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과 - 통일 왕국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크게 통일왕국 시대와 분열왕국 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중 통일왕국 시대는 역사상 가장 번영한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는 사울 왕과 다윗 왕, 그리고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의 통치 기간을 포함한 주전 1095년에서 975년까지를 말합니다. 이 기간의 역사는 사무엘상하 및 열왕기상 1~11장에 기록되어 있고, 역대상하에도 일부 언급되어 있습니다.
사울 - 이스라엘의 초대 왕
우리들은 이미 통일왕국 시대가 시작되기 전, 수백 년 동안 사사들이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마지막 사사이자 가장 위대했던 인물이 사무엘 선지자입니다. 사무엘 선지자 때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웃 나라처럼 왕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무엘에게 와서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기뻐하지는 않으셨지만 그들의 원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울이라는 키가 보통 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큰 젊은이를 왕으로 세워주라고 사무엘에게 명령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미스바에 모여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책봉하였습니다. 그들은 ‘사울 왕 만세!’를 부르며 환성을 올렸습니다.
이때부터 사울은 40년간을 왕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통치를 매우 잘하였습니다. 이웃나라로부터 여러 번 침략을 받았지만 금방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웃나라인 암몬, 블레셋, 모압, 에돔과 기타 족속들이 침략해 올 때도 사울은 이스라엘 군인들의 선두에서 그 적들을 물리쳤습니다. 사울은 곧 백성 중에서 가장 영광을 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인기가 절정에 오르게 되자 그는 하나님의 겸손한 종이 되기보다 교만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도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처리했습니다. 아말렉 군대와 싸울 때도 하나님께서는 아말렉 군대를 치고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다 멸하라고 명하셨지만 사울은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삼상 15:22)는 말로써 사울을 책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서 버렸습니다.
사울이 얼마 동안 왕의 자리에는 앉아 있었으나,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은밀히 사울의 계승자로 다윗이라는 어린 목동을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이 다윗이야말로 성경에 나타난 많은 인물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기꺼이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도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역시 우리와 같이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때는 안타깝게 큰 죄를 짓기도 하였습니다.
사무엘한테 은밀히 기름 부음을 받은 후에 다윗은 사울로부터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사울의 심령이 괴로울 때마다 수금을 타서 위로하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매우 사랑하여 그로 하여금 자기의 병기를 간수하는 일을 맡아보도록 하였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다윗은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우연한 기회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의 공적으로 인하여 다윗은 백성들로부터 사울이 받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받았습니다. 그것을 본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여 다윗이 왕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고 트집을 잡아 그를 죽이려고 여러 가지 음모를 꾀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요나단은 다윗과의 깊은 우정 때문에 자기가 왕위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자기 아버지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었습니다. 요나단은 블레셋 군대와의 싸움터에서 불행히도 사울 왕과 함께 전사함으로써 다윗에게 왕이 될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다윗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사울이 죽자 다윗은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한편, 사울의 불쌍한 아들 이스보셋은 그 나머지 땅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7년 후 이스보셋의 통치는 무너지고 다윗 왕이 전 이스라엘을 통일하여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택하여 수도로 정하고 열방 중에서 가장 큰 나라로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열방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해서 나일강에서 유프라데스 강변까지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를 가리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시리라.”(행 13:22)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지은 시편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온전한 헌신을 잘 나타내 줍니다. 이와 같은 헌신은 그가 계속해서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했다는 특별한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항상 순종하기 전까지는 그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공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많았지만 그도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우리아 장군의 아내 밧세바와 불의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어떤 이야기에서는 밧세바가 요부형이기 때문에 먼저 다윗을 꾀었다고 하지만 성경은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비밀스런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로 보내어 죽게 하고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선지자인 나단을 보내서 작은 암양의 비유를 들어 다윗을 책망케 하셨습니다(삼하 12장).
결과적으로 다윗은 회개 하였으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압살롬은 이복형제 암논을 살해하였습니다. 동시에 다윗 왕에게 반기를 들고일어나서 왕의 자리까지 뺏으려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얼마동안 피신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의 다른 아들 아도니아가 다윗이 가장 신임하는 요압 장군의 도움을 받아 어지러운 왕국을 바로 잡기는 했지만 이것도 결국 다윗 왕을 배신하는 행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악한 아들들의 손에 왕국이 넘어 가기 바로 직전 다윗의 임종이 다가왔습니다. 다윗은 서로 물어뜯으며 싸우는 아들들에게 지쳐서 평화를 사랑하는 솔로몬에게 왕국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 왕의 통치는 40년으로 끝을 맺게 됩니다.
솔로몬 - 지혜에서 우상숭배까지
솔로몬 왕의 통치는 그 아버지의 통치와는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다윗 왕이 통치하는 동안에는 언제나 전쟁이 계속되었지만 솔로몬 왕의 통치 기간에는 평화가 지속되었습니다. 솔로몬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귀와 영화를 구하는 대신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세 가지를 다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대대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3,000개의 잠언을 남겼습니다. 1,005개의 시가를 썼습니다. 이러한 그의 지혜는 세 권의 책으로 성경에 남아 있습니다. 이 책들은 다음에 공부하게 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스라엘의 힘을 온 세상에 과시한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업적은 그와 같은 것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때까지 백성들은 장막 안에서 예배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이야말로 역사상 어떤 건물로도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7년 반에 걸쳐 183,000명이 동원되어 완공하였습니다.
솔로몬의 헤아릴 수 없는 부귀는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400개의 병거와 12,000명의 마병을 거느릴 만큼 많은 재산을 소유하였습니다. 시바 여왕이 솔로몬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가 솔로몬의 지혜와 그 부를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목도한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나의 들은 소문에 지나도다.”(왕상 10:7)
그러나 솔로몬의 거대한 부귀는 결과적으로 불행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온갖 종류의 쾌락을 맛보았습니다.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도 더욱 나쁜 것은 우상숭배를 했다는 점입니다. 즉, 솔로몬이 취한 여자들의 대부분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들의 마음에 들도록 우상숭배를 허락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자기가 향락을 누리는 비용을 백성들로부터 착취하였습니다. 세금을 몇 배씩 과중하게 부과 시켰습니다. 이런 일들은 백성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혜와 부로 시작된 그의 통치가 술과 여자와 노래로 끝날 무렵에는 그 자신도 환멸을 느꼈고 매우 불행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위대했던 왕국에 분열의 씨를 심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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