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레위기 2 - 1~7장(제사법)

JORC구원열차 2009. 6. 9. 11:22

1. 레 1-7장 / 제사법

 

히브리서 10장 1-14절은 구약의 각종 제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명백히 밝힌다. 다섯 가지 이 특별한 제사는 구세주의 인격과 사역에 관한 여러 가지 면들을 예증하는 것이다.

 

1. 번제-그리스도의 완전한 헌신 (레 1장)

 

이 제물은 떼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일 년된 흠없는 수컷이어야 했다. 제물을 성막 문으로 데리고 가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제사는 한 장소에서만 드려지기 때문이었다(레 17장 참조).

 

예배자는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짐승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자기의 죄와 죄책을 짐승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예배자는 성막의 문에서 짐승을 죽이고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서 놋단의 주위에 뿌렸다. 다음으로 제물은 가죽이 벗겨지고(가죽은 제사장에게 드림), 각을 떠서 제단에서 완전히 불살랐다. “그 전부를 단 위에”가 여기서 중심 구절이다. 제물 전체를 불로 태워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이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헌납하는 것을 상징한다. “오 주님, 제가 당신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히 10:10/요 10:17/롬 5:19 참조). 레위기 6장 8-13절에 보면 제사장은 매일 아침 제일 먼저 번제를 드려서 그날의 다른 제사들이 번제의 기반 위에 드려지도록 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로마서 12장 1-2절은 그리스도인이 살아 있는 제물로 자신을 드리라고 교훈한다. 이 말은 곧 살아 있는 번제, 하나님께 전체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제사장들이 “계속 번제“를 드리게 되는 것같이(6:12-13)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께 계속 헌신된 상태로 지내야 할 것이다.

 

2. 소제-그리스도의 완전하심 (레 2장)

 

“고기”란 단어는 “식사”를 뜻하므로 이 제사에는 피가 관여되지 않는다. 좋은 가루, 가루로 구운 과자 또는 말린 옥수수 열매인 것 같다.

 

좋은 가루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성품과 생애를 말해 준다. 그에게는 거칠거나 변덕스러운 점은 없었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 사용이 이중적이었던 점에 유의하자. 4절의 “섞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영으로 나셨음을 상기시키며, 6절의 “붓다”는 것은 그의 사역을 위해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으심을 말한다.

 

향료는 이 제사에 놀라운 향기를 더해 주었으며 그리스도의 완전하신 지상 사역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예증하는 것이다. 제사는 불을 거쳐야 했는데 그리스도께서 갈보리의 고난을 견디셨던 것과 같다. 언제나 소금이 있어야 했는데(13절) 이는 순전성과 썩지 않음을 상징한다. 그리스도에게는 어떠한 죄악도 없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죄를 상징하는 누룩이 사용되지 않았다(고전 5:6-8/막 8:15). 왜냐하면 그리스도에게는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꿀도 없었는데 꿀은 자연이 제공하는 가장 달콤한 것이다. 그리스도에게는 “인간적인 본성의 달콤함”은 없었다. 그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의 사랑이셨다.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므로 우리는 균형있고 향기로우며 순전하신 그를 더욱더 닮아갈 것이다.

 

3. 화목제-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 (레 3장)

 

제사의 절차는 대략 비슷하나 다만 예배자가 제물의 몇몇 부분을 되돌려 받아먹는다. 가장 좋은 부분은 하나님께 드리고(3-5절), 나머지는 7장 11-21절에 기록된 규정대로 예배자가 먹는다. 이것은 즐거운 잔치가 되어야 하는데 예배자와 여호와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는 죄의 짐이 옮겨졌다는 뜻이기도 하다(엡 2:14/엡 2:17/골 1:20 참조).

 

또한 레위기 7장 28-34절에서 제사장은 가슴 부분을 취하고, 예배자는 어깨 부분을 가지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이 강건해지려면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레위기 17장 1-9절은 이스라엘 사람이 짐승을 도살했을 때는 언제나 화목제처럼 되어야 했음을 보여 준다. 우리가 식사를 할 때마다 화목제로 여기며 하나님과 또한 서로 간에 교통하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죄 문제가 단번에 모두 해결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피가 요구되었다.

 

4. 속죄제-우리 죄를 담당하신 그리스도 (레 4장)

 

고의적인 “훼방” 죄에 대한 제사는 없었지만 부지중에 지은 죄를 위해서는 대책이 있었다. 피가 휘장 앞에 뿌려지고 향단 뿔에 칠해지는 것을 유의해서 보자(6, 7절). 이것은 죄의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3-12절에는 제사장의 죄에 대한 규정이 나오고 13-21절에는 온 회중의 죄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 두 경우에 대해 똑같은 제물을 요구하고 있음에 유의하자.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제사장의 죄는 곧 전체 국가의 죄와도 같은 것이었다.

 

22-26절에 보면 통치자들에 대한 규율이 나오고, 27-35절에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규율이 나온다. 결국 제물은 그 나라 사람들의 신분과 책임에 따라 달랐다.

 

제물이 놋단에서 불살라지지 않고 진 밖으로 옮겨져 깨끗한 장소에서 불살라졌음을 눈여겨 보자. 이것은 히브리서 13장 1-13절을 상기시키며, 여기에 보면 그리스도는 “영문 밖에서”십자가에 달리셨고 그가 구원하려고 오신 그 민족에게 거절을 당하셨다. 속죄제에 해당되는 신약의 구절인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음을 말해 준다(벧전 2:24 참조).

 

아무리 가난한 범법자라도 속죄제를 드릴 수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5장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도 받으실 것이라고 되어 있다. 마리아와 요셉이 가져온 제물도 비둘기였으며(눅 2:24) 우리 주님의 가족이 가난했음을 보여 준다.

 

5. 속건죄-죄의 빚을 갚으신 그리스도 (레 5:1-6:7)

 

속죄제와 속건제는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사실상 이 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그리스도의 죽음의 양면성을 보여 준다. 속죄제는 인간의 본성에 입각하여 죄를 보는 것이며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는 것이다. 반면에, 속건죄는 개개의 죄악된 행위들에 강조를 두고 있다. 속건제에서는 범법자가 한 행동에 대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데 주목하자(5:16/6:4-5). 따라서 이 제사는 죄에는 값이 지불되며, 진실한 회개가 있는 곳에는 손해배상과 상환이 따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5장 14-19절은 하나님에 대한 죄악을 강조했고 6장 1-7절에는 인간에 대한 죄악을 강조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죄는 값을 지불해야 할 빚이라고 보았는데 이 빚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불된 것은 물론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성경에 기록된 제사의 순서이다. 하나님은 번제로부터 시작하시는데, 이것은 구속사업에 자신의 아들의 완전히 헌신함을 뜻하며 여기로부터 구원의 계획이 시작된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순서가 반대이다. 첫째로 우리는 여러 가지 죄악을 범한 자신을 보고 하나님과 인간에게 빚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것이 속건제이다. 그러나 계속 죄를 깨닫게 됨에 따라 우리는 본성적으로 죄성을 지닌 죄인임을 인정한다. 이것이 속죄제이다. 그 다음으로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시는데, 이는 십자가의 피로써 평화를 이룩하신 분이시다. 이것이 화목제이다. 우리가 은혜 안에서 자랄 때에 우리는 주님의 완전하심을 이해하는 자리에 이르며 “사랑받는 사람들로 영접 받는데” 이것이 소제이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결과로써 우리는 주님께 완전히 헌신하게 되는데 이것이 번제이다.

 

우리는 오늘날 여러 가지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할렐루야, 우리 구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