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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위에기쁨/성경 일반자료

주의 빛을 보는 네 가지 영안(spiritual eye)

by JORC구원열차 2009. 1. 8.
변승우 목사님의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주의 빛을 보는 네 가지 영안(spiritual eye) 
 
* 예언적 예배예술 연구 -깔라흐 연구에서 '깔라흐'란 구약에서 '계시'를 나타내는 말의 어원중 하나로 감취어진 하나님의 비밀스런 계획을 '오감'을 통해 드러내다. 라는 뜻입니다.
 
오감, 즉, 시각...→ 보는 '눈' ....이것에 관해 깔라흐 적인 정의를 하기 위해 좋은 자료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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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구원 받는데 꼭 필요한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3-4,6)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행 26:18)
 
이 말씀들에 언급된 것이 바로 구원받기 위해 꼭 필요한 눈인데,
이 눈이 떠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없고,
따라서 구원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둘째로, 환상을 보고 영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8)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 6:17)
 
이 눈이 밝아지면 영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고,
주님이 보여주시는 환상을 계시로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주의 법이 기이한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시 119:8)
 
소경된 인도자는 다른 눈이 아니라 이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눈이 열려야 다른 사람을 영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영적 권위가 주어집니다.
이 눈이 열리면 성경을 볼 때에 다른 사람들도 모두 보는 익숙하고 평범한 것 뿐 아니라,
"주의 법의 기이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을 지도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는 인도자입니다.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되길 원하는 자는 반드시 이 눈이 뜨이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넷째로, 아가서에서 언급한 비둘기 같은 눈,
즉,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는 눈이 있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2-24)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 17:8) 
 
우리 눈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께 맞춰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맞춰져서 그대로 영원히 고정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타락은 예수님께로부터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릴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모든 회복은 예수님을 다시 바라볼 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이 눈은 천만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자이신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눈,
즉 요한이 보았던 불꽃같은 눈이 있습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계 1:14)
 
이 눈은 우리의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꿰뚫어 보는 눈이며 심장과 폐부를 살피는 눈입니다.
이 눈은 심판 날 모든 죄를 흩어지게 만들며 공의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눈입니다.
그런데 주의 빛이 오면 올수록 우리는 점점 더 이 눈을 갖게 됩니다.
즉 주님의 시각을 갖게 됩니다.
이것은 환상을 보는 눈처럼 사람의 숨겨진 죄나 미래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시각에서 자신을 볼 수 있게 하는 눈으로 심판을 예비시키며 영안 중의 영안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눈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이 눈이 열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지식은 많으나 이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은 많은 성경 지식에도 불구하고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입니다.
많은 은사를 받고 영적 체험을 하나 이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 역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어두움의 영들은 얼마든지 이런 자들을 속이고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볼 때에,
그리고 다른 목회자들을 볼 때에 이점을 중시해서 봅니다.
성경 지식은 늘어가나 그 속에 빛이 들어가지 않는 자,
은사와 체험은 늘지만 그 속에 빛이 들어가지 않는 자
이런 사람은 결국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냅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사람은 빛이 그 속에 들어가 상한 마음으로 눈물 흘리는 자,
깨어지고 으스러지는 자,
자기가 죽어 점점 없어지는 자입니다.
 
주님이 찾는 사람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로부터 오는 빛을 통해 우리의 눈이 조정되어
점점 더 불꽃같은 주님의 눈과 일치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좀 더 심각한 것을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환상 중에 예수님을 여러 차례 보지만,
우리 눈을 밝히는 이 빛의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입신을 하여 천국에도 여러차례 갔다 오지만,
그저 예수님의 형상을 뵈었을 뿐
이 빛의 조명을 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종교적인 변화는 가능하나 영혼 깊은 곳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이사야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단순히 주님을 뵙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의 조명을 받습니다.
그래서 회개를 통해 변화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환상이나 이상을 통해 전혀 주님을 뵙지 않지만,
이 빛에 의해 점점 더 변화되어 주님과 연합한 자가 됩니다.
설사 환상 중에 주님을 뵙고 있더라도
이 빛의 조명을 받지 못한 자는 주님과 매우 멀리 있는 자입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예수님을 보았지만,
영적으로는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과도 같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직접 뵌 일이 없더라도
이런 빛 가운데 사는 자는 주님과 보다 가까이에 있는 자입니다.
 
물론 주님의 형상을 뵈옵고 다니엘이나 요한처럼
그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자 이사야의 경험입니다.
이사야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빛에 노출되어
자아가 무너지는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100배는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영적 체험이 아니라,
바로 이런 경험을 깊이 사모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변승우 저 /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