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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1장]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리스도

JORC구원열차 2015. 4. 21. 12:51

[요 11장] 생명이요 부활이신 그리스도

[내용개요]

 

본장에 나타난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예수의 공식적인 일곱 가지 표적들 중에 제일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이고, 표적의 성격상 가장 위대하며, 원래 요한이 전달하고자 했던 예수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본장은 생명의 원천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하게 부각시켜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믿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1-6절), 나사로의 죽음(7-16절),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17-27절),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28-37절), 일곱 번째 표적으로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38-44절),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45-53절), 체포령(54-57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 해]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도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나사로의 집에 찾아가셨습니다. 이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이적을 통해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의 주되심을 증거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의 표적을 보고 예수를 믿는 이들도 많이 생겼지만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를 잡아 죽이려는 음모를 구체화시킵니다.

 

1. 나사로의 죽음

 

1) 병들어 죽게 된 나사로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자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에 사람을 보내어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그의 병이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러한 말씀은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에게 하신 말씀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서 예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실 것임을 암시하였습니다. 마리아와 마르다와 나사로는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시던 자들이었으므로, 나사로의 병 든 소식을 들으면 금방 달려오실 것으로 마리아와 마르다는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소식을 들으시고도 이틀이나 있던 곳에 더 유하셨습니다. 이는 나사로가 병으로 죽기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번에는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써 자신이 부활과 생명의 주이심을 증거 하시려 했던 것입니다.

 

a. 주를 사랑했던 마리아 가족(눅10:38-39)

b.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는 병(요9:3)

c.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게 할 병(요12:9,11)

 

2) 나사로의 집으로 향하시는 예수

나사로의 질병 소식을 듣고 이틀을 지체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사로가 잠들었으니 깨우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을 오해하여 그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을 때에 자신이 그 곳에 있지 아니했던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시면서 그 이유는 제자들로 믿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나사로의 죽음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표적을 보여 주시겠다는 예고였습니다.

 

a. 성도의 죽음은 잠(살전4:14)

b. 안식에 비유된 성도의 죽음(사57:1-2)

 

2. 부활과 생명이신 예수

 

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께서 나사로의 집에 이르렀을 때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을 때입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그 곳에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주께서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이라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 되심을 밝히셨습니다. 즉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시는 모든 구속 사역의 핵심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의 증거를 믿음으로 받아 자신의 신앙으로 고백했습니다.

 

a.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음(요3:16)

b. 영생이신 그리스도(요일5:20)

 

2)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을 때 그 곳에는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애곡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께서 그 곳에 계셨다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하였습니다. 마리아와 사람들은 예수께서 질병을 낫게 하실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사람들의 애곡함을 보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단순히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라 사망 권세 아래서 슬퍼 울며 애곡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상태를 슬퍼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회복시키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a. 성도의 슬픔을 담당하심(사53:4)

b. 백성의 고통을 보고 민망해 하심(마9:36)

 

3)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

예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셨습니다. 나사로의 시체는 이미 썩어서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덤을 막은 돌을 옮기게 하시고는 아버지께 기도하신 후에 큰소리로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죽었던 나사로는 예수의 말씀대로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은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시며, 부활의 주인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미리 증명해 보이신 것이었습니다.

 

a. 하나님께 기도하심(요17:1)

b. 죽은 소녀를 살리심(마9:18,25)

 

3.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

 

1)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는 유대인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 그 광경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자는 예수를 핍박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그 사실을 알렸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됨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해의 대제사장 가야바는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게 되지 않게 됨이 유익하다고 말함으로써 예수를 죽여야 하는 당위성을 피력했습니다. 예수가 백성을 선동하여 로마에 반역을 시도할 경우 로마 군대가 와서 모든 유다 백성을 진멸할 것이므로 예수를 죽여 그러한 화를 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술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예언함이 되었습니다.

 

a. 예수를 정죄하는 가야바(마26:57,65)

b. 자기 백성을 위해 오신 그리스도(마1:21)

c. 나사로까지 죽이려 함(요12:10-11)

 

2) 예수를 수배하는 유대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려 함을 아신 예수께서는 유다인들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시고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제자들과 함께 유하셨습니다. 유월절이 가까워오자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수배했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오실 것을 예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표적을 행하심을 인하여 예수를 믿기는커녕 오히려 잡아 죽이려 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진리를 보지 못하는 영적 소경 된 자임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대적함으로써 멸망의 길을 자초했던 것입니다.

 

a.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함(요8:59)

b. 외식하는 종교 지도자들(마23:23)

c. 예수를 잡고자 하는 유대인들(요10:39)

 

결론

예수께서 나사로를 살리시어 자신이 생명과 부활의 주이심을 증거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지만 예수를 반대하는 세력의 박해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는 진리가 드러날수록 진리를 싫어하는 악한 세력의 반대가 더욱 심해짐을 보여 줍니다. 성도는 진리 가운데 행하므로 닥쳐오는 모든 악한 세력의 핍박에 굴하지 말 고 예수의 가신 진리의 길을 좇아가야 합니다.

 

[단어해설]

 

4절. 죽을병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을 별에 걸려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날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11절.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는 나사로의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표현함으로 성도가 다시 살아날 것을 암시하며 예수 자신이 생명의 주인으로서 나사로를 깨울 수 있는 분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17절. 나흘이라. 유대인들은 삼 일이 지나면 시체가 부패하여 장례를 치르는 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삼 일 이내에 매장하고 신원을 확인하며 사망 여부를 결정짓는다.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라는 것은 나사로의 죽음이 확정된 것이며 시체가 부패되어 냄새가 많이 난 상태이다. 따라서 나흘은 죽은 자를 살리는 예수의 능력을 확실히 나타내는 근거가 된다.

25절. 부활이요 생명이니. 부활은 생명의 소생을 의미하며 의식을 되찾게 되는 것을 뜻하며, 생명은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수의 자기 계시는 예수께서 생명의 주인이며 믿는 자에게는 생명과 부활을 주심을 의미한다.

46절. 어떤 자. 이 말은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가리키며 45절의 많은 유대인과는 대조되는 말로서 예수의 하는 일을 보고도 믿지 않은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48절. 로마인들이 와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따르는 군중이 많아지게 되면 예수를 중심으로 정치적인 독립 운동이 일어나게 되고 이 혁명을 진압하기 위해 로마 군대가 개입하여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될 것을 염려하였다.

 

[신학주제] - 죽음의 의미.

 

예수께서는 본서에서 '죽었다'라는 말 대신에 '잔다'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셨다. 그 의미는 죽음이 영원한 소멸과 같은 공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잠을 자는 것처럼 단지 무의식의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즉 '죽음'이라는 말은 인간을 두렵게 하는 피할 수 없는 형벌의 대가가 아니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면 상태와도 같이 육신이 한번 거쳐야 하는 부담 없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실상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은 최대의 난제임에 틀림이 없다. 모든 인간이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가지는 것은 죽음 뒤에 자신에게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의 정의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동시에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권세는 아버지에게 받은 것이므로 완벽한 신적 근거를 지닌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성도는 그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받으므로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이나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죽음은 최종적인 심판에서 받게 될 영광과 축복을 대기하는 과정일 뿐이다. 또한 그 과정조차도 지루함이나 불안한 상태가 마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 안에 있는 평안의 상태인 것이다. 또한 본장에 나오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은 종말에 있을 성도들의 영광으로의 부활을 보증하는 사건이다. 사실 예수의 복음이 가지는 최대의 핵심은 죽음에서 생명으로의 전이에 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알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의 이런 주장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는 바로 이런 생명에의 의문에 대해 본장에 나타난 나사로 부활 사건을 통해 모든 의심을 제거하고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신 것이다. 이와 같이 나사로의 죽음을 '잔다'라고 표현하고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의 행위는 부활의 첫 열매인 자신과 더불어 모든 성도들의 생명의 부활을 보장하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영적교훈]

 

예수께서 간구하시길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라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는 자신이 간구하는 바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심을 의미한다. 그는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항상 알았기 때문에 그가 구하는 것들은 모두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들이었다. 따라서 아버지는 항상 아들의 기도를 들으셨던 것이다. 성도들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수의 기도에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세를 본받아야 한다. 성도들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인식해야 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들을 취해 모든 것을 희생하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들으시고 자신의 모든 것으로 채워 주시고자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