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데살로니가전서3 - 살전 3장(모범된 형제)

JORC구원열차 2009. 7. 28. 08:48

3. 데살로니가전서 3장 / 모범된 형제

 

본 장의 핵심 단어는 “세운다”는 말이다(2, 3, 8, 13절).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시련과 고난의 때를 통과하며(3, 5절),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 세워지지 않는 한(1장) 마귀에 의해 움직여지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1장) 양육되는 것에서(2장) 만족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세워지며 믿음 안에서 다닐 수 있게 되는 것을 보고 싶어하였다(4장).

 

결국 어린이는 걸을 수 있기 전에 서는 법을 배워야만 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 신자들을 믿음 안에 세우는 데 어떤 방법을 사용하였는가?

 

1. 그들에게 사람을 보냈다(3:1-2)

 

젊은 디모데는 바울에게 얼마나 큰 자산이었던가! 바울과 같은 입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디모데와 같은 조력자들이 있어야 하며, 나이 많은 사람과 젊은이가 함께 일해야 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며 어떻게 훈련시켜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디모데는 그의 가장 훌륭한 제자 중의 하나였다.

 

이 젊은이는 자신의 지교회에서 여러 해 동안 자신을 입증해 보였으며(행 16:1-3), 결국 바울은 그를 조력자로 참가시켰다. 젊은 디모데는(아마도 십대였을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나 설교하는 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여행과 생활의 책무를 맡아 그를 조력하는 바울의 “시종”으로 출발하였다. 사실상 디모데는 마가 요한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것인데, 마가는 일들이 거칠어지자 돌아갔던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를 평가한 내용은 빌립보서 2장 19-24절에서와 디모데에게 보낸 두 편지 전체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강하게 만드시는 데에 사람을 사용하신다(엡 4:1-/행 14:21-23/행 15:32/행 15:41 참조). 바울은 기꺼이 아덴에 혼자 남자 있기를 원하였으며 디모데로 하여금 데살로니가로 돌아가 신자들을 믿음 안에서 격려하게 하였다. 그리스도인은 특별히 소명을 받았거나 안 받았거나 상관없이 다른 신자들, 특히 새로운 신자들이 믿음 안에서 세워지도록 해야 할 그 책임이 있다. 만일 모든 성도들이 새로운 그리스도인을 “양자로 맞아” 그를 격려하고 가르치며 그와 교제를 나눈다면 영적인 사상자는 거의 없게 될 것이다.

 

2. 그들에게 편지를 썼다 (살전 3:3-4)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세워진다(살후 2:15-17/롬 16:25-27 /벧후 1:12). 바울이 그가 전에 가르쳤던 말씀을 어떻게 그들에게 상기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보자. 그는 고난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를 했었지만 이들은 그가 가르친 것을 잊어버린 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것은 없다. 성경에 대해 무지한 그리스도인은 교리의 바람이 불 때마다 희생되며 결코 주님 안에서 세워질 수 없다(엡 4:11-16). 디모데는 바울이 그들에게 가르친 말씀을 생각나게 했으며, 이 일이 그들을 격려하여 일으켜 세웠다.

 

사도행전 17장 1-4절에서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어떻게 말씀의 사역을 하였는지 설명하는 것을 알아보자.

 

① 설득하였다-논쟁이나 토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② 말씀을 열었다-그 뜻을 설명했다는 의미이다(눅 24:32/눅 24:45)

③ 확실한 진리들을 강력히 주장하였다-증거를 대거나, 모두 알 수 있도록 펼쳐놓았다.

④ 전파하였다-복음의 선포를 뜻한다.

 

목회자와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말씀에 대해 균형있게 사역하여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말씀을 설교하거나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가르치고 입증하고 설명하는 것이 있어야만 한다. “강력히 주장한다”는 말은 “식탁을 배설한다”는 뜻도 되는데, 영적인 일꾼은 이처럼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아서” 젊거나 늙었거나 모든 성도의 손이 닿게 하여 식탁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3.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살전 3:5-10)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하는 이중의 사역이 교회를 세운다. 가르치고 전파하는 것이 전부라면 사람들은 빛을 소유하나 능력이 없을 것이며, 기도만 있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없다면 감정적인 광신자들의 단체가 되고 말 것이다.

 

자기의 사람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고하고, 그리고 나서 자기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목회자와 주일학교 교사, 선교사, 그리고 그리스도인 일꾼들은 균형잡힌 확실한 사역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이와 같이 말씀과 기도를 동반하는 것이었다(눅 22:31-32). 사무엘 또한 이러한 방식으로 사역하였으며(삼상 12:23),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그리고 바울 자신도 이렇게 하였다(행 6:4/행 20:32).바울의 관심은 그들의 안전이나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에 있다는 점에 유의하자. 사단은 우리 믿음의 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을 일으키도록 할 수만 있다면 사단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소유하고 있는 모든 축복을 훔쳐갈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이 성숙한(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기를 원하였다(10절). 믿음은 내부에 들어와 좌정하면 결코 변경되지 않는 예금과 같은 것이 아니다. 이것은 겨자씨와 같아서 작아 보이나, 그 안에 생명이 있어 성장할 수가 있는 것이다. 본 장의 종결 부분을 읽어 보면, 바울은 그들이 풍성한 사랑을 가지며 소망 안에 세워지고 믿음 안에서 성장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인 것이다.

 

지속적인 기도 생활과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위하여, 그리고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기도와 말씀이 잘 배합된 사역이 있음으로 해서 사단은 패배하게 될 것이며, 교회는 든든히 세워질 것이다.

 

4. 주께서 속히 돌아오실 것을 상기시켰다 (살전 3:11-13)

 

앞서도 언급했듯이 데살로니가전, 후서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신자를 이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훌륭하게 세울 수 있는 진리는 없다. 시련과 환란의 한복판에서 이들은 스스로 확신을 가지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으로 스스로를 격려할 수가 있었다. 시련이 그들의 앞길에 다가올 때에(이 이교도의 도시들에서는 일상적으로 시험이 닥치는 것이지만)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날에 오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가 있었다.

 

만일 여러 가지 수고와 전도하는 일로 지쳐 있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함으로써 새로운 힘과 용기를 얻을 수가 있었다. 성경에 있는 그 어떤 진리라도 신자의 마음과 정신과 뜻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진리보다 더 큰 효과를 주지는 못한다.

 

누가복음 12장 42-48절을 읽고 그리스도의 오심을 잊은 종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알아보자. 이 사람은 공개적으로 무슨 말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그의 마음에 “내 주인이 오시는 것이 늦어지는구나!”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원하고 있지 않았다. 이 종이 타락하여 다른 일꾼들과 함께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겠는가?

 

바울은 이들의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도록 일으켜 세워지는 일에 열심이었다(5:23). 그리스도인은 흠이 없고 순전하도록 되어 있다(빌 2:15). 이 말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 전까지는 완전함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칠판에 자기의 이름을 쓰는 작은 아이가 실수 없이 쓸 수 없다. 왜냐하면 아직 그는 어린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최선을 다한다면 흠없이(나무랄 데 없이) 쓸 수는 있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에 따라 살아가며 주님 안에서 성장하기를 노력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흠 없는 생활을 살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매일 기대한다는 것은 신자가 그의 생활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일에 도움을 줄 것이다(요일 2:2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