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
1. 연구목적
“남은 자”는 종말론의 핵심적인 주제인 동시에 미래의 소망을 집약한 개념이다. 히브리어, 아람어, 그리고 헬라어의 갖가지 용어가 남은 자의 다양한 사상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개념이 의미론적으로 한층 폭넓은 언어에 담겨있을 경우도 없지 않다. 특히 구약에서는 이 개념이 540회 이상 사용되었으며 고대 근동의 문헌들을 살펴보면, “남은 자 사상”은 수메르, 아카드, 힛타이트, 우가릿과 이집트 문화에도 있으며, 신화, 전설, 서사시, 예언, 기도, 찬송, 편지와 연대기 등 여러 문학 형식에 등장한다. 또한 개인, 가족, 씨족, 부족, 근대 민족과 전체 인류 등의 실체와도 연관되어 표출된다. 자연, 사회, 정치영역에 있어서 생명을 위협하는 현상의 다양함은 그 분야별로 남은 자 사상의 공통분모로서 강조되기도 한다. 즉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생명을 보전하려는 인간의 실존적 관심을 공통적으로 가지게 된다. 그것은 “남은 자”가 갱신과 소생의 내재적 잠재력을 통해 생명과 지속적인 생존을 보존한다는 뜻이기도 한다.
남은 자 사상은 구약에서는 홍수 설화(창6:1-9:29)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 나타나있다. 이는 죽음의 위협가운데 생명을 보존하려는 인간의 관심에서 그 사상의 기원을 찾는다 이 사상은 그 시초에서부터 구속사적인 의미를 강력히 시사하는 신학적 틀을 갖추고 있었다. 이는 남은 자의 구원과 하나님의 참 백성의 핵심 구성원사이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말 해 주며 하나님의 주도권은 모든 위협과 장애물 및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상의 개요에 비추어 볼 때 “남은 자 사상”이 성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연구자료가 빈약한 형편이다. 다만 몇 편의 논문이 있기는 하나 이사야서를 중심으로 한 종말론적 이해를 언급했을 뿐 ,그 밖의 자료는 보고되어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은 자 사상”을 위한 연구의 필요성이 더욱 절박하다하겠다. 우선은 “남은 자 사상”이 성서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폭넓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며, “남은 자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주변 고대근동의 자료 등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방대한 자료를 입수,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중의 한 부분으로서 “남은 자 사상”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예언서의 이해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포로 전 아모스, 제1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을 먼저 이해하고 포로후의 학개, 스가랴 등의 “남은 자 사상”은 연구함으로 이 둘 사이의 변화는 어떠한 것인가? 를 규명하려한다.
이들 각각의 주장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더 나아가 성서 전체적인 남은 자 사상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이 갖는 특색은 없는가? 등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포로 전 후의 예언자를 전적으로 대표한다고 보기는 힘든 문제도 발생한다. 또 성서 전체에 나타나는 이 사상을 살핀 후에 이들의 사상을 연구하는 편이 훨씬 더 이해가 빠르겠으나 그러한 작업을 지나치게 방대하고 본고의 목적에 맞지 않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포로 전후의 남은 자 사상을 연구하기 위한 본고의 목적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서술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구약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을 개괄하고 이를 위해 구약에서 “남은 자”를 표현하는 용어를 살핀 후, 본고에서 다루고자하는 아모스, 제1 이사야, 학개, 스가랴의 사용법과 비교해 본다.
둘째, 포로 이전 공동체의 “남은 자 사상”을 주석적 연구를 통해 연구하기로 한다. 이 연구를 위해 두 예언자의 사상을 살피되 그 하나는 아모스의 입장에서이고, 또 하나는 제1이사야의 입장에서, 특히 그의 “스알야숩”에 대한 이해를 고찰함으로 포로 이전 예언자들의 사상 흐름을 고찰한다.
셋째, 포로 이후의 “남은 자 사상”을 주석적 연구를 통해 고찰한다. 포로 이후의 남은 자 사상을 고찰하는 데는 여러 예언자를 들 수 있으나 본고에서는 학개와 스가랴를 선택하기로 한다. 이들이 선포한 말씀 중에서 “남은 자 사상”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넷째, 앞에서 살핀 포로 전후의 예언자들의 ‘남은 자 사상’을 비교 검토함으로써 포로전과 후에 어떠한 사상의 변화를 보이는지 살피기로 한다. 또 이 변화가 있다면 왜 그러한 변화를 보이고 있는지, 성서에 있어서 “남은 자 사상”이 예언자들에게 사용되었을 때 독특한 점은 없는지를 찾기로 한다.
2. 연구 방법과 범위
(1) 연구방법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의 주요 연구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본고는 다음과 같은 연구 방법을 선택한다.
첫째, 본 연구는 성서에 대한 신학적 연구를 토대로 비교검토, 비판하는 “주석적 방법”을 택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남은 자 사상”을 기독교적 진리와 의미라는 면에서 충분히 성찰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둘째, 본 연구는 기존의 “남은 자 사상‘에 대한 연구들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방향의 연구를 찾고자 한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를 단순 분류 종합함이 아니라,기존 연구에서 전제되어 온 이론적 근거와 그 해석의 내용을 파악함으로, 보다 나은 모델의 제언에도 연결시키고자 한다.
(2) 연구 범위
본고의 연구 범위를 뚜렷이 제한하기 위하여 먼저 기존 관계되는 연구들을 살펴볼 때 연구 형태를 통한 강조점은 대략 미래 희망과 관계되어지는 종말론적 접근이라고 여겨진다. 이같은 연구 범위 가운데 신학적 학제간적 연구의 강조점들과 기존의 대표적 연구 모델로 평가되고 있는 제1 이사야의 연구는 본고의 중요한 범위가 될 것이다. 여기에 본고는 아모스, 학개, 스가랴를 더하여 이들 예언자들의 “남은 자 사상”을 연구하게 됨을 그 범위로 제시한다. 그 구체적인 범위는 다음과 같다.
Ⅱ장, 구약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에서는 먼저 구약에서 남은 자를 나타내는 용어의 쓰임을 살펴보고, 구약 전반에 걸쳐서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나는 부분들에 대해 간략히 언급함으로 본문과의 관계성을 하젤(G. Hasel)의 연구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Ⅲ장, 포로 이전 공동체의 남은 자 사상 연구는 아모스서의 3:13, 4:1-3, 6:9-10, 9:1-4을 주석하여 포로 이전의 상황에 대해 살펴 본 후 제1이사야의 7:3을 중심으로 주석한다. 제1이사야는 여러 곳에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나 있으나 후대에 편집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많아서 7:3을 택하기로 한다. 이 둘을 통해서 포로 이전의 남은 자 사상이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Ⅳ장, 포로 이후의 공동체 “남은 자 사상은 학개의 1:12-14, 2:2-9을 주석하며, 스가랴의 8:6, 11-12를 주석 하여 포로 이후의 남은 자 사상의 성격을 규명하기로 한다.
Ⅱ. 구약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
1. 남은 자 용어의 이해
구약에서 남은 자를 나타내는 용어는 여섯 개를 들 수 있고 이들 어근의 파생어들이 540회 사용되고 있다.
(1) ראשׁ 의 파생어들은 히브리어로 266회, 아람어로 10회가 사용되었다. 히브리어의 동사형 들은 “남아있다, 남겨지다, 뒤에 남다, 남겨두다, 떼어놓다” 등을 의미한다. 명사형 ראשׁ 과 תיראשׁ 는 “남은 잔류 자, 잔여, 잔재”를 의미한다. 창 7:23에서는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이 홍수 가운데 살아남았다는 것을 표시할 때 사용되고 있고, 이사야 11:11에서는 메시야의 시대에 군대가 깃발을 중심으로 모여들듯이 모든 흩어진 남은 자들이 그를 중심으로 모여서 메시야의 왕국을 이루며, 그 안에서 완전한 평안을 누리리라는 것을 예언하는 가운데 쓰였다.
다니엘 10:8에서도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 힛데겔 강가에서 매우 장엄하고 놀라운 이상을 홀로 남아서 본다는 것을 말할 때 쓰이고 있다. 이와 같이 남아있는 부분을 뜻할 때 사용되기도 하고, 작은 부분이나 절반, 아니면 큰 부분을 떼어낸 후의 나머지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한다.
출 10:5에서 애굽의 여덟째 재앙인 메뚜기 소동에서 밀과 나맥 등 애굽인이 남은 식량을 먹는다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고 있다. 또 이사야 4:3에서는 장차 이스라엘에게 있을 남은 자의 영광을 말할 때 사용되고, 17:6에서는 다메섹의 멸망에 대한 경고 중에서 북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 쓰였다. 그러나 특별히 תיראשׁ 는 어느 부분도 상실되지 않은 전체를 의미할 때 쓰이는 경향이 있다.
창45:7에서 사용된 이 단어는 창세기 전체에서 중요한 구원의 동기를 반영해 주고 있는 남은 자를 표현한다. 이는 희망을 간직한 말이며 전체가 이 남은 자 안에서 새로운 삶을 지속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용어의 사용이 예언자들에게 나타나는 남은 자 의미와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예언자들에게서는 하나님 백성 가운데 남은 자의 보존이 문제인데 창 45:7에서는 우주적 재난으로부터 남은 자를 구원하는 것이 문제이다.
ראשׁ 는 구약에서 26회 사용되었고 그 가운데 이사야가 그의 남은 자 신학에서 12회에 걸쳐 즐겨 사용한 단어이다. ראשׁ 의 파생어들은 경우에 따라서 무가치함(신3:11), 작음(신4:27, 출8:31)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 말은 강한 미래지향적 면을 나타내는 말로 그 규모에 관계없이 남은 자의 갱생에 대한 본래적인 가능성을 강조한 말이다.
(2) טלפ 의 파생어들은 80회 사용되었는데 주로 피엘(piel)형태로 사용되고 시편에 많이 나타난다. 시편에서 이 단어는 항상 시편기자가 하나님께 구원에 대한 찬미의 증거를 할 때나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할 때 사용된다. 동사형들은 “도래하다, 도망하다, 구출하다, 안전하게 하다”등의 의미를 지닌다.
또 명사형 טילפ 는 “도피자, 도망자”를 의미하며 구약에 19회 나타난다. 명사형은 재난으로부터 도피한 자나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를 가리킨다. 간혹 창 14:13에서처럼 아브라함에게 조카 롯의 생포 소식을 전해 준 자와 같이 유일한 생존자 혹은 도망자를 가리킬 때 사용되기도 했다. 이 명사형은 대적에 의한 죽음이나 추방에서 벗어난 유대인 생존자들을 가리키는 군집명사로 자주 사용된다.
또 다른 התילפ 는 “도피, 구출”의 의미를 나타내는 명사형으로, 구약에 28회 사용되었다. 이 명사의 주된 용법도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왕하 19:30,31,사37:31, 22 등),역대하 12:7에서는 “구원”을 의미하고 창 47:7에 요셉의 진술도“구원”을 의미하고 있다.
실제 인간을 가리킬 때 טלפ의 파생어들은 주로 “도피한 남은 자”를 가리켰다. 삿21:17에서는 도망하여 남은 자를 가리키며, 사 4:2-3은 같은 뜻으로 쓰였다. 때로 이 단어는 열 사람 중 한 사람 성도의 구출 또는 전체의 손실이라는 부정적인 면을 표현하기도 한다. 암 9:1에서는 아모스의 마지막 환상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타락의 근원지인 벧엘의 단을 무너뜨리시고 이스라엘 거민들을 모두 진멸한 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도망한 남은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이 생명과 계속적인 생존에 대한 위협에서 구출 받는 경험을 했다. 하나님의 백성 중 일부는 야훼의 최후심판을 면하게 될 것이고 (사 4:2, 욜 2:32), 심지어 믿음 있는 이방인들까지 이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사 66:19)
(3) טלמ의 파생어들은 טלפ에서 유래된 용어로 89회 사용된다. LXX에서 διασωζω (구원하다)와 σωζω(구원하다), ρυομαί(구출하다), εξαίρεω(선택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는 오직 동사형으로만 사용되며 “도피하다, 몸의 안전을 도모하다, 안전을 구하다, 구출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어떤 경우에는 안전하게 도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사 20:6)과 전체가 멸망되었음(삿 3:29, 렘 32:3-4)을 보여주기도 하나 대부분의 문맥들에서는 그 도피가 성공적으로 나타난다.
창 19:17-22의 롯의 구원이 그 예이고, 렘 51:6에서 바벨론 가운데 도망하여 구원받는 것이 그 경우이다. 왕상 1:12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생명을 구원하고, 렘 51:6에 나타난 바벨론에 내려질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 가운데 생명을 구원하는 이스라엘의 백성에 대한 성경 본문이 그 경우이다. 이 단어는 친척을 보기 위하여 궁내 근무에서 벗어나는 것(삼상 20:29)이나 가난한 자를 불행에서 건져주는 것(욥 29:12)을 나타낼 수도 있으나,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의미는 죽음의 위협이 개인의 대적의 손에 의한 것이든(삼상 19:11, 23:13) 민족의 대적에 의한 것이든(삼하 19:10)혹은 질병에 의한 것이든(시107:20)그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거나 구해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강조점은 구원에서 하나님이 담당하시는 역할에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의인을 위한 것이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면할 수 없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에게만 있음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4) רתי 파생어들은 248개의 파생어 형태들 중에서 적어도 110번의 용법이 남은 자 사상을 내포한다.
이 중 동사형은 “남겨지다, 처지다, 남기다,” 등의 의미를 지녔고, 명사형들은 “잔류자, 잔여, 남은 자”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단어는 분할된 어떤 양의 한 부분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더 작은 부분을 가리키며, 때때로 질이 더 낮은 부분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단어는 질적으로 떨어지나 양적으로 더 많은 부분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삿 7:6).
느헤미야 2:16, 4:14 등에서 이 말은 제사장과 귀족, 관원들을 제외한 일반사람들을 나타낸다. 또 그 단어는 “이익”이나 “더 많은 것”의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나머지의 개념은 넓고 다양한 문맥에서 많은 의미를 갖고 나타난다. 남겨진 음식은 어떤 사람의 필요가 충분히 충족되었음을 뜻하는 표시가 된다.(룻 2:14, 대하 31:10)성막을 짓는 데에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희사하여 물건이 남을 정도가 되었다.(출36:7),
희생제물은 대부분 드려진 당일에 먹여 치워졌으며, 나머지 것들은 소각되었다.(출 12:10, 레 8:32) 그러나 서원제 혹은 낙헌제 제물은 3일간 남겨둘 수 있었고 그 다음에 소각되었다.(레 7:16-17), 어떤 사람의 장래 생애는 여년(餘年),즉 나머지 해라고 일컬어진다.(사38:10). 왕의 기록되지 않은 행적은 “남은 사적”이라고 불리운다. 창 49:3에서 이 단어는 탁월하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지혜문학, 특히 전도서에서 종종 진정한 유리함, 혹은 인생에 있어서의 참 탁월함을 뜻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잠 14:23, 21:5).군사적인 문맥에서는 종종 패하고 남은 생존자를 가리킨다.(수 12:4, 23:12).또한 그 단어는 어떤 음모에서 살아남은 자를 가리키기도 한다(삿9:5).
때때로 남은 자는 아주 외톨이가 되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왕상 18:22에서 엘리야는 여호와의 선지자는 홀로 남았다는 것을 말하며 이 단어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에 관하여 이 단어는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피한 자들을 가리킨다.(겔 6:8, 12:16). 그 생존자들은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무기가 되나(습 2:9)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생존자들은 더이상 끊쳐지지 않는다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것을 보여준다(슥 14:2).
(5) דירשׁ 는 28회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전쟁의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
수10:20에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아모리 연합과 싸울 때 그들의 최후 몇몇 생존자들이 남았다는 것을 표시할 때 사용되었고,신 3:13에서 야훼께서 바산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이스라엘에 붙여서 남은 자가 없다는 것을 말할 때 사용되었다.
(6) תירחא 는 민 24:20, 암 4:2, 9:1, 겔 23:25에서 분명히 남은 자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2. 구약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
남은 자 사상은 수메르, 아카드, 힛타이트, 우가리트, 이집트 문화에서의 신화, 전설, 서사시, 예언, 기도, 찬송, 서간문, 연대기 등 매우 다양한 문학양식 가운데 나타나 있다.이 개념은 개인, 가족, 씨족, 부족, 군대,국가,전 인류와 같은 실재 인간들과 함께 나타난다.자연적 사회적 정치적 영역들에서의 매우 다양한 생명의 위협들은 각각 남은 자 관념의 공동분모, 즉 인간이 생명의 위협을 받았을 때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갖는 실존적 관심을 강조한다. 남은 자란 말은 본래 잠재성들을 통한 생명과 지속적인 생존을 의미한다.
무서운 재난에서 살아남은 공동체의 한 무리를 가리키거나 공동체의 가능한 미래의 생존이 거기 달려 있는 한 무리를 가리키는 남은 자 사상은 구약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그 첫째는 창세기의 홍수설화에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 룻 이야기,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요셉 이야기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엘리야의 이야기 가운데에서도 그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아모스, 이사야, 학개, 스가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더 나아가서 시리아, 블레셋, 아라비아, 바빌론, 모압 등지에 나타나는 사상이다.
창세기의 홍수설화에서는 부패된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고 노아와 그의 가족을 남겨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홍수이야기는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이 타락한 현재의 세상을 불로 멸망시키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수립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홍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따라서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발생된 것이며, 동시에 최후심판의 예표로서 와 닿는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께 구원받도록 남은 자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주도권을 잡으시고 노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방법을 제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땅과 함께 모든 생물을 곧 멸망시킬 것을 노아에게 알려준다(창 6:13). 이제 계속하여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에 관해 지시하신다(창 6:14). 노아는 그 방주의 제도와 기타 상세한 제반 사항들을 지시 받는다(창 6:15,16). 그 다음 구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장차 올 심판의 성격을 정확하게 계시하신다(창 6:17).
하나님께서는 그 방주를 지을 것을 노아에게 명하셨다. 이 방주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써 사용하실 홍수로부터 노아가 구원받을 유일한 수단으로, 남은 자의 구원을 위한 수단으로 제공된다. 남은 자라는 개념은 우주적인 홍수 이야기에서 최초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수메르와 바벨론 홍수전승은 소수의 살아남은 생존자들 속에 인류의 모든 미래가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 속에서도 남은 자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야훼 앞에 상달되었다. 야훼는 친히 아브라함을 찾아오셨고 숲에서 사자들을 통하여 소돔에서 활동하고 계신다(창 18:22). 그 도성은 심판자와 그 도성을 위해 간청하는 아브라함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 멀리 계곡에 있는 죄많은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은 헤브론 동쪽 높은 지대이다(창 19:27-28).
아브라함은 야훼의 마음을 이해했고 끈질기게 간청한다(창 18:23-25).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세상적 판결이나 신적 판결에 집단적 책임의 법에 종속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다수의 유죄한 자들에 대하여 소수의 무죄한 자들의 행방을 묻는 것은 혁명적 사고로 이해된다. 열 명의 무죄한 자들 찾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결정을 촉구했으나 하나님은 멸하시기보다는 그의 마음을 바꾸어 남은 자를 구원하는 의지를 보이신다(창 18:23-33). 또 다른 야훼의 변장으로 방문한 소돔과 고모라는 이스라엘 남은 자가 있음을 확인했고 롯은 그 남은 자로서 선택되게 된다. 롯의 구원에 관한 창 19:17-22는 소돔에 대한 형벌의 심판보다도 훨씬 더 강조된 가운데 또 하나의 남은 자 사상을 드러낸다.
요셉 이야기 가운데 나타나는 남은 자 사상은 암 5:14-15에서도 나타난다. 김정준은 아모스에 인용된 요셉의 남은 자 사상은 미래의 역사를 이룰 소수의 창조자로서의 남은 자라기보다는 현재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멎게 할 소수의 착한 사람으로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함”하는 삶을 말한다. 창세기에서는 요셉과 그의 형제들에 대한 이야기 속에 나타난다(창 43:1-8). 그 곳에서는 성서 전승들이 남은 자 사상을 생명의 위협들 가운데 배치하고 따라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관심 속에서 남은 자 사상의 원천을 입증하고 있다.
호세아에도 남은 자 사상은 나타난다. 즉 회개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청되었으나,소망과 보호 혜택은 남은 자들에게 제한되어있다. 야훼는 전심으로 그를 사랑사고 부지런히 그를 찾으며(호 5:15).야훼만이 생명의 근원임을 고백하는( 14:2,3),남은 자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미가는 포로생활로부터 구속받을 것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제시하였다(4: 10)그는 다가올 야훼의 심판을 대비하도록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를 불렀다. 그러나 그의 증언은 직접적인 역사적 상황을 넘어 모든 시대의 경건한 자들에게 하나님과 그의 메시아 왕국을 위해 준비하도록 요청한다. 미가의 기도는(7: 14-20) 하나님의 왕권의 공의로운 확립을 구하는 모든 남은 자 세대를 위한 모델로 역할한다. 이 새 질서를 바라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며 일하는 자들은 결코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가와 함께 기도할 것이다.
미가는 미래를 말할 때 하나님이 관련된 새 시대에 대해 증언했다(4:1, 6, 7, 5:10, 7:7-15)미가의 예언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메시야의 모든 피조물에 대한 통치를 소망한다. 새 시대의 예언자 미가는 또 포로에서 만물의 변형에 이르기까지 회복의 유기적 관계에 대해서도 증언한다. 회복은 포로기의 남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은총을 새롭게 베푸는 것과 더불어 시작된다(2:12, 13, 4:6,7).
스바냐는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불변성을 바라보고 그의 신원의 행위를 기뻐하도록 권고하였다. 누가 남은 자들을 구성하는가? 누가 미래의 백성들인가? 스바냐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래의 왕국이 그들의 것임으로 소망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는 또 그의 시대의 민족이 회개할 것을 요청하였다(2:3)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참된 경배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시대의 남은 자들에게 그의 왕국이 이 땅에 확립된 것을 확신시킨다.
남은 자 사상은 창세기부터 구속사적 입장에서 강력히 강조하여 신학적 구조 속에 삽입시키고 있다. 구약은 남은 자의 구원과 하나님의 참 백성의 핵심 구성원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나타내며, 또한 하나님의 주도권은 모든 위협과 장애물 및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남은 자 사상은 성서적 희망과 종말론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연결시켜서 볼 때 그 의미가 분명히 드러날 수 있다.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종말론의 근본적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남은 자 사상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중심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다.
Ⅲ. 포로이전 공동체의 남은 자 사상
1. 아모스
(1) 아모스의 시대적 상황
아모스가 예언자로서 활동한 시대는 여로보암 2세의 말년이다(760-744 BC.). 여로보암 2세의 통치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있어서 전성시대였으며 가장 평화스럽고 가장 번영한 시대였다. 여로보암 왕 이전의 왕들을 괴롭히던 전쟁도 다 끝나고 이제는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없었다. 여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영토를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왕하 14:25)하여 웃시야 왕의(786-734 BC.) 영토와 합하면 솔로몬 치하의 통일 왕국만큼이나 거대한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의 통치가 성공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앗시리아와 시리아의 세력이 약화된 데에 있었다. 게다가 그는 무역 정책에도 성공하여 많은 외화를 벌어들임으로써 정치적 안정을 이룰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모스가 활동한 그의 말년의 정치는 초년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여 권력의 횡포로 얼룩졌으며 백성의 인권을 유린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국가의 부는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았다. 이는 가나안 정착 이후 이스라엘 공동체에 생겨난 두드러진 변화로써 도시화 현상과 군주체제의 출현으로 말미암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공평한 분배와 연대의식 속에서 싹튼 이스라엘 고유의 유목민적 관습은 서서히 무너지고 정착생활과 도시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가나안의 사유재산 개념과 상업만능 주의가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현상은 역대 이스라엘 왕을 거쳐 갈수록 심화되었으며 아합과 여로보암 2세 시대에 현저하게 노출되었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분에 넘치도록 소유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최저 생활의 필수품도 얻을 수 없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사회모순이 드러났다.
이와 같은 경제제도는 종교가들과 정치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부자들의 이런 물질적 번영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들은 야훼가 그를 두려워하고 그의 명령을 잘 순종하는 자만을 번영케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하편 야훼는 그의 명령을 어기는 자에게 어려움과 고통으로 벌을 주신다고 믿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부자들에게는 가장 환영받을 교리이며, 철학이었다. 많은 제사장들의 태도로 이러한 교리와 잘 조화가 되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에 야훼는 희생제물을 드리고 종교적 절기를 지키는 것과 같은 형식적 요구를 하시는 분으로 이해했다.
도시에 살고 있는 소수의 부유층만이 그러한 종교적 의무를 실행하는데 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대가로 부를 누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층계급에서는 그럴만한 여력이나 시간이 허락지 않았다. 따라서 야훼는 그들을 축복해 주실 수 없는 것이고 그들의 빈곤과 불행은 그들의 잘못에 대한 야훼의 징벌이라 해석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야훼의 땅이라 믿었다. 야훼의 기업으로 주신 땅은 어떤 나라도 뺏지 못하는 확신을 갖게 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사회는 집권자로부터 시작하여 상인, 종교인, 일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야훼 하나님의 공의의 질서에서 동떨어진 삶을 살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고백은 탈색, 퇴화하고 선조의 신앙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붕괴 직전의 성벽과도 같이 균열투성이(암 7:8)였으며 처녀 이스라엘의 엎드러진 모습(5:2)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가 이스라엘의 이익만을 보호하고 방어하는 국가의 신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야훼는 정의를 행사하시는 공평 정의로우신 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러한 경제적 종교적 관념에 대해서 반기를 들기 위해서 아모스는 일어났다. 드고아의 불모의 고지에서 양을 치고 뽕나무를 가꾸던 아모스는 가난한 자의 운명을 잘 알고 있었다. 만일 아모스가 도시에서 부자들의 불의와 사치한 생활을 보지 않았다면 예언자가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모스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가 너무나 심함을 보게 될 때에 그의 심중에 깊은 자극을 받게 되었다. 아모스는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부자들의 생활을 이렇게 묘사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란을 인하여서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암6:4-6).
그는 과연 야훼가 부자를 그렇게 사랑하셔서 물질적 축복을 주시고 가난한 자들이 종교의식을 지키지 못한 이유로 그들을 멸시하고 고통을 주셨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아모스는 야훼가 바알신과 다르다는 것을 배워왔다. 바알신을 섬기는 자들은 물질적 축복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들은 오직 물질을 얻기 위하여 기도도 하고 제물도 드렸다. 만일 야훼가 종교의식을 잘 치르는 대가로 재물과 안전을 주신다면 야훼와 바알신과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이 아모스를 심히 괴롭혔다. 또 2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할 것을 요구했고 주체성을 주고 소명을 준 그 생명의 이야기를 기억하도록 요구한다.
(2) 아모스의 신학
아모스는 베들레헴 남쪽 유대광야에 있는 드고아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양을 치는 목자로 생계를 유지했다(1:1, 7:15). 이 지방의 이 불모의 고지는 주로 양과 염소를 치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아모스가 뽕나무를 배양하였다는 기사(7:14)를 보아 그는 양을 치는 한편 뽕나무를 매양하는 부업을 가졌을 것이다. 아모스는 예언자로서 교육받은 일도 없고 또한 직업적인 예언자도 아니었다(7:14). 또 대부분의 예언자들이 그들의 아버지 이름을 기록함으로 집안을 나타냈으나 아모스는 기록하지 않음으로 그의 집안이 명문이 아니었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에서 예언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북6왕국 이스라엘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그는 남왕국 유대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아모스는 양모와 뽕나무 열매를 팔기 위하여 예루살렘, 베들레헴, 브엘세바, 길갈, 사마리아, 벧엘과 같은 도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해 잘 알게 되었으며, 도시생활과 상업과 예배에 대해서 예민한 관찰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예언자가 되기까지 다섯 가지의 환상을 보았다. 즉 메뚜기의 침범(7:1-3), 무서운 한발(7:4), 다림줄(7:7), 여름 과실이 담긴 광주리(8:1)와 야훼의 환상 등이다. 이 모든 환상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의미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7:15b) 양떼와 뽕나무를 버리고 북왕국 종교 중심지 벧엘에 가서 그곳의 왕의 성소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와 전면의 메시지를 전했다(7:13).
아모스 전반에 흐르는 한 가지 중요사항은 이스라엘의 야훼는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으나 ,이스라엘이 그 관계를 깨뜨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벌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모스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였다. 즉,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앤더슨과 김정준은 아모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이해는 전 세계에 정의를 행사하시는 만민의 하나님,즉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라 부른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민족신만이 아니라 만민의 하나님이며, 또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그의 사상가운데 야훼의 날에서 하나님의 심판자로서 모습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아모스가 말하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아모스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 이스라엘의 죄와 불의를 심판하시는 원칙이 하나님의 정의임을 알려준다.
여기서 장일선 등은 아모스가 소위 예언자들의 윤리적 유일신관의 대표자로 인식된다고 본다.. 그러나 존브라이트의 말처럼 아모스를 비롯해서 호세아 등은 정신적 선구자, 윤리적 유일신교의 발견자도 분명 아니었고 개혁가라기보다는 이스라엘 전통의 가운데에 서서 이 전통을 새로운 시대 상황에 적응시킨 사람들이었다.
아모스는 그 당시에 사회적 경제적 불의와 부정을 자기 눈으로 직접 목격했을 때 야훼의 의에 대한 의미가 명백하게 되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불의는 양립될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그대로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경제적 번영도 없을 것이며, 정치적 안정도 없을 것임을 말하였다. 그가 강조하는 점은 야훼의 요구하시는 의는 우주적(Universal-justice)이라는 것이다. 그는 도덕률이 모든 사건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어떤 민족이든지 아무 이유없이 멸망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 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암 3:4-6)
야훼의 공법은 냉혹한 것이며 어떤 개인이나 민족일지라도 그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야훼의 이 공법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고 온 세계 모든 민족들에게 적용되는 원리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족속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사람을 길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9:7).
그의 신학 가운데 독특하고 혁명적인 관념은 그의 예배관을 들 수 있다고 장일선은 말한다.아모스에 의하면 야훼는 희생제물, 종교적 절기, 음악, 공중 앞에서 드리는 긴 기도, 기타 일체의 종교의식을 원치 않으신다(암5:21-23). 이러한 발언은 당시의 종교와의 사이에 큰 충돌을 가져오게 하였다.그는 야훼의 요구가 사회정의(Social justice)임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희생적 제물이나 종교의식이 아니었고 오직 의를 추구하는 것이었다(암 5:24, 5:15).
특별히 아모스의 사상에서 남은 자를 말할 때 기억해야 할 그의 신학사상이 있다. 즉 그것은 야훼의 날 사상이다. 그 당시의 일반적인 신앙은 하나님의 목적이 이 땅위에 실현된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상적 왕궁이 건설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가 친히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쳐 물리치시고 승리는 가져올 것이며 그들의 왕국이 모든 나라를 지배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희망을 무자비하게 분쇄해 버리고 말았다(암 5:18-20). 그에 의하면 야훼는 윤리에도 관심을 갖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아무 차별없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간섭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모스를 비롯한 기원전 8세기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야훼의 날의 첫째 관념은 언제나 심판의 날로 알려져 있다.
아모스의 종교 가운데 중요한 것은 야훼의 심판사상이다. 아모스는 이 날을 “흥한 날”(6:3),야훼의 날(5:18), “때”(4:2), “그 날”(2:16)로 표시하였다. 아모스의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를 하수같이 흘리기를 요구하셨다(5:24).
베스터만의 주장처럼 아모스의 메시지는 매우 무자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야훼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으므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뿐이었다. 이러한 그의 준엄한 심판 가운데 과연 희망이 있는가?의 질문은 의미심장하다. 왜 야훼는 전적으로 부정적인 방법으로 아모스를 통하여 그 자신을 계시하는가?
하젤은 아모스에는 두 개의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난다고 본다. 즉 부정적인 사용법(3:12, 4:1-3, 5:3, 6:9-10, 9:1-4)으로 남은 자의 무가치함이 드러난다. 또하나는 긍정적인 사용법으로(5:3, 14-15, 9:11-12) 도덕적 종교적 선상에서 심판의 메시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나타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용구절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의 의견이 나뉘어 남은 자 사상으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 임박한 심판 후에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을 아모스가 알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많이 논의 되어왔다. 9:11이하에는 한 유대인이 다윗왕국을 재건하고 애돔의 남은 자들을 다시 다스리게 될 것을 기다리는 모습이 나타나있다. 13-15절은 그 땅의 소출이 다시 충성해지고 포로생활에서 벗어나 성읍을 재건할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두 구절은 아모스 자신의 말이 아니라는 것이 짐머리의(Zimmerli)주장이다.
오히려 5:14이하의 율법을 이 예언자에게서 박탈할 수는 없음을 말하며 15절의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 만군의 하나님이 야훼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에서 ‘혹시(ילוא)’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하는 자유의지일 뿐이며
아모스의 부인(Nein)은 절대로 타협할 수 없을 만큼 완강하며 이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종국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짐머리의 주장이다. 다시 말해 아모스에게서 나타나는 남은 자의 개념은 아모스의 심판 선포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다.
(3)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난 구절
3:12는 이스라엘이 장래의 심판 때에 구원을 얻으리라는 소식이다. 그러나 이 구원은 일반적인 구원과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즉 힘센 자가 가축을 죽였을 때 목동이 배상의 의무를 면제받으려면 그에게 죄가 없다는 증거를 구해 내거나 찢겨진 짐승의 부위를 제시해야 한다(출 22:12)는 비유처럼 사소한 부위일지라도 “구해낸”것이면 그것은 그 짐승이 죽었다는 증거가 된다. 목동이 증거로 삼기 위해 그런 부분들을 ‘구해내“듯이 심판 때에 이스라엘도 ”구출“될 것이라고 빈정대는 아모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사로잡힘의 위협이(4:2-3, 5:5, 27, 7:11, 17) 임박하였더라도 하나님을 약속의 땅으로의 회복을 약속함으로 남은 자들을 격려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남은 자 공동체는 그를 찾고, 오직 그 만을 그들의 구세주로 인정하며 선을 행하는데 지혜롭게 인내하는 자들로 구성된다.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니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암 5:14-15)
그러나 사자에 의해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워지고 두 다리나 귀조각만 남을 어린양 즉 이스라엘의 생존 희망은 없다. 곧 사마리아는 몰락될 것이다. 사자는 구원자 하나님을 비유한 것이다. 삼키는 사자와 같은 하나님은 남은 자를 건져낼 것이다. 그리고 아모스는 다시 사마리아의 여인들을 향해 남은 자를 말한다
4:2에서 남은 자에 사용된 תירחא는 남은 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어가 됨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단어는 다양한 방법으로 번역되어왔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단어가 “자손”이나 “뒷부분” “마지막” “남은 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것들은 남은 자를 위한 의미로 번역되기는 마땅치 않다.
왜냐하면 암 9:1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남은 자라 할 때 “남은 자”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자손인가? 사마리아의 여인의 남은 자를 말하는 것인가? 본문만으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2절을 잘 살펴볼 때 사마리아 그들 자신의 여인들이 계속 남을 것이라는 견해를 강력히 뒷받침한다. 여기에서는 그들의 운명의 묘사를 강하게 한다. 사마리아의 여인들은 소처럼 밧줄에 묶여 떠나갈 것이다. 끈질긴 남은 자로서 의지가 없는 이들은 또 다른 낯선 도구들에 직면할 것이다. 그래서 아모스는 남은 자의 언급을 다시 한다.
그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국가 존재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특별히 아모스가 원수들이 올 때 남은 자가 떠날 것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남은 자는 국가로서 이스라엘을 구성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러나 사로잡힘의 위협이 임박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의 땅으로의 회복을 약속함(9:13-15, cf.렘24:6, 31:28, 42:10)으로 남은 자를 격려하신다.
6: 9-10은 애매하게 나타나는 남은 자 관련 부문이다. 이 본문은 단편적인 말로 나타난다. 그래서 본문은 아모스서 전체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남는다. 본문에 나타난 바대로 소돔에 열 명의 의인이 없음으로 해서 멸망한 사건을 비유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본문을 볼 때 전염병이 만연한 배경이다. 유행성 전염병은 집의 거주자들을 죽인다. 그리고 “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다”(6:10)라고 표현하여 남은 자의 부정적 의미를 드러내 보인다. 그는 야훼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을 죽은 자를 매장하기 위해 오는 부분을 조사할 때 공포에 질릴 것이다(야훼가 그에 대한 화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서) 아모스는 여기서 집에서 떠난 남은 자 존재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철저한 무력함과 이 남은 자의 희망 없음을 강조했다. 다시 아모스는 남은 자 안에 놓여져 온 이스라엘의 거짓 희망을 모든 강함으로 공격을 해댄다.
남은 자 사상은 아모스 예언자의 자서전 스타일을 포함하는 다섯번째 환상과 만난다. 다섯번째 환상(9:1-4)에서 나타나는 단은 벧엘의 단을 가리키는지 예루살렘의 성전의 번제단을 가리키는지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나 둘 중 하나임일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심판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들에게조차 임한다. 그 단은 기둥 머리가 부서지며, 더욱이 전체 건물은 예배자들의 머리 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 변절한 백성은 종말을 고할 것이다.
암 9:1에서 남은 자를 나타내는 용어는 מתירחהא(remnant) טילפ(escapee)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이 둘은 각각 남은 자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 환상은 최초의 문서작성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환상의 결말이자 정점에 해당한다. 아모스는 제단 위에 우뚝 서 있는 하나님을 본다. 아모스는 하나님이 기둥머리를 치자 문지방이 흔들리는 것을 본다. 세 번째, 네 번째의 경우처럼 이 떨리는 체험에 대해 하나님이 직접 다시금 아모스에게 해석 해준다.
아모스는 자기 발 밑에서 흔들리는 문지방의 흔들림을 모든 사람을 전멸하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실 무서운 지진에 대한 하나님의 암시로 보았다. 도피의 가능성은 완전히 차단되었다. 모든 가능성이 배제되고 만다. 그의 심판은 죄를 범한 백성의 피할 수 없는 전멸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게 볼 때 환상 체험은 하나님이 예언자에게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자로 나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고지할 임무를 내적으로 준비시킨다. 그러나 9:11-15에 보면 공동체의 재건에 관해 말하면서 구원의 종말론과 민족적인 사상 및 소망이 강하게 결합되어 나타난다. 즉 다윗 왕조를 회복하고 에돔의 남은 자의 획득을 약속하고 있다(9:11-12).
2. 이사야
(1) 이사야의 시대적 상황
이사야는 실로 중요한 메시지를 선포한 예언자였다. 그는 절박한 심판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가지고 등장했다. 그 자신이 확실히 왕족이었으나 기꺼이 목숨과 유치를 내놓고 주의 피할 수 없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사야는 현실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며 또한 이상이 현실이 되어야 함을 알았다. 그는 현실과 이상사이에 존재한 긴장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사야 예언자는 주전 8세기가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그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던 어두운 시대에 예언했다(742-701).
웃시야가 죽은 해 예언자로서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소명을 받은 후로(사 6:1),무려 40여년 간이나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 상황에서 마치 우뚝 솟은 탑과 같은 발군의 역할을 하였고 다른 어느 사람보다도 열성적으로 민족을 이끌어 나갔다. 그는 숙명적으로 조정의 정책에 반대하고 또 그것을 가장 신랄하게 비난하면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이사야가 소명을 받았을 때는 디글랏 빌레셀이 아직 원정을 시작하지 않은 때였다. 이사야의 이름의 의미는 “야훼는 구원이다.”를 뜻했다. 그는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 예언했다. 그는 그의 백성의 마음과 정신성을 알았다. 그는 그들의 마음을 알뿐 아니라 역사도 알았다.
이스라엘과 유다왕국이 분열된지 180년이 되었다. 그는 반역과 반동,분열의 고통과 연민을 알았다. 그는 북왕국 자체, 북왕국의 풍성과 우선성이 혼란되고 더럽혀지게 된 것으로서 북왕국에 일어난 일을 보아왔다. 그가 유다에서 예언을 한 때는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함락되어 살육되는 것을 보았다(사 37:11-13)
그는 유다가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다. 유다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기까지 했으며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 앗수르의 도움을 얻고자 했다. 이사야는 아하스왕의 내통을 유다로 하여금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예속되게 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아하스왕의 죽음 이후 계속된 역사는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과 성전의 파멸은 임박하게 되었다. 유다는 황폐하였고 히스기야는 항복하였다. 이사야는 산헤립의 군대가 남겨놓고 간 폐허의 비참한 광경을 묘사한다(사 1:1-9). 그러나 이사야의 신앙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으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조금 남겨 두셨다는 생각을 하고 그 마음가운데 위로와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이사야는 소명을 받았을 때의 환상체험에서(6장) 무서울이 만큼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야훼의 성성과 말할 수 없이 심각한 민족의 죄에 숨막힐 듯한 중압감을 느끼고, 지난날 아모스가 취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여 무엇보다도 규탄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설파하였다. 그는 왕들, 나라들, 체제들, 그리고 사회들이 야훼의 창조 목적에 위반된 것이라고 느꼈을 때 열화와 같이 분노하여 공박하였다(사1:21-23, 3:13-15, 5:8, 23, 10:1-4).
퇴폐적인 상류계급은 방자하게 자기하고 싶은 대로하며 물질적 재산과 향락에만 관심을 가지고(3:16, 4:1, 5:11, 22), 또 외국식 유행이나 주책없이 따르고 도덕적 규범이던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없었으니(5:18-21), 이사야가 보기에 진작부터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아 마땅했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자기가, 이미 교정의 권고를 받아들일 가망이 없는 백성을 상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6:9).
그는 자기 나라를 잘 가꾸어 놓은 포도밭, 즉 많은 공력을 들였기에 마땅히 좋은 포도송이들을 맺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포도밭에 비유하였다(5:1-7). 그러니까 유다는 야훼의 은총에 대하여 의로운 처신으로 보답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 쓸모없는 포도밭처럼 파헤쳐지고 그 뒤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만 자라서 뒤덮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또한 유다는 정의에 어긋나는 갖가지 죄를 범했기 때문에 ,야훼의 요구를 충족시킬 요량으로 거행하는 그 사치스러운 제의로 야훼의 마음에 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분에게는 더럽고 역겨운 것이라 선언했다(1:10-20).
(2) 이사야의 신학
아모스는 확실히 이스라엘이 멸망 후에도 살아남아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남은 자들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으로 종종 여겨진다.사실 그가 그러한 말을 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언제나 모호한 것이었고 기껏해야 조심스러운 희망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정도였다.
호세아와 마찬가지로 그는 희망적인 미래가 있다면 그것이 왜곡된 기존의 국가 구조가 완전히 붕괴된 후에야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뿐이라고 갓월드는 이사야의 남은 자 사상을 부정적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이사야만큼 남은 자 사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예언자는 찾기 힘들다.
이사야의 예언활동을 살펴보면 반복되는 주장들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전능하심,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절대적인 신뢰의 필요성, 이스라엘종교의 도덕적 내지 사회적인 요구들, 이스라엘과 세상에 대한 야훼의 계획과 정치가들과 권력가들의 계획의 구분차이, 하나님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인간적인 교만을 꺾어야 한다는 사실, 이스라엘과 이교 백성들을 위협하는 하나님의 심판 등이다.
이사야는 가까운 장래에 죄를 지은 모든 사람에게 미칠 구체적인 책벌들을 간파했다. 그 책벌은 선택된 백성뿐 아니라 온 인류에게 미칠 구원에 필요한 서두이다. “마지막 시대”에 있을 이 구원에 대한 일깨움은 그의 메시지의 본질적인 면으로,남은 자 사상은 여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사야는 “신앙의 예언자”로 불리운다. 이사야는 그의 긴 예언활동을 통하여 그의 백성에게 정의감과 영적인 힘의 최후의 승리를 믿을 것을 권면했다. 아람 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의 동맹에 대해 아하스와 유다백성은 동요하였고 앗수르왕에게 도움을 구하는 길이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다. 이사야는 아하스왕을 책망했다.
하나님의 섭리가 이 세상만사를 지배하시므로 이 세상에서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러므로 이사야는 주 여호와께서 그의 세계를 지배하시고 계시며 오직 정의만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손을 세계의 제반사건 가운데 발견하였다. 이 하나님의 손이 인류 역사가운데서 움직이고 계시다는 확신이 이사야에게 평온한 마음과 넓은 조망을 주었다.
아하스왕은 이사야의 충고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하스는 자기 자신과 그의 왕국을 의에 대하여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앗수르의 보호아래 두었다. 유다와 앗수르의 이같은 동맹은 큰 실책이었다. 이사야는 이 동맹을 반대하였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택하시고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는 나라로 확신하였다. 유다에 있어서 앗수르와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그의 이상을 굽히는 것이다.
아하스왕에게 대한 호소에 실패를 당한 후에 이사야는 지금의 그의 관심을 유대백성에게 돌렸다. 이상가이며 애국자인 이사야는 다시한번 깊은 실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사야의 주장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도 그 백성으로부터 얻지 못했다. 야훼의 고상한 여러 원리를 왕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과 같이 일반 백성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도 군사력을 정의보다 더 높이 평가하였고 외교를 하나님의 권능보다 이상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왕과 백성을 설득하지 못한 이사야는 마침내 유다에 있는 “영적으로 살기 원하는 소수의 무리”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소수의 무리는 대중이 관심을 갖지 않는 진리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자들이었다. 이사야는 이 의로운 소수의 무리를 “남은 자”라 불렀다. 왕의 백성은 죄와 불신앙 가운데로 빠졌다. 그러나 “남은 자”들만은 어디까지나 신실하였다. 심판이 죄있는 국민에게 임할 것임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남은 자들을 큰 환난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다.
“그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같을 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 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 10:20-23).
혼란 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유다에서 참 신앙을 지킬 것이다. 불굴의 이사야는 그의 소망을 이 소수의 무리에 두었다. 이사야는 그의 가족과 제자들을 가까이 모아 놓고 예루살렘에서 영적 사회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 남은 자의 사상은 교회에 대한 관념의 시작이며, 정치적 생활의 형태로부터 영적 종교해방의 첫 단계가 된다.
그의 남은 자 사상은 그에게서 나타나는 “야훼의 날”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상황들 속에서 예언자는 ,야훼는 역사의 온갖 소동과 열방들의 심한 각축을 뛰어넘어 높이 들리운채 왕으로 군림하고 계시다는 것을 재천명하고 있다. 아모스서와 마차가지로 야훼의 날은 빛이 아니고 어둠으로, 인간의 오만과 자만의 모든 상징들 즉 금과 은,로마와 병거, 요새화된 도시, 먼 지방까지 항해하는 화려한 상선들에 대한 심판의 날(2:6-21)이 될 것이다. 예언자는 백성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져버릴 날이 올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멸망의 신탁들은 다음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2:17).
이와 같이 야훼께서는 이 백성을 심판하러 오리라는 것이 이사야의 유명한 포도밭 노래(사5:1-7)의 주제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가장 초기의 메시지는 6:13에서 그에게 주어진 사명에 걸맞게 멸망의 메시지였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언약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음을 알리고 그들을 재판관 앞에 소환하여 심문을 받게 하고 있다..(사 1:18-20, 3:13-15). 예언자는 야훼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백성을 심문하여 그들이 “부정하다”(1:4-6)고 말해야 했다. 그렇지만 야훼의 목적은 단지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건강하게 회복시켜 왕을 섬기기에 적합한 거룩한 백성으로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사야가 용서를 받고 깨끗케 되었듯이 야훼는 백성을 불로서 깨끗케 하려고 하고 있다. 이사야에 의하면 야훼는 당시의 혹독한 시련을 통해 찌꺼기와 불순물을 제거함으로써 예루살렘을 새 예루살렘, 곧 의의 성읍으로 만들고자 했다(사 1:24-26).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공포와 혼란이 온 땅을 지배할 때 이사야의 사상은 메시야의 대립과 장차 올 황금시대였다(사 11:1-12). 또한 이사야에게 있어서 야훼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셨다. 야훼가 거룩하시다는 관념은 그의 선하시고 의로우신 목적에서 오는 것이다(사5:16,6:3). 그는 즐겨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Holy one of Israel)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여러 세기에 걸쳐 이사야의 가장 큰 공헌은 메시야 사상이라고 생각해 온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사야는 본래 신앙의 예언자이며 그의 최대의 그리고 가장 의의있는 공헌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믿는 신앙의 교훈이다.
(3)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난 구절
이사야에 있어서 남은 자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부분은 7:3의 “스알야숩”이다.“스알야숩”은 이사야 자신이 남은 자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말하고 있는지를 아는데도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이사야의 말이라고 생각되는 구절들 중에서 ראשׁ라는 어근이 사용된 곳은 7:3과 17:3,6뿐이기 때문이다.
위디야프라나와(Widyapranawa)는 이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심판과 구원 둘을 다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협박과 위협, 주의 은총과 화냄이다(10:20-23). 아하스왕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현실정책의 모든 수단을 생각했으나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 일에 간섭하였고 북쪽의 왕국들이 아시리아에 패망할 것이며 유다는 간신히 그것을 피하게 될 것을 선언하였다(7:3-8:10) 아하스 왕은 스알야숩의 이름과 그 중요성을 잘 알았다.
카이저(Kaiser)는 스알야숩 표징에 대해 “스알야숩을 데리고 가라”는 지시는 “스알야숩”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표징행위의 성격을 갖는다고 본다. 그래서 이 표징행위가 말해주는 바를 묻는다. 그 표징행위란 원래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것을 선취하는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따라서 “스알야숩”은 유다백성 중 남은 자만이 살아남은 한 시기를 지시한다. 이사야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이 온 이스라엘에 임할 것이라고 확신하였으므로 주저없이 그의 아들에게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이름은 그와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파국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만이 구원을 받아 돌아오게 될 것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스알야숩이 표징이 말하는 것은 경고의 의미와 구원의 의미 두 가지를 지니는 것일까? 아니면 구원의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 스알야숩 표징 자체가 구원을 의미할 수도, 경고를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4-9절을 보면 7:3에 나타난 스알야숩은 유다의 운명과 관련해 경고를 말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스알야숩이 말해주는 경고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야훼를 믿고 의지하는 자만이 유다에 내릴 심판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9절과 관련시켜볼 때, 야훼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구원을 약속해 주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스알야숩의 표징은 유다의 흥망과 관련해 유다백성의 신앙을 문제 삼을 것이고, 유다와 유다백성의 존립여부를 신앙의 전제 조건 하에 두고 경고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스알야숩”의 이름으로 시작된 불길한 징조는 차차 물러나고 희망적인 징조가 엿보이기 시작한다(10:20). 결국 남은 자만이, 언제나 그렇듯이 남은 자만이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는 여러번 실망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이 이 비극 가운데서 당신 백성들 중 징벌을 받고 정화된 남은 무리를 출현케 하리라는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28:5, 37:30-32).
짐머리(Zimmerli)도 스알야숩의 표징이 야훼에게 돌아와 남은 자가 되라는 권유를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스알야숩 표징에서 “이스라엘의 성스러운 남은 자” 표상,즉 이스라엘에는 항상 심판을 통해 정화된 남은 자가 있을 것이고 이 남은 자는 미래의 새로운 이스라엘을 이루는 초석이 될 것이라는 구원을 보장해 주는 표상과 경고의 의미가 함께 나타난다.
17:3, 6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시리아와 에브라임이 동생을 맺었던 시기에 이사야에 의해 말해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때만큼 이 두나라가 서로의 운명이 대비를 이룰 정도로 긴밀하게 결합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3절에서 다마스커스의 주권이 말해지는 것으로 보아 732년 디글랏빌레셀에 의해 다마스커스가 정복되기 이전에 말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7:3은 다마스커스의 멸망을 알리는 신탁이다. 3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마스커스로 북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3절은 733년 북이스라엘에 세개의 앗수르관구가 건립됨으로써 완전히 국가로서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고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디글랏빌레셀은 북이스라엘을 먼저 징벌하고,그리고 나서 다마스커스를 공격했다. 그래서 3절은 북이스라엘의 파멸에 의거해서 에브라임의 요새, 다마스커스의 주권, 아람제국의 남은 자로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영광과 같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다마스커스의 왕권과 에브라임의 요새가 사라질 것을 말했다는 것은 곧 두나라가 완전히 멸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람의 남은 자의 운명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사라질 영광과 비교되고 있다.
6절은 북이스라엘에 내려질 심판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3절보다 먼저 말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6절은 733년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북이스라엘이 점령당하기 전에 말해진 것이다. 그 심판이 얼마나 혹독할 것인지는 올리브 수확에 관한 표상에 의해 말해진다. 심판에서 살아남은 자는 올리브를 수확하고 나서 나무가지에 남겨진 몇 개 안되는 올리브 찌꺼기에 비교된다. 6절에서 말하는 남은 자는 앞으로 일어날 심판의 혹독함을 말해주며 남은 자는 추수 후 남은 몆개의 과일과 비교된다. 17:3,6에서 “남은 자”는 다마스커스와 이스라엘에 내려질 재앙에 대해 경고하고,두 왕국의 멸망을 알리기 위해서 사용된다.
1:21-26은 예루살렘을 정화시키는 심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정화시키는 심판은 은을 정화시키는 과정에 비유된다. 1:21-26의 저자와 시기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부분은 이사야의 활동의 첫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카이저(Kaiser)는 21-26절이 원래부터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단계를 거쳐 합성된 것이라고 본다. 즉 21-23a절의 기본 층에다 심판 메시지에 대한 설명으로서 24절이 연결되었고, 이 심판에 이어 구원의 시대가 그 다른 나는 것을 확실히 해 주기 위해 26절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21-23저로가 24-26절의 31절 수를 맞추기 위해 23b절이 더 첨가되었다. 카이저는 이 부분의 기본 층을 이루는 21-23a절이 이사야의 말이 아니라,신명기 사가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편집자에 의해 5세기경에 작성된 것이라고 본다. 카이저는 21-23a절의 기초가 되는 것을 신명기 16:18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1:21-26이 여러 단계를 거쳐 형성되었고, 21-26절이 기본 층을 이루는 21-23a절이 신명기사가적인 신학의 영향 하에 있다는 카이저의 해석은 무리가 있다. 21절에서 말해지고 있는 정의와 공정이 반드시 신명기 16:19f에 기초한 것이라고 볼 근거는 확실치 않다. 법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와 공정을 강조하는 것은 전통적인 지배자 표상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21절에서 정의와 공정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와 관련해 말해지고 있는 것은 21절이 예루살렘을 정의와 공정의 도시로 찬양했었던 시온전승에 근거한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23a절의 뇌물에 대한 비난이 신명기 16:19과 병행을 이루는 것이므로 신명기 사가적 신학을 반영한다고 주장할 근거 역시 확실치 않다.
1:21-26이 여러 단계를 거쳐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 역시 무리가 있다. 24-26절은 21-23절의 비난의 말에 이어 심판을 알리는 위협의 말로 되어있고 비난의 말과 위협하는 말이 연결되어 말해지는 것은 예언자적 선포에서 특징적인 것이다. 26절은 정화 심판에 이어 구원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첨가라기 보다는 21-26절의 결론으로서 정화심판의 결과를 말해주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24b절이 예루살렘의 지배층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이방민족들에게도 관련된다는 카이저의 해석을 받기 어렵다.
그러면 1:21-26절에서 말하는 정화심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새로운 이스라엘의 초석이 되는 성스러운 남은 자를 가려내는 것인가? 1:21-26에서 말하는 정화심판의 강조점은 불순해진 은을 하나님의 분노의 용광로에서 녹이는 것이다(시 21:10). 장차 임할 가혹한 채찍 아래서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멸망의 궁극적인 원인에 눈을 뜰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거룩한 씨는 아직 겨와 구별되지 않았다.경건한 사람들과 불경건한 사람들은 서로 나뉘어진다. 하나님은 불순한 금속을 제거하여 순수한 은을 재생시키는 분이시다. 불신앙을 없애버린 다음에는 성스러운 남은 자들의 공동체가 새롭게 형성된다. 26절에서 예루살렘 백성들은 새로운 지배자들의 인도로 올바른 길로 돌아서게 된다. 1:21-26에서는 진정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야훼의 백성으로서의 성스러운 남은 자를 가려내는 일과 정화심판 후 이어질 새로운 미래의 구원시대를 말한다. 1:21-26에는 새로운 지배자들이 보내짐으로써 다시 옛날 다윗시대처럼 회복되리라는 약속으로 끝을 맺는다.
4:2-6은 이사야가 선포한 구원의 말이다. 이사야의 선포에서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인간을 건져내시는 구원행위를 펼쳐 나가는 분으로 묘사된다.3절은 이스라엘의 복지를 추구하는 입장에서 이야기된다. 이는 또한 자연의 회복과 내적 갱신 사이의 자명한 관계에 대하여 뒷받침한다. 타오르는 숯이 이사야를 정결하게 했던 것 처럼 남은 자들도 하나님의 정화시키는 심판에 의해 정결케 되고 거룩하게 될 것이다. 이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에 거하는 성도들 혹은 정화되어 찌꺼기로 남은 자들이다.
Ⅳ. 포로 이후 공동체의 남은 자 사상
1. 학개
(1) 학개의 시대적 상황
예언자 학개의 개인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학개는 호세아나 예레미야에서 읽을 수 있는 예언자 자신의 고민이나 갈등 같은 것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단지 에스라서에 그의 이름이 두번 명시되었고(스 5:1, 6:14), 스룹바벨 성전건축에 박차를 가하도록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점과 또 그의 메시지가 성전 제의와 관련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그의 이름이 “축제”라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그를 제사장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가 레위지파나 또는 사독계제사장 가문과 관련 있다는 아무런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핸슨은 학개를 스룹바벨과 여호수아가 공식적으로 천명한 예루살렘 공동체의 재건운동에 박차를 가한 프로파간다를 제공한 성전재건파의 일원이라 본다. 촤일즈(Childs)도 학개는 어떤 다른 예언자보다도 정치적인 계획, 곧 성전의 회복에 헌신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노령인가 젊은 층인가의 문제에서 장일선은 학개가 제1차 포로시에 잡혀갔던 인물이라 단정할 필요는 없으며, 그의 열정으로 보아 젊은 층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나 엘리거(Elliger)는 학개는 다만 처음 넉달 동안만 말씀으로써 성전 건축에 동참했다고 본다. 그가 침묵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곧 사망했기 때문으로 그는 이미 늙어 있었고,그 자신이 예전의 성전을 보았던 사람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그가 팔레스타인에서만 활동했으므로 고대 다윗왕조 전승과 바벨론 포로귀환 집단의 전승을 다같이 이어받게 되었다고 본다.
학개의 연대는 1장 1절에 “다리오왕 두번째 해 6월”로 되어있다. 마지막 신탁은 2장 20절에 “ 둘째달 14일”로 되어있다. 반 게메렌은 이 연대를 520년 8월 29일과 520년 12월로 잡고 있다. 따라서 학개의 활동은 4개월을 짧은 기간에 국한된 것이다. 고레스의 귀환 칙령에 따라 다윗의 후손 세스바살(Sheshbazzar)이 고향방문단 제1군을 인솔하고 돌아와 재건사업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막중한 대사였다.
세스바살이 약간의 페르시아 지원으로 받았지만 재건사업을 가로막은 보다 큰 장벽은 그 땅에 남아있던 본토인들의 저항적인 태도였다. 본토인은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동족 유대인들과 피를 섞어 살게 된 혼합족들도 포함한다. 이들은 사마리아 집단이라고 역대기사가는 전하고 있으며 그들은 성전 재건에 커다란 방해적 요소가 되었다고 본다(스4:1).
세스바살과 그 일행은 본국에 도착하던 다음해(536 B.C.)에 성전 기초공사를 시작하였다(스 3:18).그러나 성전공사는 사마리아인들의 반발로 중단되고 성전재건 계획은 536년에서 520년까지 중단되었고 520년 무렵까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다리오는 유대인들의 성전재건을 허락하는 고레스의 최초 법령을 확증하였으나(6:3-12), 유대인들은 성전건축에 대해 냉담해졌고 많은 역경을 겪었다(학 1:9-11). 게다가 그들은 경제적 곤란을 하나님의 부재로 의미하여, 하나님의 부재는 그가 성전 재건을 원하지 않음을 뜻한다는 악순환 논리에 빠졌다.
그들은 예언성취가 다른 세대에 속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무신론자거나 우상숭배자들은 아니었으나 신속한 회복에 대한 소망을 밀어 둔 채 현실에 만족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세스바살도 무대에서 사라져 작업은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다. 520년경 페르시아는 여호야긴의 손자인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파견하게 되었다. 이때 학개는 스룹바벨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복구해야 할 것을 촉구한다.
520년 말하기 시작한 학개는 성전을 완공하지 않는 것으로 백성들은 책망하고,그들이 일을 시작하도록 동기를 유발하였으나 그는 유다에서 개척자로 살기 위해 바벨론의 안락한 삶을 두고 떠나온 백성들이 겪은 낙망과 그들이 반대에 직면하였었고 고통을 감내해 온 사실들을 알고 있었다. 각 사람이 자신의 필요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2) 학개의 신학
학개는 다른 예언자들처럼 사자문체를 많이 사용한다. 그가 이러한 용법을 사용하는 것은 자신이 야훼의 심부름꾼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학개의 주요메시지는 백성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러나 학개는 다른 예언자들과는 달리 제외의 상황 안에서 백성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고 있다 학개는 주전 8세기 예언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의, 공의, 사랑과 같은 도덕적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학개는 백성들이 성전을 짓지 않는 것을 죄로 규정하며, 하나님은 거기에 대한 벌로서 자연적인 재해와 경제적인 궁핍을 주었다는 것이다.
고레스의 아들 캄비세스가 죽자 페르시아제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폭동이 계속 되었고 새로 왕이 된 다리우스 1세는 수습을 위해 허덕였다. 그 당시 예루살렘이 속해있던 사마리아 지방 당국은 어쩌면 불확실한 정치상황을 이용하여 조공을 중단하였을 것이다.성전 건축도 중단되었다. 이 때 학개는 귀환자들의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대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성전건축과 조공을 계속 할 것에 대해서 확신시키게 된다.
이 때 학개의 두드러진 역할 가운데 하나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으로, 페르샤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봉기는 도래할 구원의 때를 알리는 징표라는 것이다. 또한 야훼께서 몸소 시온에 들어오시리라는 옛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며, 다만 성취될 수 없을 뿐인데, 그 이유는 성전이 아직 건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중단되었던 성전 건축은 곧 진지하게 다시 착수되었으며 만 5년이 걸려서야 완성되었다. 이처럼 학개는 유대교가 새로운 제의적인 중심점이 되어서 계속해서 자기 민족의 삶을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의 기반을 다지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학개는 성전 예배를 통해서만 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베푸신 구원행위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학개는 역대기 사가처럼 스룹바벨 성전제의와 그 예배에만 집착하지 않는다. 학개는 천지가 진동한 다음에는 종말론적인 희망의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학개의 이같은 메시아 기대는 미래의 종말론적인 기대이며,그 시기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다.
촤일즈는 그러한 의미에서 학개가 역사의 종말을 야훼의 손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았다고 말한다. 학개가 외쳤듯이 성전을 지어야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그들 사이에 돌아오리라는 확신으로 행동을 촉구한 것은 현실만족에 안주하려는 모든 세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3)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난 구절
1:12-14가 포함되어 있는 단락은 주전 520년 8월에 행한 학개의 첫번째 “말”과 그 말의 영향력에 대한 내용이다. 이 단락(1:1-14)에서는 백성들의 운명에 관한 것이 언급되어있다(1:7b). 1:12-14절에서 학개는 자신의 ‘말’이 들어맞아 백성들이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을 체험한다. 12a는 지도자와 백성이 학개의 말에서 그를 보냈던 야훼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말하다. 곧이어 12b에서는 예언자의 말과 성과가 “백성은 야훼를 두려워했다.”는 문구를 통해 보다 자세하게 규정된다. 다시 말해 이 말은 백성들이 새로운 형벌에 대해 불안해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의 눈멀음을 확인하고 놀랐다는 말이다. 그들이 눈이 멀었을 때는 하나님이 자기네들의 운명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그들은 성전 건축을 등한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했던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으며 예언자의 지시에 순종할 준비가 된 것이다. 이로써 12절에 쓰인 살아남은 백성이 긍정적 차원에서 즉 하나님이신 야훼 소리와 예언자 학개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מעה תיראשׁ이 “포로에서 남은 백성의 남은 자”인지 “백성의 남은 자”를 뜻하는지 학자들 간에 일치하지 않으나 그러한 논쟁은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포로이후 상황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기록된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을 말하고 오늘은 백성의 “모든 남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당시의 유대인의 종교적인 모임을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모임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본문에 나타나는 남은 자들은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남은 백성들로서 포로 전기 예언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심판의 대상으로 서 남은 자를 말하고 있지 않음은 확실하다. 오히려 1:13절에서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하셨느니라”라는 위기에서 구원한 위로의 말씀이 이어짐으로 분명해진다. 하나님이 그의 임재와 그의 도움을 약속하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두려움이 신실한 회개를 이룩하게 했다는 증거도 보여준다.
2:2-9의 내용은 학개 예언의 클라이막으로서 스룹바벨 성전의 영화와 열방이 그 성전의 아름다음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 신탁의 수여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만이 아니라 ‘남은 백성’(2:1)에게 주어진 것이다.
신탁의 연대는 ‘7월 21일’ 즉 주전 520년 10월17일이 된다. 장막식은 이미 지냈고 나흘 뒤면 참회의 날이 된다. 이같은 거룩한 절기에는 제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학개는 이스라엘백성이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 약속의 땅에 처음 들어갔을 때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동포들이 성전으로 다시 짓는 일에 낙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굳세게 하여 일할 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2:4)란 위로의 말을 선포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주었던 훈계의 말처럼 학개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2:5)라고 명하는 것이다. 결국 2:2에 나타난 남은 백성과 2:3에 나타난 남아 있는 자들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듣는 대상으로서 나타난다. 2장 6절 상반절의 “조금 있으면”은 곧 다가올 역사적 사건의 도래를 암시하고 있다. 성전 재건은 이같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종말론적인 사건과 직접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학개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2:6)그리고 “만국”(2:7)을 진동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9절은 계속해서 스룹바벨 성전이 영광이 솔로몬 성전보다 뛰어난 것을 말하고 있다. 학개는 성전 재건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 대상은 곧 남은 백성이다.
2. 스가랴
(1) 스가랴의 시대적 상황
스가랴라는 이름의 뜻은 “야훼가 기억하시다.”이다. 랑게(Lange)는 구약성서에서 스가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20명이 된다고 보고 있다. 스가랴 1장 1절은 스가랴가 잇도의 손자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느헤미야 12장 4절에는 주전 520년 스룹바벨과 함께 예루살렘에 돌아온 제사장 명단에 잇도라는 이름이 수록되어 있으며 느헤미야 12장 16절에는 스가랴 잇도 제사장 가문의 수반으로 명기되고 있다. 그러므로 스가랴가 제사장 가문 출신임을 알 수 있다. 학개가 페르시야의 총독 스룹바벨에 강조점을 두었던 것에 비해 스가랴는 정치 지도자 스룹바벨보다는 제의 지도자인 여호수아에 본점을 두고 있다. 그리고 메시야 왕국의 중심지가 되는 곳도 성소인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1:16, 4:9, 6:12-13).
스가랴의 예언은 동시대 예언자인 학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선포된 신탁의 정확한 연대가 언급되어 있었다. 스가랴의 첫 번째 신탁은 다리오왕 2년 8월(슥 1:1)이기 때문에 (520 B.C.) 그것은 학개의 마지막 신탁이 다리오왕 2년 9월(학 2:10)에 선포되었으므로 그보다 한달 앞서 발표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신탁의 연대는 다리오와 4년 9월(슥 9:1)로 되어있다.(518 B.C.).
둘은 성전 건축에 관해서 공동보조를 취한다. 이점에서 학개는 선도자였고, 그는 젊은 사람으로서 뒤에서 일했지만 그의 예언적 활동이 위축되지는 않았다. 성전 회복은 주전 536년 고레스의 명령으로 바벨론에서 돌아온 무리들에게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들은 즉시 물질을 모으고 또 일꾼을 뽑아 그 이듬해(주전537년) 2월에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중에 성진기지를 놓았다.(슥 3:11-13).그러나 그들은 일을 속히 진행함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에살핫돈이 사마리아에 세운 그들 이웃이 사마리아의 총독의 성전 건축에 동참하기를 제의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단호히 거절되었다. 고레스의 생존 때까지는 일이 잘 진행되다가(스 4:5), 고마체스 때는 성전 건축하는 일이 중단되었다.
성전 건축의 모든 작업이 근 14년간 중단되었다. 그러나 다리오왕 때(주전521년) 학개와 스가랴가 이전의 방해하던 왕의 죽음에 관련하여 자기 민족에게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하지고 호소한 것이다. 백성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성전 건축을 다시하였고 악한 이웃나라의 방해는 다시없었다. 그러나 성전 건축의 원인과 목적에 행정적 문제가 있다고 ,유프라테스강 서편의 페르샤 통치자 닷드내가 반대한 것이다. 악메다궁에서 발견된 기록은 고레스가 유대인의 포로귀환과 그들의 예배의 회복에 관한 최초의 조서가 있었다. 다리오왕은 이것을 그의 통치 2년에 다시 확증함으로 성전 건축에 다시는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학개서에서도 그 백성의 의식과 감정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명백히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 예배에 대한 그들의 첫 열심은 거의 사라지고 그들의 사생활과 또 사생활의 안녕에 오로지 몰두하였다. 그들은 계획적으로 성전 건축을 시작하지 못하게 방해를 받았다. 그대로 애끓는 호소와 설득으로 백성의 무관심에서 벗어나오게 일깨워서 다시 성전 건축에 성의와 열의를 다하게 하였다.
이러한 두 선지자의 노력은 성공하여 다리오 6년 성전 건축을 시작한지 21년만에 성전 건축은 완공하였다. 스가랴서에서 언급된 때에 관한 모든 기록(1:1-7, 7:1)은 성전 건축에 노력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스가랴는 그의 이전 예언자들이 주로 정력을 쏟아서 취급했던 성전 건축에 관한 예언을 답습하지 않았다. 그는 성전 건축에 직접 간접으로 계속 관여하였다. 그러나 성전 건축에 그의 소명을 제한시키지 않고, 계약 백성의 전체적인 특질과 상태에서 그들의 현재적 위협과 실망과 그들의 형식주의에 그들의 영향들을 취급하였다.
(2) 스가랴의 신학
현대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1-8장은 순수한 스가랴의 예언이고 9-14장은 익명의 예언자의 기록한 책인데 스가랴의 예언에 첨가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사야의 경우와 같이 후자를 제 2스가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역사적 배경이 다르고, 1-8장의 주제는 성전의 재건과 메시야시대가 임박한 것인데 9-14장은 성전의 재건에 대해서는 암시조차 없으며 메시야에 대해서 한번 언급되어 있으나 그 성격은 다르다(9:0-12). 1-8장에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등의 유명한 지도자의 이름이 있으나 9-14장 가운데는 지도자들은 목자로만 기록되어 있고 그 이름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 성격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다르다 연대와 저자의 이름이 기록되었는가 아니면 기록되지 않았는가, 문체와 용어의 현저한 차이, 종교현상의 차이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스가랴의 예언으로 알려진 1-8장의 예언을 살펴보면, 스가랴는 사상적으로 학개보다 앞서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둘은 성전을 재건하여 새로운 세계를 실현하려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스가랴는 이상주의자이며 그의 이상은 신정정치(Theocracy)였다. 그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스가랴의 신정정치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필요하였다. 즉 정화된 교회와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와 훈련받은 백성들이다. 스가랴는 이것을 환상으로 보았다. 스가랴가 본 여덟 환상 중에서 다섯 가지가 신정정치에 관한 것이고 이 두 가지는 이스라엘과 세계에 관한 것이다.
스가랴의 예언들은 대부분 다리우스가 승리를 거두고 유대인들의 희망이 그렇게 쉽게는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뚜렷해진 뒤에 설교된 것이며 그도 역시 동포들이 분발하도록 격려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대부분 신비적인 묵시의 형식으로, 즉 좀더 후대로 내려가서 널리 유행하게 될 묵시문학의 선구자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학개와 마찬가지로 스가랴로 당시 널리 파급되고 있었던 동란에서 야훼의 개입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표징을 보았다. 그는 아직 바벨론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다가오는 야훼의 진노를 피하여 시온으로 귀향하도록 촉구하며 야훼는 곧 승리를 거두어 이 시온에서 자기 통치권을 확립할 것이라고 했다(슥 2:6-13).다리우스가 명실상부한 지배자가 될 것이 명백해졌을 때도, 그는 계속하여 백성들에 사태의 진원은 단지 늦추어 졌을 뿐이며 곧 닥쳐올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즉 예루살렘을 위해서는 투기가 강한 야훼께서 다시 그것을 자기 거처로 선택했으며 곧 승리를 거두고 자기 집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슥 1:7-17).
성전은 야훼가 좌정하여 왕답게 다스리는 자리가 되어야하므로, 그 공신의 완성은 스가랴에게 가장 긴급한 일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그는 백성을 격려하며(슥 1:16, 6:15).성전 건축공사를 시작한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그 완공의 날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4:6b-10a). 그때에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그곳으로 무리 지어 몰려옴에 따라(8:1-8) 다 못 들어가서 성벽 밖으로 넘쳐 나올 만큼 큰 도성이 될 것이라고(1:17, 2:1-5)약속하였다.
그 새로운 도성 예루살렘에서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다윗왕가 출신의 총독 스룹바벨이 하나님의 은총을 전하는 두 통로로서 중보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4:1-6, 10-14). 또한 스가랴도 메시야를 뜻하는 어투로 스룹바벨을 찬양하였다. 그는 “새로운 가지”,곧 다윗 왕가의 기다리던 후손이 바야흐로 나타나서(슥 3:8).그 왕좌를 차지하려 하며,이 사람은 다름 아닌 스룹바벨이라고(슥 6:9-15)선언하였다.
(3) 남은 자 사상이 나타난 구절
슥 8:6, 11-12절이 속해 있는 곳은 스가랴의 여덟 가지 환상(1장-6:8)을 지나 책임과 약속에 대한 신탁들에서 특히 새 시대에 대한 약속 가운데 주어진 본문이다. 스가랴는 백성 땅, 축복, 보호, 평화, 영적인 변형, 열국의 포함,피조물을 새롭게 함에 있어 하나님의 임재에 관한 약속들을 확증하였다. 축복과 보호에 있어 여호와의 임재는 이루어질 변형에 대한 소망뿐 아니라 회복의 현재 보증이다.
포로 후기 선지자들이 성취가 표징으로 이미 그들의 것이 되었음을 강조하는데 약속의 초점은 성전 사람들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돌아오심이다(1:16).그의 임재는 하나님의 도성과 관련된 이름들이 상징하는 언약적 관계를 보증한다. 하나님이 단언하였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는 포로 후기 공동체 속에서 경험되었다;“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말지니라”(8:15).
하나님은 그들이 두려움을 없애고, 그들에게 그의 선하심을 기뻐할 이유를 줄 것을 약속하였다. 하나님은 임재하여 그의 백성을 축복하고(8:12-14), 보호하며 그들을 지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귀한 백성이기 떄문에 혹 역경에 처할지라도 그는 그들의 하나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왕이며, 그의 백성은 이 땅에서 그의 왕국을 구성한다. 그는 그들에게 포로후기 선지자가 선포하였던 평화를 준다(3:10).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시온에서 피난처를 찾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숫자상으로도 증가할 것이다(3:10, 8:20-23).
하나님의 도성 시온은 여기서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와 같이 그의 백성 가운데 거하는 하나님의 임재가 주는 그의 축복과 보호를 의미한다. 야훼는 그가 그의 백성을 위해 열심임을 권면하는데 그의 열심은 백성들에게 땅과 성읍들을 회복시켜주는 데서(1:17) 그의 백서의 기쁨과 번영에서(8:4-6)구체적으로 표현된다. 스가랴는 학개가 그랬듯이(학2:10,15-19)약속의 말씀을 다시 반복함으로써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겠다는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Ⅳ. 결 론
아모스는 최초의 문서 예언자로서 여로보암 2세의 정치말기인 주전 760-750 사이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했던 사람이다. 그의 시대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형적이 번영과 안정의 사회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낙관주의’와 선민의식의 허구성 아래 사회적 긴장과 모순이 극대화되고 인간의 가치가 철저히 부정되던 때였다. 따라서 아모스의 예언은 당연히 ‘공법과 정의’(5:7, 24, 6:12)를 주제로 하여 타락한 이스라엘의 사회, 경제, 종교현상을 준엄하게 규탄할 수밖에 없었다.
아모스 이해의 유일한 거점은 직업적인 배경이나 정치적인 의도들을 떠나서 야훼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붙잡으심과 개입(3:8, 7:15)에 의해 그가 이스라엘의 불의와 부패를 고발해야만했었다는 데 있다.
아모스서에서 사자문체 הוהי רמא הכ가 빈번한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야훼는 그의 의를 행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모스는 남은 자들에게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림으로서 그 시대의 악습과(암 2:1, 2, 6-8, 5:12), 위선적인 행위와 종교적 허례들(암 5:21-16)을 멀리하도록 권고하였다. 오직 정의와 공법의 하나님의 왕국을 찾음으로서만 그들은 스스로 기쁨을 얻는 것이었다.
제1이사야 또한 포로전기에 활동한 예언자로서 아모스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젤(Hasel)이 말했듯이‘남은 자 모티브’는 이사야의 종말론에 있어서 중심이 됨을 보여준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왕국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게 할 그런 성질의 것을 말한다. 왕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역자로서 이사야는 변혁의 새 시대를 선포하고 예시대의 남은 자들에게 위대한 왕의 오심을 준비하도록 권고하였다. 그는 옛 공동체가 낡고 썩어져가는 조직들에서 돌아서 하나님의 왕국의 새로운 불멸의 조직들을 고대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사야는 야훼가 지상의 사건들을 통제하고 모든 민족을 평화롭게 다스릴 당당한 왕권을 확립하려는 의도는 확고부동한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사 2:2-4, 11:6-9). 그래서 그는 닥친 현재의 비극을 그 계획의 일부로 보았다. 이 비극은 일종의 단련으로서 말하자면 야훼가 당신 민족의 성격에 쓸모없는 불순물을 없앤 다음 징벌을 받고 깨끗해진 한 백성을 남겨두려는 정화작업으로 보았다(사 1:24-26, 4:2-6 참조).
한편 포로 후기 선지자들인 학개, 스가랴, 말라기는 포로기의 어두운 경험과 포로후기의 밝은 회복의 빛을 배경으로 사역하였다. 포로 이후의 시기는 포로 전기 선지자들의 예언이 성취되는 새 시대를 열었다. 하나님의 언약 기소자들로서 그들은 그 백성들에게 임박한 멸망과 수치와 사로잡힘을 미리 경고하는 한편,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피난처를 찾을 것을 권고하였다(슥 1:4).
포로는 종말론적 심판의 한 개입으로서 하나의 실재가 되었다. 예루살렘과 성전은 파괴되었고, 다윗 왕은 폐위되었으며, 백성들은 사로잡히거나 공민권을 박탈당한 채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감을 절감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의 남은 자들은 외관상으로 영원해 보이는 것을 기다리며 예언의 말씀의 성취를 보여주는 징조들을 찾았다. 그러나 포로기의 경험은 유익한 역효과로 지니고 있다. 포로기는 정화의 과정으로서 그 동안에 하나님은 부지런히 그를 찾으며 믿고 이와 정의와 사랑을 추구함으로 그에게 답함으로써 그들의 마음에 그의 나라를 건설한 모든 자들로 새 공동체를 구성케 하였다.
학개와 스가랴는 유배 이전의 국가 공식신학 고유의 희망들, 즉 야훼 시온과 다윗왕조를 영원히 선택하였다는 사실에 근거를 둔 희망들이 성취될 것을 확인하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그 작은 공동체를 이스라엘의 참으로 남은 자들로 보았고(학 1:12, 14, 슥 8:6, 12).또한 스룹바벨은 바로 그 남은 자들을 다스리는 대망의 다윗후손으로 보았다. 그들의 설교는 대담하고 선동적이며 극히 위험한 내용이 있었다 해도 그들의 메시지는 희망에 찬 남은 자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선포였다.
결국 이상에서, 포로 이전에 나타난 남은 자 사상은 정화를 통하여 남은 자들이며, 하나님의 포로기라는 정화 과정을 거치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귀환민으로서의 남은 자라는 포로 후기의 남은 자들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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