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학교 1 - 조직신학 (1) 신론
신학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다른 학문에 대하여 신학이 신론 유익은 하나님의 관점을 제공한다는 데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관점이란 인식자의 눈이 땅으로부터 어느 높이에 붙어 있는가를 말해주는 지점입니다. 유한한 인간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공부하면 우리는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게 됩니다. 곧 신학이란 하나님을 원인으로 놓고 모든 세계를 설명하는 학문입니다. 이번 교사학교에서 조직신학(성서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신학의 다양한 교리를 정리하고 체계화하는 신학분야)을 개관으로 다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알려주셨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계시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간은 존재의 차원에서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다른 존재의 질서 가운데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은 인식의 차원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있습니다. 계시의 필요성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더욱 절실해졌습니다. 타락한 이후의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교만에 싸여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간격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여서 하나님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인간은 스스로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고전12:3...
계시의 종류...
일반계시 /
일반계시는 하나님께 자연, 양심 역사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행위, 존재를 일반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301장, 어린이들이 부르는 찬송에서 “온 천하 만물은 그림책 같으니 그 고운 그림 보아서 그 사랑 알아요...저 푸른 하늘의 수많은 별들도 주 하나님의 사랑을 늘 속삭이지요”*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그런데, 일반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지만 인간은 그 뜻을 곡해하거나 올바로 파악하지 못합니다. 이는 인간의 마음이 부패하였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양심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변명합니다. 이에 특별계시가 필요합니다.
특별계시 /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계시를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이는 시력이 약한 사람에게 주어진 안경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은 특별계시의 창고입니다. 그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존재가 있습니다.
다음을 완성하십시오.
히 1:1 옛적에 ( )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히 1: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 )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 )의 형상이시라
*요1:14-15
부분과 전체 /
하나님의 계시는 사람의 선입관을 뛰어넘으며 고정관념을 부숩니다. 계시는 인간의 합리성에 건강한 기초를 제공하며 인간의 사고과정에 있어서 온전한 합리성을 회복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을 체험은 사람은 부분을 넘어서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계시의 사건성 /
성경에서 계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식이란 정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만남에서 얻어지는 생동하는 지식입니다. 곧 하나님의 새로운 관계 속에 들어가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알다는 의미의 동사인 ‘야다’는 원래 ‘(성)관계를 맺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주님과 성도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이러한 지식입니다.
계시와 인격의 변화 /
계시에서 새로운 지식이 얻어지는 것은 분명히 사실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지식은 인생의 한 복판에서 변화를 경험하게 합니다. 계시는 인간의 눈을 뜨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자유케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을 체험한 인간은 자신이 얽매여 있는 것을 발견하며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적 사건을 체험한 사람은 새로운 소명을 부여받습니다. 문제는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세가 부족한 곳에서 계시적 사건은 재수 없는 사건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자세가 있는 곳에서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계시가 됩니다.
말씀과의 만남 /
하나님의 말씀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말씀입니다. 말씀에 의해 천지가 창조되었다면, 말씀과의 만남에 의하여 인간이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과의 만남이 있을 때 인생에 새 지평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알리시고 인간을 위한 계획을 알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 말씀 속에서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을 나타내는 최초의 단어는 창1:1에서 사용된 ‘엘로힘’(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헬라어로는 ‘데오스’(요20:28)라는 단어입니다.
또한, ‘주’(主)라는 표현도 사용됩니다. 창15:2에서 사용된 ‘주’(‘아도나이’)라는 표현이며, 헬라어로는 ‘퀴리오스’(요20:28, ‘주’)로 표현됩니다.
뿐만 아니라, 출3:14, 6:2에서 사용된 ‘스스로 있는 자’라는 자존자의 의미로 표현된 ‘여호와’라는 이름입니다. 발음이 ‘야훼’에 가깝기 때문에 공동번역에서 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
유한한 인간과는 달리 무한하신 하나님으로서 가지고 계신 특성을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지존자 하나님 / “스스로 존재하는 자” / 출3:13-14. 롬11:36, 사41:4, 마24:35, 요일2:17
천지는 없어질 것이나 하나님은 사라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도 사자지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는 자도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존재가 없다면 모든 것은 다 존재할 수 없고 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자 하나님 / 사40:28-31, 롬11:33-36, 창12:2, 대상29:11
하나님은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과 달리 한계가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무한성은 하나님의 소명 곧 부르심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하며 풍성한 자원을 나누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반면에 인간이 다른 사람을 부를 때에는 자신의 결핍을 호소하기 위해서 부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렀을 대 일을 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풍성을 나누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러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불변하시는 하나님 / 히13:8, 요일2:15-17, 사57:15
인간은 변하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불편하시는 분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시간적이며 역사적인 존재임을 뜻합니다. 곧 인간은 시간의 예속을 받습니다. 시간 안에 있는 존재는 모두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의 뜻도 영원하며 그의 말씀도 영원합니다. 히13:8...예수 그리스도는 ( )나 ( )이나 ( ) 동일하시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 사9:6, 롬5:6-8, 시27:10
이에는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가지고 계셨던 절대적 전능성과 이 세상의 질서와 법칙을 창조하신 섭리적 전능성이 있습니다. 세상의 창조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펼쳐나가는 능력은 기계적이며 마술적인 능력이 아니라, 사랑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다 감당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보여줍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 )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 )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 )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성품...
신자가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동화되어 그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특권이자 의무입니다. 특히나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봅니다(요1:14, 고후4:4, 골1:15). 골 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 )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신실하신 하나님 / 민23:19, 딤후2:13
하나님은 한 가지는 못하십니다. 자신의 성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 요일4:10, 16, 요일4:7-8, 요15:12-13, 롬5:6-8
사랑이란 상대방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성품을 의미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을 위하여 자신의 존재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기에 상대방의 최선을 구하는 의도와 행위입니다. 사랑의 극치는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사건입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의 운명을 자신과 동일시하시며 피조물을 가슴에 품으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갚으셨습니다. 또한 사랑의 의도가 밖으로 드러날 때 선행이 된다. 요일4: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 ) 이는 하나님은 ( )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 / 히12:2, 벧후3:9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또한 오래 참으시는 분입니다. 베드로가 변화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의 결과입니다. 사울이 바울이 된 것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토록 오랫동안 참아 주셨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탕자를 감동시킨 것은 아버지의 풍부한 재산이 아니라, 자신을 오래 참으신 아버지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더딘 것 같이 생각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벧후3:9...
거룩하신 하나님 / 사6:3, 출15:11, 계4:8, 레11:44-45, 엡5:26-27
거룩함을 뜻하는 ‘카도쉬’는 구별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스리는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되어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거룩성은 가장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한 분으로 지칭되어,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불립니다. 거룩한 장소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거룩한 시간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거룩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기운과 흔적이 베어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우리의 성품도 동화시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곧 모든 신앙인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성도(거룩한 무리)라고 부릅니다.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의로우신 하나님 / 신32:4, 롬1:17, 롬3:25-26
하나님의 의로우심이란 하나님이 불의를 행하지 않으시며 죄가 없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이란 모든 의로움의 궁극적 표준이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은 도덕, 윤리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때 하나님의 의로움이 신앙인의 성품 안에 전달됩니다.
롬 3: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 )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
* 본 교재는 조직신학을 전공한 장경철목사의 “하나님 공부하기”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교사학교 2 - 조직신학 (2)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기독론)
들어가는 말
우리가 연도를 표시할 때, 주후, 주전이라는 말을 쓴다. 이방인들은 무심코 이 말을 즐겨 쓴다. 한자로 써보라. 主後(주후), 主前(주전) -우리가 주님을 부를 때 사용하는 그 ‘주’자를 사용하고 있다. AD와 BC를 풀어써보라. 곧 Anno Domini (라틴어로 “주님의 연대로”를 뜻한다)와 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으로”)를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가 개인적인 생애가 아니라, 이 세상의 역사를 전환하는 역사적 사건임을 고백하고 있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칭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신앙고백이다. 곧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행 5:42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참고, 행18:5,28)마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Jesus) ;
이는 탄생 이전에 하나님의 사자에 의해 통보받은 이름이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 그 이름의 뜻은 ‘구원자’를 의미한다. 이는 구약에서 ‘여호수아’(수1:1,슥3:1), ‘예수아’(스2:2)라는 이름을 그리스어로 발음한 것이다. 곧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이름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다. 그리스도(Christ) ;
이는 직책(직분)을 뜻하는 말이다. 구약의 '메시야'를 그리스어로 번역해 놓은 말로 그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심과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그 위에 임하심을 말한다(눅1:35, 마3:16).
인자(Son of Man) :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자신을 표현할 때 즐겨 쓰신 통상적인 명칭이다. 이 명칭은 그리스도의 대속의 수난과 종말론적인 메시지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 명칭이다(마16:27-28, 막8:31, 눅9:22, 19:10, 21:27,요3:13).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
아버지와 동등됨을 표현하는 말이며(마11:27, 요10:30,36), 하나님의 후사요 대표자로서(마24:36, 막13:32),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곧 성령으로 잉태하여 탄생하셨음을(눅1:35) 의미하는 명칭이다.
주(主, Load) ;
예수님께 대한 존칭어로서 특히 부활 이후에 주로 불려진 명칭으로 교회의 머리 되시고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명칭이다(롬1:7, 엡1:17, 고전7:34, 빌4:4-5).
임마누엘(Immanuel) ;
이는 이사야서7:14에서 예고된 이름으로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명칭이다. 마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보혜사(파라클레토스, Counselor) ;
이는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다른 보혜사’(성령)와 함께 하는 ‘보혜사’로서 우리 곁에서 말씀해 주시는 분의 의미를 가진 명칭입니다. 요일2:1에서는 ‘대언자’로서 번역하기도 했다. 요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성육신)
하나님은 초월하시고 무한하시다. 그런데 유한한 피조물 인간이 되셨다. 고대교회에서 기독론의 주초를 쌓았던 아타나시우스는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높은 곳까지 인도하기 위해서 스스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인간의 자리까지 내려오셨다.” 그는 성육신의 신비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자기 낮춤과 겸손함을 보았다.(빌2:5-8)예수님은 인간과 같이 태어나시고 성장하셨다. 특히, 영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에서 성장하셨다.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그리고 때가 차서 자신의 사명의 감당할 시기에 이르게 된다.(눅4:16-21)
눅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고난을 받으사”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예수로서 찾아온 것 자체가 고난의 시작이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의 성품 -신성과 인성
예수님은 중보자로서 두 가지 성품을 한 인격 안에 지니고 계신다. 영존하시는 아버지(사9:6), 아버지와 동일하신 그리스도(요14:9) 등으로 신성을 나타내셨고, 인간과 동일하게 피곤하심, 잠이 부족하심, 슬퍼하심, 고민 등(히4:15, 5:7)을 겪으신 인성을 나타내셨다. 그러나 죄가 없는 의인이시다(벧전2:22, 요일3:5). 이것이 완전한 속죄양이 되실 수 있는 성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삼대 사역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참고, 마4:23)이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삼대 직분의 속성을 말한다. 곧 예언자(왕상19:16), 왕(삼상10:1), 제사장(출29:7)이다. 예수께서는 예언자와 같이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왕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셨고, 제사장과 같이 사람들의 죄, 병, 연약함을 치유하시고 사유하셨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사랑하시지 않으셨다. 도리어 잃어버린 자를 사랑하셨다.(막2:17,눅19:10)예수님은 혈루병 걸린 여인의 더러운 피부를 만져주며 고쳐주셨다. 이는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위기 규례에 따르면 유출병자나 문둥병자는 접촉해서는 안 된다. 이는 그들이 부정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파격적으로 행동하셨다. 잃어버린 자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은 목자 없는 양을 향한 마음이었다(마9:36). 병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시선은 그 아픔을 같이 짊어지는 눈빛이었다. 문둥병자를 만져주시는 순간 예수님은 더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교사(양육자)에게 필요한 시선이 바로 이것이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내겐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고통받는 자녀 품으시니 주밖에 없네
구원의 사역
예수님은 교사로서의 탁월함과 의사로서의 탁월함을 넘어서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셨다. 예수님의 성공은 오래가지 않으셨다. 배신의 아픔, 버려짐의 아픔,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다. 이로써 구원의 사역을 이루셨다.(요1:29, 막10:45, 요10:10)
단번에 이루신 영원한 속죄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영원한 속되’라고 칭하고 있다.
히 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히 7:27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 의로우신 예수께서 저주의 죽음을 당함으로 인하여 모든 죄인들은 예수 안에서 의로움을 회복한다. 루터의 표현을 빌면 예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예수 안에서 즐거운 교환을 하게 된다.(고후5:15,17)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의 죽음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였고, 예수의 부활은 생명의 문제를 해결한다. 요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의 부활사건이 갖는 의미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립한다. 부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인정된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둘째, 인간을 위한 구원론적 의미를 지닌다. 부활은 죄, 죽음, 율법에 대한 예수의 승리를 상징한다. 부활사건을 통하여 죄의 세력을 극복했으며 죽음의 세력을 정복했다. 그리스도인은 죽음을 이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 교사가 가진 벅찬 감격이 이것이 아닌가!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하나님의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가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바로 부활사건이다.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부활사건은 전적인 새로움의 시작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에 불과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승천의 의의는 이 땅에 성령을 보내시기 위함이며(요14:16, 행1:4-9), 신자들이 있을 곳을 예비하시기 위함이며(요14:2-3), 신자들의 승천(휴거)을 예고해 주려는데 있다(요14:1-3, 엡2:6, 요17:2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그리스도의 재림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완전한 승리의 절정이다.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계 1:7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지극히 작은 한 아기의 모습으로 나시고, 이 세상에서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심으로 이 세상에서 하늘로 돌아가신 그리스도입니다. 이는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 낳고 이 세상에서 죽고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친히 가신 길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 21: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
마 8:22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하시니라
☆지금 당신은 어디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찾을 수 있습니까?
---> 바로 당신 ( )에게서!
교사학교 3 - 조직신학 (3) 성령론, 교회론
성령에 대하여 (성령론)
성령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모든 사역 가운데 참여한다. 창조의 사역, 구원의 사역에도 참여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현재화의 사역이다.
영이란 무엇인가?
구약에서 (히)‘루아흐’, 신약에서 (헬)‘프뉴마’이다. 이는 바람이나 호흡(숨)을 의미한다. 기체적 하나님이라 할 수 있다.
요 3:8 ( )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성령 하나님은 피조물에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창조적 숨결이다.
시 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 )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성령의 다양한 명칭
하나님의 영(롬8:14), 그리스도의 영(롬8:9), 진리의 영(요14:17), 성결의 영(롬1:4). 보혜사(요14:26)
성령강림의 약속
요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인격성
성령은 비인격적인 힘이 아니라 지정의를 가진 인격자 하나님이다. 성령 하나님은 에너지의 특성을 가지지만, 에너지가 아니라 하나님이다. 성령은 주체적인 결단을 내리는 하나님이다. 성령은 지성을 소유하시는 하나님이다. 인식의 주체가 되시고 말씀의 주체가 되신다. 성령은 정서적인 면, 의지적인 면을 소유하신다. 성령은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며 어떤 길로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
성령의 사역
성령 하나님께서 창조, 계시, 구원의 사역 가운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과 함께 참여하신다.
창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성령은 구체적으로 진리를 기록하게 하셨으며 성경을 해석할 때 빛을 비춰주신다.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 )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성령 하나님은 구원과정에서도 일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하는 데 일하신다.
고전 12:3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 )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현재화의 사역
성령 하나님은 현재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이다. 성령께서 제자들의 인격 속에 거하실 때까지 예수님의 사역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께서 임재하심으로 인하여 예수의 사역은 제자들 속에서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성령 하나님은 현재화의 하나님이다.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오늘의 사건이 되도록 내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이다.제자들은 3년간이나 훈련을 받았지만, 변화받지 못했다. 성령의 임재하심이 있었을 때 비로소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이 그들의 심령속에 역사되어 변화를 가져왔다.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며, 무엇을 마땅히 빌어야 하는지 깨우쳐 주시며, 우리의 삶에 능력을 회복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신다.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의 은사
성령의 선물(은사)는 인간의 재능을 의미하는데, 은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활용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효과적으로 참여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 성령의 은사에 관한 가르침은 무익한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한다. 하나님은 모든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시는 것이 아니다. 가장 자신의 은사에 맞는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물으신다. 성령의 은사는 경쟁의 문제를 해결한다.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지체 가운데 다양성의 신비를 이해한다. 마치 손과 발이 서로 경쟁하지 않듯이 성령의 은사는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이다.
고전 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만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내가 은사를 받은 것은 결코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대게 시험을 당하는 영역은 자신의 약한 부분이 아니라 자신의 강한 부분이다.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 )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성령의 열매
성령의 열매란 하나님의 생명과 성품이 성령의 역사 가운데 우리에게 맺힌 결과를 의미한다.은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데 있다. 베드로와 바울은 다음과 같은 성령의 열매를 말하고 있다.
벧후 1: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 )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 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벧후 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 )을 공급하라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 )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사 랑(agape) :
상대방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거나 상대방을 위하여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는 가운데 상대방과 하나됨을 지향하는 것이다.
희 락(chara) :
마음에 흐뭇함이 있는 상태로, 성령을 따라서 항상 기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뜻이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기쁨의 이유를 자신이나 환경 속에서 발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이 될 때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다.
화평(eirene) :
인생의 모든 갈등을 이기는 내적인 힘이다. 화평이란 전혀 갈등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화평의 삶이란 갈등이나 분쟁을 전제하는 가운데 그것을 이기는 능력을 하늘로부터 받는 삶을 의미한다.
오래참음 :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가운데 시간의 흐름을 기쁨으로 수용하는 것이다.
자 비 :
무자격한 자를 향한 사랑이다. 은혜와 자비는 모두 비천한 자를 향한 친절한 사랑이다.
양 선(착함) :
우리 안에 있는 악을 이기는 열매이다. 선이란 악한 것이 전혀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요소를 극복하여 모두의 유익을 구하는 행위이다. 자비에 비해 보다 능동적인 선이다.
충 성 :
신실한 마음으로서 믿음을 의미한다. 충성이란 신뢰하는 대상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다.
온 유 :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되돌려드린 사람에게서 맺히는 성품으로서 따듯함과 부드러움이다. 온유한 사람은 사소한 일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으며,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서 다시 기회를 줄 준비가 된 사람이다.
절 제 :
지식과 의지, 욕망과 행위에 있어서 한계를 아는 것이다. 인간은 무한한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의 삶에서 끝을 알아야 한다. 절제는 지식의 범위를 제한하며, 자신의 욕망을 제어한다. 악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끝을 모르는 것이다.
교회에 대하여 (교회론)
교회의 정의
교회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자들이 함께 모인 구원의 공동체이다. 구약의 ‘카할’이나 신약의 ‘에클레시아’는 모두 부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에클레시아는 이 죄악의 세상에서 밖으로 불려냄을 받는 사람들임을 표현하고 있다.
영어의 church(교회)는 헬라어의 ‘퀴리아케’에서 유래 되었는데, 그 의미는 ‘주께 속한다’ 또는 ‘주의 집’이라는 뜻이다.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일하시는 곳이다.
행 20:28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 )를 치게 하셨느니라
엡 1:22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엡 1:23 교회는 그의 ( )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 )가 되었느니라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다.교회는 계약공동체, 증인공동체(마28:19), 종말론적 공동체(골1:13,벧전1:3-4)다.
교회의 4대 속성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라는 어구는 영문으로 ‘one holy catholic church'로 표현되는데, 여기에 교회의 3대 속성이 나타난다.
(1)단일성(UNITY) ;
모든 세대(과거, 현재, 미래), 모든 나라의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나이다. (롬12:5)
(2)거룩성(HOLYNESS) ;
교회는 그리스도의 의, 성령의 새롭게 하심, 하나님께 거룩하게 드려짐으로 인하여 거룩하다.고전 3:17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3)공동성(CATHOLICITY) ;
일명 보편성으로 어느 시대, 어떤 민족, 어느 곳에나 참된 교회가 있다.(롬10:12-13)
(4)사도성(APOSTOLICITY) ;
사도들의 목격자로서의 증거를 간직하고 그것을 가르치고 보관하고 있다. 교회는 환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교회가 사도직에 충성하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동시에 체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3대 표지(marks)
(1)말씀의 참된 전파(살전2:13
(2)성례의 정당한 집행(막16:16, 고전11:23-30)
(3)권징의 신실한 시행 ;
교리적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의 권위로써 불순성을 배제하고 시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권징은 온유와 사랑의 정신으로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야 한다.
갈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 )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 18: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마 18: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교회의 5대 사역
예배, 선교, 교육, 교제(친교, 코이노니아), 봉사(섬김, 디아코니아
교사학교 4 - 조직신학 (4) 칼빈의 5대교리 외
칼빈의 5대 교리에 대하여
개혁주의의 청교도 신학은 예정론에 입각하여 철저하게 칼빈주의적이다. 그러나 웨슬리 지지자들 곧 감리회는 알미니안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보편구원론을 주장함으로 칼빈주의와 다른 입장을 갖게 되었다. 알미니우스(1560~1609년, 네덜란드의 신학자)는 에라스무스(16세기 로마 카톨릭의 인본주의 사상가)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여기서 감리교의 교리에 영향을 준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5대 교리를 비교합니다.
알미니안주의 칼빈주의
1>자유의지 1>전적 부패
2>조건적 선택 2>무조건적 선택
3>보편적 속죄 3>제한속죄
4>저항할 수 있는 은혜 4>불가항력적 은총
5>은혜의 상실 5>성도의 견인
실상, 인간이 자유롭게 구원을 선택한다면, 구원은 인간의 신앙적 행위에 의존하게 되는 모순에 빠진다. 감리회는 인간의 자유의지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보다 폭을 넓혀주었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온전성과 절대성에 대해 인위적인 요소가 가미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칼빈의 5대 교리(강령)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봅니다.
1.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이는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는 선한 의지가 충분히 타락한 인간에게도 남아있다고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의 ‘자유의지’와 대조되는 것이다.
개혁신학의 거장들인 루터, 칼빈, 낙스에 의하면 ‘전적 부패’란 인간이 인간으로서 하게 되는 모든 일은 악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모든 인간이 영적인 면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도울 수 없다는 것이다(엡2:1-3). 곧 인간이 본성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동이나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창6:5, 롬3:10-11).
전적 부패란 인간이 자기 스스로의 ‘자유의지’로서는 그리스도를 위한 결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요5:40).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님과 구세주로 영접할 자유가 없다. 전적 부패란 자연인 그대로는 완전한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이다(고전2:14, 요3:3).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9, 요8:47).
2.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이는 인간의 적극적인 행위에 근거를 두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다는 알미니안주의의 ‘조건적 선택’과 대조되는 것이다. 전적 부패의 교리는 곧 무조건적 선택의 교리를 부른다((롬8:28-29, 엡1:4). 여기서 알 수 있는 진리는 선택이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다는 것이다(롬7:11-13). 인간의 행위가 선택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딤후1:9). 곧 인간의 어떤 선행조건에 상관없이 은혜로 선택하셨다. 롬 9: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3.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이는 그리스도가 모든 개인을 위해 죽었으니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다는 알미니안주의의 ‘보편적 속죄’와 대조되는 것이다. 요한복음3:16에서 말하는 ‘세상’에 대하여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는 서로 다르게 주장한다. 칼빈주의에서는 여기서 ‘세상’은 선택된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엡5:25). 또 생각해보라. 예수께서 믿지 않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다면, 그 죽음에는 헛된 죽음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 되고 만다. 오직 구원받을 양을 위해서 죽으셨다(요10:15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25,27). 곧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세상은 구원함을 받는 사람들로서 다음 구절의 ‘우리’를 말한다.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4. 불가항력적 은총(Irresistible Grace)
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은총에 대하여 항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알미니안주의의 ‘저항할 수 있는 은혜’와 대조되는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의지로 된 것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아무도 대항할 수 없다. 돼지는 진창에서 뒹굴지만 양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새 품성을 주심으로 과거에 불가항력적으로 마귀를 찾았던 것과 같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불가항력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요6:37, 엡2:4-5).
5.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이는 자유의지에 기초하여 인간의 의지로 은혜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다고 하는 알미니안주의의 ‘은혜의 상실’과 대조되는 것이다.그러나 칼빈주의는 한번 선택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며 전능하신 뜻에 의하여 결코 그들의 구원을 잃을 수 없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받은 자가 인간에 의해서 구원 밖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빌1:6, 요6:39, 요10:28, 벧전1:4-5, 딤후1:12, 살전5:23-24, 롬8:38-39). 진실로 성도들은 영원토록 보존된다. 주께서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성도의 견인(보전)은 불가항력적 은혜에 의존하고 있다. 이미 제한 속죄 안에서 구원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구원이 무력해질 수 없다. 구원받은 자의 구원을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빼앗을 수 없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의 첫 글자를 모으면 ‘TULIP'(꽃)이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두 가지 상반된 입장에서 무엇이 더욱 감동하게 하며, 무엇이 더욱 확신하게 하며, 무엇이 더욱 이 세상을 이기게 하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타락에서 찾는 부스러기의 자유의지에 의존한 인생이 되겠는가, 아니면 독생하신 아들을 죽음에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인생을 맡기겠는가! 실상 알미니안주의는 성경을 잘못 조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몇 가지 질문과 답변들
1. 믿고 싶어도 복음(예수)에 대하여 듣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심판을 받나요?
이는 롬3:10의 말씀을 먼저 두고 접근해야 합니다.
롬 3:10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 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사실 이 세상이 죄로 인하여 모두 멸망하도록 방관하셔도 하나님께는 책임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도 인간은 하나님께 불공평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음의 말씀에서 ‘허물치 아니하셨다’는 말은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말입니다.
행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오직 구원에 대하여 언급할 때에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이루신 구원의 은총을 생각해야 합니다.
엡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엡 2: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생각건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저질로 놓은 일을 하나님은 구원받은 인간을 통해서 구원을 전하고 계십니다. 이것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2. 주일날 물건을 사는 것이 주일을 범하는 것인가요?
물론 안식일이 주일의 개념으로 발전(개혁)되었음을 먼저 생각에 두어야 합니다. 주일은 안식일의 개념보다 더 종말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적인 성수주일의 개념에서 발전해야 합니다.곧 주일의 개념은 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에 전파하고 섬기는 의미에서 보아야 합니다. 성수주일의 적극적인 의미는 내가 무엇을 하지 않느냐는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행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을 위하여 한다는 동기가 항상 내 마음에 머물 때에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입니다.
3. 결혼을 할 때 꼭 배우자가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나요?
성경은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고후6:14-18).삶의 중심이 곧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일치가 없이 두 사람이 결합하여 행복한 생활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결혼이 육체적 결합이상의 정신적, 영적인 결합임을 알아야 합니다.
조직신학 연구를 마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나의 신앙고백은 분명한가?나는 이 놀라운 구원에 대하여 전할 마음으로 가득한가?지금 나의 교사의 직분에 대하여 새롭게 변화되어야 점들을 정리해보라
교사학교 5 - 진화론이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1) 진화론을 입증할 수 있는 진화의 점진적 과정을 증명하는 중간화석(중간의 중간화석, 또 중간의 중간 화석...)이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1에서 3으로 진화했는데, 2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 뿐만 아니라, 돌연변이로 발생한 것이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그 다음 대에는 원래형태로 돌아간다는 것도 증명되었습니다. 오히려 생물은 처음부터 자신의 종을 유지하려는 내적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창조를 지지하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3) 생명을 가질 수 있는 4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 하나가 우연히 정해진 순서대로 형성될 수 있는 확률은 10의 64,480승 분의 1 입니다. 이것은 글을 알지 못하는 원숭이가 20개의 알파벳이 있는 타자기를 마음대로 두드려서 400개의 알파벳으로 된 어떤 문장을 만들 수 있는 확률과 동일합니다. 영문 주기도문이 약 250개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는 문장인데, 이보다 두배 정도 긴 것을 원숭이가 우연히 쓸 수 있어야 하는 확률입니다. 이것은 생명이 스스로 생겨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과학적인 자료입니다.
(4) 가장 강력한 물리학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법칙)일 것입니다. 열역학 제2법칙을 쉽게 말하면 모든 물질세계는 더욱 무질서해지는 방향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진화가 아니라 도리어 퇴화되어 가는 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그것을 만든 존재는 인간의 지능보다 훨씬 우수한 초월적 지능과 능력을 가진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연히 형성될 확률은 제로(0)이므로 창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맹종하는 사람들과 창조론을 믿고 있는 사람들의 서로 다른 인생을 보십시오!
진화론을 추종하는 사람들 :
그들은 스스로 인간의 아름다운 시작(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을 부인하고 앞뒤도 맞출 수 없는 어설픈 학설에 의지하여 불확실한 인생, 목적도 없는 인생을 향하여 앞으로 다가오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어떤 해답도 찾지 못하고 땅이나 뒤적거리다가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벧후3:5)
창조론을 믿는 사람들 :
그들은 세상의 존재 목적과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떠한 삶의 자리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목표의식과 가치관 그리고 내세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불안 등 모든 것을 초월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창조적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믿음으로 보는 세계가 그들의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11:3)놀라운 것은 성경은 창조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1:1)
교사학교 6 - 청소년 이해와 지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
1. 보석과 같은 청소년
- 하나님께로 지음 받은 고귀한 존재로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보석같은 존재.
2. 청소년은 누구인가?
- 청소년기를 뜻하는 영어의 'adolescence'라는 단어는 '성숙한다', '성장한다'는 의미로서 이것은 인간의 성장발달에 있어서 신체적, 정서적, 지적, 심리사회적, 신앙적으로 발전하는 상태를 뜻함.- 청소년기를 뜻하는 또 하나의 단어인 사춘기는 영어로 'puberty'로서 이것은 '발모'라는 뜻으로 제2차 성징의 출현으로 성적인 성숙이 시작되는 시기를 뜻함.
▶ 따라서 청소년은 전인적인 면에서 아동에서 성인으로 발달해 가는 과도기적 중간 단계의 존재. (과도기, 질풍노도의 시기, 지불유예기, 제2의 탄생기, 제2의 반항기, 자아발전기, 심리적 이유기, 주변인, 중간인, 시한폭탄, 럭비공)
3. 청소년의 이해
▶ 신체적 특징 이해- 2차 성징기가 되면서 호르몬 분비가 왕성. 각각 남자답게, 여자답게 변모해 감. (남자:12~16세, 여자:11~15세)- 생소한 변화와 몸 전체의 부조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함.- 왜곡되고 부정적인 자아상 형성의 발단 ⇒ 숨기고 감추고 포장할려고 함 ⇒ 양심의 이중성, 갈등야기
▶ 정서적 특징 이해- 긍적적 정서 ⇒ 행복, 기쁨, 사랑, 애정 등- 부정적 정서 ⇒ 수치심, 허세, 죄책감, 우울, 공포, 불안, 분노, 열등감, 자기혐오 등- 공상적 이상과 동경, 이중적 사고, 이성에 대한 낭만적 감상적 사고, 정서의 불안정성, 민감성, 기복성,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적 회의적 인식- 건설적인 정서 표출의 기대감이 중요
▶ 인지적 특징 이해- 형식적 조작기 ⇒ 성인과 동일한 지적 이해 수준(명제적, 결합적, 추상적 이해)- 다만 아동기적 성향 ⇒ 이해의 폭과 질이 성인보다는 다소 미숙함.
▶ 심리사회적 특징 이해- 정체감 vs 정체성위기(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독특한 개인으로 자신을 보는 종합적인 자아상 형성의 시기(사회적 - 전통과 새로운 이상의 중간)- 친구, 사회집단, 리더쉽 모델 ⇒ 충성, 헌신으로의 발전 가능성(사회적 요구들의 구체적 인식을 기초)
▶ 신앙적 특징 이해- 사회적 맥락에서 유익한 것은 이해하나 단순하고 맹목적인 순종은 거부(진리 동경, 비판적 태도)- 신화적·문자적 신앙에서 종합적·인습적 신앙으로 ⇒ 타인의존적 신앙. 자신의 신앙을 갖지 못한 단계∴ 신앙에 있어서는 영향력 있는 사람의 기대와 판단에 따라서 삶을 해석하고 관계시키며 의미를 찾음.- 종합적·인습적 신앙에서 개별적·반성적 신앙으로 ⇒ 자기 의존적 단계. 신앙의 정체성 형성, 타인의존적 신앙에서 탈피. 자신의 신앙에 대한 선택과 책임. 이분법적 사고의 투쟁. 나를 실현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을 잘 구별하지 못함.(현실타협, 외면, 순응 ⇒ 도달하는 것이 어려움-결합적 신앙의 발판=지혜)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6-7)
4. 질그릇과 같은 청소년
- 인간이 자신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존재감(죄로 인해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
5. 청소년의 자아정체성 형성
▶ 본질적인 문제는 바로 자아정체성 형성의 문제 ⇒ 나를 발견해 가는 시기(포괄적으로는 모든 인간의 문제)- 자신에 대해 관심이 많고, 집중하는 시기- 어려서부터의 모든 문제들이 다 일어남.
▶ 내가 보는 나 - 청소년기의 특징상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 수용해 가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 자기 자신을 알아감에 있어서 한계가 있음. ⇒ 미성숙성, 주관적 감정, 억압과 회피, 무관심과 무지∴∵ 자기 스스로 자신을 잘 알 수 없음
▶ 타인이 보는 나- 사람은 다른 사람의 관계성 속에서 자신을 더욱 잘 알아감. ⇒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보편적인 방법- 어린 시절로부터 받아온 주변사람들의 대우를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을 형성, 행동 ⇒ 가치조건화, 비교의식, 조건없는 사랑의 여부, 부모의 중요성, 중요한 타인- 바른 자아정체감 형성과 왜곡된 자아정체감 형성의 가능성을 모두 포함
▶ 자아정체감 형성의 중요성- 자아상(自我像)발견=자아개념형성=자기가치발견=자아정체감형성=가치관형성=삶에 대한 믿음=삶의 태도- 자기를 가치있게 여기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타인도 가치있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다.
▶ 자아정체감 형성의 어려움 -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나의 생각 ⇒ 무엇을 기준으로 나 자신을 인식해 가는가 하는 문제의 답은 결국 스스로 결론 내려야 함. 자아정체성 창조(?) ⇒ 주관적 결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어려움
▶ 결국 나와 타인의 눈으로는 자신에 대한 명확한 자아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음.
▶ 정체감혼미(방황), 조기완료(회피), 지불유예(지연)의 양상
6. 하나님과 자아정체감 형성
▶ 인간의 제자리 찾기 ⇒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야 가능함. - 피조물임을 알고, 어떤 존재로 지음 받았는지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ex)
모세 : 바로 왕궁에서 배운 지식과 지혜 vs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남.
바울 : 가말리엘의 문하 vs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만남.⇒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8-9상)
▶ 하나님을 만난 후에야 자신을 바로 알 수 있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재해석해 감.
▶ 하나님과의 만남은 믿음으로 말미암음⇒ 성령님의 도움⇒ 인간의 죄성(무지포함) 해결⇒ 나 in 하나님 발견
▶ 학교교육과 교회교육의 근본적인 차이 ⇒ 하나님 안에서 학생 자신이 발견되어 지도록 이끌고 도움.
7. 청소년의 부적응 행동 이해와 도움
▶ 청소년의 부적응 행동은 자신에 대한 심리적 필요들을 충족하기 위해 채택한 수단과 방법.
▶ 청소년의 일탈, 반항 등의 부적응 행동은 결국 자신을 찾으려고 하는 몸부림 ⇒ 자기 자신의 존재가치나 중요성 확인, 인식하거나 타인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시행착오와 새로운 가치관의 실험
▶ 청소년들의 반항, 어른세계로부터의 이탈, 기성세대와의 가치관 차이, 대화의 빈곤은 어쩌면 불가피한 것.
▶ 어른(부모, 교사 등)들은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까지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덜어주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시행착오를 거쳐 올바른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함.(세상은 청소년을 이용)
▶ 부적응 행동의 네 가지 목적
* 구 분 적극적/파괴적 소극적/파괴적
- 1단계 주목끌기 : 떠들고 장난, 자랑이 심함 수줍어하고 의존함
- 2단계 힘겨루기 : 반발, 반항이 심함 고집불통, 비협조함
- 3단계 보복과 앙갚음 : 폭행, 도벽, 주먹대장 역할 부정적, 수동적 행동으로 어른을 괴롭힘
- 4단계 자포자기 : * 무기력, 자포자기
- 적극적 or 소극적/건설적 학생의 경우 부모나 교사, 친구의 인정을 받으면서 온순하고 착하여 귀여움을 받음.
▶ 어른들은 이런 청소년을 이해하고, 관계를 유지하면서 청소년들의 고통을 완화시켜주고 올바른 자아정체감을 형성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함.
8. 청소년 문화 이해
▶ 그들 자신을 표현하는 양식의 문화
▶ 청소년 문화의 역동성과 다양성 -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다양함
▶ 느낌의 문화 ⇒ 쾌락주의(폭력&음란), 소비지향성 ⇒ 소비와 대항문화(가시적인 연예인모델), 입시위주의 학교문화(통제력상실위기), 깨지고 병근 가정(불안정성)
9. 거듭나야 할 청소년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3:3)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11)
10. 열린 질문과 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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