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사무엘상7 - 삼상 22~24장(망명주의 다윗)

JORC구원열차 2009. 6. 24. 15:52

6. 사무엘상 22-24장 / 망명중의 다윗

 

다윗은 이제 사울의 궁정에서는 완전히 분리되었으며 무법자요 반역자로 몰리게 되었다. 시편 34편은 아기스로부터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을 때 쓴 것으로, 아마도 다윗의 시련과 추방 기간 동안의 승리를 가장 잘 표현했을 것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19절).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계셨다.

 

1. 하나님이 다윗의 발걸음을 인도하심 (삼상 22장)

 

다윗은 아둘람동굴에서 충성된 추종자들의 무리를 소집하였는데 400명 쯤 되었으며 나중에는 600명이 되었다(23:13). 동굴에서의 경험은 시편 57과 142편에서 발견된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 하듯 형제들도 죽이고 싶어 할 것이었으므로 다윗은 그의 형제들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이 잡다한 사람들”은 도피처를 구하여 그리스도께 도망 온 환란당한 사람들, 죄로 인해 빚진 자들, 생활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을 예증한다. 다윗의 무리는 적었고 업신여김을 받았다. 그러나 왕국은 그들의 것이었다. 다윗은 부모들을 모압땅에서 보호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가족(룻의 후손들)은 그곳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다윗이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돌보는 데 얼마나 사려깊었던가!(요 19:26-27 참조)

 

다윗의 생애에 있어서 이 박해의 기간은 왕좌를 위한 준비 기간이 되었다. 그는 위대한 군인이었으나 인간을 의지하지 않는 법과 여호와를 의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광야에서 고난을 당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우리를 여호와께 더욱 가까이 인도하며 그를 섬기기에 더욱 적합하게 되기 위하여 광야의 시험이 필요하다. 사울이 다윗을 박해한 것은 육신과 영 사이의 대결을 예증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사단이 오늘날 교회를 박해하는 것을 상징한다. 사울은 왕이 아니었으나 다스리고 있었고, 다윗은 왕이었으나 아직 보좌에 오르지 못하였다. 오늘날도 사단이 “다스리는 것”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왕이며, 어느 날 그는 그의 정당한 보좌를 차지하실 것이다.

 

사울이 놉땅에서 죄없는 제사장을 죽인 것은 사람이 한 번 여호와께 거절을 당하면 어느 정도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사울은 사단이 그러하듯 거짓말쟁이며 살인자였다(요 8:44). 도엑은 에서의 후손인 에돔사람이었다(창 25:30). 그래서 다윗과 제사장들에 대한 그의 증오는 에서와 야곱 사이의 전투의 또 다른 국면이다. 다윗이 놉에 있었다는 사실은 그 제사장들의 죽음을 초래했다. 그처럼 다윗의 계략은 비극을 초래했을 뿐이었다. 사울은 죄가 있는 아말렉(15장)을 죽이기는 꺼려했으면서도 무죄한 제사장을 죽이는 일은 문제로삼지도 않았다. 이 살육은 엘리의 가족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2:30-36 참조).

 

사울은 제사장들을 죽일 수는 있었으나 아비아달이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는 도구인 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로 도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자기의 뜻대로 결정했던 사울에게 에봇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아비아달은 나중에 다윗에게 도움을 주었다(23:9/30:7 참조).

 

2. 하나님이 다윗의 생애를 인도하심 (삼상 23장)

 

다윗이 살아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영광된 왕국을 세울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육신의 조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롬 1:3). 사단은 사울을 사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그에게 너무도 강한 상대였다. 다윗은 할 수 있는 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며 승리하게 하셨다.

 

1) 그일라에서의 승리(1-13절)-

블레셋은 다윗의 적이며 이스라엘의 적이었으므로 그가 블레셋과 싸우는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기대할 수가 있다. 사울의 증오가 너무도 강렬하였으므로 그는 다윗이 승전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치도 않았고 오히려 승리자와 직접 싸우겠다고 왔다! 그리고 그일라 사람들은 그들을 구원해 준 사람을 보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윗을 사울에게 넘겨주려고 하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와닿지 않는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사악한가!

 

2) 광야에서의 승리(14-18절)-

매일의 위험과 박해를 견디어야 하는 다윗은 얼마나 인내를 해야 했던가! 그는 능통한 전략가였으므로 사울을 패전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을 더 좋아하였다. 요나단이 광야에서 다윗을 만나(자기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으면서도) 그에게 확신을 주고 격려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말하기는 슬프지만 요나단은 다윗과 더불어 통치하도록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함께 전쟁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의로운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일이 흔히 있다.

 

3) 십 사람들(Ziphites)에 대한 승리(19-29절)-

십은 유다에 있었으며 그 주민들은 다윗에게 충성을 하는 것이 도리였으나 그들의 정당한 왕을 배반하고 사울에게 향하였다. 시편 54편을 읽고 하나님께 구원해 주실 것을 청하는 다윗의 기도를 보자. 다윗과 사울 사이에 돌이 놓여 있었으며(23:26),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과 애굽인들 사이에 구름이 끼어있는 것과 같다. 사울이 찾던 사람은 마침내 잡힐 것 같았다. 그러나 블레셋의 침략이 그를 집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물론 하나님께서 상황을 조절하고 계셨으며, 정확한 때에 자기의 사람을 구원하셨다.

 

3. 하나님이 다윗에게 은혜를 주심 (삼상 24장)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하나님은 다윗이 적에게 호의를 베풀도록 필요한 은혜를 주셨는데 이것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것보다 훨씬 위대한 일이었다. 사울의 신하들은 다윗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였으며 사울에게 다윗이 그를 죽이려 한다고 말하였다(24:9). 만일 시편 7편이 이 사건에 적합한 것이라면(그렇게 믿는 성경학자들이 많다) 베냐민 사람 구시는 거짓말쟁이의 우두머리였다. 이 사건은 다윗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울과 지도자들에게 입증할 기회가 되었다. 비록 왕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 있었지만 다윗은 그의 왕을 존중하였다.

 

1) 유혹(1-7절)-

사울은 휴식을 취하려고 동굴로 갔으며 긴장을 풀었다. 그리고 그는 들어올 때 겉옷을 벗어 놓은 듯하다. 그 동굴은 크고 매우 어두웠으므로 사울은 다윗과 그의 신하들이 바위에 숨어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윗은 발각되지 않고 사울의 옷자락을 베어낼 수가 있었다. 물론 이 일은 적을 죽일 놀라운 기회였던 것이 분명하다. 다윗의 추종자들 중에는 이러한 환경이 하나님께서 배정하신 기회임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4절).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환경을 시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다윗의 마음(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대단히 온유하였으므로 사울의 옷을 벤 경솔한 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개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사람에 대하여 적절한 존경을 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돌보시는 것을 기꺼워하였다(롬 12:19-21).

 

2) 해명(8-15절)-

다윗과 그의 신하들은 동굴 속에서 안전하였으며 사울의 신하들은 감히 그들에게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다윗은 걸어 나왔으며, 왕과 어느만큼 거리가 생기자 그에게 말했다. 사위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사울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다윗은 사울이 들은 말이 거짓말임을 설명하였고(9절), 다윗이 호의를 베풀지 않았더라면 동굴에서 그의 생명을 잃었을 것이라고 말했다(10-11절). 옷조각은 다윗이 진실을 말한다는 충분한 증거가 되었다.

 

“나는 벼룩이요, 죽은 개입니다. 나를 추적하는 것이 무슨 유익이 됩니까? 그러나 나는 당신을 죽이거나 해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내 싸움을 싸우시며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참으로 은혜로운 영을 주셨다! 오늘날 우리도 우리의 적들을 향해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3) 탄원(16-22절)-

자기보다 나은 사람 앞에 서 있을 때 사울이 얼마나 가련하였겠는가! 사울이 울며 자기의 죄를 시인하는 것은 순간적인 얄팍한 감정일 뿐이다. 이 같은 일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나 기뻐서 다윗의 친절을 인정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지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살려준 것이다. 그리고 사울은 자기의 가족에 대하여 우선적으로 관심이 있었으며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자기 가족을 죽이지 않을 것으로 추측했다. 20절은 사울의 마음이 사악함을 시사한다. 그는 다윗이 정당한 왕임을 시인하였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를 반대하였다.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를 거두어 가실 때 인간의 마음은 얼마나 사악해지는가!

 

다윗은 사울에게 한 그의 약속을 지켰으며, 사울이 죽은 후에는 사울의 명예조차 지켜 주었다. 이것은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한 아름다운 실증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친절을 보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블레셋을 정복하는 것보다도 더 큰 승리였다. 만일 우리가 여호와께 순종한다면 그가 보시기에 좋은 때에 적으로부터 우리를 돌보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