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도행전 6장 / 최초의 집사들
이제 우리는 교회 내부에 있는 두번째 문제에 봉착한다. 5장에서 문제점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에 있던 속임수였는데 여기서는 신자들의 등급에 대한 불평이다.
1. 교회원의 곤경 (행 6:1-7)
어느 의미에서 이 문제는 축복의 증거였다. 교회가 급진적인 수적 증가를 보임으로 사도들은 음식을 매일 나누어 주는 일을 다 처리할 수가 없었으며 헬라파 유대인들 중의 더러는 소홀히 되고 있었다. 교회의 성장하는 모습을 추적해 보면 매우 고무적이다. 3,000명의 신자들(2:41)에 믿는 이들이 매일 더하여지고(2:47), 남자의 수만 해도 5,000명 이상이 되었고(4:4), 수가 더 많아졌으며(6:1), 더 심히 많아졌다(6:7).
이 놀라운 성장의 비결은 무엇인가?
5장 41-42절에서 답을 찾아 보자. 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어떤 값이라도 기꺼이 지불하려는 자세였으며, 사람들은 매일 믿음으로 살았다. 사도행전 5장 42절은 우리가 따라야 할 좋은 본을 보여 준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날마다
-하나님의 집에서-여기서 성전은 “영적으로” 해석하여 지교회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집 저집에서
-모든 회원들이
-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다.
경건한 목회자들이나 직원들만으로는 교회를 성장시킬 수 없다. 모든 회원들이 같이 일을 해야만 한다.
문제는 “먼저 와야 할 것을 먼저 둠으로” 해결을 볼 수가 있다. 사도들은 그들의 우선적인 사역이 기도와 말씀을 전파함에 있음을 알았다. 만일 지교회들이 그들의 목회자들로 하여금 사도행전 6장 4절을 준수하게 한다면 확실히 영적인 능력과 수적 증가를 보게 될 것이다 ! 기도와 말씀은 늘 수반된다(요 15:7/잠 28:9). 사무엘이 이러한 방식으로 사역했으며(삼상 12:23), 그리스도(막 1:35-39)와 바울(골 1:9-10)도 그러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다.
에베소서 6장 17-18절은 기도와 말씀이 마귀를 정복할 것임을 언급한다. 고린도후서 9장 9-15절은 기도와 말씀의 사역이 교회가 필요로 하는 재정적인 자원을 공급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기도와 말씀은 모든 면에 있어서 교회를 세운다(행 10:32-36).
이 일곱 사람들은 사실상 “집사들”이라고 불리워진 것은 아니다. 6장 1절에 나오는 ministration(“구제”로 번역됨)은 헬라어로는 “디아코니아”(diakoniva)란 단어인데,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집사”라는 말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종”이라는 뜻이며 6장 2절에서는 “섬긴다”는 뜻으로, 6장 4절에서는 “돌본다 또는 사역한다”는 뜻으로 주어졌다.
사도들이 사실상 “지명”하였으나 선출하는 데는 전 교회가 참여하였다. 사도들은 또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자격 조건을 내 놓았는데, 신자들이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 일은 영적인 지도자들과 양무리의 회원들 사이에 이루어진 단합과 조화를 나타내는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초기의 임명이 집사 직분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크다(딤전 3:8-).
이들의 주된 임무는 물질적인 일들을 돌보는 것이었고, 이리하여 사도들이 특별한 영적인 사역을 하도록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오늘날 집사는 목회자를 보조하고, 상의하고, 섬기며,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하나님은 집사들이 목회자를 구속하는 곳, 그리고 목회자를 성별된 “심부름꾼”으로 만들고 목회자 주위에서 “왕초 노릇”을 하는 곳에 축복할 수가 없으시다.
선출된 사람들이 헬라 이름들을 가지고 있음에 유의하자. 이것은 초대 신자들의 사랑과 서로 서로 즐겨 경의를 표했음을 보여 준다. 빌립은 나중에 복음 전도자가 되었다(8:5/8:26/21:8). 모든 교회의 직원들은 복음 전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정직하게 직면하여 해결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보라!(7절)
2. 충성된 집사 (행 6:8-15)
스데반이란 이름은 “면류관”이란 뜻이며, 그가 죽기까지 충성했으므로 승리자의 면류관을 획득했을 것이 분명하다. 3절에 의하면 스데반은 신자들 사이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였고 실생활에서 지혜를 나타내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참으로 훌륭한 조화가 아닌가! 그는 말과(10절) 그가 행한 일(8절)로써 이중적인 증거를 지니고 있었다.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말을 부인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증거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루살렘에는 유대인의 회당이 수백 개나 있었으며, 다른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세운 곳이 많았다. 리버디노(9절)의 회당은 유대인의 노예였다가 해방된 사람들의 후손들인 로마 유대인들이 세운 것이었다(리버디노는 “자유로와진 사람들”로 해석됨). 스데반이 길리기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논쟁을 했음에 유의해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다. 바울이 그 지방 출신이므로(21:39), 회당에서 논쟁할 때 스데반을 대면했을 가능성이 많다.
원수는 언제나 일하고 있어서, 오래지 않아 스데반은 체포되었다. 그들은 스데반이 모세와 율법을 모독했으며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고발하였다. 요한복음 2장 19-21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참고가 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취급했던 방법으로 스데반을 다루었다. 거짓 증인을 세우고 거짓 고발을 하였으며, 정당한 재판의 이점을 취하지 못하게 하였다(막 14:58/막 14:64 참조). 하나님은 스데반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게 하심으로써 스데반의 믿음이 진실이라는 증거를 나타내셨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세대에 걸쳐 내려오며 실패했음을 보여 주는 스데반의 위대한 연설을 상고해 볼 것이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그리스도를 배척함에 따라 7장은 전환점을 이루며 메시지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방인들에게로 뻗어가게 되었다.
▣ 실천적인 교훈
사도들은 사실 헬라어를 구사하는 유대인을 소홀히 다루었으나, 그들의 불평이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이것은 육신의 죄이며(갈 5:20), 하나님은 이 일에 대해 우리를 경고하신다(고전 10:10). 이스라엘은 불평하다가 형벌을 받았다.
어떤 교회에서는 본 장을 완전히 거꾸로 적용하여 지도자들로 하여금 영적인 음식을 준비하게 하기보다는 점심, 저녁, 연회, 만찬을 돌보게 한다. 먹는데 잘못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또한 교회의 교제에도 잘못된 일은 없다. 그러나 영적인 것보다도 육신적인 것이 더욱 중요시될 때 쇠퇴가 찾아온다.
교회들은 지도자들과 직원들을 선출함에 있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은 인사 조치에 필요한 조건들을 주시며, 우리는 이 조건들을 따라야만 한다. 스데반은 성령께서 그의 사역을 인도하시게 했다. 그는 앉아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회당에서 전도하기 위하여 매일 책상 앞을 떠났다.
초대 교회의 조직은 간단하였으며 영적이었고 성경적이었다. 오늘날은 위원회와 협의회 등과 같은 것이 있어서 주님의 사역을 복잡하게 하며 목회 사역을 방해하고 있다. “최대의 일을 위한 최소의 조직”은 캠벨 모르간(G. Campbell Morgan)이 추종한 정책이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그렇듯이, 기도와 말씀의 사역이 없는 조직은 실패한다. 일곱 사람들은 사도들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보조하며 돕는 사람들이었다. 교회가 영적인 지도력, 기도, 말씀에 대한 꾸준한 식욕 등이 없다면 “적절한 조직”을 가졌다고 해도 성장하지는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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