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사무엘상5 - 삼상 16~17장(다윗과 골리앗)

JORC구원열차 2009. 6. 24. 15:49

4. 사무엘상 16-17장 / 다윗과 골리앗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의 생애를 공부하는 데 들어섰다. 사울이 육신적인 생활의 상징이라면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신자의 영적인 생활을 상징한다.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이 다윗도 죄를 범한 것이 사실이지만 사울과는 달리 자기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구하였다. 이 부분에서는 다윗의 초기 생활을 그린 세 장면을 볼 수 있다.

 

1. 순종하는 아들 (삼상 16:1-13)

 

“내가 사울을 버렸노라.” 이 얼마나 숙연한 선언인가! 이러한 거절은 아직 백성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며 여전히 그 땅의 왕으로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이 하나님께 거절을 당하고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접을 받을 수 있으나,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다. 사울이 너무도 위험한 인물이었으므로 사무엘은 베들레헴을 방문하였을 때 그의 진노를 피하기 위하여 한 계획을 궁리해 내야만 했다. 사울의 맹렬한 시기심에 대해서는 22장 18-19절에 한 예가 나와 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도착하여 잔치에 그들을 초대했을 때 다윗은 그곳에 있지 않았고, 양을 돌보며 들에 있었다. 우리는 다윗의 순종과 겸손에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 가족의 막내”로서 미미한 위치에 있었으나, 그의 아버지와 여호와께 충실하였다.

 

다윗의 생애는 마태복음 25장 21절을 예증한다. 그는 종으로 시작하여 왕이 되었다. 몇 마리 양에 충성을 다하자 전체 나라를 물려받았다. 그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알았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기쁨을 주셨다.

 

이 사람과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와 비교해 보라. 그는 지도자로 출발하여 종이 되었고, 많은 것으로 출발하여 가난하게 끝내었으며 기쁨으로 출발하여 노예로 끝을 맺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은 성공을 위한 하나님의 비결을 요약해 주고 있으며 이것이 다윗의 생애를 통하여 증명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상기시켰을 때는 사무엘이 육신의 재능으로 인간을 평가하는 실수를 범하려는 순간이었다(잠 4:23 참조). 들에서 호출을 받고 다윗이 나타나자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처럼 검지 않았으며 피부가 희었고 머리칼은 붉었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헌신적인 마음은 놀랍도록 조화를 이루었다.

 

그는 여덟번째 아들이었으며 여덟이란 수는 새로운 출발의 수이다. 기름이 그에게 부어지자 하나님의 영의 특별한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으로부터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다윗이나 그의 가족은 그 날 있었던 기름부음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사무엘은 물론 적절한 때에 다윗에게 그것을 설명했을 것이다.

 

2. 겸손한 종 (삼상 16:14-23)

 

참으로 비극적인 대조이다. 성령이 다윗에게 임하였고 사울에게서는 떠났다. 하나님은 악령이 사울을 괴롭히도록 허락하셨고 그는 때때로 미친 사람 같았다(18:10/19:9 참조). 그의 이상한 행동 때문에 그의 종은 능숙한 악사를 초청하여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사울의 종들이 원인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고 증세를 치료하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음악은 사울의 죄악된 마음을 변화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왕은 그 후에 “기분이 좋아졌을”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평화였을 것이다. 종들은 사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권고했어야 마땅하다.

 

다윗은 바로 사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종들 중의 하나가 그를 추천하였다. 우리는 이미 다윗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선전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행하고 계셨다(잠 22:29/잠 18:16/벧전 5:6 참조).

 

너무도 많은 젊은이들이 오늘날 자신의 가정에서 사소한 일들로 자신을 먼저 입증해 보이지 못하고 영원한 곳으로 자신을 밀어 넣으려 한다. 다윗은 궁전으로 왔으며 즉각적으로 인기있는 사람이 되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택하셨음을 알았다면 그 젊은이를 즉각 살해했을 것은 물론이다. 사울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자 다윗을 박해하기 시작했으며 이스라엘의 광야에서 그를 추격하였다.

 

다윗은 계속적으로 궁정에 머물러 있지는 않았다. 17장 15절은 “그러나 다윗은 아버지의 양을 먹이기 위하여 사울을 떠나 돌아갔다”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필요할 때 궁정에 초청을 받았으나 가정에서의 자기의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얼마나 겸손한가! 재능있는 젊은이이며, 왕이 되도록 선택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양을 돌보며 종으로서 일하고 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3. 승리의 군사 (삼상 17장)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는 친숙한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위한 많은 실천적인 교훈을 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여러 종류의 거인들을 직면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러한 거인들을 정복할 수가 있다. 골리앗은 150파운드(약 68kg)의 무장을 한 10피트(약 3미터)는 되는 거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블레셋 사람”이었으며 더구나 그들의 위대한 챔피언이었다. 그는 무시무시하여 유대 군인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11절). 사울이 경건한 지도자였다면 신명기 20장을 주장하여 그의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나면 다른 사람들을 패망으로 인도해 갈 뿐이다.

 

다윗은 형제들의 양식을 가지고 도착하였으며 즉각적으로 그 거인의 도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자기의 형제들이 그를 꾸짖었으며 용기를 꺾으려 했음에 주목하자. 사단은 누구를 통해서나 “그것은 안 될 일이야”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사울조차도 “네가 능치 못하리라”(33절)고 하여 그를 단념시키려 하였다. 다윗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었으나 여호와의 힘으로는 어떤 적이라도 정복할 수가 있다(빌 4:13/엡 3:20-21 참조).

 

사울은 다윗에게 몇 가지 무기를 주려고 하였으나 다윗은 그것을 착용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였다. 사울이 누군가에게 승리하는 법을 말하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다윗은 자기 양들과 함께 목장에 있을 때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입증했었다. 그는 이제 그 능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공식적으로 전시하려는 것이다. 이 전체 이야기를 통하여 다윗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 주목해서 보자.

 

여기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대한 응답으로 승리를 주신다는 실제적인 교훈을 얻는다. 하나님은 사자와 곰으로 은밀히 다윗을 시험하셨으며 이제 거인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시험을 치루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개인적인 전쟁에서 충실하다면 하나님은 공식적인 시험들을 통하여 우리를 알게 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길에 닥치는 “작은 시험들”이 앞으로 반드시 닥쳐올 보다 큰 전쟁을 위한 준비임을 깨닫지 못하고 넘기는 경우가 너무도 많다.

 

다윗은 간단하고 하찮은 무기로서 물매와 다섯 개의 돌을 사용하였다(고전 1:27-28/고후 10:3-5 참조). 다윗은 기드온이 미약한 무기로써 어떻게 승리를 얻었는지 알고 있었으며, 기드온의 하나님이 죽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의 형제들의 비판이나 사울의 불신앙도 하나님이 승리를 주실 것을 믿는 다윗의 믿음을 막지는 못했다. 돌은 목표에 적중했다. 거인은 쓰러졌고, 다윗은 그 거인의 칼로 목을 베었다. 이 한 번의 승리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블레셋을 공격하여 그들의 진을 약탈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우리는 “정복자 이상의”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모형적인 교훈도 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훌륭한 모형이기 때문이다. 다윗이란 이름은 “사랑받는”이란 뜻인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다. 둘 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둘 다 형제들에게 거절을 당하였다. 물론 다윗이 왕이 된 후에는 형제들이 그를 영접하였으며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통치하시기 위해 다시 돌아오실 때에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과 같다.

 

다윗은 통치하도록 허락받기 오래 전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의 왕이지만 사단이 멸망하기까지는 통치하시지 않는 것과 같다. 사울 왕은 오늘날 현 시대의 사단을 모형으로 보여 준다. 왜냐하면 사울은 거절을 당하고 패전하였으나, 다윗이 보좌에 오를 때까지는 통치하도록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하도록 허락을 받았으나 어느 날 멸망할 것이다.

 

다윗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전쟁터로 보냄을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았다. 골리앗은 그 교만함과 능력에 있어서 사단을 예증한다(눅 11:14-23 참조). 사단은 자기의 소유(그의 지배 아래 있는 영혼들)를 지키는 강한 자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를 이기는 보다 강한 자이다. 그리스도는 사단의 왕국을 침략하여 사단의 권세를 이기고 그의 무기를 빼앗으셨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여 전리품을 나누고 계시다. 이것은 그 날 다윗이 한 일이다. 그는 강한 자를 이기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리품을 나누도록 하였다(52-54절).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승리로부터 싸움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울은 왜 자기 무기 관리인인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는지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그가 악령의 영향 아래 있었을 때, 다윗을 보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다른 원인은 다윗이 궁정에 있는 여러 종들 중의 하나였으므로 사울이 그들을 혼동하는 일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사울은 승리자에게 딸을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는 소년의 가족에 대해서 물어 보았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