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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묵상/오늘의 말씀

100108-시련을 통한 영적 유익 (신 32:10-12)

by JORC구원열차 2010. 1. 7.

100108(금)

시련을 통한 영적 유익 (신 32:10-12)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신 32:11, 12)

 

전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했을 때 관광버스 안내양이 인사를 하면서, 자기는 결혼한지 얼마 안되고 이곳에 온지도 일년 정도밖에 안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말레시아가 자연 환경이 좋고 인심이 후하고 오염이 안되서 참으로 살기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우리 일행에게 목사님들이니 자기의 고민을 풀어달라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고등학교 때 교회를 잘 다니다가 자기 이웃에 어떤 사람이 비참하게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사랑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저런 사람이 저토록 비참한 일을 당해야 할까 하고 갈등이 생겨서 교회를 안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바쁜지 말 할 사이가 없이 이틀의 시간을 다 보내고 헤어지기 전에 제가 한마디를 반문했습니다. '미스 최, 이 말레이시아가 자연 환경이 아름답고 오염이 않되서 참으로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지요? 또 좋은 신랑을 만나 지금 행복하게 산다고 했지요? 그런데 이렇게 백가지 천 가지 입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생각지 않고, 만에 하나 이해 못할 고난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회의를 느끼고 교회에 안 나가요?'라고 말이지요. 그리고는 때론 세상 고통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찾게도 되고 세상에서 절망을 당할 때 하늘나라의 영원한 소망을 찾게도 되고, 진정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게도 되는 거라고 설명을 한 다음 마침 저의 집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세상에서 방황할 때 나 주님을 몰랐네...'하는 노래를 영감있게 불렀더니, 그 안내양의 회개가 터지며 안내하다 말고 주저앉아서 흑흑 흐느껴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것을 본 모든 일행 목사님들이 통성기도까지 해주고 그 영혼 하나 구원하고 돌아온 일이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약한 사람은 이해못할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 회의에 빠지기가 쉬운데, 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온실안의 꽃처럼 아무 연단이나 시련이 없이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독수리가 그 새끼를 연단시키듯 고난으로 연단시킨다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등지를 낭떠러지 바위틈에다 짓는데, 아카시아 나무같은 가시나무를 물어다가 얼기설기하게 지어놓고, 그 위에 토끼와 같은 짐승의 가죽을 덮고, 자기 앞가슴에서 부드러운 털을 뽑아 깔고, 거기서 알을 낳아 품어 새끼를 깐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어미가 맛있는 것을 물어다가 먹여서 그 새끼가 어느 정도 다 큰 다음에는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새끼들은 무섭다고 날 생각은 않고 폭신폭신한 등지 안에만 있으려고 한답니다. 그렇게 되면 하는 수 없이 어미 독수리가 날카로운 발톱으로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흩어버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들은 가시나무만 남게 되니까 찔려서 견딜 수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어미 날개 위에 올라탄다고 합니다. 이에 이미 독수리는 날개 위에 새끼를 태우고 높이 올라가서 몸을 흔들어 새끼를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가 무섭고 놀라서 죽을 기를 다 써 날개를 움직여 날아봅니다. 그러다가 그 새끼가 날개를 쳐도쳐도 더 올라가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낭떠러지에 떨어질 때쯤 되면 지켜보던 어미가 쏜살같이 내려와 얼른 그 날개로 받쳐 업고 높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 독수리 어미는 등에 새끼를 업고 하늘 높이 올랐다가 또 떨어뜨립니다. 새끼는 살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떨어뜨리니까 역시 죽을힘을 다해 날개짓을 하여 납니다. 처음보다는 낫지만 역시 기진맥진해서 떨어지게 되면 어미가 다시 내려와 업고 올라갑니다. 이런 연단을 반복하는 동안 새끼 독수리는 몸이 날씬해지면서 날개에 힘이 생겨 하늘 높이 날 수가 있게 되고, 폭풍이 오면 다른 새들은 들어가 숨지만 새 중의 왕 독수리는 폭풍을 타고 더 힘있게 하늘 높이 날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의 백성을 이렇게 연단시키며 믿음의 날개, 영혼의 날개에 힘을 더해서 저 높은 천국을 향해 날아 올라가게 하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주어지는 시련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얻게 되는 유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

 

1.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게 됩니다.

 

편안할 때는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형식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극심한 실패와 고통과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진정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찾게 되고 참된 기도로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간혹 우리 사업의 보금자리, 가정의 보금자리를 흩어 버릴 때가 있고 극심한 고통을 겪게도 하십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헛된 것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참된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함으로써 진정 복된 삶이 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기회'라고 했고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라고 했습니다.

 

2. 참된 소망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슬픔의 눈물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슬픔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지리 발굴 조사단이 무인도에 들어가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표류하던 승무원과 승선객들이 그 무인도에 들어가 얼마쯤 있던 곡식종자를 심어 농사를 지으려다가, 땅속에서 옛날에 해적들이 감추어둔 보물단지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농사지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온 산을 파헤치며 금은보화를 찾으며 남아있던 곡식 종자마저 다 삶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곧 추운 겨울이 왔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금은보화를 많기 발굴하여 쌓아 놓고 그 옆에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흔히 사람들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 물질과 육신의 쾌락에 빠져 살면서 인생의 겨울, 곧 죽음이 닥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가 참된 소망인 영생 천국을 잊어버리고 영원히 슬피 울며 고통하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고통과 슬픔과 시련을 통하여 이 세상 것들의 헛됨을 깨닫고 영원한 소망을 찾게 됩니다.

 

3. 믿음이 강건케 됩니다.

 

육신과 마음이 안일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신앙생활 또한 나태해지고 이에 영력이 약해지기 쉽습니다. 오히려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믿음이 더욱 강인해집니다.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고 새끼를 높이 업고 올라갔다가 떨어뜨리는 훈련을 자주 시킴으로써 그 새끼 독수리의 날개가 강인해져서 폭풍이 와도 문제없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많은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심령이 강해지고 굳세어지는 것입니다.

 

충청도에 백로가 많이 사는 동네가 있는데 어느 TV 기자가 3년 동안에 걸쳐서 백로가 새끼를 키우고 연단시키는 것을 촬영하여 방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어미가 새끼를 까놓은 후에 먹이를 정성껏 물어다 먹여서 키우는데, 소나기가 오면 새끼들이 비 맞지 않게 품에 품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큰 다음에는 일부러 여러 날 굶긴답니다. 왜냐하면 몸에서 기름기와 살이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몸이 비둔하면 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먹이를 달라고 보채면 긴 주둥이로 쿡쿡 쪼아 주면서 내리 굶기다가 드디어 데리고 나가서 나는 연습을 시킨답니다. 만약 새끼들이 어미 말을 안듣고 등지를 뛰쳐나가 떨어지면 어미는 그 새끼를 냉정하게 거들떠보지도 않는답니다. 그래서 한번은 어떤 소년이 등지에서 뛰쳐나간 새끼를 주워다가 키웠는데, 결국 그것은 백로새 노릇을 못하고 한번 날아보지도 못한 채 뒤뚱거리며 살다가 죽고 말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우리가 견딜 만한 연단과 시련을 주시는데, 그것을 못참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원망 불평하고 주님의 품을 떠나면, 우리는 끝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와 축복을 못받는 것입니다. 어찌하든지 교회의 품, 하나님의 품안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는 어떠한 시련도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건케 하는 축복의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약 1:2-4에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농촌에서 여인들이 키에다 곡식을 까부를 때 보면, 흔들어 댈수록 알곡은 주인 품으로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고 쭉정이는 까불수록 밖으로 밖으로 나가다가 결국 떨어져 불태워지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새로 나온 신자들을 환영하면서 기도할 때 꼭 알곡 신자가 되고 천국에까지 들어가게 해달라고, 중도에 낙심해 떨어져 지옥불에 들어가는 자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찬송가 503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성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4. 죄성과 육성이 깨어지게 됩니다.

 

또한 고난과 시련을 통하여 우리는 육성이 깨어지면서 영을 좇게 되고 죄성이 깨어져 성결한 삶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보리쌀을 절구에 넣고 찧을수록 껍질이 벗겨지고 하얀 보리쌀이 되듯이, 우리를 고통과 연단의 절구에 넣고 찧으면 육성이 벗겨지고 죄성이 바스러져 나갑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을 주십니다.

 

특히 하나님은 지혜가 한량없어서 우리 각자의 성격과 형편에 따라서 적당한 방법으로 연단을 주십니다. 이사야 28:27-29에 보면 "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 향에는 수레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난 것이라 그의 묘략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성과 육성을 깨뜨리사 우리를 보다 더 의롭고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만들기 위해 시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달은 다윗은 시편 119:67에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했고, 시 119:71에서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실로 고난과 시련을 받을 때는 고통스럽고 쓰지만 그 후에 오는 열매는 너무도 달고 맛이 있습니다. 연단이 없이는 큰그릇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