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자기에게서 깨어나지 못하면
죄에서 해방된 믿음은 있으나 자기에게서 깨어나는 믿음이 없으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바라시는 소원은 많은 자녀들을 이끌어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며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노래는 광야의 노래가 아니고 시온의 노래입니다.
광야의 노래는 사백 삼십년의 종에서 해방된 속죄의 노래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광야의 노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시온의 노래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광야의 노래를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시온의 노래를 위하여 기록된 것입니다.
광야의 노래는 죄에서 해방된 노래이고 시온의 노래는 의에 거하는 노래입니다.
만일 죄에게서만 해방되고 의에 거하지 못하면 일만 달란트만 탕감 받고 그 사랑 안에는 거하지 못하여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가 될 것입니다.
자기는 영원한 속죄를 받고 감사하다 기쁘다 하면서 그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없으면 이는 광야의 노래는 알아도 시온의 노래는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를 자들만 들어갑니다.
구속 곧 죄 사함만 알고 자기에게서 깨어나지 못하는 자에 대하여 성경은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셨고, 또다시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죄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까지 해결하는 것이기에 십자가의 도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죄만 아니고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에 못 박은 것입니다.
“정과 욕”곧 죄만 못 박혔다 하고 “육체”는 십자가에서 피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단의 궤계입니다.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죄만 십자가와 연합한 믿음은 “광야의노래”만 있고 “시온의노래”는 없습니다.
주인이 불쌍히 여겨 일만 달란트를 탕감한 것은 감사하며 기뻐하는 꼴을 보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자기와 같이 사랑이 있고 화평이 있고 긍휼이 있는 새생명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종의 감사와 기쁨에 대하여는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다만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죄에서만 해방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죄의 몸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기록되기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셨고, 또 다시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애굽에서 해방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고 바벨론의 포로에서 놓여 다시는 가나안 사람이 있지 않는 영광스런 그의 몸 된 성전을 이루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이를 성경은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고 스룹바벨의 성전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왕에게서 해방되어 세운 솔로몬의 성전이 아니라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하여 다시 중건되는 생수가 흐르는 성전으로 결론은 맺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기록되기를『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 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니라』(사 44:28) 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성전은 죄에서 해방되어 지은 처음 성전이 아니고 몸의 구속에서 놓여 다시 중건되는 나중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하여 예언되기를『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9)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는 놓였어도 자기에게서 놓이지 못하면 참 장막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는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있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기록되기를『....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고전 2:9) 함과 같은 것입니다.
나와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사랑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증거 하기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한 남편” 곧 “한 사랑”이라 했습니다.
이 진리에 대하여 기록되기를『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7) 라 하셨습니다.
참으로 모든 것보다 그를 더 사랑함은 자기를 버리지 않고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라고 말입니다.
이에 대하여 “내가 주를 사랑하므로 내 목숨까지 미워하는 줄 주께서 아시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 할 수 있는 자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는 시온의 노래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몸의 포로에서 놓임을 받지 못하였으면 (70년이 마치지 않았으면) 시온의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시 137:1-6) 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온의 포로는 반드시 그가 돌리실 것입니다.
예언되기를『[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 126:1) 라 하셨습니다.
이를 반드시 이루시고 필하시고 끝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히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므로『....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렘 23:7-8) 약속하셨습니다.
이를 반드시 이루실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찬양을 드립니다.
『....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2) 하신 이 예언의 말씀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이루어집니다.
죄만 아니라 “죄의 몸이 멸하여....” 아멘,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진리의 영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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