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016(금)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마 19:3-11, 엡 5:22-25)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엡 5:22, 23)
우리나라는 사시사철이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은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요즈음은 온 나라를 곱게 물들이는 온갖 나무의 단풍들이 가을의 화려함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곱게 물든 단풍이 가을을 더 멋지게 연출하듯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에 보다 완전한 성숙을 이루어 나가게 됩니다.
결혼이란 인생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중의 하나입니다. 아무리 명예를 얻고 많은 재산을 소유했다 하여도, 결혼을 잘못하면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할 뿐 아니라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혼을 잘못하면 그의 일생을 망칠 수도 있고, 결혼을 잘하면 평생 그의 삶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21:9에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제도는 하나님께서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지으시고 동거하게 하심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제도이며 창조 사역 후 최초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집에 참석하셔서 첫 번째 이적을 행하심으로 혼인의 중요함을 나타내셨으며, 또한 본문 마 19:4-6에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회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했느냐 이러한 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엡 5:22-25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가 연합하는 오묘한 비밀을 가르치면서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교회와 결혼생활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건전한 가정을 가진 교회는 건전한 교회가 됩니다.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을 하지못한다든지,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한 사람은 교회생활도 원만하지 못합니다.
건전한 교회가 되려면 건정한 가정, 건전한 결혼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교회에 가면 천국이 되고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도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이 지옥같아 교회에만 머물려고 한다든지, 가정만 천국으로 만들어 놓아 가정에만 있고 싶어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결혼에 대해서 몇 가지 신앙적인 교훈을 찾고자 합니다.
1. 왜 결혼해야 합니까?
결혼은 이상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도, 예수님도 또한 사도 베드로나 바울도 귀중하고 신성하게 보시기 때문에 성의식(Sex Conscious)이나 성생활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베고픈 것이 자연적 신체적 욕구라면, 성욕도 신체의 자연적 욕구입니다. 그러나 음식을 훔치면 가 되는 것 같이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죄입니다. 성의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창안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설정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의식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양심의 불필요한 고발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때문에 부부가 성욕을 충족시키기는 그 자체가 죄인줄 알고 쓸데없이 고민을 하는 이가 있는데 결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행복한 결혼생활인 것입니다.
성을 죄악시하는 것은 이교적이며 이단적인 것입니다. 히 13:4에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라"고 했으며 딤전 4:3에서 사도 바울은 "혼인을 금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귀신의 가르침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7:5에는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의 절제 못함을 인하여 사단으로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쓸데없이 별거하거나 금욕주의로 살지 말고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얼마 동안만 분방하되 그것도 일방적으로 하지 말고 부부가 합의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여자는 부흥회 때 은혜받고, 남편이 가까이 오면 "형제여 물러갈지어다"하고 어떤 남자는 '자매여 물러갈지어다 나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옳지 못한 것입니다. 성 그 자체는 배고플 때 먹고 가려울 때 긁는 것과 같이 신체의 자연적인 욕구이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성욕이 인간의 강한 본능중의 하나이므로 이것을 통한 마귀의 유혹과 시험이 많고 또한 범죄케 하여 타락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결혼의 목적을 세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서로 돕기 위해서입니다.
결혼을 창안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창 2:18)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피조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절반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자를 돕는 배필을 만드셨습니다. 배필(Helpmeet)이란 "돕기 위해 만난다"(Meet to help)는 뜻입니다. 아담만 만드셨을 때는 아직 절반만 만드신 것입니다. 아담을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드셔서 결합한 후에 사람이 비로소 완성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심히 좋았더라"(창 1:31)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지으실 때는 또 다른 흙덩이를 빚어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잠든 사이에 갈비뼈를 취하여 지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결혼 후에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한 몸이 되어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 세상에서 여자의 고향은 남자의 품이기에 해산의 고통을 하면서도 남자의 품을 찾기 마련이며, 남자도 아내를 필요로 하는 이치가 여기에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면서 친교하며 피차 돕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음행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결혼을 설정하셨을 때는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에 마귀의 시험과 유혹이 많아졌으므로 결혼을 금지해서는 안되고, 이 결혼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는 필연적인 것이기에 권해야 할 성질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전 7:2에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남편을 두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성의식을 조로 여기지 아니하고 결혼을 음란죄를 막을 수 있는 길 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결혼생활에 있어서도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하고 고전 7:4에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부부간에는 음란을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서로 떨어져 살거나 분방하지 말고 어디가도 붙어다니고 함께 다니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고전 7:9에는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강력히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함께 은혜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남편과 아내에게 대해 벧전 3:7에 "생명의 은혜를 함께 받을 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함께 은혜를 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혼자 영생얻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함께 생명의 은헤를 유업으로 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독신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은 마음에 특별한 결심이 있는 사람(고전 7:36, 37), 하나님으로부터 은사를 받은 사람(고전 7:7), 성의식은 있으나 성적 충동이 심하지 않은 사람, 죄에 빠질 가능성이 적은 사람, 환경적인 문제가 없는 사람(고전 7:37)입니다.
2. 배우자는 어떻게 선택합니까?
인간이 해야 할 선택 중에 결혼 상대자를 선택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선택할 때에는 깊이 기도하는 중에 해야 되고 믿음을 중요시 한다고 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억지로 정해서도 안 되고, 동정심에서 동정 결혼을 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결혼 상대자의 조건은 그리스도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 상대자가 아직 믿지는 않고, 결혼은 꼭 해야 되겠으면 예수 믿게 해서 학습이나 세례를 받은 뒤에 결혼하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신 7:3, 4에 "또 그들과 혼인하지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던 솔로몬은 결혼 생활에 실패하여 비참한 종말을 가져왔습니다.
수 23:12, 13에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이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고 했고 말 2:1에도 "유다는 제사를 행하였고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중에서는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며 유다는 여화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인의 딸과 결혼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신약에서는 고전 7:39에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잡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고후 6:14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라고 하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불신자와 함께 동일한 멍에를 매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부부중 하나가 신령한 하늘의 축복을 원하는데 비해, 하나는 세상적인 부요와 쾌락을 구하게 된다면 그 가정은 원만하게 생활을 이루어 나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득이 불신자와 결혼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에 유념해야 합니다.
첫째, 먼저 믿게 한 후에 결혼하여야 하며 결혼한 후에 자녀들이 생기면 교회에 나가도록 종용하며 기독교 교육을 받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둘째, 결혼하였다가 불신자 측면에서 갈리기를 원한다면 갈리게 하는 하라는 것입니다.(고전 7:15). 하지만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상대방이 이혼의 주도권을 취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혼을 원치 하니 하고 살기를 원한다면 그 믿는 남편이나 아내 때문에 믿지 아니했던 영혼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신자들은 약속을 귀하게 여기지만 불신자와의 약혼은 파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주의하게, 경솔하게 약혼을 취소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절대로 한번 결혼하면 파할수 없습니다. '이러한 즉 이제 돌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간음죄를 범했을 경우에 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간음죄는 한 몸을 깨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죽일 일 외에는 어떠한 다른 이유로는 이혼할 수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간음죄를 지었을지라도 본인이 회개하고 또 용서할 마음이 있으면 용서하고 사는 것이 이혼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3.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골 3:18, 19에 보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벧전 3:1-7에서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고 하고 엡 5:22, 23에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첫째로,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종으로, 일꾼으로 취급해서도 안 되고 인격자로 사랑해야 합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예수 믿든 말라든지, 죄 지으라는 말 외에 모든 말에 복종해야 합니다. 여자가 남자의 머리에 앉아 쥐고 흔들고 해서는 아니 됩니다.
둘째로, 상대방에 대하여 눈을 감아야 합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찾아 들추려 하지 말고 이 약점에 대해 눈을 감고 덮어 주어야 합니다.
셋째로, 서로 양보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고집부리지 말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양보해야 합니다.
고집부리다가 부부간에 싸움을 할 때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 냉전형은 서로 말하지 않고,
둘째, 설전형은 말로 공갈, 협박, 욕하는 것
셋째, 가출형이 있는데 싸우기만 하면 친정, 친구집, 극장으로 가는데 이것이 습관화 되면 조그만 싸움에도 보따리 싸게 됩니다.
넷째, 전투형이 있는데 이것은 치고받고 싸움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피난형이 있습니다.
한쪽에서 화가 나면 한쪽이 양보하고, 저쪽이 화가 나면 이쪽이 피하고 양보합니다. 이것이 이상 열거한 것 중에 가장 보기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선물형이 있는데 이것은 싸움 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귀가시에 선물을 사오는 것입니다.
넷째로,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다섯째로, 상대방을 칭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한 영국인 여자가 죽어갈 때 그 남편이 '여보! 당신은 그토록 훌륭하게 일을 잘했는데 만인 당신이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거요?'라고 말하자 그때 죽어가던 아내가 '왜, 당신은 진작 그런 말 한마디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나는 언제나 내가 일을 잘 못하는 줄로만 생각하고 내 자신을 책망했어요. 당신이 나에게 ‘참 잘 했어요’라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기 때문에 혼자 걱정하다가 이렇게 죽어가고 있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예화는 한마디의 칭찬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인지를 말합니다.
여섯째로,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말이라든지 옷차림이든지 행동에 있어 가깝고 같이 산다고 하여 함부로 한다면 이것이 행복한 부부 생활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려면 말이나 행동이나 의복에 있어 타인 못지않게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를 잘 깨달아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결혼의 목적이 분명하며, 결혼 상대자도 하나님이 원하고 성경이 말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하며,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해 모든 일에 절제하며 조심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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