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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중보기도 - (강의 : 한치호 목사)

JORC구원열차 2009. 2. 15. 19:16

교사의 중보기도                                                      강의 : 한치호 목사 / 21세기사역자연구소 대표  

 

1 - 들어가는 말

 

1. 주일학교의 사역은 하나님의 일이지, 사람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주일학교가 운영되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2.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는데, 우리는 회의에 시간을 빼앗겨 기도를 놓치고 있다.   

3.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실 때, 언제나 기적이 일어났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방해하려고 우리에게 기도보다는 ‘방법’을 찾기에 분주하도록 한다.  

4. 주일학교의 사역을 하나님께 드리자.

 

2 - 개인적인 중보

 

(1) 정보를 얻으라!

 

기도제목을 잡을 수 있도록 정보를 얻어야 한다. 

바르트가 ‘설교자는 한손에 성경을, 다른 한손엔 신문을’ 들어야 한다고 했듯이 중보기도자도 그래야 한다.

교회를 위해서는 주보나 광고를 참고하면 된다.

거기에서 어린이들 가족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사한 사람, 입원한 사람, 소천한 사람의 가족들, 출산한 사람 등의 사연이 나타난다.

하지만 주보와 광고로도 정말 기도해야 할 시급한 어린이의 문제가 알려지지 못할 때가 있다.

그것들은 주로 그들 개인적인 영적인 필요와 문제들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늘 깨어서 이것에 유념하는 것이 좋다.

개인의 중보제목을 알기 위해서는 어린이들과의 교제가 있어야 하나 제 삼자를 통해서도 정보는 얻을 수 있다.

개인의 기도거리에 관해서는 피중보자가 중보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다.

정보를 얻었으면 이것을 노트에 기록한다.

되도록 시급하고 위급하다고 판단되는 것을 우선 순위로 적을 수도 있고 아예, 위급한 기도와 장기적인 기도란을 따로 만들어 놓고 기록하는 것도 지혜롭다.

 

(2) 암기하라!

 

기록한 것을 여러번 읽으면서 외워야 한다.

암기해야 할 이유가 있다.

기도를 눈 뜨고 하나 하나 해 나갈 수 있으나 보통은 눈을 감고 연이어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쓴 것을 펴 놓고 기도할 수 없는 환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며 중보할 때 노트를 펼 수는 없다.

중보기도 제목을 암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외우지 못했다고해서 기도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피중보자의 정보를 생각하며 기억이 되는대로 기도할 수 있다.   

 

(3) 골방을 찾으라!

 

기도할 수 있는 정해진 장소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산과 들판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정기적으로 갈 수는 없다.

예배당이 무난하지만 가정의 마루나 다락방도 될 수 있다.

도고의 불을 밝힐 수 있는 골방이 있어야 한다.   

 

(4) 시간을 정하라!

 

가급적 하루 중 가장 조용한 시간을 선택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에게도 방해되지 않는 시간이라야 한다.

처음부터 많은 시간을 잡지 않는 게 좋다.

하다가 너무 힘겨워지면 시간이 자기에게 올무가 되어 기도의 기쁨을 잃을 수도, 또한 형식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해놓은 그 시간이 즐거워야 되고 기다려져야 한다.

처음에는 20분 내지 30분에서 시작했다가 점점 늘려가면 좋을 것이다.

한 번 정하면 그 시간을 누구에게도 주지말고 무엇과도 바꾸지 말라.

그 시간은 하나님의 뜻이 밝혀지는 시간이자 나를 통해 타인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가 성취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5) 찬송으로 접근하라!

 

찬송은 기도의 한 유형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찬송가 안에는 상당수의 가사가 인간의 소원을 주께 아뢰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기도의 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다.

제목 분류에서 ‘성도의 생애’ 부분은 그 가사의 상당량이 사람들의 간구로 되어있다.

웨슬레가 작사한 372장 “나 맡은 본분은”의 가사는 찬송자의 소원으로 구성되었다.

“나 맡은 본분은 구주를 높이고 뭇 영혼 구원 얻도록 잘 인도함이라.

부르심 받들어 내 형제 섬기며 구주의 뜻을 따라서 내 정성 다하리.

주 앞에 모든 일 잘 행케 하시고 이후에 주를 뵈올 때 상받게 하소서.

나 항상 깨어서 늘 기도 드리며 내 믿음 변치 않도록 날 도와 주소서 아멘.”

 

개인 중보기도시의 찬송은 마음의 소원을 곡조에 담아 드릴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복음성가도 유익하다.

여기서의 찬송은 기도 그 자체로 이해되기도 하며 또한 기도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6) 마음을 토하라!

 

찬송과 기도는 입술로 하는 것이기보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마음이 열려지고 그래서 그 가운데 있는 것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마치 한나가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으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하나님 앞에 토해 놓듯이.

그러므로 기도할 때 마음에 감동이 오기 전에 입술을 여는 것은 가식이 될 수 있다.

중보기도는 타인의 형편, 처지 그리고 심정을 내가 아뢰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나와 일체가 되지 않으면 형식에 빠지기 쉽다.

심정의 토로가 되어야 한다.

암기한 것들을 머리에서 하나하나 꺼내면서 구체적으로 기도하라.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가 열정적이고 마음을 쏟아부은 기도였음을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다’는 말씀이 증거하지 않는가.  

 

(7) 말씀으로 확신하라!

 

의심없이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하나님이 응답하셨음을 확신하는 단계다.

말씀을 새김질하면서 그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읽거나 암송하면서 확신하는 것이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마 21:22).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를 하나님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실언하는 분이 아니시며 약속을 더디 갚는 분도 아니시다.

확신 이후는 기도한 것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사는 것이다.

 

3 - 모임으로의 중보

 

중보기도회로 모여 기도할 때에도 개인중보와 비슷한 순서를 가지나 그 내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미리 기도제목을 노트하거나 외워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주의점이다.

 

(1)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간구를 한다.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이면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간단히 드린다.

이때의 기도는 길지 않으며 기도모임의 시종을 성령께 의지하는 것이 된다.

 

(2) 찬송을 부른다.

 

전체 기도제목과 연계되는 찬송가나 복음성가를 미리  5-6곡 정도 찾아 놓는다.

반복해서 부를 수도 있고, 찬송가나 복음성가의 생성배경을 간단히 설명하거나 가사를 읽어주며 강조할 수도 있다.

이때는 기도회 앞부분에 전체 찬송가를 모두 부른 후 제목에 따라 기도 할 수도 있지만 제목에 따른 기도 앞부분에 한 두곡씩 부를 수도 있다.

후자의 방법이 가사와 기도 내용이 연관되므로 더 효과적이다.

후자를 따를 때 전체 기도 내용을 몇 등분으로 나누어서 거기에 맞는 가사가 담긴 찬송을 선택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 기도 인도자는 시간을 드려야 하며 전문가나 청년들의 조언을 듣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충고는 지도자가 알지 못하던 현대 감각의 곡들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곡들은 박수를 칠 수도 있고 자연스런 율동을 겸할 수도 있겠다.

 

(3) 기도제목을 제시한다.

 

제시 전, 응답을 함께 나누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언제, 어떤 내용으로 기도한 것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 주셔서 그 사람(또는 그 사건)이 지금 이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함으로 함께 감사를 드릴 수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중보기도의 위력, 기도의 필요성, 연합기도의 의의를 일깨움과 동시에 기도자들에게 상당한 도전을 준다. 그러므로 작은 응답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총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서로 나눔이 필요하다.

기도제목을 제시할 때는 그 기도 제목이 나오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타인들로 하여금 한마음으로 그 기도에 동참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집사님 둘째아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보다는 ‘지난주 월요일에 김 집사님의 둘째 아들 김 ..가 등교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다른데는 특별한 이상이 없고 오른쪽 발목뼈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지금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라는게 더 낫다.

 

-‘그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면 기도 내용이 구체적이 되지 못한다. 좀 더 구체적이 되려면 그 아이의 건강과, 후유증이 없도록, 마음의 평안을 위해, 입원 중에 학업 성적이 떨어지지 않도록,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간호하는 부모들이 피곤치 않도록, 가해자와의 합의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도록, 경제적인 필요도 채워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기도자들의 효과적인 동참을 위해서 실제적인 사진을 보이며 기도를 요청하는 것도 좋다.

관련 사진을 제시하며 기도를 요청하는 것은 단순히 말로 기도제목을 제시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사람은 본 것을 그리며 더욱 마음과 입으로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통성으로 기도한다.

 

마음으로 또는 작은 소리로 기도하는 것은 공중 예배시나 개인 기도회 때 적당한 기도 자세이며 대중 기도회 때는 이것과 아울러 통성기도가 적당하다고 여겨진다.

성경에는 조용한 기도를 말하나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더 많이 말한다.

위경에 처한 사람들은 대부분 잠잠하지 않고 소리 높여 기도했다.

그들이 처한 다급한 상황이 그들로 하여금 조용히 있지 못하게 했다.

시위대 뜰에 갇혀있던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고 하셨다.

부르짖는 기도가 지금 우리에게 요청된다.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소리만 크게 한다고 그것이 곧 간절한 기도이거나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주실 줄 알면 안 된다.

소리를 높여도 위선된 기도일 수 있고 하나님께서 응답치 않으실 수 있다.

통성의 기도만 능사가 아니라 그것이 진실된 기도이자 정직하고 간절한 기도여야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5) 마무리 기도를 한다.

 

이것 역시 두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다.

한 방법은 기도를 다 마친 후 전체를 종합, 요약해서 기도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방법은 몇 가지 주제로 나누어서 기도할 때 한 주제의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그 기도에 관해 지명된 자가 마무리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어느 방법을 취하든 간에 마무리 기도자는 몇 문장으로 기도를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원 기도보다 더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핵심없이 횡설수설하는 것은 이미 드린 기도를 흐려 놓는 것이 된다.

여기에서 마무리 기도자를 통해 타인의 동참을 더 얻으려면 마무리 기도자를 미리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첫번째 방법의 마무리 기도자는 기도 인도자가 되면 좋다.

주로 교역자가 된다.

중보기도에 동참한 사람들도 역시 교역자의 기도를 신뢰하거나 또한 준비한 자의 기도가 간절할 수 있음을 알고, 기도 인도자의 마무리 기도를 바란다.

그리고 전체 기도를 끝내면서 마무리 기도를 교역자가 할 때에는 기도회 참여자들을 위해 일일이 기도하는 것도 잊지말라.

이들이 여기에서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다.

 

(6) 영광의 찬송을 드린다.

 

주의 이름에 영광이 있기를 바라는 숭경의 찬양을 한다.

더 이상 무엇을 구하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감사의 시간도 아니다.

오로지 주님의 높음과 위엄과 영광과 권위를 찬양하는 것이다.

영광의 찬송은 시작할 때 지시없이 인도자가 자연스럽게 선창할 수 있다.

그러려면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곡이어야 한다.

만일 지도자가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곡과 가사를 선창했을 때 다수의 참여가 불가능함으로 인도자의 독창으로 쓸쓸히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없기 위해서는 부를 찬송에 대한 회중의 선이해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하고 이해가 없는데도 불러야 한다면 반주자와 회중들에게 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쓰지 않으면 은혜로운 기도회 분위기가 될 수 없다.

 

(7) 말씀으로 확신한다.

 

합심기도의 위력에 관해 일찌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18:19).

마음을 합해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주님의 말씀이다.

초대교회에 큰 핍박이 있었을 때 사도들을 비롯한 신자들은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행4:24-30)라고 기도했다.

그들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억압과 위협을 받았을 때 그 문제를 해결키 위한 연합작전으로 합심기도를 선택한 것이다.

결국 성령의 충만을 덧입고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위협과 핍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었던 담대한 믿음이 생겼다.

당시 그들의 기도를 들으사 선하게 응답하셨던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우리의 하나님이므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