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로마서 15장 / 그리스도인의 수고
본 장은 교회 안에 있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 관계되며, 우리가 깨닫고 이해해야 할 세 가지 다른 사역을 보여 준다.
1.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그리스도지 사역(15:8-13)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다음은 이방인에게”라는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사역을 깨닫지 못하는 성경 연구자는 진리의 말씀을 결코 옳게 분변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태어나셨을 때 그의 오심이 유대 민족에게 전해 졌으며, 왕국에 대한 구약의 약속들과 연관되었다. 8절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언약들과 약속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유대인에게 우선적으로 사역하셨다고 말한다.
바울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누가복음 1장 30-33, 46-55, 67-80절을 주의깊게 읽어 보라. 이 성령을 받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이방인들로부터 그들을 구원하여 약속된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오셨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이스라엘은 자기의 왕을 세 번에 걸쳐 거절하였다. 이들은 헤롯이 왕의 사자인 세례(침례)요한을 죽이도록 버려두었으며, 그리스도를 죽이라고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스데반을 죽였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첫째는 유대인에게”라는 형식이 반복된다.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면 왕국이 건설되고 회심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인에게 축복이 흘러갔을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9-11장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이제 이방으로 가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흥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실패를 인함이라고 밝혔다. 9-11절에 그 진행의 방식이 나온다. 이방인들이 말씀을 들으며(시 18:49) 유대인들과 함께 기뻐한다(신 32:43). 그리고, 모든 이방인들이 스스로 하나님을 찬양하며(시 117:1),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통치를 즐거워한다(사 11:10).
이 구절들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역사를 거의 요약하고 있다.
① 유대인이 이방인들에게 전도함(9절/ 행 10-14장)
②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교회에 참여함(10절/ 행 15-28장)
③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바울에 의해 제쳐지고,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탁월한 위치에 오름(11절/ 행 28장 이후 계속)
④ 이방인들이 참여할 미래의 왕국(12절)
이방인들은 그리스도를 주제로 찬양한다. 12절은 왕국이 통치할 미래의 그날을 말하며 “열방이 그를 믿을 것이다”(또는 소망을 둘 것이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13절의 기도를 통하여 “소망”의 주제를 끌어낸다. 기쁨과 평화와 소망을 가지기 위하여 왕국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은 그러한 축복들을 지금 우리에게 주실 수 있으시다.
2.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바울의 사역 (롬 15:14-22)
바울은 그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임을 강조하는 데 매우 열심이다. 하나님의 프로그램에서 바울의 사역이라는 특별한 입장을 보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 “개신교”를 이처럼 혼란과 무력함에 처하게 한 장본인이다. 16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그의 찬양의 제물로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신약의 제사장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때마다 이것은 주님의 영광에 또 다른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바울의 특별한 사역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라는 특별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16절), 특별한 기적들(18-19절)과 특별한 방법(20절, 그리스도가 전파되지 앉은 곳으로 감)을 갖고 있다. 바울은 개척자였으며, 그는 율법과 은혜, 믿음과 행위, 이스라엘과 교회를 혼합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이를 뒤섞는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표적을 요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고전 1:22), 하나님은 또한 이방인들에게 기적을 베푸셨다(행 19:11-12 절의 에베소에서). 사도행전 7장(이스라엘의 마지막 거절) 이후에도 기적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아서, 하나님은 여전히 이 민족을 다루고 계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오는 것은 방해되고 있었는데, 이는 사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복음이 전파된 많은 곳에서의 요구 때문이었다. 그는 가능한 모든 지역을 거친 후에 이제 로마를 향할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바울이 기꺼이 로마에서 전파하기를 원했다는 것은 그 곳에 다른 사도들, 예를 들면 베드로 등이 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그의 방침은 개척 지역으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3. 유대인에 대한 이방 교회들의 사역 (롬 15:23-33)
바울은 서바나(스페인)로 가기를 소원하였다. 그가 그 곳에 도착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갔었다고 한다. 어쨌든, 그 당시에 그는 자신이 세운 이방 교회들이 기부한 구제 헌금을 가난으로 찌든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에게 가져가는 일에 종사하고 있었다. 상세한 것은 고린도전서 16장과 고린도후서 8-9장을 참조하라.
바울은 이 구제 헌금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말한다.
1) 영적인 빚(27절)-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통하여 모든 영적인 축복들을 받았으므로 물질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되돌려 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게 정말로 빚이 있는 이방인이라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2) 개인적인 사랑-
바울은 유대인들을 위하여 큰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헌금으로 그들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였다.
3) 그리스도인의 연합(31절)-
유대인 신자들 중에 더러는(행 15장 참조) 그 무리 중에 이방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았다. 이 헌금은 베드로와 바울이 서로 반목하고 있다는 말에 의해 생긴 불화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이 일은 오늘날 모든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에게 대한 책임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물론 “첫째는 유대인에게”라는 프로그램은(1:16)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첫째는 유대인에게”라는 원리는 복음서들과 사도행전 1-7장에서 적용되었다. 유대인들에 대한 우리의 책무는 지상명령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영적인 직무이며, 우리를 택하시고 참 감람나무에 우리를 접붙이심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한 것이고(롬 11:20-), 로마서 10장 11-17절의 명백한 논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정죄에 관한 한 아무 차별이 없듯이, 구원에 관해서도 아무 차별이 없다.
이스라엘은 비록 무대에서 임시적으로 퇴장하였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선택하신 민족이며, 이스라엘은 조상들로 인하여 사랑을 받고 있다(롬 11:28). 그리스도인은 반 유대적인 감정이나 관습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며 그리스도께로 그들을 인도해야만 한다.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앞을 보지 못하였으나, 유대인 개개인들은 성령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심으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31절에서 바울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과의 마찰을 예상하였음에 유의하자. 그런데, 그러한 마찰이 일어났다. 사도행전 21장 15절 이하를 재고하고, 구원받지 않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어떻게 취급하였는지에 유의하자.
본 장은 유대인과 이방 교회 사이의 중요한 특수성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장이다(고전 10:32). 사실 로마인들에게 말한 바울의 마지막 발언은16:25-27)교회에 대한 위대한 비밀을 이루고 있으며, 그의 복음을 통하여 이러한 비밀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서 결코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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