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예레미야3 - 렘 36장(성경의 영감)

JORC구원열차 2009. 7. 6. 22:06

2. 예레미야 36장 / 성경의 영감

 

극적인 본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서 왔으며 무슨 일을 하고, 인간은 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다룬다. 예레미야는 지난 20년 동안 설교를 해왔었다. 애굽이 막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여호야김왕의 대외정책은 파탄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바벨론이 어느 날엔가 유다를 포로로 잡아갈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만 그의 백성이 회개하는 것을 보게 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상황이 낙심스러워 보일 때라도 경건한 사람은 계속해서 사역을 하게 된다.

 

1. 말씀의 영감(1-4절)

 

지금까지 예레미야의 사역은 구두로 하는 것으로서 성전 뜰에서 설교를 했었고 타락한 민족을 일깨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메시지를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로 기록하기를 원하셨다. 17-18절에서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본다. 예레미야가 비서격인 바룩에게 말을 하면 그가 그것을 기록하였다. 바룩이 쓴 것은 하나님의 계시였으며 그 누구도 혼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진리들이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계시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진리들을 결코 발견할 수가 없다. 구약에는 거의 4,000번이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말이 나온다.

 

영감(inspiration)은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를 묘사하는 단어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라고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말한다. 이 말은 성경이 “하나님께서 입김을 불어 넣으신” 책이란 뜻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서 제조된 생산품이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말씀하신 것이다”(벧후 1:21). 인간들은 위대한 작가들에 대하여 “영감받은” 작품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세익스피어는 인간적인 감각으로 보아 그 위대함에 있어서 영감받은 작가였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성경처럼 하나님께 영감받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개성을 무시하거나 그들을 “로보트”로 만드신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각 성경의 저자들은 그 자신의 개성을 그 저작 속에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권위를 갖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성경을 신뢰할 수 있다.

 

2. 말씀의 선포(5-10절)

 

1절과 9절을 비교할 때 이 책을 기록하는 데 최소한 일 년은 걸렸으리라는 인상을 준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대항하여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기 위해 특별 금식 기간을 둘 것을 요청하였다. 왕은 그의 말년의 사건들에서 하나님이나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지만 이 요청을 수락하였다. 그 왕은 국가적인 “종교의식”은 따라 행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은 거절하는 오늘날의 정치적인 지도자들과 같았다.

 

바룩은 성전에 있는 금식하는 백성들에게 이 책을 읽어줌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예레미야는 갇혔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갇히지 않았다(딤후 2:9/살후 3:1-2 참조). 바룩이 이 일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예레미야는 인기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전파되고 가르쳐짐으로 인하여 퍼져나가도록 규정하였다. 성경 문헌과 배본을 위한 직분이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하나님께서 특별히 축복하시는 일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인간들이 죄를 깨우치도록 하는 데 사용하시며 정직한 회개로 그들을 인도하는 데, 또한 구원의 확신을 주시는 데 사용하신다(3절). 바룩은 하나님의 자비로부터 도망하려는 유다를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이미 사람들에게 임해 있기 때문에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요 3:36).

 

3. 말씀의 보존(11-32절)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이 각기 다른 것을 보는 일은 흥미롭다. 바룩이 서기관 그마랴의 방 앞쪽 성전에서 말씀을 읽을 때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참석하고 있었다. 미가야는 이 말씀에 감동을 받아 즉시로 나라의 지도자들과 이 말씀을 나누었다. 이들은 바룩을 데려오게 하였으며 그는 두 번째로 말씀을 읽었다. 지도자들은 이제 두려워하였으며(16절), 누군가 왕에게 전해야만 하였다.

 

여호야김은 애굽에게 무릎을 꿇어 왕좌를 받은 불경건한 사람이었다(왕하 23:31-24:7). 그는 하나님의 한 선지자 우리야를 벌써 죽인 터였다(렘 26:20-24). 그는 물론 예레미야에게도 호의적이지는 않았으나, 그는 겨울 궁전에서 편안히 앉아 읽는 소리를 듣는 일에는 동의하였다. 그는 마땅히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손히 하여 성전에 있어야만 하였다. 그에게 말씀이 필요한 때에 그에게 말씀을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우시다. 그러나 여후디가 책을 읽자 왕은 부주의하게도 그것을 조각내어 그의 화로에 연료로 사용하였다. 그의 눈에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빛이 없었다. 지도자들 중의 세 명이 간원하였으나(25절) 왕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말씀에 굴복하는 대신 그는 말씀에 항거하였으며, 예레미야와 바룩을 체포하여 죽이려 하였다.

 

불경건한 사람들은 세기를 거쳐 내려오며 성경을 공격했었다. 그러나 아직도 성경은 든든히 서 있다. 예레미야는 다시 그와 같은 것을 썼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으나 여호야김 왕은 흙으로 변한 지 오래이다. 죄를 사랑하는 사람은 성경을 미워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며 다가올 진노를 경고하기 때문이다. 주후 303년에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본들을 찾아내어 불태웠으며 그 기념비에 “그리스도인의 이름은 멸절된다!”고 새겨 놓았다.

 

20년 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로마의 공식적인 종교로 삼았으며 성경을 다시 사람들의 손에 돌려 주었다. 진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다고 하여 위클리프를 박해하였으며, 틴들(W. Tyndale)은 화형을 당하였지만 성경은 여전히 여기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을 보존하신다. “오 주여, 당신의 말씀은 영원토록 하늘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성경 위에 삶을 세우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곳에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예레미야는 새로운 사본을 썼으며 왕에 대한 특별한 심판을 첨부하였다. 여호야김은 말씀을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말씀이 그를 파괴하였다. 그는 비참한 죽음을 당할 것이며 보좌를 주장할 상속자를 남겨 두지 못할 것이었다(30절/ 렘 22:18-19).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아버지가 죽자 보좌를 차지하였으나 바벨론으로 포획되기 전 3개월간만 지속되었다(왕하 24:6-12). 바벨론은 유다를 사로잡으러 왔으며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대로였다. 예언의 성취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데에 대한 가장 큰 증거들 중의 하나이다.

 

4. 말씀의 위로 (렘 45장)

 

이 장에서는 36장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바룩의 반응을 기록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데 참여하였었으나 자기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숨을 곳을 찾아가야 했다. 그의 충성심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박해를 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나 실망이 컸겠는가!

 

의심할 나위없이 그는 재능있는 서기관이었으므로 왕을 보필하는 사람들 중의 누군가가 바룩에게 왕의 관리가 되도록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왕의 인기있는 서기관이 될 수 있을 텐데 예레미야와 같이 미움받는 설교자와 한 패가 되는가?” 이것은 굉장한 유혹이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아셨으며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이 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너는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라고 하나님은 바룩에게 물으셨다. “그것들을 구하지 말라! 유다의 땅은 미래가 없다. 바벨론이 와서 성읍과 땅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바룩이 왕과 함께 있을 “평안한 위치”를 얻고자 예레미야와 말씀을 버렸다면 모든 것을 잃었을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이 그의 생명을 보호하셨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그를 사용하셨다.

 

오늘날과 같이 반대와 박해의 시대에 말씀의 편에 참되게 서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갔고”(딤후 4:10). 예레미야와 바룩같이 바울은 말씀으로 인하여 박해와 고난을 당하였으나(딤후 2:8-9) 그는 생명의 종말에 이르러 “내가 믿음을 지켜”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은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선반에 두는가(36:20)? 성경의 “현대 비평가들”처럼 조각조각 찢고 있는가? 당신은 성경을 폐지하려하고 있는가? 아니면 성경에 머리를 숙이고 그 진리에 순종하고 있는가?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시 119:128).

 

이어서 핵심 성경 연구 <예레미야 애가 편>이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