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초식동물 중에 양은, 가장 약하고 온순하다고 한다.
그러나, 양은 강하다.
그 이유는, 양의 배후에는 목자가 있기 때문이다.
양과 목자는, 무엇으로 의존되어 사는가?
그것은, 음성이다.
양은 시력이, 아주 약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양은 청력이 발달하여,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 듣는다'고 한다.
수많은 위험과, 맹수의 공격에 노출되어 살지만..
양이 안전하게 풍성한 꼴을 먹을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청력에, 의존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양에게 있어서 듣지 못하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듣지 못하면 따라 갈수 없고, 듣지 못하면 보호 받을수 없기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어린 양이다.
주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그분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들어야 한다.
그래야, 푸른초장 맑은 시내를, 만날수 있다.
맹수의 위험(사단)에서도, 안전할수 있다.
듣지 못하고 잘못 듣는것처럼, 답답하고 불행한 일이 있을까?
듣지 못하는데, 어찌 목자를 따라가며..
잘못 듣는데, 어찌 바르게 살수 있을까?
우리도 주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영혼과 영성이 죽을수 있다.
다른 길로, 갈수도 있다.
그러므로 듣는 것은, 절대로 중요하다.
창세후로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니, 하나님이.. '말씀'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과 통로가 시대를 지나면서, 조금씩 다름을 알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종들과 자녀들의 귀에다 직접 말씀하셨다.
고막을 통해, 당신의 마음과 뜻을 전달하셨다.
실제로 '아브라함아, 사무엘아' 이렇게 말이다.
그러나 주님이 승천하신 후에, 오늘날(성령시대)에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물론 지금도 필요하시면, 주님은 귀에 들리게 말씀하실때도 있으시다.
다메섹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직접 음성을 들려 주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이 다음과 같은 여러가지 채널로 말씀하신다.
1. 지금은, 우리의 영(靈)에 말씀하신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인간의 몸은, 영과 혼(魂)과 육(肉)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영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영을 만지실 때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다.
그 사실이, 우리의 혼과 육에 전이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기관을 '직관'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지하는 영적센서가, 작동하는 기관이다.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직관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의 혼과 육이, 재빠르게 반응을 한다.
그때 기쁘기도 하고, 평안하기도 하고, 주체할수 없이 황홀하기도 한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성령의 감동'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적 직관을 통하여 말씀하시고..
우리는 평강과, 기쁨과, 소원으로 감지를 하고..
성령님과 교통하기도 하는 것이다.
절제되지 않는 소원, 또는 주체할수 없는 평강과, 지속적인 기쁨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음성을 자녀들에게 전달하신다.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은, 시간이 갈수록 기쁘고 평안하지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하고 불안하다.
2. 그 다음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은..
말씀을 반복하여 듣게 하시거나, 생각나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은 생각나게 하고, 기억나게 하시는 영이시다.
만일에, 우리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때..
그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알기 원한다면..
말씀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직접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기름부어 세우신..
당신의 종들의 설교와,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예를 들자면, 설교말씀을 들을때나 묵상할때..
평상시에는 '로고스'로 들리던 말씀이, 그날 따라 '레마'로 들릴때가 있다.
로고스는, (God's word )이다.
기록된 말씀,혹은 선포되는 말씀으로,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레마는 다르다.
레마는 (God's word to me and hear now)이다.
나를 위해, 준비된 말씀이다.
나에게, 특별히 주시는 말씀이다.
설교를 들을때나 말씀을 깊이 묵상할때, 우리는 레마로 들을때가 있다.
그러면 그 말씀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예를들어, 새로운 일을 하려고 기도중에 있는데, 설교듣는 중에, QT중에..
아니면 말씀묵상 중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평안히 가라'
이런 말씀을 레마로 들었다면, 새로 시작하려는 그 일은 하나님의 뜻이다.
레마로 말씀을 받을때의 현상은, 가슴이 뛰고 평안이 밀려오고 새힘이 솟는다.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이슬같이 임할때도 있다.
그러나 로고스로 받을때는, 아무런 동요가 없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을 많이 들으려면..
반드시 성경구절을, 많이 암송해 두는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빈항아리에 포도주를 채우시지 않으신다.
아구까지 물을 채운 항아리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게 하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아구까지 채워 두어야 한다.
언제 어떤 말씀으로 내게 주실지 모르기 때문이다.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말씀을 백구절 정도는..
암송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3.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은, 환경과 사건 그리고 사람을 통하여 들을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속에..
'하나님 자신을 계시해 두셨다'고, 로마서에 말씀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자연 만물만 주의 깊게 보아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를 느낄수도 있다.
하나님은 전쟁을 통하여, 질병을 통하여, 실패를 통하여, 상처를 통하여..
사고를 통하여, 말도 안되는 고난을 통하여도 말씀하신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애를쓴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하는 모든 영적 센서가...
'항상 열려있다'는 말이다.
뿐만아니라 사람을 통하여도..
심지어는, 어린아이의 무심코 지껄이는 소리를 통하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다윗은, 성군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음성에 아주 민감한 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다윗에게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 음성을 청아하게 알아 들었다.
다윗은, 간음을 했다.
그리고 나단의 책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통회자복했다.
그리고 회복되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들어야 살고, 들어야 열린다.
베드로는, 사랑하는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했다.
그리고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났고 회개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도,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는다.
그러나, 직관이 무디거나 마음이 굳어 있으면..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셔도, 못 알아 듣는다.
걸아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민감한 사람은 회개한다.
그러나 둔감한 사람은, 돌뿌리를 걷어 차며 원망한다.
아이가 말을 안들고 반항함을 통하여, 집안에 바퀴벌레가 나타남을 통하여,
갑짜기 주변 사람이 강팍해짐을 통하여, 질병을 통하여,지갑을 잃어 버림을 통하여..
하는 일마다 막힘을 통하여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칼럼으로는 충분한 설명을 할수 없는 절대한계 상황이다.아쉽다)
만나는 사람마다, 동일하게 말하는 일들을 통하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주의 일에 힘쓰라. 기도 좀 하라. 새벽을 깨우라. 사명감당해라. 건강 조심해라....
그런 말들을, 흘려듣지 마라.
'인심이 천심이고, 인언이 천언이라'는 말도 있다.
영적인 세계에는, 우연이 없다.
하나님은 실수도 없으시다.
그렇다면 요즈음,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을 통해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헤아렸으면 좋겠다.
그 밖에도 하나님은 환상으로.. 꿈으로도 말씀 하신다.
그러나 이 부분에는 위험성도 따를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주의 할것은 소위 신령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언을 받을려 하는 유혹으로 부터 자유하기를 바란다.
가장 정확하고 훌륭한 예언은, 설교이며 하나님의 말씀(성경)이다.
하나님은 직접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
왜 굳이, 남을 통하여 말씀하시겠는가?
성령시대의 예언적 의미는, 말씀과 설교이다.
내가 답답할때, 하나님도 답답해 하신다.
내가 주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할때, 하나님도 나에게 말씀하시고 싶어 하신다.
그러니 내게 주시는 말씀을, 직관을 통하여, 말씀을 통하여,
환경을 통하여, 사람을 통하여, 듣는 일에 민감하게 집중해야 한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목자는 목자의 음성을 알아 듣는 양을 보호하고 돌보아 주신다.
음성을 듣는 일에 집중하고 민감할때, 목자와 양은 하나이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일에, 중요한 몇가지를 묵상하려 한다.
첫째는, 훈련이 필요하다.
훈련없이 되는 일은 없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않고 사는일에 학습되어 왔다.
그래서 하루 아침에 안된다.
많은 날들을 주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에 투자해야 한다.
그 다음은, 때마다 일마다 "주님! 어떻게 할까요?" 물어야 한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가 안 들리더라도, 또 묻고 또 물어야 한다.
그러면 조금씩, 아주 작게, 들리기 시작한다.
사람을 통해서든지, 환경을 통해서든지, 설교를 통해서든지, 꿈으로든지,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는, 주님의 음성에 민감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기도없이 되는일은, 없기때문이다.
끝으로, 죄가 있으면 주의 음성이 전달되는데 전파 방해를 받는다.
그러므로 주의 음성을 듣기전에, 항상 먼저 죄를 살펴 애통해 해야 한다.
아무리 급하고 바빠도 구두 먼저 신고, 그 위에 양말을 신을수는 없지 않는가?
반드시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어야 산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험하고, 위험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의 음성을 듣는것 보다..
더 황홀하고, 더 안전하고, 더 축복된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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