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마태복음 23장 / 거짓 선생들에게 선고된 저주
원수들을 침묵시키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공개적으로 그들을 드러내 보이시는 일을 진행시키신다. 산상 수훈에서 그리스도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그 사람의 의(義)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앞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5:10). 여기서 주님은 그들의 위선을 노출시키시며, 단순히 “종교”로써는 인간을 거룩하게 만들 수 없음을 결론적으로 나타내 보이신다. 이러한 공식적인 노출이 바리새인들을 분노케 한 것은 물론이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는 데 최종적인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1. 군중과 제자들에게 설명하심 (마 23:1-12)
바리새파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헬라인들로부터 율법을 버리고 “자유주의자”가 되라는 압박을 당하고 있을 때 성립되었다. 이 사람들은 믿음에 참되게 남아 있었고 율법을 보호하며 이방의 영향력이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켰다.
이들은 이스라엘에 선지자들이 없었던 기간 동안에 율법의 해석자들이 되었으며, 제사장들을 가르쳤다. 이런 의미에서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 예수께서는 백성들에게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순종하지 말고 오직 모세의 율법에 합당한 것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 자신이 바리새인들의 가르침 가운데에서 많은 것들을 거절하셨다(마 5:21-6:18/12:1-).
바리새인들의 큰 죄는 교만에 근거를 둔 위선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내적인 것이 아니라 외적인 것이었으며, 인간들을 위한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람들을 무거운 짐으로 속박한 반면에,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자유케 하셨다(눅 4:18-19). 그들은 경칭으로 불리워지는 것과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좋아했으며,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신들을 높였다. 그들은 구약의 성구를 담은 상자를 차고 다녔으며(경문/ 출 13:16/신 6:8/신 11:18) 그들의 경문을 더욱 넓게 만들어(민 15:38)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인 열심을 알도록 하였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가졌으나 능력은 없었다(딤후 3:5). 그 반면에, 그리스도의 옷자락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었다(마 9:20/마 14:36).
8-10절에서 우리는 삼위일체를 본다. 우리에게는 성령이신 한 “랍비”가 있으며(8절), 선생이라는 뜻, 그리스도와 동격이 아님), 한 아버지와(9절), 그리스도이신 한 지도자(여기서 랍비는 지도자의 뜻임)가 있다. 성부와 성자와 또는 성령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간다.
2. 바리새인들을 저주하심 (마 23:13-36)
여기에는 “화있을진저”가 여덟 번 나오는데, 마태복음 5장 3-12절에 나오는 여덟 번의 “복이 있나니”와 대조가 된다.
예수께서는 증오심이나 적대감으로 “화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이 구절들에는 “연민의 슬픔”이 담겨져 있어, 원수들의 사악한 마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어린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복음 5장의 복(팔복) 마태복음 23장의 화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유업으로 받음 13절 교만한 자는 천국문을 닫음
4절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음 14절 탐하는 자는 저주를 받음(주- 한글성경에는 없음)
5절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음 15절 교만한 자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냄
6절 의(거룩함)에 주린 자는 배부를 것임 16-22절 물질을 얻기에 탐하는 자는 비게 됨
7절 긍휼히 여기는 자(자비한 자)는 긍휼히 여김 23-24절 작은 일에 대해 자비롭지 못함
8절 마음이 깨끗한 자는 하나님을 봄 25-28절 외적으로는 순적하나 내적으로 부패함
9-12절 화평케하는 자와 핍박을 받는 자는 29-33절 살인자와 핍박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불리워짐 “마귀의 자녀들”로 불리움
13절-
그들은 천국 문을 닫았다. 어떻게 그들이 이런 일을 행하였다는 것인가?
첫째로, 그들은 세례(침례)요한을 거절하였고(21:25-27/ 11:16-19)
둘째로, 그리스도 자신을 거절하였으며(요 7:47-)
셋째로, 그들은 백성들을 성경의 참된 진리에 대해 막았다(눅 11:52).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의 열쇠”를 그들의 인간적인 전통의 뒤에 숨겨둠으로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천국의 문을 실제로 잠갔던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그의 종들에게 저항하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가르치기를 거절함으로 천국 문을 닫아 놓는 “종교적인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14절 -
바리새인들은 가난한 과부들을 먹이로 삼아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소유를 취하였다.
16-22절 -
그들의 가치관은 혼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들은 황금과 선물들에는 관심이 있었으나, 성전에서의 영적인 예배에는 관심이 없었다(눅 16:14-).
27절 -
“회칠한 무덤”은 무덤을 희게 칠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대인들이 우연하게 자신들을 더럽힌 것이 아니라, 알면서 고의적으로 했음을 나타낸다(민 19:16).
32절 -
“너희 조상의 양”(量)이란 구약 시대부터 그들이 결정적으로 성령을 거절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쳐 놓으시는 사도행전 7장(7:51 / 스데반의 설교 참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죄가 증가됨을 가리킨다.
그들은 구약 선지자들을 죽였고 요한이 살해되도록 방치해 두었으며,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들은 또한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스데반을 죽이며, 마침내 “분량을 채울 것이다.”
33절 -
“독사의 새끼들”이란 “마귀의 자녀”를 의미한다(3:7/12:34/요 8:44 /본 서에서 마태복음 13장의 “가라지의 비유” 참조).
35절 -
“마귀의 자녀”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를 핍박한다. 가친은 마귀의 자녀였다(요일 3:11-12).
3. 예루살렘을 항해 비통해 하심 (마 23:37-39)
그리스도의 이 마지막 슬픔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많이 주셨으나 그들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마음을 굳게 함으로써 지옥으로 가는 것이다.
“너희 집”이란 아마도 이스라엘 집을 가리키는 것으로 성전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24장 1절에서 성전을 떠나신 그리스도는 더 이상 성전으로 돌아오지 않으신다. 이 말은 상징적으로 “너희가 나를 거절하였으므로 너희 성전은 비어 있다”는 뜻이 된다. 마태복음 13장 1절에서 그리스도는 집(이스라엘)을 떠나 바닷가(이방인)로 가셨다. 예수께서는 21장 13절에서 성전을 “나의 집”이라고 하셨으나 이제는 “너희 집”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이 땅 위에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다시 돌아오실 때 메시야를 영접할 것이다(슥 12:10). 마태복음 21장 9절의 “찬송하리로다... 으로 오시는 이여”와 마태복음 21장 39절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미래임)라는 두 구절 사이에는 그때 아직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교회시대가 놓여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자들은 지상의 왕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으나 눈 깜짝할 동안에 오실 하늘의 신랑을 기다린다!
▣ 실제적인 적용
본 장은 사람이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생활을 할 수는 있으나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음을 보여 준다. 단순한 외적인 종교는 결코 구원할 수 없다. 변화된 마음, 새로운 출생이 있어야만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의 관원인 니고데모에게 요한복음 3장에서 하신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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