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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오늘의 말씀

090923-뿌리를 깊이 내리는 삶 (막 4:4-9; 고후 4:1-8)

by JORC구원열차 2009. 9. 23.

090923(수)

뿌리를 깊이 내리는 삶 (막 4:4-6, 고후 4:1-8)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 4:7)

 

 

여름내 무럭무럭 자라서 푸름의 극치를 보여 주던 나무들도 이제 곧 찬바람이 불며 기온이 내려가면 낙엽이 되어 한잎 두잎 나무에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자연계 중에 식물을 보면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구분할 수가 있습니다.

 

잎사귀나 줄기는 보이는 부분은 드러난 생명체요, 뿌리는 보이지 않는 숨은 생명체인 것입니다. 그런데 튼튼하고 좋은 식물이 되려고 하면 보이는 줄기나 잎사귀도 풍성해야 하겠지만 그 보다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더 풍성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막 4:4 이하에 기록된 말씀대로 흙이 깊지 않는 돌밭에 떨어진 씨는 뿌리가 깊이 박히지 못하므로 뜨거운 햇빛이 비치게 될 때 곧 시들고 마는 것과 같이 우리 성도들의 생화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부분만 전부이고 숨겨진 부분이 없는 성도는 조그마한 시련과 힘이 닥쳐 올 때는 곧 시들어 말라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구약 이사야 39장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이 들었다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15년이나 더 생명의 연장을 받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그 소식이 바벨론 왕국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는데 바벨론 왕은 사신들을 시켜 많은 예물을 가지고 문안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히스가야 왕은 너무 신이 나고 의기양양해서 보여서는 아니될 숨겨 둔 보물과 향료와 무기고까지 다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매우 노하셔서 히스기야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모든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옮겨 갈 것이라'고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저는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고 체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자중해서 하나님과의 은밀한 관계를 가져야 할텐데 사단에까지 다 드러내놓은 '노출 죄'를 지은 까닭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신앙생활의 미덕이 좀 있어 져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뿌리까지 다 파서 내어 보이면 그 식물은 시들어 죽고 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신자들을 보면 드러나 보이는 생명은 풍성한데 남모르는 은밀한 생명은 극히 적고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남의 깊은 면도 접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를 깊이 내리는 삶이란 과연 어떤 것입니까?

 

1. 하나님 앞에 영(靈)으로 사는 삶입니다.

 

사람은 구조적으로 육(Flesh)과 혼(Soul)과 영(Spirit)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코필드(C. I. Socfield)는 그 각각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즉 육은 세상을 의식하고, 혼은 자아를 의식하고, 영은 신을 의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중 육과 혼으로 세상이나, 자아를 의식하면서 사는 삶은 평범한 비신자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육으로 사는 삶이란 극히 세상적 쾌락과 향락과 자기의 관능대로 사는 삶을 말하는 것으로, 혼으로 사는 삶은 정신적, 이성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으로 사는 삶은 하나님을 모시고 믿고 의지하며 사는 거듭난 삶인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육과 혼으로 사는 삶은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사실상 사람에게 있어서 물체의 소리를 듣는 귀를 짐승과 비교해 본다고 하면 개는 25싸이클을 듣고, 박쥐는 80싸이클을 듣고, 돌고래는 120싸이클을 듣는데 비해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사람은 겨우 18, 19싸이클 밖에 못 듣는 미약한 귀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개의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사는 삶을 가장 지혜롭고 가장 믿을만한 삶으로 착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갈 6:8에 보면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은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으로 사는 사람이나, 또 혼으로 사는 사람 역시 이 세상에는 혹 나올지는 몰라도 똑같이 멸망으로 들어가고야 만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영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이요, 이런 삶은 곧 보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5관으로 사는 것도 아니요, 지식으로 사는 것도 아니요, 양심으로 사는 것도 아닌 하나님 말씀과 믿음으로 깊이 뿌리를 내린 삶인 것입니다. 이 영적인 삶은 육신의 감각보다 깊고 지식이나 양심보다도 깊은 생명에 근원을 둔 생활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 선행이 있는 삶입니다.

 

본문에 기록된 말씀과도 같이 보이는 잎사귀만 있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없으면 그 식물들은 시들고 마는 것처럼 나의 선행과 의를 행하는 것이 남에게 알려진 것뿐이고 나와 하나님만이 아는 은밀한 미덕이 없는 삶은 뿌리가 깊지 못한 얕은 삶인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 6:1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해도 골방에서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만 하고, 금식을 해도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남을 구제해도 나팔을 불지 말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숨어서 은밀하게 하다가 알려지는 것은 할 수 없지만, 미리 남에게 알리려 하고 사람에게 칭찬만 받기 위한 선행뿐이라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신약 성경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일찍이 삼층천에까지 올라가 본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이었으나 14년간이나 숨겨 두고 자랑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바울된 것은 이러한 깊은 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봉사를 할 때에, 목사나 다른 교인이 자기의 선행과 봉사의 가치를 몰라준다고 불안해 허거나 조급해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누가 나를 몰라준다 하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장차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구약의 요셉은 어떠했습니까? 어려서부터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앞에서 바로 산 까닭에 비록 그는 형들의 시기를 사서 노예로 팔려 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아무런 원망도 없었습니다. 또 보디말의 아내의 유혹도 물리쳤고 그 일로 인해 억울한 감옥살이까지 하게 되는 시련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극복하고 끝까지 참게 될 때에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축복을 내리셨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은밀한 선행의 미덕이 있는 사람, 그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진실된 삶을 사는 자인 것입니다.신약 성경에 보면 하루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전도하여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려 할 때에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사람이 나겠느냐고 하며 무시하고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예수님 앞에 나타나게 될 때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 때 나다니엘은 의아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나를 알고 계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다니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내가 보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의 눈으로 은밀한 중에 나무숲에 숨어서 기도하는 그를 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같은 인간끼리는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숨어서 하는 모든 일까지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날마다 의식하면서 살아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하나님 앞에 겸손히 사는 삶입니다.

 

논에서 자라는 벼를 보면 그 벼가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들도 인격이나 신앙이 완숙해지면 해질수록 겸손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에 보면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마귀의 화살은 교만하게 높이 올라간 사람은 잘 쏴서 넘어지게 하지만 겸손히 낮아지는 사람은 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자는 어떤 잘못이나 죄를 범한 자보다 교만하여 거만을 부리는 자를 싫어하시고 그런 자는 꺾어 버리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고 언제나 겸손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나의 부족과 나의 결핍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무가치하고 무능한 존재임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의 편이 되어 주시고, 또 그런 자를 높이 들어 쓰시는 것을 믿으시고 이러한 영적인 삶과 은밀한 선행의 미덕을 가진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낮아진 차원에서 겸손히 사는 삶을 살 때에 그런 자가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요, 영원한 차원의 삶인 동시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삶인 것은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