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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마태복음25 - 마 22장 (비판자들에 대한 대답(

by JORC구원열차 2009. 7. 9.

24. 마태복음 22장 / 비판자들에 대한 대답

 

앞 부분에서 14절까지를 생각해 보았다. 이 장의 나머지 부분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말에 올무를 씌우려고” 예수께 물은 질문들을 다룬다.

 

1. 조공에 대한 질문 (마 22:15-22)

 

이 질문은 헤롯당원이 물은 것으로서, 이들은 정치적인 야망을 가진 종교 집단이었다. 신약 성경에는 이들에 대한 자료가 많이 나오지 않으나, 로마에 대하여 헤롯과 결탁하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의 통치를 미워하는 바리새인들로부터 반대를 받고 있는 처지였으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리에 이르러서는 이 두 적수들이 서로 연합하였다.

 

조공에 대한 질문은 “까다로운” 것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가 로마에 바치는 조공을 반대한다면 주님은 반역자요 정부에 대한 위험인물로서 체포될 것이었다. 대신, 가이사에게 조공을 바치는 일에 우호적이라면 로마 통치자들을 업신여기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잃을 것이다.

 

이러한 까다로운 질문에 응하여, 그리스도의 대답은 참된 하나님의 자녀에게 하나님과 또한 그들의 나라 양쪽에 의무가 있음을 보여 준다. 디. 엘. 무디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스도인은 지나치게 경건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유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3장과 베드로전서 2장 13절 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법에 순종해야 하고 지도자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가이사가 자기의 형상을 동전에 새긴 것처럼 하나님은 그의 형상을 인간에 새기셨다(창 1:26-27). 죄는 이 형상을 망쳐 놓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잃어 버렸던 그 형상을 다시 찾게 되었다(엡 4:24/골 3:10). 누가복음 15장 8-10절에 나오는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인간이 잃어버림을 당하였으며, 참된 형상을 되찾으려면 우선 발견되어야 한다는 암시이다.

 

2. 부활에 관한 질문 (마 22:23-33)

 

사두개인들은 교리적인 문제로 돌입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원수지간인데도 그리스도를 반대하려고 다시 연합하는 것을 보자. 그들은 내세의 결혼에 대하여 가상적인 질문을 던진다. 구약 율법에 의하면 형의 대를 잇기 위하여 과부된 형수와 결혼하도록 되어 있었다(창 38:8/신 25:5-10).

 

예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무지하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는 대로의 인간의 결혼은 내세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게 될 것이며 성별이 없고, 인간의 율법으로 통치를 받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 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천사들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결혼 문제에 있어서 그들과 같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성도는 천사들과 같은 종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언제나 다스릴 것이다.

 

그리스도는 출애굽기 3장 6절과 15-16절을 참고하여 성경으로부터 비판자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은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으며 “나는... 의 하나님이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이 말은 이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다! 죽음은 비록 육신을 흙으로 돌아가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실제의 인격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이리하여 예수께서는 죽음 후에도 영혼이 존속함과,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임을 가르치신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이들을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기에 충분하다.

 

3. 큰 계명에 관한 질문 (마 22:34-46)

 

이제 바리새인들은 공개적으로 구약 율법에 대한 법적인 질문을 가져왔다(“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는 34절의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적들을 어떻게 침묵시켰는지를 보여 주며 문자적으로는 “망을 씌우다”란 뜻이다).

 

율법 학자들은 계명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큰가에 대하여 계속해서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명들을 “무거운” 계명과 “가벼운” 계명으로 나누었으며 “의식법”과 “도덕법”으로 분리하였다(오늘날의 종교적인 단체들과도 같아 보인다). 결국, 의식법 중 가장 작은 세부 사항이 하나님의 큰 도덕법만큼 구속력이 있게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이 어려운 신학적인 항목으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수께서는 다시 구약 성경에 호소하시며 신명기 6장 5절과 레위기 19장 18절을 인용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전체 구약 율법을 종합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이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소한 죄”와 “도덕적인 죄” 또는 그밖에 어떤 이름을 붙이든지 이러한 죄들의 인공적인 구분을 피할 것을 말씀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확인하신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 이것은 참된 마음의 종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요 8:42).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으로부터 외부로 흘러 나갈 것이다(롬 5:5).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은 현대주의 설교자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피상적이고 감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헤롯당원, 사두개인, 바리새인을 침묵시키시고 이제 그리스도는 친히 질문하신다(22:41-42).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예수께서는 그에 대하여 다윗이 “주”라고 불렀던 시편 110편 1절을 언급하셨다. 그리스도께서 그 시편을 다윗이 썼으며 그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하였음과(43절),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하였다고 말씀하신 데에 유의하자.

 

예수께서는 “다윗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이라는 의미로서「주」라고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고 질문하셨다. 물론 그 대답은 마태복음 1-2장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에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으로서 그리스도는 다윗의 하나님이시나, 하나님이신 인간으로서 육신을 입고 다윗의 자손으로 오셨다.

 

만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질문에 바르게 대답했다면 그리스도의 메시야되심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이 굳어서 진리를 거절하였고, 주님을 침묵시킬 보다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돌이켰다. 그들은 마귀의 자녀였으며(요 8:44), 거짓말을 하려다가 실패하자 이제는 그를 죽이려 한다.

 

시편 110편 전체를 읽으면 이 시가 그리스도께서 적들을 정복하실 것과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하기 위하여 사도행전 2장 32-36절에서 이 시편을 인용한다. 이 구절은 또한 히브리서 10장 12-13절에서도 인용된다. 유대인들에게 왕으로서 거절당하신 그리스도는 이방인들을 향하시게 될 것이며 그들의 대제사장이 되실 것이었다. 이 땅에 돌아오실 때 주님은 그의 원수들로 발등상이 되게 하실 것이다. 그 사이에 주님은 심판과 승리의 날이 오기까지 인내로 기다리신다(바라고 기대하신다/ 히 10:13).

 

▣ 실천적인 교훈

하나님과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이 사람들은 진리에 저항하였고 자신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으로 종말을 고한다.

 

원수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하라. 이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며, 능력이 있다. 신자됨의 표지는 사랑이다(요 13:35).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하찮은 율법이나 규율을 육적으로 지키는 것으로 표지를 삼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