 곳에서 포로되어 온 외국인들로 그 빼앗은 땅을 식민지화시키는 정책을 썼다. 250년 간의 계속적인 죄와 반역 끝에, 결국 이스라엘 민족(북왕국)은 적에게 포로가 되어 수치와 패전의 불모지에 남겨지게 되었다. 만일 이스라엘의 첫왕 여로보암이 여호와의 길로 행하여 그의 민족을 율법에 순종하도록 이끌어 갔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로보암이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민족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인도해 갔음을 본다. 그의 후계자들도 이스라엘을 죄에 빠지게 한 여로보암의 죄 가운데 행하였다(왕상 16:19/왕상 16:26/왕하 3:3).단과 벧엘에 둔 금송아지들은 이스라엘을 곁길로 인도해갔다(왕상 12:25-33).

 

2. 포로된 경위 (왕하 17:7-23)

 

역사란 단순히 인간의 사건들의 연속이 아니다. 왜냐하면 각 민족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구절들에서는 성령께서 사마리아가 망한 이유를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라들을 존경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을 그처럼 혹독하게 징계하셨다면 오늘날 그에 대항하여 반역하는 나라들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은 어떠하겠는가! “역사(History)는 그 분에 대한 이야기(His story)이다.”

 

1) 백성이 하나님을 잊음(7절)-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속하셨으며 그들을 값주고 사서 자기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연중행사인 유월절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케 하였으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잊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여러 번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기억하며 그의 자비를 잊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신 10:6- /신 8:1- 참조).

 

2) 백성이 은밀히 불순종함(8-9절)-

하나님은 가나안에 있는 이방 민족들과 섞이지 말라고 그들을 경고하셨었다(신 7장). 그러나 이스라엘은 은밀하게 불순종하였다. 그들은 마음이 육욕에 차서 점차적으로 그들 주위의 이교 숭배에 굴복하였다.

 

3) 백성이 공개적으로 반역함(10-12절)-

은밀한 죄로 시작한 것은 궁극적으로 공개적인 죄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극시켰다(출 20:4/신 4:16/신 5:8 참조).

 

4) 백성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저항함(13-15절)-

여호와는 그들을 경고하고 그들과 변론하도록 거룩한 선지자들을 보내셨다. 그러나 이 민족은 고집스럽게 반역을 하며 목을 곧게 하였다(출 32:9/출 33:3/행 7:51 참조). 그들은 성령으로 씌어졌으며 그들을 축복하려고 주어진 율법을 거절하였다. “허무한 것(헛된 우상들)을 좇아 허망하며”라는 15절의 말씀은 대단히 두려운 선언이다. 우리는 우리가 숭배하는 것처럼 되어 진다(시 115:1-8 참조).

 

5) 백성이 스스로 악에게 팔림(16-23절)-

그들은 죄의 노예가 되었다. 여로보암이 세웠던 금송아지조차도 이스라엘의 육욕에 찬 마음에 만족을 주지 못하였다. 이들은 가나안의 신들을 예배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로부터 신들을 들여왔다. 하나님은 왕국을 분열시키시고(18절), 다윗의 집안으로 하여금 유다를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나 유다도 역시 죄에 빠져 들어갔다. 하나님은 그 민족을 “약탈자”에게 넘기셨는데(2절), 이 약탈자들은 그들의 나라 안에도 있었고 “산울타리” 밖에서 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왕으로부터 노략질 당하였으며, 적들로부터는 공격을 받았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하여 심판이 임할 것을 경고하셨으나, 백성들은 맹목적으로 이 죄에서 저 죄로 옮겨 다녔다.

 

구약은 20명의 이스라엘 왕을 열거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사악했다.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되기까지는 250년이 걸렸을 뿐이다. 이들은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들의 말을 들었으나 여호와께 무릎 꿇기를 거절하였다. 배교에 대해서는 치료책이 없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심판하시는 일 뿐이며 남은 신자들을 취하여 다시 시작하는 일뿐이다.

 

3. 사마리아의 식민지화 (왕하 17:24-41)

 

앗수르왕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을 외부로 내보낸 후에, 자신의 통치 아래 있는 다른 민족들로부터 시민들을 이끌어 들였다. 이러한 이주 정책은 이스라엘이 조직화하여 반역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 구절들은 사마리아인들의 기원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들은 곧 요한복음 4장과 사도행전 8장에서 보게 되는 혼혈의 사람들인 것이다.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온 신앙의 그루터기 유대인들, 즉 정통 유대인들은 이 “혼혈”의 민족과는 상종을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예배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으며 구원은 유대인들로부터 오는 것임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요 4:22).

 

초기에는 사마리아에 종교적인 신앙이 없었으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의 마음에 경외심을 주기 위하여 사자 떼를 보내셔야만 했다(사 25장 참조). 그러나 지도자들은 가장 특이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이들은 유대의 제사장들을 데려다가 여호와의 도를 배웠다. 그리고는 여호와와 자신들의 민족적인 신을 동시에 섬기도록 하였다. “각 민족이 각기 자기의 신상들을 만들었다”고 29절은 말한다. 이것은 옛날의 “에큐메니칼 운동”(교회연합운동)이었다. “여호와를 경외하였다”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눈여겨 보자(25, 28, 32-34, 41절).

 

그들은 여호와를(“그 땅의 신”으로/ 27절) 경외하였으나 정작 예배하고 섬긴 것은 그들 자신의 신이었다(33절). 그들의 여호와께 대한 예배는 공허한 형식이었으며 단순해 외적으로 보이기 위함이었다. 이들이 진심으로 예배한 것은 자신의 이교 신상이었으며, 여호와는 다만 그들이 신을 수집하는 데 있어서 또 하나의 “신”에 불과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의 땅에 심판의 엄한 손이 임한 것을 보고서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여호와께 불순종하며 버티었다. 궁극적으로, 우상 숭배의 암적 영향은 유다에게로 퍼져갔으며 주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인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파괴하였다. 한 떼의 남은 자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인도로 돌아 왔으며 민족은 다시 꽃피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자기 백성에게 보내셨을 때 이들은 그를 거절하였으며, 다시 한 번 심판이 임했다.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민족은 온 세계에 흩어졌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나라는 복되도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의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은 모든 그리스도인 시민들로 하여금 나라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도록 동기를 주게 된다. 거룩하지 못한 지도자들은 거룩하지 못한 시민의 세대를 산출하며(41절), 타협적인 제사장들은 예배자들을 여호와로부터 더욱 멀어지게 인도해 간다.

 

여호와의 말씀이 거절당할 때(34-38절), 민족의 장래에는 희망이 없다. 자비가 연장될 수는 있으나(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해 250년을 참으셨다.) 최종적으로는 심판이 임할 것이다. “배교에 대한 해결책은 없다”는 사실은 중요한 교훈이다. 일단 교회나 교파, 또는 민족이 여호와께 등을 돌리면 하나님은 심판하시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충성된 믿음의 “그루터기”를 구원하셔서 다시 증거를 시작하신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자를 축복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