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 3장] 하나님의 자녀들
강해
사귐에 대한 1장과 2장의 내용과는 달리 본장에서는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은 본장에서 하나님께로서 난 자를 특별히 강조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됨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
1) 하나님의 자녀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신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를 생각해 볼 것을 권하였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로 그분의 자녀로 일컬음을 얻게 되었다고 그는 증거하였습니다. 요한은 성도들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그분과 같은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줍니다. 그는 소망 중에 사는 성도들이 주님의 성결하심을 본받아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요한은 성도의 윤리적 생활을 강조하였습니다. 영생의 약속과 소망을 지닌 성도들은 그것을 누리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a.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음(요일4:9)
b.성도는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됨(골3:4)
2) 죄 없으신 그리스도
사도 요한은 죄를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이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없이하려고 나타나셨는데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지를 대신 지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위대한 성인이나 사상가, 정치가 등으로 생각되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분 은 우리의 죄를 위한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은 정확히 알려져야 하고 바른 믿음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우리의 죄악을 없애 주는 것으로 그의 사역을 마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새로운 성품, 즉 새 사람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a.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요1:29)
b.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심(요일1:7)
3) 범죄자는 마귀의 자녀임
사도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구세주일 뿐만 아니라 불의와 악에 대한 무서운 심판주도 되시는 분입니다. 인간은 거듭나기 전에는 자신과 하나님을 볼 수도 없습니다. 그는 이미 죄와 허물로 죽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으면 영원토록 저주 아래 있게 될 뿐입니다.
a.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함(약1:22)
b.죄를 범하는 자는 죄의 종임(요8:34)
2. 하나님께 속함
1) 하나님께로서 난 자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의 서신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난 참 성도의 특징을 열거했습니다. 성도들은 소극적으로 고의적인 죄를 범할 수 없는 본성을 지녔으며, 한발 더 나가 적극적으로 의를 행하는 특성을 지닌 것으로 사도 요한은 증거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성도들은 의를 행합니다(참조, 요일2:29).
a.죄에 대하여 죽은 자는 하나님께 속한 것임(롬6:2)
b.성도가 거듭난 것은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임(벧전1:23)
2) 의인과 악인
요한은 두 부류의 영적 인간을 본문 말씀에서 구분 짓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형제 사랑과 더불어 의를 행하는 것을 표징으로 삼는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귀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구별을 하면서 가인의 예를 들어 그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가인의 살인이 그의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교훈받습니다. 그가 동 생 아벨을 죽인 것은 자기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악한 행위는 악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a.아담과 하와 사이의 맏아들(창4:1)
b.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연고임(요일3:8)
3) 세상은 성도를 미워함
사도 요한은 세상의 속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미움이라는 것이며 그 미움의 대상은 곧 성도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세상이 성도들을 미워할 때 의아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또 그 마음에 같은 방법으로 대항치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일이며, 하늘에 상급을 쌓아 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세상으로부터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취급받고 있음을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a.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는 복이 있음(눅6:22)
b.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 증명될 수 있음(요일4:21)
3. 의와 계명을 지키라
1) 의를 실천하라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따르는 자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그만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하나님은 현실 세계에 나타나서 우리의 대접이나 사랑을 받으시지 않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회 내에서의 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물질로 가난한 자를 주의 이름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a.사랑엔 거짓이 없음(롬12:9)
b.부르심에 합당해야 함(엡4:1-2)
2) 진리에 속한 성도
요한은 성도가 진리에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속한 성도들은 그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가지게 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그 믿는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신념이나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주님과 인격적이며 윤리적인 교제 모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교제에서 얻어진 확신이 참된 신앙 확신입니다. 요한은 진리대로 행하는 성도들은 가책받을 것이 없다고 했으며 그 결과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게 된다고 했습니다.
a.진리에 속함으로 진리 되신 예수를 따름(요18:37)
b.확신 속에 거했던 사도 바울(딤후1:12)
3) 계명을 지킴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면 우리는 그분 안에 거하고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준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만이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참조, 요13:34-35). 계명을 지키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능력과 권세를 가질 수 있습니다.
a.계명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께로 난 자임(요일4:7)
b.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자의 안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계심(요일4:12)
결론
우리는 본장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성도는 자신의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서 그분의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진리에 속한 성도들은 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내용개요
신자들의 특권이 제시된다. 특권의 핵심 내용은 그리스도를 닮게 되리라는 보증이다(1-3절). 다음으로 죄가 불법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만 하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들의 삶에는 마음의 습관적인 태도라는 측면에서의 죄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귀의 자녀들과는 대조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올바른 행동을 하고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4-10절). 가인과 아벨을 대조시킴으로써 서로 사랑하는 것에 관하여 설명한다.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미움과는 대조적으로 사랑은 본질상 희생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행위 없는 신앙 고백은 잘못된 것이다(11-18절). 신자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누려야 한다. 만약 마음이 그를 정죄하지 않는다면 확신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자책이 있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위로를 주시겠지만 신자도 다시 사랑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19-24절).
단어해설
3절.깨끗하게 하느니라. '순결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본래 '예배 자격'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5절.나타내신 바 된. '계시하다, 보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신약에서는 속담에 담긴 비유의 숨은 뜻을 드러내는 것에 관계된다.
19절.굳세게 하리로다. 성실하고도 능동적인 자세를 가지고 형제를 사랑하면 진리, 즉 하나님께 속한 자녀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며 확신하게 될 것임을 나타낸다.
신학주제 - 사랑.
요한일서는 사랑의 신학이라고 할 만하다. 본서는 올바른 교리는 사랑으로 그 순수성이 입증되어야 하고, 또 진정한 사랑은 올바른 교리에 의해서만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다. 본서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틀어서도 사랑을 무엇이라고 정의한 적이 없다. 이것은 사랑이 추상적으로 정의될 수 없고 실제적인 행동으로만 정의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암시해 준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새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랑의 빛을 진자들이다(참조, 롬13:8).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만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이 사랑의 빚은 평생토록 갚아도 다 갚지 못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인생은 온통 사랑의 인생일 수밖에 없다. 바울 사도는 사랑을 예찬하면서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언했다(참조, 고전13:2). 사랑은 기독교 신앙체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다. 사랑은 철저한 자기희생을 통해서 완성된다. 사랑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죽음으로써 인류에 대한 사랑을 증거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적인 사랑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희생이 있어야 한다. 자기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의 모양은 있으나 사랑의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영적교훈
그리스도인들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재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말로는 형제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재물로 형제를 돕는 실천적인 모습이 없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를 보고서 말로만 배고프지 않게 밥도 먹고 춥지 않게 옷도 따뜻하게 입으라고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헛된 일이다. 가난한 자에게 밥을 주고 옷을 주는 실천적 행동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랑의 실천이 있다 할지라도 그 사랑의 실천이 자기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 사랑에는 진실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사랑에는 행함과 더불어 진실함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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