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24(토)
모범적인 감사 행위 (요 12:1-8)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독일에 큰 기근이 들어서 많은 사람이 굶주릴 때 한 부자 노인이 매일 빵을 구워서 동네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먹였습니다. 그런데 서로 큰 것만 집으려고 아우성을 칠 뿐 빵을 받아가지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아이는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그레첸이라는 어린 소녀는 항상 제일 마지막에 남은 작은 빵을 집어 들고는 할아버지한테 '감사합니다'하고 기쁨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하도 기특해서 하루는 제일 작은 빵 속에 50센트짜리 은화 여섯 개를 넣어서 빵을 구워냈더니 그날도 역사 그레첸이라는 착한 소녀가 집어 들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갔습니다. 집에 가서 빵을 먹다보니 은화 여섯 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를 찾아와 그 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자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려고 일부러 빵 속에 은화를 넣어 구운 것이니 걱정 말고 가지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더욱 큰 사라와 축복을 받게 하는 행위이며 또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흡족하게 하는 일이며 자신에게는 좋은 인상을 갖게 하며 남에게 호감을 주는 일이며 긍정적인 삶을 사는 비결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중단 없이 받게 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할 줄 모르고 지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열 명의 문둥이를 다 고쳐주셨는데 찾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던 것과 꼭 같습니다. 제대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열 명에 한 명 꼴도 안되는 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 4:2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기도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감사하지 않는 죄를 짓지 않도록 늘 감사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도 마지못해서 겉치레로 인사하는 사람이 있고 진정한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온 마리아는 참된 감사의 행위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범적인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죽었던 자기 오빠를 예수님이 살려주어서 고마워서 그랬던지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유월절 엿새 전에 잔치를 잘 치러서 대접하는 중에 마리아는 비싼 나드(nard) 향유 옥합을 갖다가 아낌없이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엎드려 가지 머리털로 씻어 드렸습니다.
이 나드 향유는 일년 이상 벌어야 살 수 있는 비싼 것이었는데 그것은 모두 예수님의 발에 부어 드리는 것을 보고 가룟 유다는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좋을텐데 왜 허비하느냐?'고 마리아를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가룟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보면 유다는 예수님과 제자 일행의 돈주머니를 맡아가지고 다니면서 돈을 훔쳐 내는 도적이라 돈이 탐나서 그랬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책망하고 마리아의 편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고 하시고 '이 여자의 행한 일이 온 세상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하여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행위에서 우리는 네 가지의 모범적인 감사 행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이해타산을 초월한 감사입니다.
그 나드 향유는 인도에서 수입한 것으로 대단히 값이 비싼 것이었습니다. 유다의 말대로 보면 최소한 일년 이상 벌어야 살까말까 한 것입니다. 이 여자의 시집 갈 밑천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너무너무 감사해서 계산 같은 것은 하지도 않고 아낌없이 예수님께 두어드렸습니다. 사람한테 인사할 때도 너누 타산을 앞세우면 그 사람을 기쁘게 못해줍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도 남의 눈에 보기에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낭비한다 할 정도로 해야 훌륭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책망했지만 예수님은 칭찬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게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했습니다.
잠 22:1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하고 삼상 2:30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했습니다.
한편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구제사업 하지 왜 허비하느냐고 했던 유다는 그렇게 계산과 타산만 앞세우더니 자기 스승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나중에는 목매달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물질을 드릴 때 너무 타산적이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큰 축복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하이드(A. A. Hyde)란 사람이 한 때 빚을 많이 진적이 있었습니다. 빚을 졌는데도 십일조를 계속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당신 빚은 안 갚고 십일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었더니 '하나님의 빚을 먼저 갚아야 내 빚도 갚습니다'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는 마침내 세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해타산을 초월하여 감사를 드려야 인간적인 생활과 계산적으로 드리는 감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2. 사랑의 감사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은혜에 감격해서 아와 같은 감사행위를 나타낸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축복을 꼭 받기 위한 조건으로만 감사하고 물질을 바치기보다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바쳐야 할 것입니다.
노부모님이 재산이 좀 있거나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자식들이 더 알랑거리면서 효를 하려고 한다지 않습니까? 그러나 참된 효도는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은혜에 감사해서 하는 효도라야 참된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마리아는 자기와 같은 죄인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감사해서 비싼 옥합을 아낌없이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3.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원래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람에게도 감사할 줄 모르는 법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감사도 할 줄 압니다.
마리아는 비싼 옥합을 깨뜨려서 붓는 정도이면 아마도 어깨를 으쓱거릴 만도 하고 자랑할 만도 한데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엎드려 자기가 귀중히 여기는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렸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겸손한 행위입니까? 그런고로 더욱 예수님의 마음에 들고 기뻐하신 것입니다.
어느 농촌 교회에 그곳에 유지되는 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분이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있다가 쌀 두가마니를 감사 예물로 바쳤습니다. 학습 세례도 안 받은 분이 쌀 두가마니를 바치니까 온 교인들이 그분을 떠받들고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분이 웬일인지 교회에 나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 그리고 장로님께서 심방을 가도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래도 내가 쌀 두가마니를 냈는데 성찬예식 때 빵 조각하고 포도주 한 잔이 얼마나 된다고 나를 빼놓는 겁니까? 세상에 그럴 수가 있습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은 성찬예식에 세례 교인만 참석하는 것을 모르고 자기가 많이 바쳤으니 당연히 참석할 권리가 있는 줄로 여겼던 것입니다.
왜 그 유지가 그렇게 했느냐고 볼 때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쌀 두가마니나 바치니까 온 교인이 떠받들어 주어서 교만한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무엇을 드릴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드리고 나서도 계속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복이 오는 법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한다고 칭찬받을 때 교만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하고, 다른 사람이 칭찬들을 때 질투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눅 17:10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해도 교만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도리어 손해입니다. 잠 11:2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해지면 욕을 먹게 되지만 겸손하고 낮아지면 모든 사람에게 존귀와 칭찬을 듣고 하나님께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4. 최선을 다하는 감사입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있는 힘과 정성을 다 기울여서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향유는 너무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조금만 발라도 온 집안에 향내가 진동할 것인데 마리아는 그 옥합을 몽땅 깨뜨려 부었습니다. 대단한 정성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많든 적든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지극한 정성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가 비록 두 푼을 바쳤지만 그 날의 생활비 전부를 바치는 것을 보고 그 모든 사람보다 제일 많이 바쳤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에 따라 그 신앙도 측정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어떤 이는 억지로 드리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기쁨으로 드리되 힘껏 안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힘껏 하면서도 기쁨으로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마귀가 비웃고 조롱하지 않아도 해야 되겠습니다. 마귀는 절대로 하나님께서 감사치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 아닙니까? 바로 이럴 때 본문의 마리아처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되 계산적이지 않는 겸손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드리는 감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할 때 이 가을이 더욱 풍요로운 가을이 되어지지 않겠습니까?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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