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고린도후서 7장 / 바울의 모습
2장 12-13절에서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디도와 더불어 가진 경험을 말하기 시작했는데, 본 장에서 그 이야기를 완결 짓는다. 1-2장에서 종종 위로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여기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4-7, 13절). 본 장에서 호소하는 바는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과 화해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비관적이고 불순종적이었으나 이제는 그를 받아들이고 그와 다시 교제를 나눌 때이며, 특히 앞으로 그가 방문할 것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래야 할 것이었다.
본 서신의 초두에서 바울은 디도를 기다리면서 에베소에 남아 있을 때 부딪힌 시련에 대하여 말했으며 고린도교회의 상황에 대해 염려하였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위로하시고 기쁨을 주셨는지를 설명하는데, 세 가지의 위로가 언급된다.
1. 디도의 도착으로 인한 위로(7:1-6)
“우리를 영접하라”는 말은 직역하면 “너희 마음에 우리를 위한 여지를 만들라”는 뜻이다(6:11-12 참조). 바울은 그의 정결한 생활과 정직한 사역에 대하여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은 그들을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서둘러 확신시킨다.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신의 생활에 있어서 생명의 일부가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정죄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바울이 고민스럽게 실망할 만한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확실히 보게 된다(5절). 디도는 어디 있는가? 고린도의 상황은 어떠한가? 에베소에 설립된 교회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모든 문제와 그 밖의 많은 문제들이 마게도냐로 여행하는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디도의 도착은 바울에게 큰 위로의 근원이 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내던져졌다”고 시인했지만 그의 친구의 도착은 그에게 큰 위안을 가져왔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서로 지고(갈 6:2), 서로를 격려하며(히 10:25), 서로를 섬겨야 한다(벧전 4:10-11).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내보내셨다. 주님은 그리스도인의 봉사에 있어서도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혼자 있는 그리스도인은 실패한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많다. 전도서 4장 9-12절은 “둘이 하나보다 낫다”고 진술한다.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격려하는 것은 얼마나큰 특권이며 책임인가! 엘리야가 자신을 하나님께 충성된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는 타락하기 시작했다. 요나가 혼자 있게 되었을 때 씁쓸한 기분을 진전시켰던 것을 기억하라.
2. 고린도 사람들의 순종을 통한 위로 (고후 7:7-12)
잠언 25장 25절은 “먼 땅에서 오는 좋은 소식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같으니라”고 말한다. 디도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은 하나의 큰 위로였다(행 28:15).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위로는 바울의 엄격한 편지가 결실을 맺었다는 좋은 소식을 듣는 것이었다. 7절은 바울의 편자로 인한 결과를 나열하고 있다. 그들은 바울을 다시 보려는 열렬한 욕망을 가졌고 그들이 죄를 통회하였으며, 바울을 향한 그들의 사랑이 다시 불붙었고 회개하고 위반자를 징치하였다(8절).
고린도전서 5장에서 교회 내의 간음자에 대한 바울의 명령을 읽어보라. 11절에서 바울은 다른 몇 가지 반응들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들은 바울에게 순종하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결케 되기를 추구하였으며 죄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었고, 우쭐대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전 5:2 참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치하실 것을 두려워했으며 강한 결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였다. 11절의 “벌하다”는 것은 개인적인 증오라는 개념을 전하고 있지는 않다. 위반자는 적절히 벌을 받아야 함을 시사한다.
바울은 여기서 회개에 관한 중요한 교리를 가르친다. 바울은 회개와 후회사이에 방대한 차이가 있다고 언급한다. 회개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인간을 하나님께서 더욱 가까이 끌어당기는 슬픔이며, 죄를 고백하고 버리게 하는 자리로 인도한다. 반면에 후회는 세상에서 와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몰아가며 사단의 손에 붙이게 한다. 예를 들면, 베드로는 회개하고 용서를 받았으나, 유다는 후회하여 자신의 생명을 끊었다.
거룩한 슬픔은 유익한 것이다. 이는 생명으로 인도한다. 그러나, 세상의 슬픔은 죽음으로 인도한다. 오늘날 자살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참된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로운 용서를 알지 못하는 데에 있다.
12절에서 바울은 잠시나마 유감스러웠을 엄격한 편지를 쓴 것은 그들을 향한 자기의 사랑을 입증하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6절). 이 편지를 쓴 것은 위반자를 바로 잡기 위한 것과 그로 인해 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한 자신의 관심과 염려를 입증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교정하는 일을 피하고 사실을 직면하지 않는 영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나 주님을 진지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 곳의 신자들이 영적인 손실로 인해 고난을 당하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었으며(9절의 “해”) 그의 호된 책망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으며, 그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었다.
3. 그들이 디도를 영접한 데서 오는 위로 (고후 7:13-16)
디도는 바울을 만나자 기쁨이 넘쳤다. 그가 기뻐한 것은 고린도 교회가 그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교회는 젊은 디모데에게 그처럼 관대하지 못했었다(고전 4:17). 그런 일이 없었다면 디도가 파송되는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었다(고전 16:10-11 참조).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 교회를 자랑했었는데 이제 이 “경건한 자랑”은 사실임이 입증되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그의 동역자에게 보인 사랑으로 인하여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디도를 그처럼 따뜻하게 영접한 것은 바울을 영접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린도를 다음에 방문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디도를 “두려움과 떨림으로” 영접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바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며, 순종함으로 그 말씀에 머리를 숙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의 말씀에 떨기를 원하신다(사 66:2). 퍽 이상한 일이지만,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첫 사역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었다(고전 2:3). 그들은 디도를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하였으며 그의 지도력을 주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 들였다(살전 2:13/살전 5:12-15).
“너희를 영적으로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히브리서 13장 17절은 명령하고 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을 대하는 방법을 보면 그들이 그리스도를 대하는 방법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의 종은 주님을 대신하기 때문이다(고후 5:20/요 13:20).
성경 전체를 읽어 나가며, 하나님의 백성이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의 종들이 기뻐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굴을 돌릴 때에는 그 종들이 부담감을 가진 것을 눈여겨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모세는 백성들의 반역으로 인해 포기하고 싶은 느낌을 종종 받았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인하여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며 울었고, 예수님 자신도 유대인들이 그들의 구원의 날을 모르는 것으로 인하여 우셨다. 바울의 사역 또한 눈물의 사역이었다(행 20:19/행 20:31).
하나님의 종들은 인간으로서, 그 안에 보물을 지니고 있는(고후 4:7) “질그릇”이며, 생활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실망과 실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에게 있어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기”(히 13:7)란 대단히 중요하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모든 자들에게 문안하라”(사랑으로 인사하라 - 히 13:24).
이제 그의 비판자들에게 해답하며 그의 사역을 변호하고, 교회의 사랑을 확신한 다음에, 바울은 유대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선교 헌금의 문제로 넘어간다. 영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물질적인 것들을 받아내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그들에게 누를 끼치고 그리스도를 해롭게 하는 원인이 된다. 많은 교인들이 가난에 시달리게 된 것은 그들이 영적으로 빈약하기 때문이다. 처리되어야 할 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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