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12(화)
기도에 대한 세 가지 의문 (마 7:7-12)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8).
기독교 역사는 기도의 역사라고 한 말대로 하나님의 뜻과 역사는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기 때문에 기도 생활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신학박사라 할지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바로 알 수가 없고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하나님이 능력있게 귀히 쓰신 종들은 모두 무릎꿇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도를 뜨겁게 하지 않는 교회는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기도에 관해서 몇 가지 의문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이에 여기서는 그 의문점들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왜 기도해야 주시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모르시는 것이 없고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시는데 왜 꼭 기도해야만 응답해 주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은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구하기 전에 그때 그때 주시지 왜 기도해야 주신다고 했으며, 찾아야만 찾게 해주시고, 문을 두드려야만 열어 주신다고 하셨겠습니까? 왜 문을 두드리기 전에 문을 활짝 열어 놓지 않으시고 꼭 두드려야 그것도 어떤 때는 지치도록 두드려야 문을 열어 주십니까? 약 4:2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꼭 기도해야만 하고 기도해야만 주시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그의 백성과 동역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곧 하나님의 일에 동역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무슨 일을 행하시길 원치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일이 우리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사 45:11에서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구하여 응답받을 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고 믿음이 더욱 성장하여 하나님의 일에 더욱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할 수도 있고 반역할 수도 있는 이 엄청난 자유의지는 인간에게만 주어졌습니다. 우주만물 해와 달, 별까지도 말씀 한마디로 지으셨으나 우리 사람만은 친히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생기(영)를 불어넣으시고 선악과를 따먹을 수도 있고 안 따먹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즉 컴퓨터나 로보트처럼 자기의 뜻은 없이 주인이 조작하고 입력하는 대로 작동하는 그런 존재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사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셨으며, 또한 그것을 기쁘게 여기십니다. 그런고로 아무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의지로 소원하고 간구하고 요청할 때 더욱 기쁘게 주시는 것입니다.
마 18:18 이하에 보면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부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 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너희 중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해서 우리의 뜻을 무시하고 구하지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일을 이루시고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간절하고 진실되게 구할 때 하나님은 기쁘게 응답하사 크고 비밀한 일을 나타내십니다. 더구나 한 사람의 뜻이 아니고 두 사람 이상 여러 사람이 뜻을 한데 묶어서 합심 기도하면 그 기도의 위력은 더 큰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뜻과 소원을 하나님께 올립시다. 그 소원이 뜨겁고 간절할수록 더 좋습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는 우리지만 그 뜻을 존중히 여기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과 교통(교제)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자주 찾아 뵙고 교제하며 의논하고 대화하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무슨 문제든지 그 앞에 가지고 와서 의논하고 교통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 1:18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흥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대화가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과 대화하지 않고 마귀와 대화하다가 그만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의 중요성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마지막 축도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축원했습니다. 요일 1:3에도 보면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고 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런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지려면 진실한 말을 해야 됩니다. 어린애가 부모님께 아뢰듯 솔직하게 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미사여구는 필요 없습니다. 죄가 있으면 보혈에 의지해서 자백하고 씻음 받아야 합니다(요일 1:9). 무엇인가를 달라는 기도뿐만 아니라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돌리는 대화를 깊이 오래할수록 하나님과의 접촉이 깊어질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요 참 믿음이 있다고 볼 수가 없습니다. 고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 자신과 깊이 교제하고 사랑과 믿음을 돈독히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기도에 응답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약속하기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고 하셨고 "믿고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고 말씀하셨는데, 왜 어떤 기도는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도 했고 믿고 간절히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시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첫째는, 정욕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약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했습니다. 가령 사업의 성공과 물질의 축복을 구하면서 그것으로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만족만을 얻을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겠습니까? 그럴 때는 안주는 것이 그에게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구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둘째는, 응답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고 난 후에 성급하게 그 응답을 기대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뜻과 판단대로 속히 응답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하십니다. 크래서 어떤 때는 몇 년이 지난 후에 기도가 응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육간에 보다 유익을 얻도록 그 응답의 때를 결정하시기에 우리의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음은 아직 그 응답의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에게는 최선을 다해 기도한 후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의지하며 그 때를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셋째는, 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접할 때 과거의 모든 죄를 주님의 보혈로 씻음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참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사람은 때때로 범죄하고 실수하는 일이 있어도 곧 회개 하기만 하면 영생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후라도 알고 지은 죄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반복해서 범죄 할 가능성이 있을 때는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죄에 대한 징계를 받으며 죄의 값을 치르게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죄를 짓고 죄의 값을 치러야 할 때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다윗은 죄의 값으로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에게서 낳은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일주일이나 베옷을 입고 금식했으나 소용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이미 죄로 인한 영원한 형벌은 받지 않게 되었지만, 순간 순간 범죄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 세상에서 죄의 값을 치러야 할 때가 있고 매를 맞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철저한 회개를 통해 그 죄의 문제들을 깨끗히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맞을만큼 매를 맞고 죄성과 육성이 깨질만큼 깨져야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 시고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시 66:18에 "우리가 우리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신 말씀을 잊지 마십시오.
넷째는, 낙심해서 기도를 멈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눅 18:1 이하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불의한 재판관과 한 과부의 간청하여 응답받는 예를 들어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응답이 늦어진다고 거절당한 것이 아니다"란 말이 있습니다. 끈질기게 간구하고 기도하면 마침내 응답을 받을텐데 쉽게 낙심하고 기도를 중단하기 때문에 응답 못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불응답이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응답 안해주는 것이 응답일 때가 있습니다. 가령 어린애가 아버지의 면도칼을 달라고 울어댈 때 아직 칼을 주면 안 될 때이므로 과자를 대신 주고 그 칼은 절대로 안줍니다. 안주는 것이 주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가령 물질을 많이 달라고 하는데, 물질 축복을 주면 그나마도 예수 안믿고 음란 방탕하다가 지옥 갈 것 같으면 안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하여 낙심하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불응답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최선의 응답일 수 있음을 깨닫고 그분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3. 왜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한가?
기도는 길을 가면서도 할 수 있고 눈을 뜨고 일하면서도 할 수 있고 묵상으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목소리를 높여서 부르짖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내 기도소리를 내 귀로 들을 수 있는 기도가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5분도 안가서 곧 잡념이 들거나 졸음이 옵니다.
성경에는 목소리를 내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이 수백번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조용히 묵상으로만 기도하시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고 했습니다. 렘 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능력있는 기도, 간절한 기도를 하다 보면 자연히 말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소리를 높여서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시 3:4;시 77:1;시 142:1).
특히 저는 부르짖는 자가 성령 충만받는 것을 수백 번 보아왔습니다. 소리내서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성령충만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은혜를 체험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목소리만 높여서 기도하는 벗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의 간절함과 확신이 넘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르짖는 기도야말로 하늘의 문을 여는 능력있는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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