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지서 서론
● 명칭:
“소선지서”는 그 메시지가 하나님의 예언 계획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므로,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보다 그 중요성에 있어서 결코 못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 성경은 이 책들을 모두 묶어서 “열둘”(The Twelve)이라고 불렀다. 이들 중 스가랴서는 짧거나 간략한 책은 아니지만, 성경학자들은 그 책들이 주로 간략하기 때문에 “소선지서”라고 명명하였다.
● 교훈:
각 선지서에서 우리는 세 가지 교훈을 발견할 것이다.
1) 역사적인 교훈-
각 선지자들은 백성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직접적인 필요에 대처하기 위하여 썼다.
2) 예언적인 교훈-
각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장래에 있을 심판과 회복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예증하거나 알렸다.
3) 실천적인 교훈-
그 당시 그 민족의 죄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으며 이 책들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실천적인 교훈들이 많이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호세아서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앗수르에게 시달리며 징계를 받는 것과, 장차 정결함을 받고 회복되는 것을 본다. 우리는 또한 오늘날 주님께 불순종하여 세상을 따름으로써 “영적인 음행“을 범하는 신자들을 위한 교훈도 이 책에서 보게 된다.
● 선지자 연표:
소선지자들(그리고 대선지자들)을 역사적으로 적절한 시기를 아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그들의 간단한 역대기를 여기 싣는다(모든 연대는 주전임).
북왕국 남왕국
요나:780-750 요엘:835-795년
아모스:765-750 이사야:750-680년
호세아:755-715 미가:740-690년
-앗수르에게 멸망됨: 721년
나훔:630-610
예레미야:626-586
하박국:625-586
스바냐:625-610
오바댜:586년
-바벨론에게 멸망됨:606-586년
다니엘:606-534
에스겔:593-571
-유형에서 돌아옴:536년
스가랴:520-500
학개:520-516
말라기:450-400
-주(註): 정확한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선지자 시대의 종료:이 도표는 각 선지서들의 대략적인 관계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세례(침례) 요한이 오기까지-마태복음 3장
1. 호세아 / 사랑과 거룩함
호세아라는 이름은 “구원”이란 뜻이다. 그는 민족이 쇠망의 길을 밟고 있는 기간에 북왕(이스라엘, 또는 이 책에서는 “에브라임”이라고 불리운다)에서 전파하였다. 그가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의 왕은 여로보암 2세로서 크게 번영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이 민족은 내적으로는 썩어가고 있었으며, 백성을 인도하며 보호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다. 호세아는 생전에 이스라엘이 주전 721년, 앗수르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보았다. 역사적인 배경을 위하여는 열왕기하 15-17장을 참조하라.
호세아의 메시지는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것으로, 그들의 죄를 드러내고 다가오는 심판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이었으며, 이제 살펴보겠지만 장래를 위한 희망의 메시지도 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에서 독특한 면이 있다면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에 앞서 친히 그 메시지대로 살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이 선지자는 아내의 죄로 말미암아 자신의 가정에서 깊은 고뇌를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나, 이 모든 일들은 그와 그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실물교습이었다.
1.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드러남 (호 1-3장)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소녀와 결혼하기를 원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러나, 그녀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의 경고는 사실로 나타났다. 고멜은 호세아의 세 자녀들을 낳았는데 그 후에 다른 남자들과 살기 위하여 호세아를 떠나갔다! 그녀의 죄로 인하여 호세아가 얼마나 마음이 상하였겠는지 상상해 보라! 그 때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곁길로 간 그의 아내를 가서 찾으라고 명령하셨고 그는 그녀를 찾아냈는데, 노예시장에 팔려 있었다(3:1-2). 그는 그녀를 도로 사서 집으로 데려오고 용서와 사랑을 확신시켰다. 고멜이 죄를 회개하고 충성스러운 아내가 되었다고 믿을 이유는 많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불성실함을 보여 준다. 이 민족은 여호와와 결혼하였으며(출 34:14-16/신 32:16/사 62:5/렘 3:14)에게 충성스럽게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죄를 갈망하였으며 특히 이방의 거짓 신들을 따랐다. 이스라엘은 참된 하나님을 버리고 대적들의 우상을 예배함으로써 “영적인 간음”을 범하였다. 이들은 온갖 종류의 쾌락을 약속하였으나 이스라엘은 거기에 또한 고통과 슬픔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고멜이 그러했듯이 이스라엘은 그 죄로 인하여 노예 생활(유배)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호세아가 그의 아내를 찾아 집으로 데려온 것같이 여호와께서도 자기의 백성을 찾아 자유롭게 하시며 사랑과 축복 가운데로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세 자녀의 이름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이스르엘(1:4)은 “흩어진”이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나라들 중에 이스라엘을 흩으실 때를 가리킨다. 로루하마(1:6)는 “긍휼을 얻지 못한다”는 뜻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이 민족으로부터 자비를 제거하시고 죄로 인한 고난을 허락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로암미(1:9)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그의 백성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에서의 현재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나의 백성”, 그리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라고 부르실 날이 올 것이다(2:1). 이때는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셔서 이 민족을 회복하고 그의 의로운 왕국을 건설하실 날이다. 3장 3-5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에 대한 요약을 보게 된다.
우리는 구약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신약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영적인 음행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본 장들을 떠날 수 없다(요일 2:15-17/계 2:1-7/약 4:1-10). 세상을 사랑하며 죄를 위하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구주께 잘못을 범하는 것이며,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일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에서 경고하였다(고후 11:1-3). 오늘날 교회에서 이러한 일이 얼마나 심각한가!"
2. 이스라엘의 죄가 선포됨 (호 4-7장)
모든 이웃들이 고멜의 죄에 대하여 들먹이며 그녀를 손가락질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제 호세아는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그들의 죄들을 들추어낸다. 그의 메시지는 마치 오늘날의 신문을 읽는 것과 같다(특히 4:1-2 참조). 욕설, 거짓말 술취함, 살인, 배반, 간음, 우상숭배 등 이러한 죄들과 더 많은 죄들이 이 나라에 만면해 있었다. 일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얄팍한 “종교적인 부흥 운동”으로(6:1-6) 이 나라의 죄를 덮으려 하는 것이었다. 호세아는 훌륭한 설교자였다. 그가 그 백성의 영적인 상태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아침 구름(6:4)-
한 순간 여기 있다가 다음 순간에 사라진다.
2) 반 쯤 구워진 전병(7:8)-
그들의 종교가 생활 깊숙한 것이 아니라 표면적인 것이었다.
3) 백발(7:9)-
그들의 힘을 잃어가고 있으나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4) 어리석은 비둘기(7:11)-
안정되지 못하고 여기 저기 날아다닌다.
5) 속이는 활(7:16)-
의지할 수가 없다.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모습에 어울린다. 그들의 영적인 생활은 지속적이지도, 깊지도 않고, 올바르지도 않고, 안정되지 못하고, 믿음직하지도 않다."
3. 이스라엘의 심판이 선고됨 (호 8-10장)
타락한 사람은 언제나 벌을 받는다(잠 14:14). 이스라엘이 바로 타락한 사람이었다(호 4:16/렘 3:6/렘 3:11). 주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그리스도인은 그의 기쁨과 능력과 유용성을 잃는다. 그리고, 자기의 죄로부터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호세아는 앗수르가 와서 이 민족을 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심판을 빠른 독수리가 덮치는 것(8:1), 회오리바람으로 인한 재난(8:7)과 불이 타오르는 것(8:14)으로 비유한다. 이 민족은 흩어지게 될 것이며(8:8/9:17) 그들이 뿌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둘 것이다(10:12-15). 죄인은 물론 그가 뿌린 것을 거둔다(갈 6:7-8). 그러나 더 많이 거두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작은 씨들이 심겨져 크게 결실함으로 추수를 많이 하게 되기 때문이다. 죄를 추수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다윗은 육욕의 씨앗 하나를 심고 얼마나 많은 눈물을 거두었는지 보라!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이 사악한 앗수르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는 것을 허용하셨는가?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자녀를 더 잘되게 하기 위하여 징계를 하게 된다(히 12:1-13/잠 3:11-12). 징계의 손은 사랑의 손이다. 죄인을 심판하는 재판관이 아니라, 아들을 바로잡는 아버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사랑에 대해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것인지 모른다(시 119:71).
4. 이스라엘의 회복이 약속됨(11-14장)
호세아서는 침울한 음률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이 민족의 장래 영광을 본다. 그의 아내는 노예에서 풀려나 가정과 그의 마음으로 회복되었다. 이처럼 이 민족은 어느 날 그들의 땅과 여호와께로 회복될 것이다. 종결짓는 장에서, 호세아는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과 그의 백성의 불성실을 대조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셨다(11:1). 그 때 그들은 아무 아름다움이나 영광을 가지고 있지 않는 포로된 민족이었다. 그들을 노예에서 구속하여 인도하고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이 “결혼 생활” 초기로부터 백성은 “타락하기에 열중하였다”(11:7). 하나님은 사랑의 줄로 이들을 끌어 당겼으나(11:4) 이들은 이러한 줄을 끊고 자신의 길로 가려고 하였다. 죄는 단순히 하나님의 법을 깨뜨리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깨뜨리는 것이다. 8장 8-11절을 읽고 하나님께서 그의 불충성한 백성을 축복의 지위로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열성어린 마음을 보자.
12장에서 우리는 이 민족이 “큰 소리”를 내며 그 부요함과 위업을 자랑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이 바람을 먹고 있으며(모두 허풍일 뿐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타락하는 사람은 물질적인 부와 육신적인 쾌락을 즐길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의 마음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지도 못할 것이다. 결국은 가난해지고 불행해지며, 눈멀고 벌거벗게 될 것이다.
14장에서 하나님은 “아내”에게 자기의 마음과 그 축복으로 돌아오라고 사랑으로 호소하고 계시다. 그는 그들이 입술로 제사를 드리며(고백하는 말로), 짐승으로 하지 않기를 요구하신다. 그는 그들의 타락을 고치실 것과(14:4) 자기의 호의를 다시 회복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그는 이 민족을 열매 맺는 나무, 또는 포도나무로 비유하는데, 이들은 전에 우상에게로 향하였다가 다시 여호와께로 회복된 민족이었다. 물론 열매 맺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돌아오셔서 그의 왕국을 세우시고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성취하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개인적인 메시지를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타락한 자들이 주께로 돌아와 용서를 경험하며(요일 1:9) 축복과 유용함의 지위로 회복될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두 길, 곧 의로운 여호와의 길과 그릇된 죄인의 길을 제시한다. 스스로 4절을 주장하며, 용서받은 죄가 치유되는 경험을 갖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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