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16(토)
말씀을 생활화 합시다! (마 7:15-29)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올 한해는 어떻게 살겠다 하고 다짐하며 어떤 이는 그 결심을 크게 써서 벽에 붙여 놓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연말에 가서는 후회하고 아쉬워하곤 합니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마음으로 한 자신의 결심을 생활 속에서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우리의 신앙 생활 속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즉 우리는 항상 말씀에 은혜받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만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아마 성도 여러분들은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각자 삶의 지표로 삼는 말씀들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이에 오늘은 그러한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그대로 실천되어 생활화되는 문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 생활화의 중요성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생활에 실현하고 실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비록 많이 알고 위대한 신학사상에 정통하고 또 설교를 멋지게 잘한다 할지라도 그 말씀을 생활화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혹 그런 사람이 훌륭한 설교를 하고 미사 여구로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움직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하는 사람은 참된 생명을 가진 사람이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깨어져서 회개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깨뜨려 회개시킬 수 있고, 또 자기 자신이 기도 생활에 힘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기도의 영감을 불어넣을 수가 있고, 하나님께 힘껏 바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능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바치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산다는 것, 말씀을 생활화하여 우리의 인격으로 나타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전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분이 옥스포드 출신이고 변호사이며 해박한 지식을 가진 박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며, 또 그의 위대한 사상, 위대한 웅변 때문도 아닙니다. 무엇인가 하면 바로 그의 위대한 생활 때문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의 경애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분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영국 여왕을 만나는 자리에도 물레질할 때 입던 무명옷과 맨발 그대로 가면서 '나의 백성이 고생을 하는데 내가 호화로운 차림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합니다. 이에 영국의 여왕도 경의를 표했다 합니다. 또 영국에서 어느 강연회를 마치고 난 후 돌아오려고 하는데 어느 치과 의사가 찾아와서 그의 형편없는 치아를 보고 가장 값진 상아로 틀니를 해 드리겠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대답하기를 '상아 이빨이 아니라 사기 이빨이라도 좋으니 내 백성 모두 한 후에라면 할 수 있어도 그렇지 않으면 안하겠다'고 했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의 삶의 모습이 열심있는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번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말씀은 경건하게 보이는 겉모양보다, 입으로 주여 주여 부르는 것보다도, 능력을 행사하는 것보다도 말씀의 생활화가 더 중요하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판가름이나 참 신자와 거짓 신자의 판가름이나 또는 천국에 들어갈 자와 못들어 갈 자의 판가름은 바로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든지 허물과 실수가 없는 완전한 교인만 구원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약해서 넘어질 때는 넘어지더라도 허물과 실수가 있더라도 진심으로 말씀을 믿고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느냐 아니면 말씀을 귀로 듣기만 하고 그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목사님들의 모임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령한 목사라고 다 믿음 좋은 자식을 둔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자식이란 겉을 낳지 속을 낳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록 깡패가 된 자식이라도 그에게 우리 아버지는 진짜 목사야 하는 인정을 받아야만 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그 목사는 삯꾼 목사이거나 거짓 선지자일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로 위대한 명성을 떨치고 훌륭한 설교를 한다 할지라도 그 자식들이 아버지를 믿어주지 않고 아버지 뒤를 따르는 아들이 하나도 없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교인은 네 가지 인정을 받아야 참 교인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하고, 둘째는 목사님께 인정받아야 하고, 셋째는 가까운 친구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넷째는 마귀에게 인정받아야 합니다(유혹해도 안 넘어가는 인정).
사실 늘 보고 같이 사는 가까운 식구에게 인정받는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한 우리 아버지나 우리 어머니는 진짜 크리스찬이야 하는 인정을 못받아도 안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화 하려는 사람, 진실하게 살려는 사람은 이런 인정을 받게 마련입니다.
특히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은 집을 지을 때 기초석을 깊이 파서 잘 놓은 것과 같아서 위에서 비가 내리고 옆에서 바람이 부딪치고 아래에서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과 같지만, 말씀을 듣기만 하고 형식적으로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환난와 시험이 올 때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 식량으로 먹는 고기 가운데 되새김질하고 갈라진 굽이 있는 짐승의 고기만 먹었다고 해서 오늘날도 돼지고기는 먹지 말라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던지는 성도가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의문에 속하는 법으로서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폐기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깊은 의미가 있는데 굽이 갈라졌다 하는 것은 구별된 생활을 의미하고 되새김 질 한다는 것은 소가 풀을 먹고 자꾸 씹고 씹어 되새김질할 때에 소화가 잘되어 살찌는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넘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 생활 속에 되새김해서 생활 속에 되살아나도록 해야 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많은데 그것을 일상 생활과 관련시켜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을 좇아 사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한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말씀을 생활화 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분명히 믿는다는 증거요, 생활을 통해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한다는 증거입니다.
2. 말씀의 생활화의 능력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단순히 사람의 입을 빌려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의 전달만으로는 인간을 구원할 수 없는 고로 말씀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그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이것이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들 역시 말씀을 생활화해서 그 말씀의 능력을 나타내는 역사를 이루어야 됩니다.
갈 2:20에 보면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읽으려 하지 않지만,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의 생활은 읽지 말라 하여도 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 노릇을 잘 해야 합니다. 우리들의 생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읽도록 말씀을 생활화하여 그 능력을 드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도, 위대한 신학 사상에 정통한 것보다도, 성경을 줄줄 외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보다도, 진정 생활 속에서 말씀으로 사는 자가 더 큰 능력을 가진 자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을 생활화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능력이 있을까요?
첫째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요 15:7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과 생활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기도해도 그 기도에는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능력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살고 행하는 자의 기도야말로 하늘 문을 여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살면서 외칠 때는 힘이 있고 권세가 있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본문인 마 7:29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가르치심에 놀라면서 말하기를 그 가르치심이 권세있는 자 같다고 하며 가르치기만 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서기관들과는 같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가르치기만 하고 스스로는 그 가르친 말씀을 생활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마치 반석 위에 세운 집이 위에서 비가 쏟아지고 옆에서 바람이 부딪치고 아래서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것 같이 말씀을 듣고 생활화하는 사람은 도중에 어떤 시험과 환난이 닥치더라도 낙심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요일 3:18에 보면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했고 약 2:26에서는 "영혼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우리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참된 신앙인이라면 말씀을 생활화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해야 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계 10:10에 보면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꿀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은 달콤하지만 이것을 소화해서 생활화하려면 쓰디쓰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그 쓴 것을 인내하며 생활 속에서 말씀을 실천할 때 그것은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우리의 영적 상태를 강건하게 할 것입니다.
설교를 잘하는 것보다, 성경을 줄줄 외우는 것보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도, 말씀을 듣고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이 성도에게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위대한 능력이 된다는 것을 진정으로 깨닫기 바랍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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