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과 나의 여호와의 팔이신 예수님
본문 : 이사야 5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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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
예전에 친구에게 전도를 하는데 ‘차라리 내 팔뚝을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 네 팔뚝 굵어’ 그러고 싶었지만 참았던 일이 있습니다. 이 친구는 자기 팔의 힘이 굉장히 센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팔로 얼마나 들어 올릴 것 같습니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도선수로는 터키의 ‘술레이마놀루’를 꼽는데, 그는 남자 62㎏급에 출전하여 1988, 1992, 1996년 올림픽 역도부문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무게의 3배가 넘는 바벨을 들어 올려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가 들어 올린 것은 인상(138kg)과 용상(167.5kg), 합계(305kg)였습니다. 한마디로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사람들은 힘의 상징을 팔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은유적인 표현으로 ‘팔’(제로아)로 당신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팔은 능력, 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팔은 어깨로부터 손까지를 말합니다. 때로는 이 단어가 ‘어깨’ 또는 ‘손’이라고도 나타납니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힘깨나 쓰는 청년들을 ‘어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또한 자식이 많아 부양할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어깨가 무겁다’는 말도 합니다. 저도 가정적으로는 자식이 없으니 어깨가 무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교회와 선교회를 생각하면 어깨가 무겁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가진 자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또한 이 단어가 복수로 사용될 때는 군사적이거나 정치적인 세력들을 말합니다(단 11:15, 22, 31). 그래서 ‘팔을 부러뜨린다’는 것은 적의 힘, 능력을 저지하거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삼상 2:31, 욥 22:9, 38:15, 시10:15, 37:17, 렘48:25, 겔30:21-22).
1.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신 팔
이 말이 은유적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기 17:8-16절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 생활 때 아말렉과의 싸움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명령을 따라 싸움에 나갔습니다. 싸우는 자는 여호수아와 뽑힌 자들이었지만 뒤에서 11절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기고,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로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 오지 아니한지라”(출 17:12)
하나님은 모세의 손과 함께 하셨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이곳에 단을 쌓고 이곳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했습니다. ‘닛시’는 정확히 말하면 ‘나의 힘’이라는 뜻입니다. 누구의 힘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신 4:34)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신 것을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신 26:8)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팔이었습니다.
2. 기억해야할 여호와의 팔
1) 종 되었던 우리를 인도해 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신 5:15)
2) 이적과 기사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목도한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그와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행하실 것이요”(신 7:19) ‘그와 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일이 예전에 한번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기억해야 합니다. 보지 못했어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기억합니까?
왜 성경을 매일 보고 주님을 앙모해야 합니까?
주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이적과 기적들을 보고 기억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힘과 주님의 힘을 기억하여 그분이 곧 우리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기 위해서입니다.
물고기의 지능은 0.4밖에 되지 않고 기억은 3초밖에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과 수초 전에 물고 혼났던 미끼를 또 다시 물어 낚시에 걸린다고 합니다. 물고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의 결국은 죽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했습니다.
3. 구원하시는 팔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구속하셨나이다 {셀라}”(시 77:15)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시 89:13)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아침마다 우리의 팔이 되시며 환난 때에 우리의 구원이 되소서”(사 33:2)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사 40:10)라고 구약의 선지자들은 예언하며 구원하실 주님의 팔을 그리워하며 찬양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들은 요한복음 12장 38절에서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기록함으로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여호와의 팔로 나타나신 이는 예수그리스도이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능력을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달랐습니다. 바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저주하시는데 이 능력을 사용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데 사용하셨습니다.
바울도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했습니다. 진짜 죄인은 바로 나입니다. 나를 위해 주님은 구원하시는 능력의 팔로 오셨습니다.
4. 주의 영원하신 팔
“악인의 팔은 부러지나 의인은 여호와께서 붙드시는도다”(시 37:17) 했습니다.
악인의 팔이 부러진다는 것은 그들의 행사가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악인은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망합니다. 그러나 의인은 다릅니다. 그 팔을 여호와께서 붙드십니다. 그분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 가산을 지킬 수 없습니다. 혹 지키는 것 같으나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신 33:27)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부르짖고 깨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깨우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주무시기 때문에 깨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들의 잘못으로 하나님이 떠나시는 것이며 역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사 51:9)라고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도 다시 한번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우리 속담에 ‘미꾸라지 한 마리가 흑 탕 물을 일으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이 뜻은 한 사람의 잘못을 질책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미꾸라지가 흑 탕 물을 일으키려 해도 일어나지 않는 깨끗한 물이면 됩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다.
예수님에게는 얼마나 많은 미꾸라지가 있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바리새인, 서기관 등)이 미꾸라지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서는 결코 흑 탕 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처음부터 잘못, 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를 주님의 팔이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 가정을 주님의 팔이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고 있는지를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잘못이 있었다면 계속해서 고쳐 나갑시다. 그리고 새로워집시다. 우리는 개혁교회입니다. 고치는 것을 변화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때까지 지속적인 개혁만이 우리의 살길입니다. 마음을 비우면 됩니다.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예수그리스도 우리의 팔이신 주님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여호와 팔이, 주님의 팔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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