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구약

소선지서3 - 아모스(나라들의 죄)

JORC구원열차 2009. 7. 9. 10:23

3. 아모스 / 나라들의 죄

 

때는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25년 전이다. 이제 우리는 여로보암 2세가 그의 개인적인 예배당을 가지고 있던 벧엘 성읍을 방문해 보려 한다. 아마샤가 그의 제사장이다. 이 민족은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으며 사실상 사치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감동적인 예배가 막 시작되려 하고 있으며, 아마샤가 집전하고 있다. 이 때, 우리는 예배당 밖에서 소동이 이는 것을 듣는다. “시온에 안온히 거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도다!”라고 외치는 소리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악한 민족에게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밖으로 달려 나가면 드고아 출신의 아모스라는 촌뜨기 “옥외 전도자”를 보게 된다(“아모스”는 “짐”이란 뜻임). 그는 전문적인 의미의 선지자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의 아버지는 선지자가 아니었으며 그 자신도 선지자의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7:10-17).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며 심판이 이스라엘에 임하고 있다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여러 번 포로 생활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5:5/5:27/6:7/7:3/7:17). 이제 잠깐 멈추어서 이 양치기 농군의 말에 귀를 기울여 그가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도록 하자.

 

1. 그는 주위를 둘러본다 (암 1-2장)

 

아모스는 나라들을 둘러보며 여덟 가지 심판을 알리는 일로 시작한다. 2절은 여호와께서 부르짖는다고 명백히 말하고 있다. 마치 먹이를 잡으려고 도약하는 사자와 같은 형상이다(3:8 참조). 아모스는 수리아(다메섹)에서부터 시작하며(1:3-5) 그들이 전쟁에서 무섭도록 잔인한 것에 대하여 고발한다. 다음으로는 블레셋(가사/ 1:6-8)을 지적하며 노예에 대한 죄로 그들을 정죄한다. 다음은 두로(1:9-10)인데, 이들 역시 잔인한 노예제도로 인하여 판단을 받고 있다. 이스라엘의 옛 적 에돔은 동점심을 보이지 않고 계속 증오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음으로 인하여 고발을 당한다(1:11-12). 암몬은 씁쓸해하는 잔혹성과 이기적인 탐욕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 있다(1:13-15). 모압은 에돔에 대하여 잔인한 것을 인하여(2:1-3), 유다는 하나님의 법을 거절한 것에 대하여(2:4-5) 고발을 당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벧엘에서 아모스가 그들의 이웃들을 정죄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기뻤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의 민족적인 적들에게 심판이 이를 때에 우리가 기뻐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아모스는 여기서 중단하지 않았다. 8번째 심판은 이스라엘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2장 6-16절에서 선지자는 이 백성의 죄를 일일이 지적하고 있다. 뇌물중수, 탐욕, 간음, 부도덕, 이기심, 감사하지 않음, 술취함(나실인까지도 술을 마시도록 강압한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항하는 것 등이다. 아모스는 “나는 이 죄의 짐 아래 눌려 있다”(“아모스”라는 이름은 “짐”이란 뜻이다)라고 외친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악한 민족을 어찌 용서하실 수가 있으신가? 우리는 과거의 이 나라들을 정죄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나라와 우리 자신의 마음을 검토하는 편이 낫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같은 죄들이 있기 때문이다.

 

2. 그는 안을 살핀다 (암 3-6장)

 

나라들에게 심판을 알린 다음에 아모스는 백성의 마음을 살피며 이러한 심판이 왜 임하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이스라엘은 평화와 번영과 “종교적인 부흥”을 누리고 있었음을 기억하자. 사람들은 종교적인 의식들에 참석하고 있었으며 관대한 헌금을 가져왔으나, 하나님의 사람은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을 보았다. 본장에서 아모스는 세 가지 설교를 한다. 각 설교들은 “이 말씀을 들으라”는 말로 시작된다(3:1/4:1/5:1).

 

1) 해명의 메시지(3:1-15)-

“우리의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에게 심판을 보내실 것인가? 우리는 이처럼 선택받은 사람들이 아닌가?” 라고 사람들은 물었다. 그것이 바로 심판의 이유였다. 특권이 있는 곳에 책임이 따른다. 1-2절은 이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아모스는 원인과 결과의 논법을 사용하고 있다. 만일 두 사람이 동행한다면 이들 간의 어떤 약속이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3절). 사자가 부르짖는다면 먹이가 있다는 뜻이다(4절). 새가 그물에 걸렸으면 누군가 그물을 설치한 것이다(5절). 나팔이 울리면 재난이 가깝다(6절). 선지자가 설교를 하고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신 것이 분명하다(7절). 다음으로 아모스는 앗수르 사람들이 이 민족을 멸망시키려고 다가오고 있음을 알린다(9-15절). 벧엘의 멋진 예배들이 그들을 붙들어 두지 못할 것이며 여름집과 겨울집(참으로 사치스럽다!)이 모두 파괴될 것이다.

 

2) 고발의 메시지(4:1-13)-

두려움 없는 이 선지자는 이제 “주무르기 시작하며” 죄들의 명목을 댄다. 조심성 없고 사치스러운 여자들을 “바산의 살진 암소”라고 부른다. 이들이 남편들에게 술을 더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을 보자. 아모스는 벧엘의 종교 행사들에 감명을 받지 못한다. 그에게 있어서 이것은 기록할 또 하나의 죄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의 경고를 보냈으나(6-11절) 이들은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가장 훌륭한 젊은 사람들을 전쟁에 나가 죽게 하셨는데(4:10), 이 민족은 아직도 회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자연적인 재난을 더 이상 사용하시지 않으실 것이며 이제는 그가 친히 오실 것이다(12절).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3) 애곡의 메시지(5:1-6:14)-

아모스는 이 민족에게 닥칠 심판을 주시하며 운다. 3절은 백성의 30%가 죽을 것임을 암시한다. “찾으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것에 유의하자(5:4/5:6/5:8/5:14). “종교적인 예배를 찾지 말고 주님을 찾으라!” 이 나라 사람들 중에는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며 그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5:18-20)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여호와의 날이 원수들을 심판하는 날일 뿐 아니라 그들을 심판하시는 날이 될 것임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갈망하지만”, 사실상 생활에서 아무것도 보여 줄 것이 없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과 같다.

 

5장 24절에서 우리는 이 책의 핵심 구절을 본다. “심판”이라는 단어 대신 “공의”라는 말로 바꾸어 읽으라. 아모스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그의 공의를 이 땅에 집행하는 민족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6장에서 아모스는 무관심과 방종(1-6절), 불의, 부도덕, 우상 숭배(7-14절)와 같은 민족의 죄를 인하여 울기를 계속한다. “시온에서 안온하게”라는 말은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잘 묘사하는 말이다.

 

3. 그는 앞을 내다본다 (암 7-9장)

 

메시지를 마치면서 아모스는 다섯 개의 환상을 보는데, 이 환상들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장차 이 민족에게 행하시려는 일을 발견한다.

 

1) 메뚜기(7:1-3)-

메뚜기는 곡식을 망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모스가 중재를 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이들을 중지시키신다.

 

2) 불(7:4-6)-

무서운 가뭄이 그 땅에 몰아닥친다. 이 선지자가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그 땅을 구원하신다.

 

3) 다림줄(7:7-9)-

여호와께서 성벽 곁에(“위”가 아님) 서서 성벽이 곧은지를 보려고 시험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측정하고 계시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심판이 임하고 있다. 메시지의 이 지점에서 “제사장” 아마샤는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어서 개입하였다. “너는 애국자가 아니다! 강단을 들고 들로 돌아가 설교하라!”

 

아모스는 두려워하지 않고 거짓 제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은 나를 보내어 전파하게 하셨고, 나는 순종하여야만 한다. 아마샤 당신은 그 타협과 죄의 값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아내가 창녀가 될 것이며 당신의 가족은 칼에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4) 여름 열매(8:1-14)-

이 환상을 이해하려면 히브리어에서 간단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여름 열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헤이츠”이며 2절에 나오는 “끝, 종말”에 해당하는 단어는 “하츠”이다. 이 단어들은 비슷하게 생겼고 발음도 비슷하다. 아모스는 이들을 서로 관련을 지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가 왔다! 여름 열매 같은 이스라엘은 심판을 위해 무르익고 있다!”

 

4-14절에서 이 선지자는 다시 백성의 죄명을 나열한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의 집에서 훔치며(8:4), 성일(聖日)이 사업을 방해한다고 불평하며(8:5), 과도한 값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상처를 입히었다(8:6).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보내실 것이며 자연적인 재난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도 보내실 것이다. 이들은 기회가 있을 때에 말씀을 듣지 않았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말씀을 빼앗아 가실 것이다. 그 날에 단과 브엘세바에 있는 그들의 우상들은 그들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할 것이다(8:14).

 

5) 제단에서(9:1-10)-

이제 아모스는 어떤 상징이 아니라 여호와를 친히 뵙는다. 하나님은 왜 제단에 계실까? 왜냐하면 심판이 여호와의 집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벧전 4:17). 백성들은 외적으로는 종교적으로 보였지만 마음은 그리 진지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문설주가 부러지고 지붕이 함몰되라고 명령하신다.

 

8-9절은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요약하고 있다. 그는 다가오는 심판을 곡식을 체질하는 것으로 비유한다(눅 22:31-34). 좋은 씨는(참된 신자들, 믿음의 남은 자들)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겨는 불탈 것이다.

 

그런데 아모스는 승리에 대한 말로 끝을 맺는다. 11-15절에서 장차 회복될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11절은 교회의 첫번 회의 때에 사도행전 15장 14-18절에서 인용된 구절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민족들로부터 한 백성, 즉 교회를 불러내고 계신다. 그러나 교회가 완성되면 그가 돌아오실 것이며 다윗의 장막(집)을 회복하시고 유대인의 왕국을 설립하실 것이다. 땅은 다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백성은 영원토록 축복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나라는 죄명을 들추기를 무서워 아니하며 장차 임할 진노에서 백성들을 피하라고 경고하는 “농부 설교자”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