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고린도 전서16 - 고전 15장(부활에 관한 강론)

JORC구원열차 2009. 7. 20. 16:32

16. 고린도전서 15장 / 부활에 관한 강론

 

헬라인들은 죽은 자들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바울이 아덴에서 부활을 전했을 때에 어떤 사람들은 이 교리를 비웃었다(행 17:32). 헬라의 철학자들은 몸은 영혼의 감옥이며, 영혼이 죽음을 통하여 몸에서 빨리 자유로워질수록 좋은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인간의 몸을 연약함과 사악함의 근원으로 보았기 때문에, 죽은 후에도 몸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바울이 본 장을 썼을 때는 이러한 종류의 사상을 처리해야 했던 것이다.

 

1. 신자의 부활에 대한 증명 (고전 15:1-34)

 

1) 역사적인 증명(1-11절)-

고린도의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바울은 여기서 논술을 시작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복음의 메시지, 목격자들의 증거, 바울 자신의 회심 등의 사실로 입증된 역사적인 사건이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구원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은 구세주는 아무도 구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전개해 간다.

 

“이제 나는 너희 고린도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면 너희의 믿음은 공허한(헛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계셨고 이제는 부활의 몸을 가지고 계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된 몸을 영원히 지니신다면, 우리 신자들이 그러한 몸을 가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연합함에 관한 또 다른 면이다. 그가 영화롭게 되셨기 때문에 우리도 어느 날 영화롭게 될 것이다.

 

2) 개인적인 증명(12-19절)-

이 구절들에서 바울은 그들 자신의 경험을 지적한다.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며 그들은 믿었고 그들의 삶이 변화되었다(6:9-11). 그러나, 죽은 자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는 아직도 죽어 있는 것이며 복음은 거짓말이 된다. 그들의 믿음은 헛되고, 그들은 아직도 죄 가운데 있게 된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사람이 살아있어야만 유익한 것이며 죽은 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는 뜻이 된다.

 

3) 교리적인 증명(20-28절)-

여기서 바울은 “두 아담”에 관한 성경 교리를 다룬다. 로마서 5장에서도 이 논점을 사용한다.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첫 아담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을 통하여 죽음이 정복되었다. 그리스도는 그 첫 열매이시며 아직 오지 않은 대추수의 첫 번째 단이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마지막 아담”이시며, 첫 아담이 세상에 불러들인 모든 잘못된 일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부활할 것이다(23절/ 살전 4:13-18).

 

그리스도는 최종적으로,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그의 발 아래 두실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죽은 자들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장래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다. 만일 신자들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라면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효가 되는 것이다.

 

4) 실제적인 증명(29-34절)-

바울은 이제 몸의 부활을 입증하는 데에 일상생활에서의 몇몇 실천 사항들을 언급한다. 그 한 가지로, 고린도인들은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침례)를 받고 있었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세례(침례)를 받기 전에 죽은 성도들을 위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세례(침례)를 받았다는 뜻인지, 아니면 새로운 신자들이 세례(침례)를 받아 죽은 자들의 위치를 대신 채웠다는 뜻인지 확실치 않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고린도 교회는 세례(침례)를 행하고 있었는데, 세례(침례)는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다면 이러한 의식은 의미가 없다.

 

30-32절에서 바울은 자기 사역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위험들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부활이 없다면 내 생명을 스스로 매일 위험에 내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리고 33절에서는 “부활이 없다면 우리가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수 있을 동안에 생을 즐기라!”고 말한다. 물론 부활이 없다면, 이러한 실제적인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34절에서 결론을 제시한다.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라. 너희는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2. 신자의 부활 과정 (고전 15:35-49)

 

“죽은 자들이 어떻게 부활할까?”하는 문제가 여기서의 핵심 질문이다. 바울은 죽음을 떠나서 생명이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자연을 예로 사용한다. 심겨진 씨는 죽어서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그 열매는 원래의 씨와 동일한 것이긴 하나 씨와는 다르다. 천국에 있는 몸과 같이 부활한 몸은 각기 그 영광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심은 것은 똑같은 몸이 아니지만(37절) 육체의 몸과 부활한 몸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무덤에 묻힌 육체는 부패하기가 쉽다. 그 몸은 수치로 말미암은 비천하고 연약한 것이어서 자연 환경에 잘 어울린다. 부활한 몸은 썩지 않을 것이다. 그 몸은 능력과 영광을 가질 것이며 영적인 환경에 적합할 것이고, 천국의 형상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한 몸이 여기서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내용의 실례이다. 신자들이 그를 알아보았으므로, 그의 십자가에 달리신 몸과 영화롭게 된 몸 사이에는 연속성이 있다. 주님은 또한 자기의 모습을 변형시킬 수도 있으셨다. 그는 잠긴 문을 통과하여 드나들 수 있으셨고 구운 생선을 드셨다(눅 24:41-43). 그리고 제자들이 그를 만지도록 권유하셨다. 그 몸은 같은 몸이었으며 또한 다른 몸이기도 했다. 부활의 몸은 인격적인 동일성과 개별성이 유지되지만 또한 새로운 삶에 적합하도록 될 것이다.

 

3. 신자의 부활에 대한 계획 (고전 15:50-58)

 

이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다루면서, 그것이 신자와 죽은 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하여 다룬다. “우리는 모두 죽지는(잠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성도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변화될 것이다.”

 

이 비밀(mystery)은 교회의 휴거와 관련이 있다(신약의 비밀은 “가족”에 의해서만 이해되는 진리이며, 지나간 시대들을 통하여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려진 것이다). 그리스도가 돌아오실 때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이며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들과 더불어 올리워지고 모든 사람들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와 같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날 것이다.

 

그는 승리에 대하여 쓰는 것으로 끝맺는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의 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쏘는 것을 제해버리셨기 때문이다. 무덤도 이기지 못할 것인데, 어느 날 그리스도께서 무덤들을 비게 하실 것이며 부활의 능력에 자기의 사람들을 내어놓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헬라인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얼마나 절망하였는가! 그리스도와 로마의 무덤에 새겨진 비문들은 죽음이 가장 큰 적이며, 무덤 저편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생명과 소망이 있다.

 

58절은 설교의 본문으로 흔히 사용되는 구절이다. 그리스도인은 확고부동하고 요동치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최악의 적인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다른 적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봉사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이 영원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다.

 

본 장에서 바울은 “헛되다”라는 구절을 여러 번 사용한다. 이것은 “내용이 없이 빈 것”을 뜻한다. 무덤이 비었으므로 우리의 믿음과 행위는 헛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무덤이 비지 않았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헛된 것이다.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되며(14절),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14절), 우리의 행위도 헛되다(58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한 우리의 승리를 하나님께 감사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