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구원의 이정표(1)

168-죄 사함과 죄 없이함

JORC구원열차 2009. 2. 13. 00:36

168-죄 사함과 죄 없이함

 

죄 사함과 죄 없이함은 다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 사함을 “구속”이라 하고, 죄 없이함을 “구원”이라고 분별하고 있습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은 온 세상이 다 받은 휘장 밖의 떡이요, 구원 곧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는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죽는 자들이 받는 휘장 안의 만나입니다.

 

구속은 예수만 죽은 것을 믿은 복음이고, 구원은 예수와 함께 나도 죽은 것을 믿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로 오신 예수는 구속 곧 죄 사함을 이루셨고, 이제 다시 영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는 구원 곧 죄 없이함을 이루시려고 내게 사시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령이 바울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시기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에 “믿음으로 믿음에”라 함은 죄 사함의 믿음으로 죄 없이함의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곧 일만달란트의 사랑으로 일백 데나리온의 사랑에 이른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받은 사랑만 있고 주는 사랑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결국 버린 자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되기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주께서 친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말씀하심 같이 천국은 죄 사함 받은 자들 가운데서 죄 없이함을 받을 자를 가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아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주셔 모든 사람을 사망에서 부활하게 하시나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있는 자는 그리스도가 있는 자요, 사랑이 없는 자는 그리스도가 없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아버지 또한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원 얻은 것은 곧 그리스도를 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은 사람 안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시면 그리스도가 나타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아니면 구원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심같이 그 아들의 형상이 아니면 그리스도와 형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형제가 아니면 죄 사함은 받았어도 죄 없이함은 받을 수 없습니다.

죄 없이함은 죄의 몸이 멸해야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은 예수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든 죄이고 죄 없이함은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죽음만 있고 자기 죽음이 없는 사람은 복음은 받았어도 복음을 복종치 않는 사람입니다.

이를 성경은 “불순종의 아들들” 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구속만 있고 구원이 없는 사람들에게 둘째 사망의 형벌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라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있습니다.

이는 함께 고난을 받으면 함께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을 맛보셨기 때문입니다.

기록되기를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함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과 죄 없이함은 다릅니다.

이는 일만 달란트와 일백 데나리온이 다른 것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 낳은 아들은 또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아니면 사랑의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만 달란트는 그 아버지의 사랑이요 일백 데나리온은 그 아들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과 죄 없이함은 다릅니다.

죄 사하신 주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구원에 이르게 하기위하여 오시는 것입니다.

 

기록되기를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라 하셨고, 또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죄를 없이하는 일은 죄를 범하는 죄의 몸을 멸해야 다시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은 것만 좋아하고 자기 죽음은 싫어하는 자들이 영원한 형벌 곧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는 기록되기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하심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속은 예수만 죽은 복음이고 구원은 예수와 함께 나도 죽어 죄의 몸이 멸하여 죄 없이하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