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마태복음 25장 / 이방 민족의 심판
앞 부분의 내용이 계속된다.
1. 그리스도의 재림과 기독교 세계
1)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25:1-13)-
교회와 신랑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계시는 후에까지도 주어지지 않고 있지만 제자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과의 관계에 있어 그리스도는 신랑이심을 알고 있었다(마 9:15/요 3:29). 25장 1절에서는 “분리”가 나오고(그들은 처녀들이었다), 빛을 비춤 또는 증거(등불을 가졌음/ 빌 2:15-16)와 고대함(신랑을 만나러 갔다)이 나온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해야 하는 일들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오늘의 “교회”(기독교 세계)와 마찬가지로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모든 신자들은 참된 교회 안에 있으며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이 말하는 “교회” 또는 기독교 세계에는 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처럼 보이지만 마음이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마태복음 13장에서와 같이 곡식 사이에 가라지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이래로 거의 2,000년이 흐르고 있다. 이 기간 동안에 “교회”는 잠에 빠져 있었다. 참된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위대한 진리에 잠깨어야 하는 마지막 세기가 바로 지금이다. “보라, 신랑이 오신다”는 외침이 이미 있었다.
하나의 비유에 나오는 세부적인 사항들 모두가 반드시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름은 성령을 말하는 것인데 모든 참된 신자들 안에 계신다(롬 8:9). 이 비유에서의 그리스도의 주된 교훈은 “깨어 있어 준비하라”는 것이다. 주님이 돌아오실 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알았던 사람들이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2) 유익한 종과 무익한 종들(25:14-30)-
첫비유는 집안에서의 봉사에 대하여 말하는 반면, 이 비유는 세상에서의 봉사를 다룬다. “재능(달란트)”은 “능력”(가능성)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왜냐하면 15절에서 “그는 각자에게 그 능력에 따라” 주었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재능”이란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데 우리의 능력을 사용하는 다른 기회들을 나타낸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각기 다른 재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우리의 재능에 적합한 기회들을 주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충성이다(고전 4:2 참조).
처음 두 종들은 충성스러웠으며 이들은 달란트를 두 배로 늘렸다. 따라서 있는 달란트 그대로를 상으로 받았다(21, 23절). 비록 작더라도 자기의 봉사 영역에서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은 위대한 사역을 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같은 상을 받을 것이다. 세번째 종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그는 주님을 “굳은 사람”이라고 불렀고 “두렵다”고 말했다. 사실상, 그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주신 기회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상을 거절하였다.
26절에서 그리스도는 종의 주인에 대한 부당한 고발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며(그 말이 사실이어서 반복한 것은 아님) 27절에서 “그래, 이러한 일들이 사실이라면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훨씬 더 열심히 일했어야 하지 않는가!”라고 말씀하신다. 이 원리는 29절에서 주어진다. “많이 받은 자들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다.“ 주님이 주신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빼앗길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방인들 (마 25:31-46)
사람들은 이 구절을 요한 계시록 20장 11-15절에 나오는 흰 보좌의 심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종합적인 심판”이라고 불러 혼돈을 일으킨다. 성경에는 “종합 심판”(General Judgement)이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성도들은 휴거 직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 행한 일들을 심판받는다(고후 5:1-11). 구원받지 않고 죽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천년통치가 끝날 때, 흰 보좌의 심판 때에 그리스도를 대면하기 위하여 부활하게 된다(계 20:1-15). 마태복음 25장이 언급하고 있는 심판은 환란 끝에 오는 이방 나라들에 대한 심판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실 때 이스라엘을 통하여 땅의 모든 나라들이(이방인들)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창 12:1-3). 환란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정화하심으로, 7년 기간의 종말에 가면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기다리는 남은 신자들이 있게 된다. 이스라엘 민족은 왕을 영접할 것이며 그리스도는 그의 왕국을 누가복음 1장 31-33절과 67-80절에 약속된 대로 이 땅 위에 설립하실 것이다. 문제는 이방 나라들 중에서 어떤 나라가 이 왕국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장면에 나오는 양과 염소와 그리스도께서 “내 형제들”이라고 부른 이 들(40절)로 구별되는 세 부류의 사람들에 유의하자. 의심할 나위 없이 “나의 형제들”이란 환란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를 위해 증거한 믿는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적그리스도의 원수들이었을 것이므로 하나님께 인을 맞고 보호를 받았을 것이지만, 대 환란의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지도 팔지도 못하므로 배가 고팠을 것이다. 이들은 가정을 떠나야 했고(마 24:15-21) 거처할 장소를 필요로 할 것이다. 일자리가 없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았으므로(계 13:17), 옷을 구할 수도 없어 벗었을 것이며, 감옥에 던져진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 때의 상황은 명확하다. 이 기간 동안에 많은 이방 사람들이 유대 선교사들의 메시지를 믿을 것이다(마 24:14/계 7:9-17). 이 때 이들은 고난당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보일 것이며, 먹이고, 옷을 입히고, 감옥으로 그들을 방문할 것이다. 바울이 주님의 성도들을 방해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박해했던 것처럼 이방인들은 주님의 형제들에게 사랑을 보임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친절한 행위들이 그들을 구원하는 선한 행실은 아니다(엡 2:8-9). 이런 행위들은 메시지를 믿는 그들의 신앙의 증거이며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증거이다. 사자들을 거절한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한 것이다(마 10:16-23/마 10:40-42). 그들의 종말은 바깥 어두운 곳, 지옥이다.
그리스도께서 이방 나라들을 민족이라는 단위로 심판하시지 않고 개인으로 하실 것임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32절에 나오는 “모든 민족”이란 말은 헬라어에서는 개인들 각자를 가리키는 중성 명사이며 “그들”은 남성 명사이다. “나라”가 있고 “염소 나라”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염소들”로부터 분리된 양들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잘못 취급한 모든 나라들(애굽, 바벨론, 독일 등)을 심판하실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시사하는 내용은 그 나라들 안에 있는 개인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형제들”을 향한 그들의 사랑으로써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증거한 사람들만이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나, 다른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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