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220(일)
임마누엘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 (마 1:2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 1:23)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라고 했고,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인 '임마누엘'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멸망 받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오셨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죄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 피흘려 주심으로 구속함을 얻게 되고, 하나님과 다시 화평함을 얻어 이 세상에서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지옥은 한마디로 영원히 하나님과 만날 수 없는 곳이며,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Separate)된 곳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서는 하나님께 건너갈 수도 없고, 천국에서도 지옥으로 찾아갈 수도 없게 큰 구렁이가 가로 놓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할 때 죄사함을 얻고 그 심령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 생활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그가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다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믿지 않음으로써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임마누엘의 예수님이 영원히 계시지 않는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은 이러한 임마누엘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특히 어떤 때에 함께 하시는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환난과 시험을 당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어머니가 마루에 앉아 계시면서 어린아이가 마당에서 안전하게 잘 놀 때에는 멀리서 지켜만 보고 계시다가도 그 아이가 우물가에나 위험한 구덩이 가까운데 가면 와락 뛰어 내려와 붙들어 안아 주고, 또 아이가 아파서 누워 있을 때는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 앉아 계시는 것과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을 당하거나 환난을 당할 때 임마누엘의 주님께서는 더욱 우리 가까이서 함께 해 주십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우리 느낌에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 같고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이 느껴지지만은 실제로는 그와 반대로 우리 곁에 더욱 가까이 와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살아갈 때 아무리 잘 믿는 신자라도 장미꽃 같이 아름답고 기쁜 날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고통을 당하고, 때로는 슬픔도 당하고, 환난에 직면할 때가 있습니다. 오히려 악한 세상 속에서 성도들은 더울 많은 환난과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에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했습니다.
2. 기도할 때에 함께 하십니다.
신 4:7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무릎 끓고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앤드류 본르 박사는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인데, 그가 어느날 미국에 왔을 때 무디 선생이 그의 성결한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겸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보좌를 출입하며 살아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니까 성결해질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모세가 40일 동안 하나님과 대면하고 내려오니까 그 얼굴에 광채가 나서 백성들이 쳐다보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 영광의 하나님을 가까이 하니까 거룩한 빛이 나타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만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게 됩니다.
3. 책임을 다할 때 함께 하십니다.
로버트 리씨는 말하기를 의무(duty)는 영어에서 가장 숭고한 단어라고 했는데, 기독교 용어 중에서도 책임과 사명은 가장 숭고한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많은 기도교인들이 힘없이 비틀거리는 까닭은 너무 무책임하고 세상적이며 성도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조차도 감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게으른 신자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할 때 주님께서 동행하시는 체험과 기쁨을 놓치고 맙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집에 나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단순한 의무도 감당치 않고 게으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범죄하고 타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영적 의무를 다할 때 그 안에서 하나님과 접촉하고 만나게 되며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됩니다. 주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드리는 곳에 참석하지 못하면, 만 가지 하나님의 축복을 잃게 됩니다. 벌써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할 때부터 무엇인가 큰 잘못과 불행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비록 큰돈을 번다해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의 거룩한 의무 중 한 가지는 십일조를 드리는 것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수가 있고, 하나님의 임재를 생활 속에서 피부로 느끼며 살수가 있습니다. 십일조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생활을 간섭하시고 인도하심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생활을 간섭하시고 인도하심을 절실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 외에 하나님께 우리의 재능을 바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등이 기본적인 성도의 의무입니다. 이런 의무를 감당할 때, 임마누엘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4. 십자가를 질 때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을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 몇 번이나 쓰러지셨습니다. 이때 로마 군인이 구레네 시몬을 데려다가 대신 십자가를 지고가게 했습니다. 그 덕분에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후손들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해서 고난과 싸울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고, 주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질 때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지는 사람을 기쁘게 여기시고 능력으로 함께 해 주십니다. 주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그 어떤 사명의 십자가라도 마다하지 않고 기쁘게 질 때 주님이 친히 그 십자가를 함께 져주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5.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텍사스에 한 불량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교회에 다니는 귀여운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귀여운 딸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장례식을 주례하면서 다윗이 그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한말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즉 '나는 아들이 돌아오게 할 수 없고 내가 그에게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면 천국에서 귀여운 딸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때에 그 아버지는 죄에서 돌이켜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훌륭한 교인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내가 슬픔의 골짜기에 있을 때, 내 영혼의 구주와 마음의 평안을 찾았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시 23:4에 보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필 포트 박사에게 9살 난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중병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의사가 그 아이는 살 수 없다고 말해 주었을 때, 필포트 박사가 주기 전에 한 번 더 보러 들어갔습니다. 중환자실이라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서 흰 까운과 모자를 쓰고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아빠를 몰라보더니 나중에야 알아보고 '아빠'하고 불렀습니다. '나한테 뽀뽀 안해 줄래요?' 그 때 아버지는 '얘야,. 아빠는 너한테 뽀뽀하고 싶지만 의사가 지금은 하지 말란다. 그렇지만 이다음에 언제가는 뽀뽀해 줄 날이 있을거란다'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내가 죽게 되나요?'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필 포트 박사가 '왜 죽는 게 무섭니?' 했더니 '아빠, 오늘 아침에 누가 나는 죽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무서웠어요. 그런데 그 때 예수님이 나에게 다니엘아 무서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마 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 다음부터는 무섭지 않았어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두려워 떨지만,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죽는 순간에도 임마누엘의 주님이 함께 하셔서 친히 우리 성도들을 죽음과 눈물이 없는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임마누엘의 예수님을 당신의 구주로 믿습니까? 그분께만 소망을 두십니까? 그렇지 못한 채 살았다면 곧 마음의 결단을 내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시고 예수님과 동행하십시오.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이 세상에 백번 오신다 해도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모셔 들이지 않으면, 끝내 주님이 없는 생활을 하다가 주님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집니다. 부디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임마누엘의 주님을 만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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