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사무엘하5 - 삼하 11~12장(다윗의 죄와 회개)

JORC구원열차 2009. 6. 29. 00:05

5. 사무엘하 11-12장 / 다윗의 죄와 회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그러나 죄가 용납을 받은 일은 결코 없다. 오늘날 이른바 “생명의 진실”이란 책들과는 달리 성경은 사실을 언급하고 교훈을 그려내지만 상상에 머물러 있도록 허락하지는 않는다.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도 있으며”(엡 5:12), 본 장에 나오는 사건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는 마음과 정신으로 연구해야만 한다. “자신을 돌아보아 우리도 시험을 받을까 조심하라”(갈 6:1).

 

1. 다윗과 밧세바 (삼하 11:1-4)

 

고의적으로 이러한 죄를 범했던 다윗은 정열적인 청년이 아니라 중년에 들어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가 범죄하게 된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승리와 번영을 누린 후에 자신감을 얻었고, 전쟁터에 있어야 할 때 집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불순종하였을 뿐아니라 저녁 시간에 침상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또한 자신을 제어해야 할 때에 자기의 욕망을 자유롭게 풀어놓음으로써 자기관대에 빠지고, 눈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에 굴복하도록 부주의하였다(요일 2:16).

 

야고보서 1장 13-15절은 다윗의 경우를 완벽하게 묘사한다. 그의 욕망은 눈으로 봄으로써 활성화되었고 이를 제어하는 데에 실패하였으며, 욕망을 그의 마음에 상상력을 일으켰다. 그럼으로써, 그의 의지는 굴복되어 죄로 인도되어졌으며 그의 죄는 죽음으로 이끌어 갔다. 그는 마태복음 26장 41절에서 명령하신 대로 “깨어있어 기도하지 않았으며” 그의 “방황하는 눈”을 결정적으로 처리하지 못하였다(마 5:29/마 18:9- 이하).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하거나(출 20:14), 또는 밧세바가 누구의 딸이며 아내라는 점(3절)을 고려하여 유혹을 물리칠 수도 있었다(시험을 받는 것은 죄가 아니다). 사실, 그녀는 다윗의 가장 용맹한 장군 중의 한 사람의 아내였고(23:29) 또한 아히도벨의 손녀였다. 아히도벨은 후에 다윗에게 반역하고 압살롬의 수하에 가담하였다(23:34/삼하 16-17). 다윗에게는 이미 많은 아내들이 있었고, 하나님은 더 주실 수도 있었다(12:8). 이 경건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 헷사람 우리아의 문제로 인해 영원히 망쳐졌다(왕상 15:5). 물론, 그 여인이 이 죄에 동참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나, 다윗은 왕이요 거룩한 종으로서 더욱 문책을 받아야 한다.

 

2. 다윗과 우리아 (삼하 11:5-27)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야고보서 1장 15절은 경고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다윗의 경험에 있어서 얼마나 참된 말인가! 여호와를 불러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대신 왕은 그 남편을 불러오게 했으며 집으로 보내어 술수를 쓰려고 하였다. 이렇게 하면 죄를 감출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아는 그의 왕보다도 더 나은 사람이었으며 집으로 가기를 거절하였다!

 

1-2절에 나오는 다윗의 방종과 11절에 나오는 우리아의 훈련된 생활을 비교해 보라. 그의 계획이 실패하자 다윗은 새로운 속임수를 시도하였으며 그 사람을 술 취하게 하였다! 술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우리아는 술 취하지 않은 다윗보다 더욱 훈련된 면을 보여 주었다.

 

죄는 여전히 자라고 있었다. 다윗은 이 사람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취하기로 결심하였다. 요압은 협력하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이었다. 왜냐하면 이 일은 나중에 왕의 이점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우리아는 그 날에 자기의 죽음을 보장하는 편지를 가지고 갔다. 이 계획은 성공했으며 용감한 군인은 죽었다. 다윗은 “겉으로는 슬픈 척 꾸미다가” 곡하는 주간이 끝나기를 기다려 과부와 결혼하였다. 궁중에 있는 어떤 이들은 다윗이 밧세바를 이처럼 위로하는 것을 보고 높이 평가했을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달리 생각하셨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한다”(잠 28:13).

 

3. 다윗과 여호와 (삼하 12장)

 

1) 다윗의 고백(1-14절)-

적어도 일년은 지났으며 이 기간 동안 다윗은 죄를 숨기고 있었다. 시편 32편과 51편을 읽고 이 어려운 기간 동안에 다윗의 생활에 대한 설명을 알아보자. 그는 육체적으로 연약해지고 병이 들었다. 그는 기쁨을 잃었고 간증을 잃었으며, 그의 능력을 잃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일을 바르게 처리할 시간을 많이 주셨으나 자기의 죄를 숨기기를 고집하였다. 만일 그가 참된 회개로써 자신의 문제를 여호와께 가지고 나아갔다면 그 후의 일들은 달라졌을 것이다. 마침내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셨는데 축복의 말은 한 마디도 없고(7장) 다만 죄를 깨닫게 하는 메시지였다. 다른 사람의 죄를 깨우친다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나단은 두려움 없이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 아래 엎드리고 자신의 죄를 시인하라고 권고해야만 한다. 그는 나단을 죽일 수도 있었다. 나중에 다윗은 아들의 이름을 나단이라고 붙이기도 하였다(대상 3:5/눅 3:31).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가 “죽음을 낳는”(약 1:15) 일을 막을 수는 없으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용서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통치는 그 사람이 뿌린 씨를 거두게 하실 수밖에 없다(시 99:8 참조).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다윗은 선언하였다. 하나님은 이 선언을 받아들이셨다. 검이 다윗의 집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었다. 어린 젖먹이가 죽었고 압살롬은 다말을 범한 암논을 죽였으며(13장), 요압은 압살롬을 죽였고(18:9-17),

 

아도니야는 브나야에게 죽임을 당하였다(왕상 2:25). 네 배였다. 이런 시련들에다 첨부하여 다말은 무섭게 무너져버렸고 다윗의 아내들은 압살롬에게 부끄러운 취급을 당했다(12:11/16:20-23). 이에 압살롬의 반역이 더하여진다. 다윗은 한 순간의 육욕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값을 치르게 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육욕을 심고 똑같은 것을 거두었으며, 살인으로 심고 살인을 거두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2) 다윗의 통회(15-25절)-

즉각적으로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이 움직였으며 아이가 아프게 되고 나단은 그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14절). 그러나 다윗은 그 아이의 생명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는 그의 종들의 말을 듣지 않았으며, 그 주말에는 아이가 죽었다.

 

다윗의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결정을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했으며 이에 대하여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었다(요일 5:14-16). 그러나 우리는 아이와 어머니에 대한 다윗의 관심,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그의 믿음을 높이 평가한다. 우리는 또한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 것을 인정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아이가 천국에 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23절).

 

우리가 다윗의 죄와 이에 따른 모든 문제거리들을 소름이 끼치도록 싫어하지만 슬퍼하는 부모들에게 주는 놀라운 확신의 구절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 죽은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잘못임을 주목하라.

 

3) 다윗의 정복(26-31절)-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다윗이 집에 있으며 제멋대로 행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날 때쯤에 다윗은 그가 있어야 할 바른 위치인 전쟁터에 있으며, 그 민족을 승리로 인도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죄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기꺼이 사용하시는 것을 볼 때 격려가 된다. 그는 죄를 고백하였고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셨다. 이제 그는 주님을 위하여 다시금 싸울 수가 있었다. 신자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런데 이들이 과거에 살면서 죄를 고백한 후에도 자신을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시고 잊으신 죄들에 대한 기억들로 하나님의 백성을 흔들어 높기를 좋아한다.

 

24-25절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로 놀랍게 빛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밧세바를 택하여 다음 왕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솔로몬”이란 “평화”를 뜻하며, 여디디야란 뜻은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자”란 뜻이다. 하나님은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셨다. 왜냐하면 솔로몬은 22장 9절에서 다윗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였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우리 모두에게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경고가 되어야 마땅하다(고전 10:12).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주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다윗의 경우에서와 같이 우리의 욕망이 일하도록 버려두면 유혹을 정복할 수가 없다. 우리는 죄의 시작을 조심해서 알아차리고 우리의 상상력을 정결하도록 지켜야 한다. 바울은 우리를 죄악으로 이끌어가는 몸의 지체를 “죽음에 내어 주라”(억제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다(골 3장/ 롬 6장). 우리는 모두 “깨어 기도해야” 하며 결국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롬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