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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일반 30강 (제10과)-예수 그리스도

JORC구원열차 2009. 2. 19. 00:35

제 10 과 - 예수 그리스도

 

이제 우리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삶을 산 분의 생애를 공부합니다. 그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인간인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가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동안의 이야기는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는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입니다. 성경 첫 책인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하여 땅의 모든 민족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이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입니다. 앞 장에서 우리는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장차 오실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였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더 나아가 신약 전체도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교훈, 그리고 그의 교회에 대해 증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복음서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를 각기 네 명의 저자들의 위치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사실이 유일하게 기록된 복음서도 있고 같은 사건이 여러 복음서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을 즐겨 인용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행하신 업적에 더 치중하였습니다. 누가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 예수님의 자비를 묘사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것은 요한복음 20:31에서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고 기록한데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세례요한

 

예수님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 예수님보다 미리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친척이자 예수님께 세례를 준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도요한과 혼동하지 않기 위해 그를 항상 세례요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그를 세례요한이라고 부르는 중요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먼저 왔습니다. 이사야는 세례요한이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마 3:3).

 

그는 보통 사람과는 좀 달랐습니다.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전도했고 설교를 들으러 나오는 사람들을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는 대중 앞에서 자기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자기 뒤에 장차 올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죄를 책망하는데 용감했고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 하도록 설교했습니다. 예수님께 세례를 준 후에 그는 예수님이 친히 일하시도록 자기의 모든 권위와 일들을 삼가고 물러섰다가 헤롯에 의해 감옥에 갇혀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세례요한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요한 보다 큰 이가 없다.”(마 11: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교회는 세례요한에 의해 세워진 것이 아니라 세상의 구세주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선재(先在)하심

 

하나님의 아들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4~17을 통하여 우리는 말씀이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요 1:14-17).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고 말씀하실 때 그리스도는 그 창조의 자리에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그는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그의 탄생

 

예수님은 주전 4년에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서기 연대를 측정할 때에 착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4년의 오차가 생겼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동정녀였고 그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지니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음을 증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왕국은 다윗의 왕국과 같이 잠정적인 것이 아닌 영원한 왕국입니다.

 

이제 때가 차서 미가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 당시 로마의 황제는 전국에 호적령을 내렸습니다. 호적을 하려고 마리아와 요셉은 그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집마다 사람들로 가득 찼고 여관방마저 들어갈 곳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마구간에 묵게 되었습니다. 거기 가장 비천한 자리에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 강보에 싸여 말구유에 눕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어떻게 박사들이 별을 따라 베들레헴으로 왔으며, 어떻게 목자들이 어린 아기를 보러 왔는가를 잘 아실 것입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 근처에 왔을 때 헤롯왕에게 어디에 새 왕이 될 아기가 탄생했는가를 물어 보았습니다(성경에는 동방 박사가 3명이라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때 성경에 그리스도에 대하여 예언된(미 5:2) 말씀을 두려워한 헤롯왕은 어린 새 왕이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까봐 겁을 먹고 베들레헴 근처의 모든 마을에서 태어난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다 죽이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왕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요셉의 꿈을 통해서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하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

 

요셉과 그의 가족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 애굽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이 돌아올 때는 예수님이 태어난 유다 땅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갈릴리는 팔레스틴에서 가장 북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다는 남쪽에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그 중간에 놓여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 중의 대부분은 갈릴리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공생애 후기의 교훈은 요단강 너머 유다와 뵈레아 지역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12살 때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 가셨다는 이야기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찾아다닐 때 예수님은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모세 율법의 어려운 점에 관해 이야기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관해서는 그가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는 말씀 외에는 더 이상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그의 세례

 

삼십 세 되던 해에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죄가 없으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세례 주기를 주저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느니라.”(마 3:1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모범을 보여 주기 위함이지 결코 그가 죄가 있어서 죄사함을 얻으려고 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도행전 2:38에 보면 세례의 목적은 죄사함에 있다고 했습니다(행 2:38). 또,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하였습니다(마 3:16). 어떤 그림은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물을 떠서 뿌리는 모습으로 세례를 묘사했지만, 마태복음 3:16과 마가복음 1:10~11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는 침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라는 말씀이 이 사실을 잘 입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이 당신의 아들임을 분명하게 증명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10~11에 “물에서 올라오실쌔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막 1:10-11)

 

전도사업을 시작하심

 

세례를 받으신 후 예수님은 광야로 기도하러 나가셨습니다. 그곳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금식이 끝나갈 무렵에 예수님은 사탄에게 여러 가지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험에 지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한 번도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를 위해 흠 없는 희생제물이 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