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과 - 교회의 조직과 임무
조 직
초대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 군주주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6:15에서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라고 묘사합니다. 그 자신이 교회의 왕 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에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고, 골로새서 1:18을 통해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그분이 함께 계시는 하늘나라가 교회의 본부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에 쓰인 단어대로 우주적이며 지역적인 의미를 함께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우주적인 조직은 언급이 없습니다.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각 교회는 행하는 사역에 있어 독립되어 있었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 책임을 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종교적 무정부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그리스도의 교훈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모든 교회는 같은 사실을 가르쳤고 행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들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자연히 모든 면에서 일치했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들은 독립적이었지만 사랑이라고 하는 강력한 끈으로 서로 뭉쳐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님의 사역이 널리 전파되도록 서로 도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록된 책이나 문서가 아직 없었을 때는 사도들에게서 직접 배웠습니다. 신약 성경은 그 즈음에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신약 성경을 통해 초대교회 성도들이 받았던 사도들의 교훈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후에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았으므로 양심의 가책을 받아 자살한 후에도 맛디아를 뽑아서 열둘의 수를 유지하였습니다(행1:26). 그 외의 다른 사도들에게는 후계자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곧 사도직이 세습제가 아니라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순교 당할 때 누가 그 뒤를 이어 사도직을 계승했다는 기록을 우리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행 12:2). 바울은 이방인에게 보냄을 받은 특별한 사도입니다(행 9:15). 그러나 그의 사도직은 다른 열두 사도 때문에 손상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 사도가 죽을 때 사도직은 그것으로 전부 끝났습니다. 사도의 조건은 ① 예수님의 전도 생활을 목격하여 동행하여야하며, ② 그의 부활하심을 목격하여 그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행 1:21~22). 그래서 오늘날에는 아무도 이 조건을 충족하여 사도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장로들 혹은 감독들
제1세기에는 장로들이 각각의 지역 교회를 이끌었습니다. 때때로 이들을 감독, 목자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이 모두가 교회 내의 동일한 직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이가 많고 특별히 경험이 많기 때문에 장로들이라고 불렀고, 교회의 일들을 돌보기 때문에 감독들이라고 불렀으며, 양무리를 치기 때문에 목자들(pastors)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 혹은 사도들에게 세움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목자들로서 그들은 교회를 인도하고 바른 교훈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경은 각 교회에 복수의 장로가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감독의 자격은 매우 엄격했습니다. 바울이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딤전 3:2)라고 지적할 때 그 말은 거기서 열거한 자격들을 갖고 있지 않으면 합당치 않음을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집사들
집사란 단어는 종을 의미합니다. 이들이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 명칭은 그들이 교회의 종들임을 나타냅니다. 집사는 장로들의 지도 아래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들은 실제적으로 영적인 가르침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에 의해 세움을 받은 일곱 집사들은 과부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집사들의 자격은 장로들의 자격과 비슷합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집사에게는 가르치는 능력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일곱 집사 가운데 스데반이란 사람은 말씀을 가르치다가 순교까지 당한 사실이 있습니다.
장로와 집사의 자격에 대해서는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자격요건은 대단히 엄격하였습니다. 바울은 감독(장로)이 되려면 모든 일에 흠이 없고 비난을 받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고, 단정해야 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않아야 되고, 한 아내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고, 방탕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고, 술에 인박혀서는 안 되고, 믿는 자녀를 가져야만 되고, 집을 잘 다스려야 하고, 절제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선을 좋아하고, 근신하고, 거룩한 사람이어야 하고, 나그네를 잘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장로나 집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딛 1:5~9, 딤전 3:8~10).
복음 전하는 자 (전도자)
한편 초대교회에의 다른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는 복음 전하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전도자란 “복음 전하는 자”입니다. 젊은 전도자 디모데는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5)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권면도 받았습니다. 디모데는 일군(minister)이었습니다. 이것은 종을 뜻하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다 주님의 일군이고 전도자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공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도자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일군입니다.
전도자의 일은 복음을 설교해야 하고, 교회를 세워야 하고, 장로를 택해야 하는 등의 책임이 있습니다. 전도자는 그가 한 교회를 위해 오랫동안 머무르며 그곳에서 일하든지 순회하며 전도하든지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전도자들을 가리켜 목자들(pastors)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양 무리를 치는 자(목자)는 장로이지 전도자가 아닙니다.
교회의 임무 (사업)
디모데전서 3:15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이렇듯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이므로 교회의 가장 우선하는 책무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사람으로 알게 하여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사도시대에는 선교 기구를 통하기보다는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으로 인해 흩어졌을 때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게”(행 8:4) 된 것입니다. 물론 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제자들이 때를 얻어 자기들의 친지와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각 사람은 다 전도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회는 구원 받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봉사하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게도니아 교회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궁핍한 형제들을 위하여 특별연보를 하게 했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 의하면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선한 일을 하여야 합니다(갈 6:10). 야고보서 1:27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원의 메시지는 종종 이렇게 남에게 봉사하는(섬기는) 것을 통해 가장 잘 전달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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