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레미야 1-35장 / 예레미야의 사역
예레미야 18-19장은 토기장이와 진흙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레미야가 유다에게 한 사역을 연구함에 있어 이 장들을 사용할 것이다. 18장에서 선지자가 토기장이의 집을 방문하여 진흙으로 빚는 것을 지켜보는 것에 주목하자.
19장에서 그는 완성된 그릇을 가져다가 힌놈 골짜기에서 부숴뜨린다. 첫 사건은 하나님의 은혜를 비유하며, 두번째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예증한다. 토기장이와 진흙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생애의 모습과,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비유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각 물체마다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1.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다
1) 인격-
우리의 삶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나 맹목적인 “운명”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 인격자, 즉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자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시며 우리의 삶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그는 토기장이시다(사 64:8 참조).
2) 능력-
진흙은 스스로 빚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안내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 위에 절대 주권을 행사하신다(6-10절). 우리는 그와 논쟁을 하거나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문의할 수 없다(롬 9:20-24 참조). 물론, 이 말은 하나님께 인간들의 죄나 민족들의 실패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3) 계획-
토기장이는 진흙에 대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미 완성된 생산품을 그의 마음에서 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완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롬 12:1-2/엡 2:10/빌 1:6). 우리는 그 완성된 생산품을 볼 수 없으나 하나님은 그 생애가 놀라울 것을 약속하신다(고전 2:9).
4) 인내-
토기장이는 인내심을 가지고 진흙으로 일을 하며 부드럽게 모양을 빚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지시하심에 있어서 인내하시며 그의 뜻을 성취하고자 하신다. 때때로 그는 부모, 교사, 동료 그리스도인, 우리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손을 빌려 우리의 모양을 빚는 일을 도우신다. 가치있는 생산품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하나님은 즐겨 기다리신다.
2. 인간은 진흙이다
물론 예레미야의 멧세지에서 진흙은 이스라엘 민족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것을 우리의 삶에 개인적으로 적용한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보물들을 담도록 하나님이 빚으시는 하나님의 그릇들이다(딤후 2:19-21/고후 4:7/행 3:15).
인간은 진흙으로 지어졌는데, 진흙이란 흙을 물과 섞은 것이다. 우리는 흙으로 되어 있다(시 103:14). 그러나 하나님의 영의 물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부어 주셨다. 진흙은 그 자체로는 그다지 큰 가치가 없다. 그러나 바른 목적을 위해 올바른 손으로 빚어질 때 위대한 것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생활에 잠재해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진흙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그 고분고분함에 있다. 만일 토기장이의 손에서 고분고분하지 못한다면 작품을 망쳐 놓게 될 것이다. 진흙은 스스로 빚을 수가 없으며 토기장이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스스로 만들어진”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다.
3. 인생은 녹로(회전대)이다
녹로(회전대)는 토기장이로 말미암아 신속히 돌아간다. 그리고 속도를 조절하는 이도 토기장이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삶은 우연이나 행운에 의해 조절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조절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환경들을 배정하시며, 그 환경은 또한 우리들을 빚게 된다.
어린 요셉을 애굽으로 가게 하여 왕과 같이 빚어지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우리는 생의 환경들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친절하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는 로마서 8장 28절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며,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 것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녹로에 관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크기가 아니라(어떤 사람들의 생은 다른 사람들의 생애보다 짧다) 그 중심이다. 녹로가 “중심이 잘 잡혀 있으면” 모든 것에 균형이 유지된다. 헌신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중심이 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시다(마 6:33).
4. 불순종은 망하게 하는 것이다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언제나 순복한다면 참으로 놀라운 일일 것이지만 일이 언제나 그렇게 되는 것만은 아니다. 선지자는 망쳐진 그릇을 보았다! 토기장이는 그 진흙을 던져 버리고 새로운 덩어리로 시작하려 할 것인가? 아니다. 그는 그 진흙으로 다시 만든다! 이것은 인간의 반역과, 은혜로 회복되는 것을 상징한다. 망쳐지는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 자기 자신의 방법을 유지하려고 할 때이다(18:11-12).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 밖에서 우리 자신의 계획을 세움으로써 우리의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완성된 생산품만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결코 불순종해서는 안 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인생에 대해 하나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 데에 은혜로우시며 “우리를 다시 만드시는 데에” 자비로우시다. 어떤 때는 우리를 굴복하게(고분고분하게)하시기 위하여 격렬한 징계를 사용하셔야만 하기도 한다. 그는 야곱의 삶에서 20년을 소비하셨으나 결국은 여호와께 유용한 그릇이 되었고, 하나님은 다윗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셨다.
진흙이 반항을 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럼으로써 시간과 아름다움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빚으시지만, 우리는 결코 전과 똑같을 수 없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용서에 관한 놀라운 약속이지만, 불순종해도 된다는 핑계가 될 수는 없다.
5. 시련은 용광로(토기장이의 가마)이다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용광로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으나 거기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어떠한 그릇이라도 용광로를 통과하기 전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열이 그릇에 힘과 미를 주며 유용성과 가치를 높인다. 인생은 반드시 용광로를 가지기 마련이다.
욥은 고통의 용광로를 거쳤으며(욥 23:10), 베드로전서 4장 12절 이하는 박해의 용광로에 대해서 말해 준다. 충성된 세 명의 히브리 청년들은 용광로를 통과하였으며 토기장이가 그들과 함께 불 가운데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단 3:19-25). 하나님은 그 용광로를 얼마나 뜨겁게 하셔야 하는지 알고 계시며, 우리가 견딜 수 있는 시련의 정도가 어느 만큼인지 알고 계신다(고전 10:13).
하나님의 용광로를 벗어나서 피하는 삶을 살아 온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고난을 감수해 온 사람들만큼 하나님의 은혜의 축복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길에 시련이 닥칠 때 우리는 토기장이에게 굴복하여야만 하며 그분이 그분의 방법을 사용하시도록 해야 한다.
6. 깨뜨림은 곧 심판이다.
19장 1-13절에서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에 헌신하였던 장소인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향하여 갔다. 유대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악한 죄들이 이 장소에서 범하여졌다(7:31). “힌놈의 아들”이란 이름은 히브리말로는 “게힌놈”인데, 결국 헬라어의 “게헨나”가 되었고, 이 말은 신약에서 지옥을 나타내는 말이다. 요시야왕은 이 우상의 산당을 예루살렘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바꾸어 버렸다(왕하 23:10).
이제 선지자는 완성된 토기를 가지고 가서 그 땅의 장로들 앞에 펼쳐 보이며 심판에 대해 설교한다. “너희는 하나님을 버렸으며 여기서 우상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여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이 골짜기가 도벳(불탐, 또는 오물)이라고 불리지 않고 학살의 골짜기라고 불리울 날이 곧 올 것이다. 심판이 유다에 임하고 있다!” 말을 마친 후 그는 그 토기를 깨뜨렸다. 이제 그 토기는 다시는 고쳐 쓸 수가 없게 되었다(10-11절).
민족이나 개인의 생활은 “돌아설 수 없는 지점”에까지 도달할 수가 있다. 진흙이 굳어지면 더이상 빚지 못한다. 생의 초기에 그리스도께 굴복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삼손은 굴복하기를 거절하였으므로 하나님은 그릇을 부숴야만 하셨다. “죽음에 이르는 죄가 있다”(요일 5:16)
하나님은 우리가 그릇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릇은 스스로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담고 받아들이며 나누어 준다. 우리는 그의 축복들을 받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모든 것은 우리가 유용하고 정결하며 비어 있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죄에서 분리되어 있으라고 경고하였다(딤후 2:19-21 참조). 우리가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가 없다. 주께서 우리가 높임을 받는 그릇이 되도록 도와주시며, 주인의 용도에 적합하게 해 주시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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