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고린도 전서1 - 개요 및 서론 / 고전 1장(그리스도인의 지위와 신분)

JORC구원열차 2009. 7. 20. 15:58

고린도전서 개요

 

▣ 인사말/1장 1-3절

 

1. 책망-죄에 대한 보고 / 고전 1장 4절-6장 20절

 

교회의 분열/1장 4절-4장 21절

(1)그들이 제 위치를 지켜 살지 못함/1장 4-16절

(2)그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깨닫지 못함/1장 17절-2장 16절

이 세상의 지혜 대(vs.) 하나님의 지혜

(3)그들이 복음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함/3장 1절-4장 21절

바울이 사역의 여섯 가지 실례를 제시함

교회 내의 징계/5장

법정에서의 논쟁/6장 1-8절

세상에서의 오염 /6장 9-20절

 

2. 교훈-질문에 대한 답변 / 고전 7-16장

 

결혼에 관하여 /7장

우상에 관하여 /8-10장

(1)그리스도의 실례 /8장

(2)바울의 실례 /9장

(3)이스라엘의 실례 /10장

규례에 관하여 /11장

성령의 은사에 관하여 / 12-14장

(1)은사의 출처와 목적 /12장

(2)사랑 안에서의 은사사용 /13장

(3)신령한 예배의 원리 /14장

부활에 관하여 / 15장

(1)부활에 대한 증거 / 15장 1-34절

(2)부활의 과정 /15장 35-49절

(3)부활에 대한 계획 /15장 50-58절

헌금(헌물)에 관하여 /16장 1-12절

 

▣ 작별 인사 / 고전 16장 13-24절

 

고린도전서 서론

 

▣ 도시:

 

의문의 여지도 없이, 고린도는 헬라(그리이스)의 가장 중요한 도시이다. 그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로마 수도인데, 동방에서 서방으로 여행하는 주요 경로로서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로마 제국의 4대 도시 중에 고린도는 상업, 문명, 부패함으로 주목을 받았다. “고린도 여인”이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었고, “고린도의 축제”는 그야말로 사치와 방종의 밑바닥이었다. 고린도는 여신 비너스(Venus)를 숭배하는 본거지였으며, 또한 애굽과 아시아에서 온 몇몇 불건전한 신비 종파의 중심지였다.

 

▣ 교회:

 

제 2차 전도 여행에서 바울이 고린도를 방문하였을 때는, 문화가 발달한 아덴에서 외관상으로 실패를 경험한 후였다(행 18:1-17). 그는 장막을 만드는 두 유대인(아굴라와 브리스길라)과 교제하며 일 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물면서 매주 회당에서 강론하였다.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서 그들의 사역을 마치고 바울과 합세하였다. 회당장이 회심하여 바울에게 세례(침례)를 받았고(행 18:8/고전 1:14-16)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고린도에 머물라고 특별한 격려를 하셨으므로(행 18:9) 그는 일 년 반 후에야 에베소로 떠나갔다. 그는 고린도에 풍부한 영적 은사를 받은 교회를 뒤에 남겨 두고 떠났으나(고전 1:4-7), 그 교회는 세상적인 지혜와 도시 자체의 무서운 사막함으로 말미암아 심하게 유혹을 받았다.

 

▣ 서신:

 

바울은 에베소에 3년간 머물러 있었는데(행 19:1-) 몇 가지의 문제를 교정하기 위해서 고린도를 두번째로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고후 13:1). 에베소로 돌아온 그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음행에 대한 신랄한 편지를 썼으나(고전 5:9) 이 편지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후 고린도 교회는 바울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교회의 회원인 스데바나와 브드나도, 아가이고편에 보낸 것 같다(고전 16:17).

 

이 편지는 교회의 교리와 실제에 관한 몇 가지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죄에 대한 책망을 겸하여 이 질문들에 답하였다(고전 7:1/고전 8:1/고전 11:17). 그는 교회를 단합시키고 정화하는 일에 형제들을 돕도록 디모데를 앞서 보내었다(행 19:22/고전 4:17/고전 16:10-11). 고린도전서 16장 17절에 언급된 세 사람의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이 고린도전서를 그들에게 전달한 것 같다.

 

디모데는 교회가 그 편지를 받았으나 모든 것이 바르게 되지는 않았다는 소식을 가지고 바울에게로 돌아왔다. 그러자 바울은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어 신자들이 바울의 사도적인 명령들에(고후 7:13-15) 순종하는지 보게 하였고, 디도는 위반자(고전 5장)들이 징계를 받았으며 교회는 바울의 교훈에 순종하였다는 좋은 소식을 바울에게 전해 주었다(고후 7:6-17 참조). 이때에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후서를 기록하여(고후 1:1) 교회를 칭찬하고 계속 전진하여 선한 사업을 끝마치라고 격려하였다.

 

디도가 이 편지를 고린도에 가져갔고,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모금하는 일에 교회를 도우려 기다렸다(고후 12:17-18/고후 8:6).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1-4절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 고린도를 방문하였다.

 

▣ 기록 목적: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쓴 데에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즉, 교회 안에서 허용한 끔찍한 죄들로 인하여 그들을 책망하려는 것(1-6장)과,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리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함이다. 그는 글로에의 집과(1:11) 스데바나, 브드나도, 아가이고에게서(16:17) 죄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그리고, 그가 에베소에서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에는 교회 안에 분열과 다툼이 있다는 것을 직접 알게 되었다.

 

신약 성경 중의 어떤 서신서에도 지교회의 문제를 이처럼 설득력 있게 다룬 곳은 없다. 그리고 오늘날 이처럼 소홀히 되는 서신서도 아마 없을 것이다."

 

 

1. 고린도전서 1장 / 그리스도인의 지위와 신분

 

1. 칭찬-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위 (고전 1:1-9)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갖는 놀라운 축복을 상기시키는 가장 요령있는 방법으로 편지를 시작한다. 그는 그들의 죄를 책망하기에 앞서 축복을 상기시키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특권 이하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지 못하고 있었다(엡 4:1-). 바울은 그들의 영적인 축복들을 열거한다.

 

1)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음(2절)-

이것은 그들이 성별되어(따로 분리됨) 선택된 그룹인 교회에 속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성도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성도인 것이다.

 

2) 하나님의 은혜(3-4절)-

은혜란 내가 받을 만하지 못한데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며, 자비란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데도 주지 않으시는 것이다. 이 은혜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3) 하나님께로서 오는 은사(5, 7절)-

그는 12-14장에서 성령의 은사를 논하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성령의 은사들, 특별히 말을 다루는 구변의 은사들로 놀랍게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14:26). 이들은 또한 지식에도 풍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은사들과 지식을 가지고도 사랑이 결여되어 있었으며(13:1-3) 서로 잘 지낼 수가 없었다.

 

4) 하나님에 대한 증거(6절)-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실 수 있다고 바울이 말한 모든 일들이 그들의 생활에 일어났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생활가운데 현실로 된 것이다.

 

5)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소망(7-9절)-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강림의 빛 가운데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요일 2:28).

 

그들이 비록 지상에서 죄가 있더라도 하나님은 하늘에서 그들을 흠없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죄를 범해도 좋다는 핑계가 될 수는 없으며, 이것은 오히려 우리가 비록 주님을 실망시켜드린다 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는 격려이다.

 

2. 고발-그리스도인으로서의 죄악된 상태 (고전 1:10-16)

 

효율적으로 그들을 칭찬하고는 첫번째로 교회 분열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그들의 죄에 대한 토론에 들어간다. 바울은 그들의 분열에 대한 슬픈 소식을 글로에의 집과, 또한 그를 방문한 친구에게서 들었다(16:17-18). 교회의 문제거리에 대한 나쁜 소식은 그처럼 신속히 전파되면서도 복음의 기쁜 소식은 전혀 외부로 퍼져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에는 분열과 다툼에 있었는데(11:18/12:25/3:3), 이것은 주의 만찬 때에조차(11:20-34) 있었다. 바울은 “완전히 서로 연합하라”고 간청하였는데, 이것은 부러지거나 제자리에 있지 않는 뼈를 고정시킨다는 뜻의 의학용어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가 되지 않을 때에는, 그리스도의 몸(교회)이 괴로움을 당한다.

 

바울은 그들이 분열된 이유를 설명하였는데, 이는 그들이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였고(2:5), 인간의 업적에 영광을 돌리고 있었으며(3:21), 종들을 서로 비교하며 인간들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다(4:6),

 

3장에서 바울은 인간들에 대해 이처럼 열중하는 것은 육신적인 삶의 표식이며, 이 “영적인 고린도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는 사실상 어린 아이들임을 나타내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 교회에는 네 개의 파당이 있었다. 한 그룹은 바울을 따랐는데 이들은 아마도 주로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이는 바울이 이방인들의 사도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그룹은 능숙한 웅변가인 아볼로를 따랐는데(행 18:24-28),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훌륭한 메시지를 즐겼을 것이다. 세번째 그룹은 유대인의 사도인 베드로를 의존하는 유대인들이었고(갈 2:7), 네번째 그룹은 “그리스도”만을 따름으로써 나머지 그룹보다 더욱 신령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나누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한 몸의 지체들이다(12:12-3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이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침례)를 받는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그가 고린도에서 세례(침례)를 베풀고는 더 이상 세례(침례)를 주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하였으며, 만일 그가 계속해서 직접 세례(침례)를 주었더라면 분열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바울의 사역을 조력한 사람들이 세례(침례)를 베풀었는데, 바울의 특별한 사명은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례(침례)의 의미를 어떤 뜻에서든지 축소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어떤 전도자가 세례(침례)지원자들을 검토하고 세례(침례)를 베푼다면 얼마나 어려울 것인지 상상해 보라(1:17 에 나오는 “보내심”이란 단어는 헬라어로는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파송된 자”의 뜻이다). 사도행전 18장 8절은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침례)를 받았다고 알려 준다. 바울은 물세례(침례)를 실행하였으나 언제나 자신이 세례를 준 것은 아니었다.

 

3. 설명-분열의 이유 (고전 1:17-31)

 

고린도 신자들이 분열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지위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이유는 복음을 세상의 지혜와 혼합하고 있었으며, 인간들을 영화롭게 하였고 복음사역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었다. 1-2장에서 바울은 세상의 지혜 대(對) 하나님의 지혜를 다룬다. 그리고 이 구절들에서 모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 일곱 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1) 바울의 사명(17절)-

그는 복음에 인간의 철학을 더해서가 아니라, 오직 복음만을 전파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 복음에 다른 무엇을 섞지 않도록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가!

 

2) 개인적인 경험(18절)-

그들은 복음의 능력을 개인적으로 경험했었다.

 

3)성경(19-20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이사야 19장 12절, 29장 14절, 33장 18절을 인용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를 파괴하실 것이다.

 

4) 인간의 역사(20-21절)-

그 모든 “지혜”를 가지고도 세상은 하나님이나 구원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인간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역사란 인간이 점점 더 많은 지식을 얻어가는 것에 대한 기록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점점 줄어든다. 특히 영적인 문제들은 더욱 그렇다.

 

로마서 1장 18-32절을 읽고 세상이 어떻게 하나님께 등을 돌렸는지 알아보자. 하나님의 계획은 대단히 단순하고 독특한 것이어서 세상에게는 어리석게 보인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 대하여 친히 말씀하신 바를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신다.

 

5) 바울의 사역(22-25절)-

바울은 전 로마 세계의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였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갈구하였고, 이방인들, 특히 헬라인들은 철학적인 지혜를 구한다는 잣을 바울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둘 다 뛰어 넘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가능하게 하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는 유대인들에게는 걸리는 돌이었는데, 이들이 갖고 있던 메시야에 대한 개념은 퍽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복음은 헬라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보였는데, 그것은 복음이 자기들의 철학적인 제도들보다 저급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 “어리석은 복음”이 부르심을 받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였음을 보았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이시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다.

 

6) 그들 자신의 소명(26-29절)-

바울은 “만일 하나님이 인간의 지혜와 영광을 필요로 하신다면 왜 당신들을 부르셨겠는가?”라고 말한다. 고린도교회에는 육신적으로 유력한 사람이나, 귀족이나, 지혜로운 자들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다. 사실상, 하나님은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에게는 그의 진리를 고의적으로 감추시고, 겸손하며 거절당한 사람들에게 나타내신다.

 

전 성경을 추적하여, 그리스도께서 역사상 “무명인들”을 취하여 어떻게 위대한 지도자들이 되게 하셨는지를 알아보자(아브라함, 모세, 기드온, 다윗 등).

 

7) 그리스도의 충족하심(30-31절)-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며 그리스도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되신다! 우리는 성도의 지혜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그는 우리의 구원이시며 우리의 의이시고, 우리의 지혜이시며, 우리의 모든 것이다. 그리스도나 그의 십자가에 무엇을 첨부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축소시키는 것이며 그 능력을 빼앗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에게서 그들의 시선을 뗄 때에 사람들은 분열되기 시작하며, 인간의 지혜를 신뢰하고 인간의 영광을 추구하게 되며, 결국은 늘 분열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