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소선지서7 - 나훔(니느웨의 운명)

JORC구원열차 2009. 7. 9. 10:32

7. 나훔 / 니느웨의 운명

 

“모스크바가 멸망되었다! 크레물린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공산주의는 깨어졌다!” 만일 신문에서 이러한 제호의 기사를 읽는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의심할 나위 없이 철의 장막 뒤에 있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자유를 찾게 되는 것과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공산주의와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리고 구원과 자유가 있을 것을 인하여 기뻐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유다 백성들과 주위의 민족들이 다음과 같은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하였는가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니느웨가 망하였다! 앗수르 제국이 깨졌다!”(나 2:15). 앗수르는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에게 잔혹성을 실천하는 무자비한 원수였다. 그들의 군대는 파괴하고 약탈하였으며, 그들의 적들을 산 채로 파묻기도 하고 산 채로 가죽을 벗기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을 날카로운 기둥으로 꽂아 버려둠으로써 태양에 타 죽게도 하였다.

 

앗수르는 하나님이 북왕국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 일은 주전 721년에 일어났다. 주전 701년에 앗수르는 유다를 정복하려고 시도하였으나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들의 군대를 멸하셨다(왕하 18-19장 참조). 앗수르는 언제나 나라들에게 채찍의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나라들은 앗수르를 두려워하며 그들의 승인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주전 612년에 마침내 니느웨는 메대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다. 이 정복이 너무도 완전한 것이어서 이 성의 폐허는 1842년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나훔이 기록한 것은 장차 있을 이러한 니느웨의 멸망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이 작은 책을 쓸 때는 앗수르의 세력이 절정에 달해 있을 때였다. 아무도 이 강력한 앗수르가 망하리라고는 꿈꾸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래를 아시고 나훔에게 메시지를 주셔서 놀라고 있는 유다의 백성을 구원하셨다. 이것은 니느웨를 경고하기 위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이들은 150년 전에 요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었다. 그렇다. 니느웨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하나님의 인내는 끝이 났으며 심판이 임할 것이었다. 오히려 이것은 유파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였으며, 큰 위험에 처한 때에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그들은 격려하는 메시지였다. 본 서의 각 장마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으며, 그 성읍의 멸망에 대해서 말해 준다.

 

1. 질투하시는 하나님-니느웨는 망할 것이다 (나 1장)

 

하나님께 적용될 때의 질투한다는 단어는 시기심이나 이기심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그 외 거룩하심을 위하여 열성을 다한다는 개념을 전해 준다.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시지만, 죄에 대해서는 증오로 불타신다. 남편이 아내를 질투함으로 그녀를 보호하듯이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과 그의 법을 질투하시며, 따라서 거룩함과 공의로 행동하시게 된다. 그분은 노하기에 더디시다. 사실상 그는 150년 동안 자비를 베푸셨다. 그러나 이들의 잔인성과 약탈은 정도를 넘었으며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하나님은 심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가? 물론, 가지고 계시다! 자연에 대한 그의 능력을 살펴보라(3-6절). 바람과 폭풍 중에서, 가뭄과 비, 땅과 바다에서의 그의 능력을 살펴보라. 그의 능력 앞에서 누가 설 수 있는가? 오늘날 나라들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잊은 것 같다. 이들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우리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 날에는 원자탄의 양이나 전투기의 대수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8-13절에서 나훔은 그 도시의 멸망을 두 가지 광경, 즉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큰 홍수와 그루터기를 불태우는 메마른 고통의 불로 묘사하고 있다. 메대와 바벨론은 여러 달 동안 포위 공격을 하고서 진군하지 않고 있었다. 우기가 닥쳐왔고, 니느웨에 연해 있는 두 강이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어떤 역사가는 메대가 그 강에 쌓은 댐들 중의 하나를 파괴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불어난 물은 니느웨의 두터운 성벽을 강타하였으며, 무너뜨렸다! 그 성은 홍수로 멸망하였다(나 2:6 참조).

 

하나님은 본 장에서 그의 백성에게 놀라운 두 가지 약속을 하신다. 1장 7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선하심을 확신시켰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한, 안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장 12절에서는 그들이 앗수르 군대로 말미암아 다시는 전처럼 괴로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어떤 괴로움이 닥친다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심을 신뢰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를 의지하면 그가 끝까지 우리를 돌보실 것임을 믿어도 된다.

 

2. 심판하시는 하나님-니느웨의 망함은 클 것이다 (나 2장)

 

1장 15절은 히브리 성경에서는 2장의 시작이다. 니느웨가 망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바벨론이 망한 것에 대한 이와 비슷한 소식을 이사야 52장 7절에서 찾아 보자. 그리고 바울이 로마서 10장 15절에서 이 구절을 사용한 것을 알아보라. 희망과 승리의 메시지를 가져오는 사람은 아름다운 발을 가진 사람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잃어버린 자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아름다운 발을 가지게 된다.

 

2장은 이 성이 침략당하는 것과, 완전히 멸망하는 것에 대한 생생한 광경이다. 앗수르는 721년에 이스라엘을 초토화시켰다. 이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적을 밀어내심으로 그들을 회복시키고 계시다(1-2장). 메대는 빨간 제복을 입고 빨간 방패를 사용하였으며(3절), 창을 든 군대는 마치 전나무 숲처럼 보였다. 2장 4절을 현대적 자동차에 대한 예언으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 성의 거리를 다니는 수레를 표현한 것이다. 7절은 왕후가 굉장히 낮아져서 끌려가는 것을 상징하는 말이다.

 

11-13절에서 사자들이란 말이 반복되는 것을 눈여겨 보자. 사자는 앗수르 세력에 대한 위대한 상징이었는데, 당신은 아마도 역사책이나 고고학 책에서 그림으로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머리를 가진 사자의 거대한 동상들을 세웠었다. “너의 사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라고 나훔이 묻는다. 너의 통치자들, 너의 승리자들은 어디 있는가? 러시아는 곰을 상징으로 사용하는데, 하나님은 어느 날 그 러시아의 곰을 우리에 가두실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미국의 독수리”도 떨어지게 하실 수 있으시다. 오늘날 “영국의 사자”는 어디 있는가?

 

“내가 네 대적이 되어”(13절). 하나님은 메대와 바벨론을 보내어 니느웨를 대적하게 하시고 그 성을 약탈하며 그 부를 취하도록 허락하셨다. 150년 동안 하나님은 앗수르가 돌아서기를 기다렸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하나님은 이 나라들 중에 심판자이시다. 하나님은 행동하지 않을 수 없으시다.

 

3. 공의로우신 하나님-니느웨는 망할 만하다 (나 3장)

 

여기서 나훔은 이러한 행위의 정당성을 다룬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할런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북왕국을 벌하기 위하여 앗수르를 사용하셨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전에 그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니느웨를 왜 벌하시는가?” 또는 이렇게 논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유다왕국을 살펴보라. 유다도 역시 죄로 가득 차 있다. 왜 유다는 벌하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은 몇 년 안에 유다도 벌하실 것이었다(606-586년).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파괴하도록 허락하실 것이며 백성들을 사로잡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유다에 대한 그의 목적은 니느웨에 대한 목적과는 다를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교훈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유다를 징계하실 것이지만, 앗수르에 대하여는 그 죄 때문에 멸하기 위하여 분노 중에 심판하실 것이다.

 

3장 1절에서 우리는 앗수르의 피흘린 살육과 거짓말, 탐욕과 같은 많은 죄의 목록을 본다. 앗수르인들은 죄없는 백성을 수없이 죽였다. 이제 그들의 백성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거리에 쌓아 올려졌다. 니느웨는 다른 나라들과 유리한 상거래를 해왔으며 폭력과 거짓말로 부를 얻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모든 부가 약탈자들의 손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그리고 심판의 날에 평상시에는 용감하던 앗수르의 군인들은 놀란 여인들같이 행동할 것이다. 그 모든 축성술도 빛을 잃게 될 것이다.

 

15-17절에서 나훔은 전쟁을 메뚜기 재앙에 비유한다. 이 벌레들이 곡식을 먹어 치우듯 원수들은 이 성을 먹어 치울 것이다. 앗수르의 군인들은 메뚜기들만큼 강할 것이다! 다음으로 18절에서는 앗수르 사람들을 살해당한 양떼로 본다. 그들의 목자들(통치자들)은 죽음의 깊은 잠에 빠져 있다.

 

19절에서 “소식”이란 단어는 “보도” 또는 “보고서”라는 뜻이다. 나라들은 앗수르가 멸망하였다는 보고에 접하자 손뼉을 치며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 여호와는 나라들의 죄를 심판하신다. 그리고 개인의 죄들도 심판하신다.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하고 죄를 고집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너희 죄가 너희를 찾아낼 줄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