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무엘하 7장 / 다윗 언약
본 장의 12, 16절은 주된 교훈을 요약하고 있다(“당신의 보좌... 그리고 당신의 씨”). 다윗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이 언약은 역대상 17장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이 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유대 민족에 대한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하나님은 자손과 땅과 전 민족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셨으나(창 15장), 다윗과의 언약에서는 약속된 메시야가 다윗의 혈통을 통하여(롬 1:4) 다윗의 보좌로부터 이스라엘의 왕국을 통치하게 될 것을 계시하셨다.
1. 고귀한 목적 (삼하 7:1-3)
망명의 날들과 위험은 끝났다. 다윗은 자기의 집에서 안식과 축복을 누리고 있었다. 왕은 선지자 나단과 교제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여호와의 일들을 논의하였다. 이 장면을 다니엘 4장 30절과 비교하라. 여기서 느부갓네살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대신 자기의 행한 일을 자랑하고 있다.
다윗은 항상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집에 대한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시 132편). 그리고 그의 소망은 법궤를 위하여 아름다운 집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나(대상 22:8), 다윗의 사랑은 인정하셨다. 왜냐하면 이 소원이 그의 마음에 있었기 때문이다(왕상 8:18). 나단은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이 밝히신 뜻을 알지 못했으며 다윗에게 권하여 그의 마음속에 있는 일을 행하라고 하였다. 다윗과 나단은 둘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하여 마음을 열어 놓고 있었으며 주께서 말씀하실 때는 듣고 순종하였다. 우리는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언제나 서로를 격려해야 마땅하며 서로 선한 일을 하도록 자극을 주어야 한다(히 10:24-25).
다윗은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집을 가장 귀한 것으로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더 그를 닮아가야 하겠다!
2. 놀라운 약속 (삼하 7:8-17)
나단은 “밤에” 말씀을 묵상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밤에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두울 때에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가 종종 있다!(창 15장, 하나님의 아브라함과의 언약) “주께서 밤에 나를 권고(방문)하시며”(시 17:3). 하나님은 나단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주셔서 왕에게 전하게 하셨으며, 이 메시지에는 다음의 사항들이 들어 있다.
1) 하나님의 은혜(5-10절)-
하나님은 이 민족이 애굽에서 나온 이후로 “천막집”에 거하셨으니 얼마나 은혜로우신가! 그는 애굽의 신들이 즐기는 정교한 성전을 요구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자신을 겸손케 하셨으며” 장막에 거하시어 백성들과 함께 여행하셨고 그들보다 앞서 가시며 길을 열어 놓으셨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말씀(그리스도)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taberna-cled)...”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또 다른 증거는 다윗을 대우하심에 있었다. 하나님은 목장으로부터 그를 부르셔서 보좌에 두셨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적들을 물리쳐 승리를 거두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축복의 장소로 인도하셨으며 다시는 이동치 않을 것이었다(10절/ 동사가 과거로 되어야 한다-“내가 약속했었던”).
2) 하나님의 목적(11-16절)-
“집”이란 단어가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즉 물질적인 집, 성전(13절)의 의미와 인간의 집안, 다윗의 가족(11, 16, 13, 25, 27, 29절)의 의미이다. 왕의 가족을 “집”이라고 부르는 것은 관습이었으며, 마치 영국에서 “윈저 가(家)”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다윗은 돌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를 원하였으나, 하나님은 왕족, 곧 그의 보좌에서 다스릴 가족으로서 다윗의 집을 창설하려고 하셨다.
이 언약의 개념들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중요하다. 우리는 우선 이 언약들 중의 일부가 다윗의 보좌를 계승한 솔로몬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대상 22:6-16 참조).
하나님은 그 가족 중의 다른 사람들이 사악한 음모들을 꾸몄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을 보좌에 앉혔다. 그리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아름다운 성전을 건설하도록 허락하셨다. 솔로몬과 그의 후손들이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지켜 그들을 징계하셨다(시 89:20-37 참조). 그러나 이 언약에 있는 어떤 사항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적용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보좌가 영원하리라고 말씀하신다(13절). 그리고 다윗의 집과 왕국이 영원할 것 또한 말씀하신다(16절).
우리는 오늘날 다윗의 후손들이 보좌에 앉아 있지 않음을 안다. 하나님은 그의 약속을 지키시지 않으셨는가? 하나님은 시편 83편 33-37절에서 다윗의 후손들을 징계할지라도 다윗과의 약속을 깨뜨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셨다.
이 약속의 궁극적인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 누가복음 1장 28-33절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보낸 메시지를 주의깊게 읽어보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다윗의 보좌와 왕국을 그리스도께 약속하신 것을 주목해 보자.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오늘날의 교회에 적용시킨다. 그러나 만일이 천사의 메시지의 남은 부분을 문자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보좌와 왕국을 어떻게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스가랴는 그리스도께서 조상들의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언급하였다(눅 1:68-75). 우리가 확신하기는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 동안에 다윗의 보좌에 앉아 통치하실 때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계 20:1-6).
구약 예언서들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왕국 약속들이 성취될 때도 그 때이다. 사도행전 15장 13-18절에서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권고하시기를 마치고 자기 이름으로 한 백성을 불러내신(교회) 후에 다윗의 집(장막)을 다시 세우실 것으로 이해했다.
3. 겸손한 기도 (삼하 7:18-29)
다윗은 나단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기도하러 갔으며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하시도록 하나님께 구한다(28-29절). 만일 우리가 교훈이나 설교를 들은 후에 “그 메시지를 가지고” 기도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이 얻을 수 있는 것일까!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풍성하게” 주시기를 즐겨하신다. 다윗은 지상적인 성전을 건설하도록 허락을 받고자 기도했으나, 하나님은 영원한 왕국을 그에게 약속하심으로 응답하셨다! 이러한 놀라운 은혜의 행위는 다윗으로 하여금 여호와 앞에 겸손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도 중에 왕은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찬양한다. 그는 이스라엘의 특권적인 지위를 깨닫고 있었다(22-24절).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시며 얼마나 위대한 일들을 이루셨던가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의 관심은 자기의 이름이 칭송을 받는 것이 아니었으며 여호와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는 것이었다(26절/ 빌 1:20-21). “주께서 말씀하셨으니 이제 그 약속들을 이루소서!”라고 다윗은 기도하였다. 아브라함처럼 다윗도 “약속하신 그 일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다”(롬 4:21).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집을 짓도록 허락지 않으신 것을 인하여 실망하였는가? 아니다! 누가 건설하느냐 하는 것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구약의 약속들과 하나님이 유대인과 맺으신 언약들을 해석함에 있어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두 가지 근본적인 부류의 견해가 있다.
(1)전천년설-그리스도께서 지상에서 1,000년간 통치하실 때에 구약 언약들이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고 믿는다.
(2)후천년설-이 예언들과 언약들을 오늘날 교회에 영적으로 적용시킨다.
전천년설을 믿는 연구자들이 이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보는 반면, 후천년설을 믿는 학자들은 “영적으로” 보기를 더 좋아한다. 이 두 가지 설은 모두 성경의 영감을 믿는다. 다만 차이점은 영감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후천년설의 주장자들을 영접하며 비록 성경의 진리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 해도 그들과 교제한다. 우리는 어떤 한 가지 해석을 교제의 시금석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전천년설의 관점을 더 좋아하며, 구약 예언들과 언약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이들이 교회가 아닌 이스라엘 민족에 적용되는 것을 더 지지한다.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 따라서, 그의 미래 왕국에 대한 약속들 또한 문자적으로 성취되지 않으리라는 근거가 없다. 우리가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들은 자기 눈에 좋은 대로 해석할 것이며, 결국에는 해석의 다양성으로 말미암아 대립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찰스 라이리, “오늘날의 세대주의”를 참조하라(Chatles Ryrie, Dispensationalism Today, Moo-dy Press,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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