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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6장]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

JORC구원열차 2016. 6. 27. 13:20

[갈 6장]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

 

강 해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을 다라 살아가는 성도들의 생활 자세에 대해 구체적으로 교훈했습니다. 범죄한 자에 대한 대처 방법과 자신의 일에 대한 책임성에 대해 교훈하면서, 선을 행하여 영생을 거두는 성령의 법을 따라 살 것을 명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성도가 육체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만을 자랑하여야 함도 방조하고 있습니다.

 

1. 성도의 바람직한 태도

 

1) 범죄한 형제에 대한 자세

바울은 성도들에게 다른 사람의 범죄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교훈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범죄한 일에 대한 신령한 성도의 바른 자세는 온유한 심령으로 범죄자를 바로잡고 자신을 돌아보아 시험받을 것을 두려워하라고 명했습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범죄를 목격하게 될 때 함께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많이 있는데, 그것은 두 가지 면에서 나타납니다. 첫째는 범죄함을 보고 분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나기 쉬운 현상입니다. 물론 죄악을 보고 의로운 분을 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인간은 연약하여 스스로 교만해지기 쉬운 것입니다. 또한 연약한 자들은 범죄를 보고는 스스로 담대함을 얻어 범죄를 행함으로써 범죄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러한 두 가지 현상에 대해 경계시킨 것입니다.

신령한 것으로 분별함(고전2:13)

 

2) 서로 짐을 지는 삶

바울은 성도들에게 짐을 서로 질 것을 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방법을 교훈하였습니다. 사랑의 법을 좇는다고 해서 성도가 자신의 짐을 자신이 지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떠넘긴다면 이는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자신의 일을 감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줌으로써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있었으므로 바울이 경고의 교훈을 준 것입니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문제를 포함합니다. 성도는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보아 다른 성도들에게 부담 거리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성도는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다른 사람의 몫을 감당할 정도로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때에 신앙 공동체가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서로 돌아보라(빌2:4)

b. 연약한 자의 짐을 짐(롬15:1)

c. 사랑의 법(약2:8)

 

2. 성령을 위하여 심는 삶

 

1) 말씀을 가르치는 자에 대한 예우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하라고 명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사랑은 구체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표현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목회자에 대한 예우를 잘할 것을 명한 것입니다. 목회자는 한 인간으로서 대우를 받는 멋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로서 성도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므로 이러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a. 배나 존경하라(딤전5:17)

b. 즐겁게 일하게 하라(히13:17)

 

2) 심는 대로 거두게 됨

바울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심는 데로 거두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임을 밝히면서 성령을 위하여 심을 것을 멸했습니다. 스스로를 속이고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결국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둘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는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는데, 이는 당장에는 열매가 없는 것같이 보일지라도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악독을 뿌리면 그대로 거둠(욥4:8)

 

3) 믿음의 가정들에 대한 선행

바울은 성도들에게 착한 일을 행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믿음의 가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자들로서 성도의 사랑을 받을 우선권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은 믿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들어오도록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a. 주께서 기억하시는 성도를 섬김(히6:10)

b. 공동체인 성도(고전12:25)

 

3. 마지막 권고와 인사

 

1)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바울

바울은 할례당은 그들의 육체를 자랑하나 자신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자랑함을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육체적으로도 누구보다 완벽한 자였지만 세상의 모든 자랑거리들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했는데, 이는 세상에 대하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그의 고백이 증거하여 줍니다. 옛 사람은 죽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받은 새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평강과 긍휼이 있을 것을 축원하였습니다.


a.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고전1:18)

b. 복음의 핵심(고전2:2)

 

2) 바울의 축원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흔적이 있음을 밝히면서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이는 자신을 괴롭게 함이 곧 그리스도를 괴롭게 하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바울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함이었기에 복음 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의 심령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하기를 축원함으로써 편지를 마쳤습니다.


a. 주께서 함께 하심(딤후4:22)

b. 하나님의 평강(빌4:7)

 

결 론

성도는 모든 생활 중에서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을 기억하여 바울의 교훈한 대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자랑을 삼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용개요

 

본장은 본서의 결론부로서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최후의 권면을 담고 있다. 일반적으로 바울 서신의 마지막 장은 가볍게 취급되어 왔다. 그 이유는 많은 학자들이 바울 서신의 서두 부분과 본론 부분에 언급된 사항들에 주된 관심을 두기 때문이며, 또한 서신을 마감하는 부분은 관례적 성격을 갖는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서신의 마지막 장은 이례적으로 바울의 다른 서신들에 비해 많은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것은 본장이 본서의 중심 부분과 분명한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5-6장에 부각되어 있는 바울의 권고를 요약한 단어이다. '성령'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삶의 양식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구체적 행위로 표현하게 만든다. 본장의 첫째 단락은 서로 짐을 지며 돕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있고(1-10절), 둘째 단락은 당시 율법주의자들에게 가장 큰 빌미가 되던 할례 문제에 대한 마지막 경계와 공식 인사(11-18절)가 기록되어 있다.

 

단어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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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절. 범죄한. 고의적으로 저지른 것이라기보다는 실수에 의한 과오를 일컫는데 바울은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바로잡아 주라고 권면한다.

5절. 자기의 짐. 성도 개개인에게 맡겨진 그리고 각자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성취해야하는 과업을 의미한다.

6절. 함께하라.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의 공동생활에서는 교육이 주축이나 종교적 도덕적 가르침 외에도 모든 좋은 것을 공유하고 물질적인 것까지 나누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8절. 썩어진 것. 원어 <fqoravn:프도란>은 '부패, 파멸'이라는 뜻으로 죄의 종이 되어서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의 마지막에 거둘 죽음을 가리킨다.

14절. 자랑할 것. 인간적인 교만에서 나온 자랑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바울의 자랑과 찬양을 의미한다.

15절. 새로 지으심을 받는 자. 원어 <ktivsi":크티시스>는 '세움, 창조, 영적 창도'라는 의미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며

(참조,고후5:17),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지음을 받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한다,

17절. 괴롭게. 원어 <kovpou":코푸스>는 매질 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피로를 의미하기도 하고 육체적 피로는 낳는 노동을 의미하기도 한다.

 

신학주제 - 중생의 의미.

 

중생에 대해서는 예수와 니고데모간의 대화 속에 잘 나타나 있다(참조, 요3:1-15). 하나님 나라에 관한 니고데모의 질문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는 말씀과 함께 우리들에게 누구든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으며, 그 거듭남이란 인간 경험의 한계를 초월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본장에서 거듭남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가 '새로운 창조'임을 시사하고 있다. 즉 허물과 죄로 죽고 하나님의 영의 일에 대하여는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 바로 중생이다. 세상에 갓 태어나는 아기가 자신의 출생과 관계하여 그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듯이 사람이 거듭나는 것도 인간 스스로는 할 수 없으며 다만 성령의 능력과 창조적인 활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참조, 딛3:5).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거듭남을 가리켜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던 것이다.

 

영적교훈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에는 많은 수고와 고난이 따르지만 거기에는 큰 기쁨이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범죄한 형제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 후 같이 무릎 꿇고 기도드릴 때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서로의 짐을 나눌 것을 가르쳐 주신다. 그러므로 선행의 길은 평탄하고 쉬운 길이 아니다. 자기를 온전히 내어놓아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정신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희생정신만으로 되어지는 선행은 단순한 도덕적 선행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선행을 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근거로 해서 자신을 계속 해서 내어 놓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끊임없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우리의 살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향기가 우러나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