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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일반 30강 (제11과)-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생활

JORC구원열차 2009. 2. 20. 00:33

제 11 과 - 예수 그리스도의 전도생활

 

예수님께서 친히 전도생활을 하신 기간은 약 3년 반밖에 안됩니다. 이 기간에 그는 팔레스틴 전 지역을 다니시면서 이적을 행하시고 새롭게 사는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공생애가 끝날 무렵엔 붙잡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갈보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장에서 예수님이 가버나움을 전도의 중심지로 삼고 일하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곧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북방 갈릴리 가버나움을 떠나서 남방 유다의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는 동안 성전에서 돈 바꾸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니고데모와 함께 사람이 거듭나는 것에 관한 유명한 대담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해 갈릴리로 돌아가는 길에 야곱의 우물이 있는 수가에 도착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물을 긷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와 오랜 시간을 이야기한 후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4)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 전도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 돌아오셔서 약 2년간 머무르며 생명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곳에 계시는 동안 한 번 팔레스틴을 떠나 베니기아에 간 적이 있으십니다. 아마 이것은 어렸을 때 애굽에서 돌아오신 후로 처음이자 마지막인 외국 여행일 것입니다. 갈릴리 전도 초기에 예수님은 고향인 나사렛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고향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고 그가 가르치시는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뒤 예수님은 갈리리에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먼 곳으로부터 그의 교훈을 듣기 위해, 혹은 병 고침을 받기위해 나아왔습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갈릴리 전도여행을 하는 동안 뒤따랐습니다.

 

이 여행 중에 가버나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산 위에서 마태복음 5, 6, 7장에 기록된 “산상설교”를 행하셨습니다.(마 5-7)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설교일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해질녘까지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 모여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행하여 그 많은 군중을 먹이신 적도 있습니다. 4천명을 비슷한 방법으로 먹이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떡을 얻어먹기 위해서 오기도 했지만 정말 영의 양식을 갈망하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에게 언제나 생명의 떡과 물을 주셨습니다. 어떤 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군중을 피해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신 적도 있었습니다. 군중들은 호숫가를 돌아서 예수님께로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그를 존경하여 따라 다니는 사람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다 미워하는 세리와 창기도 사랑하여 함께 식사도 하셨습니다. 물론 이 것 때문에 예수님은 많은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군중들이 비난할 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3명과 함께 변화산 위에서 기도를 하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변화되어 그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났고 옷도 희어졌습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가 세 사람을 위해 장막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순간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 17:5)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권위를 최상의 것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세나 그가 준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이 절대적임을 배우게 됩니다.

 

유대와 뵈레아 전도

 

갈릴리에서 2년간의 전도생활을 마친 후 예수님은 장막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셨습니다. 이전부터 바리새인들은(정치적, 종교적으로 지도급에 있는 유대인 그룹) 그에게 도전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여러 사람을 보내어 교묘히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가 너무 커서 쉽사리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예수님은 요단강을 건너서 뵈레아로 여행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예수님은 이곳과 유대 지방에서 가르치고 전도하셨습니다. 이 두 지방을 왕래하시면서 예수님은 그들의 목자인 당신이 세상을 떠날 때를 대비해 제자들을 훈련시키셨던 것입니다.

 

사도들

 

예수님께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그를 참으로 따르는 사람은 그의 제자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당신의 일을 계승할 사람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12사람을 택하여 사도로 삼으셨습니다. 사도란 사명을 갖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뒤에 우리는 예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그들 중에 베드로와 안드레, 세베데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각각 형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때때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다니기도 하셨습니다. 마태는 예전에는 세리였던 사람으로 후에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빌립, 바돌로메, 도마(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였던 사람),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열심당원이라고 불린 시몬과 야고보의 동생 유다, 그리고 예수를 판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12제자 중 대부분은 갈릴리의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적을 목격하고 그의 가르침을 들음으로써 제자로 훈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때에 따라 그들을 병자도 고치고 전도하도록 보내는 등 제자들이 유익한 경험을 갖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이적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을 등한시하고는 그의 생애를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은 그의 가르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성을 보여 주는 이적에도 있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친히 행한 이적이 35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이적을 행하셨을 것입니다. 35번 중에서 17번은 육체적인 병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소경을 눈뜨게 하고, 백부장의 하인을 열병에서 건지고, 나면서부터 귀머거리에 장님인 사람을 듣고 말하게 하는 등의 이적을 말합니다. 6번은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고침을 받은 이적입니다. 3번은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그리고 예수님의 좋은 친구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입니다. 그리스도는 또한 9번이나 자연을 정복하는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4천명과 5천명을 먹이시고, 갈릴리 바다 위를 건너심과 바람을 잔잔케 하신 것 등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좋게 하기 위해서만 이적을 행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기의 가르침을 믿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하기 위해서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가 병든 사람을 고칠 때에는 그 즉시로 사람을 고치신 것이지 결코 오늘날과 같이 일주일이나 한 달이란 시간이 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그들의 신앙을 보고 고쳐주신 것도 아닙니다. 나사로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 그가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믿음으로 병 고친다는 자들이 정말로 이적을 행한다면 그 병자의 믿음이 어떠하든지 이적을 행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12제자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

 

신약 성경은 오순절 날 교회가 세워질 때 모든 제자들이 함께 있었던 일 이후에 대해서는 많이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첫 번째 큰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진 후에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행 8:1). 사도행전은 팔레스틴에서의 베드로와 그의 동역자 요한의 초기 전도 행적에 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배신자 유다는 목메어 자살했습니다. 이 외에 성경에서 다른 제자의 죽음에 대해 기록된 것은 오직 주후 44년에 헤롯에 의해 순교 당한 야고보의 이야기뿐입니다(행 12:2). 역사가 유세비우스는 제자들이 온 땅에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자들이 순교 당했다고 여겨집니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많은 세월을 보낸 후 말년에 밧모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였으며, 1세기 말에 자연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