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양육 자료실/제자 훈련 교재

제자훈련과 멘토링: 사람에게 승부를 거십시오.

JORC구원열차 2009. 7. 27. 19:21

 

 

제자훈련과 멘토링 : 사람에게 승부를 거십시오.


 

제자삼는 사역을 통해 선교사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오신 어떤 목사님께서 “이제는 제자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면서 성경에서 가르치는 본질과 동떨어지고 뒤틀린 형태의 제자훈련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에 대해 자신들의 부정적인 경험에 기초하여 제자훈련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제자훈련의 본질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에 대한 오해

 

“제자훈련의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성령운동의 시대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제자훈련을 한낱 성경공부로 오해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자훈련은 수준있는 교회에서나 가능한 것이지 우리같이 열악한 환경에 세워진 교회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고 하는 자조섞인 한탄도 듣습니다. 심지어 어떤 목회자들은 제자훈련이 ‘반 교역자 운동’이라고 하거나 평신도가 똑똑해지면 목회가 힘들어지고 교회가 시험받는다고 불평을 늘어놓기도 합니다. 제자훈련에 대한 이러한 비난이나 오해는 지금까지 제자훈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목회해온 우리 모두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자삼는 사역을 하면서 모범적인 목회의 본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못했고 그 열매가 분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면 제자훈련을 한다고 하면서 벽돌을 찍어내듯 규격화된 모습의 속좁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들어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신자부터 기초반, 확신반, 양육반, 초급제자반, 고급제자반... 등의 과정을 만들어 놓고 이 과정대로만 밟아가면 제자훈련이 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마치 동전을 넣으면 인스턴트 커피를 빼먹을 수 있는 자판기같이 제자훈련이라는 프로그램에 성도들을 넣으면 제자처럼 살아가는 성도들로 변해서 나올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말입니다. 이렇게 뒤틀려진 제자훈련의 그림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의 사역속에 이러한 실수가 종종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목회의 본질과 원리로서의 제자훈련을 다시 확인하고 되돌아가는 시도는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두가지 스펙트럼

 

제자훈련을 말할 때에는 편의상 개인적인 관점과 공동체적 관점에서 보는 제자훈련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제자훈련이란 그리스도인 개개인이 주님의 인격과 삶을 닮아가도록 돕는 모든 교육적 과정을 말합니다. 제자란 어떤 특정한 부류의 사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가야할 신앙의 길입니다. 제자도는 주님이 성도를 부르실 때 요구하시는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자화의 과정에서 하나님은 다양한 환경과 사람, 공동체들 교관으로 사용하십니다. 이때 쓰임받는 지도자에게는 각 사람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골1:29-29), 각 사람의 영적인 수준과 단계에 따른 그들의 필요를 채워줌으로 그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도와야 합니다. 지도자의 필요가 아니라 훈련받는 그들의 필요를 찾아 다음단계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도자는 훈련받는 사람의 다양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각각의 신앙 성숙의 단계에 따라 지도자의 역할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훈련생의 영적 성장의 단계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지도자들의 독특한 부분을 사용하신다는 겸손한 마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각 사람을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제자화의 과정은 특별히 교회라고 하는 공동체 속에서 반복적,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각각의 그리스도인이 다양한 환경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며 갖게되는 경험을 통해 성숙한 제자의 삶을 살도록 조직적이며 다중적인 목회 시스템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교회공동체 속의 제자훈련

 

지역교회라는 환경 속에서 제자훈련은 평신도 지도자를 양성하여 그들로 사역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무리를 향해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12명이라는 소수의 제자 그룹에게 쏟은 열정과 시간은 남달랐습니다. 그들을 통해 땅끝까지 복음화하는 지상명령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목회자는 성도들 각 사람을 향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섬기는 것과 더불어 소수의 평신도 지도자를 개발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역을 감당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목회자는 개인적으로 제자를 삼을 뿐만 아니라 훈련된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부름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엡4:11-12).


건강한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은사와 역할을 가지고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평신도 사역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들은 공통적으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은사와 재능을 확인하는 과정과 이들을 훈련하며 돕는 과정, 그리고 이들을 배치하는 과정에 조직적인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사역을 활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목회자의 역할이 이제까지 사역을 실행하는 역할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역을 감당하도록 무장시키는 역할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역교회 안에서 제자삼는 사역은 목회자와 더불어 목회를 책임지고 분담할 수 있는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가는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내는 길은 단순히 영적 성숙에 관한 과정이나 강의에 많이 등록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제자나 성숙에 관한 책이나, 성경구절, 숙제를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관계가 필요하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 역시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자훈련의 개념이 짜여진 틀 속에 주물을 붓듯이 만들어가는 잘못 인식된 패러다임으로 잘못 굳어져 가는 현시점에서 다시금 제자훈련의 원리를 되찾도록 만들어주는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멘토링”이 아닐까 싶습니다.


멘토링의 정의와 의미

 

멘토(mentor)라는 말은 고대 그리이스 신화인 오딧세이에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타이카 왕국의 오딧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텔리마쿠스(Telemacus)를 자신의 충실한 친구인 멘토에게 맡깁니다. 멘토는 그에게 때로는 아버지로, 때로는 스승으로, 때로는 친구가 되어 자신의 지혜를 전달하여 줌으로 훌륭한 왕자로 키우게 됩니다. 이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어왔습니다.


이제 오늘날 사용되고 있는 멘토라는 말은 복합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멘토란 “비교적 경험이나 연륜이 많은 사람으로서 상대방의 잠재력을 내다볼 줄 알며,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꿈과 비전을 이루도록 도전과 격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는 인생의 코치, 영적인 스승으로서 항상 상대방이 균형있게 성숙하도록 돕고 정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돕는 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멘토의 상대자는 다양하게 표현되는데, 프로테제(protege), 멘티(mentee), 혹은 멘토리(mentore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멘토의 관계를 가지고 사람을 세워가는 과정을 멘토링(mentoring)이라고 합니다. 멘토의 개념은 고대 그리이스에서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고, 중세시대의 스승(master)과 도제(apprentice)의 관계를 통해서 멘토의 개념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스승/도제의 관계는 주로 노동이나 직업적인 기술에 초점이 맞추어지나 멘토의 관계는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자훈련과 멘토링

 

멘토링과 제자훈련은 각기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멘토링의 개념은 지금까지 제자삼는 사역을 해온 기독교 사역자들이 자칫 놓치기 쉬운 사람에 대한 관심과 헌신에 대해서 우리의 초점을 맞추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개념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삶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요청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엘리야가 역사의 무대에서 떠난 후에도 이스라엘에는 여전히 한 선지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대를 떠날 때에도 그 자리를 메꿔야 할 경건한 사역자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그 자리를 대신해줄 충성된 사람을 찾아 훈련하고 돕고 격려하며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목회자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 사역자들이 감당해야할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할 것입니다.


제자훈련과 멘토링의 관계를 비교해볼 때, 일반적으로 제자훈련의 관계는 한시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멘토링은 인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일생동안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훈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멘토링은 일반적으로 한 명에서 열 명정도의 국한된 사람들에게 할 수 있습니다. 제자훈련을 위해서는 잘 훈련되고 성숙하며 가르치는 은사가 있어야 하지만 멘토링은 사랑많고 경험많은 아저씨 정도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점점 힘을 잃고 맛을 상실해가는 교회와 깨어져가는 가정과 사회를 돌아볼 때, 멘토링의 개념은 너무도 절실합니다.


선택이 승부를 좌우한다.

 

멘토링의 승패는 좋은 멘토와 프로테제가 만나는 것입니다. 좋은 코치는 좋은 선수를 발굴해내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을 선택했느냐 하는 것은 그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목수들은 건축을 위해 목재를 자를 때에 한가지 원칙이 있다고 합니다. “두번 재고, 한번 자른다.” 사람을 선택하는 제자훈련 지도자나 멘토가 명심해야할 교훈이라고 믿습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좋은 지도자 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과 공동체의 목표와 비전을 나누게 됩니다. 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제자훈련에서 어떤 성도들이 훈련받고 세워지느냐 하는 것은 교회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초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훈련생으로 선발했느냐에 따라 교회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급하게 제자훈련을 시작하는 것보다는 기도하면서 신중하게 사람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입니다.


멘토링의 적용

 

제자훈련이 그룹 속에서 사람을 세워간다면 멘토링은 개인적인 관계가 더욱 강조됩니다.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돕기 위해서는 때때로 개인적인 관계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멘토링이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많습니다. 먼저 교회에 처음 들어온 새신자들이 교회안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성도 한 사람이 새로 믿게된 한 사람을 잘 이끌어주고 좋은 관계를 맺게 된다면 새신자는 보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이를 위해 멘토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존성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무장시키는 준비과정이 필요합니다. 또한 조직적으로 이 사역을 뒷받침해주는 시스템을 개발해 주어야 합니다.


지도자를 키우는 면에서도 멘토쉽이 필요합니다. 질높은 소그룹 인도자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고참 사역자들이 사역의 모델이 되어주고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풀어가는 멘토가 되도록 해야합니다. 자신의 경험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나누고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해 조언을 나누게 되면 소그룹 지도자들이 보다 든든하게 서게될 것입니다.


그 어떤 분야보다도 멘토링이 절실한 분야는 동역자의 관계라고 생각됩니다. 동역자의 관계는 경쟁의 관계가 아니라 격려와 후원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담임목사는 그저 일을 맡기고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관리자의 입장이 아니라 후배에게 꿈을 심어주고 사역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멘토의 관계로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관계가 묶여질 때 팀 사역의 놀라운 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효과적인 멘토링의 방편들

 

멘토링이라고 해서 어떤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들을 보다 더 전략적으로 의도적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먼저 할 수 있는 방법중의 하나는 내가 읽거나 듣고 은혜받은 자료가 있다면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책이나 테이프, 비디오...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나에게 감동을 준 내용이라면 내가 기도하며 세워가기를 원하는 그에게도 감동을 줄 것입니다. 그저 선물로 하기보다는 읽거나 들은 뒤에 만나서 함께 받은 은혜와 깨달은 내용, 삶에 끼친 영향등에 대해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도록 돕는 것도 좋은 멘토링의 한 방법입니다. 예전에는 방송이나 컴퓨터에서 “네트워크”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컴퓨터가 우리 삶의 깊숙히 자리를 잡으면서 이 용어는 인간관계를 설명하는데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우리 인생이나 사역에 소중한 자원입니다. 한 사람을 세워가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으신 다양한 인생의 교관들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다리를 놓고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가십시오.


경험을 나누는 일도 사람을 키우는 데 귀하게 쓰여집니다. 이미 오랜 세월동안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은 보물을 나누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그가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기회들, 예를 들면 설교, 강의 등과 같은 기회를 후배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후배들이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가장 위대한 유산

 

오늘 급변하는 이 시대 속에서 변함없는 영원한 진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누군가가 찾아가 그들의 인생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는 것을 보고싶어하며 그들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싶어 한다면 우리의 목회현장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다음세대일 것입니다. 사울왕의 시대와 같이 어둡고 암울한 이 시대 속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다윗의 시대를 만들어가는 도구가 제자훈련이며 멘토링입니다. 사역자로서 우리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수단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역보다도 위대한 사역은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위해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멘토링은 제자훈련과 서로 상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자도의 본질을 찾도록 돕고 있습니다. 물론 목회자가 성도의 한 사람, 한 사람과 멘토링의 관계를 맺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멘토가 멘티를 대하는 자세는 제자삼는 사역을 하는 목회자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사람 그 자체보다는 건물, 숫자, 조직과 프로그램에 관심을 빼앗기는 오늘날의 풍토 속에서 사역하는 우리에게 멘토링의 개념은 우리의 초점을 사람에게 맞추도록 재조정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을 세워갈 때에 다음과 같은 패러다임을 가져 보십시오. 먼저 훈련생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애쓰기보다 먼저 그의 강점을 살려주는 사역을 하십시오. 약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강점이 들어나면 약점은 저절로 보완되어 집니다. 두 번째로 어떤 것을 결정할 때에는 현재의 모습을 보지말고 미래를 보며 결정하십시오. 지금은 아직 부족하더라도 잠재력과 가능성을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애착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섬기고 있는 그 사람을 관심과 기대를 가지고 바라볼 때에 그 사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울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사역대상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승부를 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