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욥기 4-37장 / 욥의 변호
이 장들은 너무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각 장의 내용을 상세하게 검토할 수는 없다. 만일 흠정역 성경(K. J. V)과 더불어 현대어 번역판으로 이 부분을 읽는다면 이들의 논쟁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버클리 판(Berkeley Ver-sion)이나 표준판(American Version)을 권한다.
1. 욥에 대한 비난
욥의 네 친구들은 그를 위로하러 와서는 비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들 각자는 이러 저러한 방식으로 말했지만 결국은 “하나님은 의인을 축복하시고 사악한 사람들에게 고난을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을 주셨다. 그러므로 욥은 사악한 사람임에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들의 생각이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것은 못되었다.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은 하나님의 길을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너무도 무지하다. 하나님을 인간이 만든 틀 속에 적합하게 맞추려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이며 하나님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세 친구들이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가지는 온전한 계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고난은 반드시 죄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축복으로 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다른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방법을 설명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욥이 자기의 친구들을 “번뇌케 하는 안위자들”이라고 부른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16:2).
엘리바스는 제일 먼저 말하면서 욥이 죄인이라고 논쟁을 시작한다(4:7-11). 그는 자기가 옛날에 경험한 특별한 묵시에 입각하여 생각하고 있다(4:12-21). 따라서 우리는 엘리바스가 생의 어려운 사실들을 개인적인 경험으로, 따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빌닷은 8장 1-7절에 있는 논제를 택하여 하나님은 불의한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8장 8-10절에서 그는 전통으로부터 논제를 꺼내며 자신의 논점을 지지하기 위하여 일련의 “옛 지혜의 말씀”을 꺼낸다.
소발은 11장에서 욥을 문책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 친구들은 모두 같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 즉, 이들은 욥의 슬픔에 가담하여 그에게 동정심을 베풀지 못했으며, 하나님이 “굳고 딱딱한 분”이시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진리가 아니다. 또한 이들은 매우 독단적이고 교만하여 욥의 말을 듣고 자신의 이론들을 검토하려들지 않았다. 인간의 고난에 대한 문제는 세 친구들이 간단히 대답하기에는 너무도 깊고 복잡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죄를 범한 일이 없으시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고난을 많이 당하셨다! 욥이나 그의 친구들은 하늘의 회의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으로서 다 이해하지 못할 때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 대해 사단과 천사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욥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도 이들은 모르고 있었다. 친구들은 욥을 “지선자”라고 불렀으나(8:13/15:34/20:5/34:30), 하나님은 그를 “순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부르셨다(1:8/2:3). 2장 3절에서 하나님은 욥을 괴롭힐 아무 까닭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셨으므로 욥은 위선자나 죄인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엘리후의 발언과(38:1-2) 세 사람의 발언 내용을 거절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42:7).
세 친구들이 욥의 고난은 죄에 대한 형벌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 반면 엘리후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32-37장).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시며 또한 가르치시기 위하여 고난을 보내신다(33:3-20/35:10-16). 엘리후는 하나님에 대한 보다 높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발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아름답게 지적한다(37장). 그러나, 엘리후도 욥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친구 엘리후의 “무지한 충고”에 대하여 문책하셨다(38:1-2).
2. 욥의 논점
각 사람의 발언에 대하여 욥은 엘리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응답을 하였다. 엘리후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셔서 대답하셨다. 욥이 주장하는 점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나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며 능력이 많으심을 너희들과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죄인이 아니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무엇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과 내 경우를 논하고 싶은데 그를 찾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오는 세상에서 나를 변호하실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욥이 그러한 처지에 있으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응수하는 데는 큰 믿음이 필요했을 것이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서 욥의 인내를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 친구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한 자에게 고난을 주신다고 주장하였고, 욥은 악한 자들은 번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였다. 18장에서 빌닷은 사악한 사람들의 무서운 운명을 꺼지는 빛(5-6절), 그물에 걸린 새(7-10절), 뒤를 쫓아오는 무서운 것(11-13절), 찢어진 장막(거처, 14-15절), 뿌리가 마른 나무(16-17절)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비유하였다. 20장에서 소발은 사악한 자의 외적인 번영은 잠시 동안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21장에서 욥은 그들의 주장을 거부하고 사악한 자들의 탁월한 건강과 부를 지적한다. 24장에서 욥은 “어째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 관여하셔서 어떤 조처를 취하지 않으시는 것일까?”라고 묻는다. 욥은 사악한 자들의 죄를 열거하며, 31장에서는 자신의 경건한 생활을 다시 설명한다. 세 친구들은 욥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켰다. 엘리후의 장황한 발언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3. 욥의 호소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들은 욥이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그의 친구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다.
1) 동정을 호소함-
그의 친구들은 사랑과 이해를 보이지 않았다. 욥은 고난당하는 성도에 대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요 9:1-3 참조). 6장에서 욥은 생에 대한 맛을 잃었으며(6-7절), 죽고 싶다(8-13절)고 말한다. 그는 그의 친구들이 마치 목마를 때에 말라버린 시냇물 같다고 비유한다(14-20절). 7장에는 생의 시련과 덧없음을 몇 가지 비유로 나타내 주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전쟁(1절), 품군(1-5절), 빠른 베틀의 북(6절), 한 호흡(7-8절), 구름(9-10절/ 약 4:13-17 참조) 등의 비유이다. 9장 25절에서 욥은 인생을 빠른 우체부(에 8:9-14 참조)로, 빠른 배로 비유한다(9:26).
2) 하나님을 대면할 기회를 호소함-
9장에서 욥은 자기의 경우를 하나님께 제시할 방법이 없다고 불평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33절에서 욥은 그와 하나님 사이에 설 판결자가 있기를 호소한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9:2)는 말은 “어찌 인간이 자기의 경우를 하나님 앞에 탄원할 수 있으랴”는 뜻이다.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 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안에 서신다!(딤전 2:5/요일 2:1-2/슥 3:1-/욥 16:19-22/욥 23:3 참조).
3) 자신의 기본적인 결백에 호소함-
욥은 발언할 때마다 남모르는 죄가 있음을 부인한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으며, 자기의 친구들이 자신을 지독하게 그릇 판단하였다고 고백한다. 이 책의 끝부분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친히 욥에게 계시하셨으며 이 노인은 티끌과 재 가운데서 경배하며 자신의 무가치함을 고백한다(40:3-5/42:1-6). 그러나 이것은 죄의 고백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능자의 면전에서 자신의 무지함과 무가치함을 깨닫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결코 욥을 죄에 대해 고발하지는 않으셨다. 그 대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국한된 작은 논쟁에 맞추려고 하는 것으로 인해 욥을 고발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친구들이 고발한 내용을 가지고 욥을 심판하지는 않으신다. 욥이 자기의 경건한 생활에 대하여 변호하는 것을 31장에서 찾아보자.
4) 하나님을 믿는 자기의 신앙에 호소함-
이 점이 문제를 야기시켰다. 욥은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나 하나님은 욥을 피하신 것처럼 보였다. 만일 욥이 하나님을 부인하거나 저주하였다면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의 친구들은 욥의 불신앙을 인하여 벌하신 것이라고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욥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나를 죽이시더라도 나는 그를 의지할 것이다.”(13:15) “나는 내가 의롭게 될 것을(변호될 것을, 진실로 입증될 것을) 믿는다”(13:18).
욥의 믿음은 대단히 큰 것이어서 만일 이 세상에서가 아니면 다음 세상에서라도 부활을 통하여 자신을 변호해 주실 것이라고 언급한다(19:25-29/14:1-14). 욥은 하나님께서 어떤 목적을 성취하고 계심을 알고 있었으나, 그가 행하시는 일에 대해 욥에게 말하셔야 한다고 생각하였다(23장). 물론 욥이 천국의 비밀회의를 알았더라면 믿음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5) 죽음에 호소함-
4장에서 논쟁을 시작할 때부터 논쟁을 끝낼 때까지 욥은 계속해서 죽음을 청하고 있다(6:8-12/7:15-21 참조). 욥이 죽음을 원하였다 해서 너무 비판적이 되지는 말자. 그는 육신적으로 대단한 고통 가운데 있었으며 친구들과 이웃들은 그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었다(30장).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신 것처럼 보였다. 모세, 엘리야, 요나도 똑같은 오류에 빠졌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빌닷조차 “이것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 중의 일부이다”고 시인하였다. 이 말을 직역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 중에서 변두리이며, 옷의 가장자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신학보다 더 위대하시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경배하며 신뢰할 수 있다.
'구원의 이정표 > 핵심성경연구-구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1 - 시 1편(복있는 사람) (0) | 2009.07.03 |
---|---|
욥기4 - 욥 38~42장(욥의 구원) (0) | 2009.07.03 |
욥기2 - 욥 1~3장(욥의 재난) (0) | 2009.07.03 |
욥기1 - 욥기 서론/개요 (0) | 2009.07.03 |
에스더3 - 에 5~10장(하만의 몰락) (0) | 2009.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