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이정표/핵심성경연구-신약

베드로전후서4 - 벧전 4장(경고, 위로, 소망)

JORC구원열차 2009. 8. 3. 08:59

4. 베드로전서 4장 / 경고, 위로, 소망

 

4장과 5장에서는 고난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룬다. 베드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당면하는 일상적인 고난의 문제(비난, 논쟁 등)를 다루었으나 이제는 공식적인 로마의 박해로 말미암은 “불시험”이 곧 닥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본 장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고난을 통과할 때 그에게 임할 수 있는 놀랍고 복된 세 가지 결과들을 말해 준다.

 

1. 고난은 성도를 순전케 한다 (벧전 4:1-6)

 

삶이 안이하면 우리는 부주의함과 죄 가운데로 빠지게 되지만, 고난은 우리의 가치관과 목표를 변경시킨다. “불 시험“이란 금을 정련하는 용광로이며 하나님께 불순물을 제거하시도록 해준다(시 66:10). 고난이 우리를 위하여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고난은 그리스도와 우리를 동일시하게 한다(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그와 함께 고난을 당하면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그를 더욱 사랑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며, 또한 그리스도와 동일시하는 것이 죄에 대한 승리임을 알게 하려고 그들을 격려한다. 그리핏 토마스(Griffith-Thomas)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로마서 6장에 대한 베드로 역본”이다.

 

2) 고난은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알게 한다(2-3절)-

우리는 생명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다가 고난이 닥치면 그 가치관이 변하고 만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짝하여 죄를 짓다가, “남은 때”를 낭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죄악된 인간의 뜻 안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

 

3) 고난은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알려 준다(4-6절)-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의 판단에 따라 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산다. 세상은 우리가 더 이상 죄 중에서 그들과 달음박질하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우리를 비방한다. 하지만 이들의 비방이 우리를 낙심시키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어느 날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계산을 해야 한다.

 

6절은 다음과 같이 의역할 수 있겠다. “지금은 육체적으로 죽어 있으나 영으로는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 있고 이생에서는 세상에게 심판을 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죽기 전에 복음을 듣고 믿었다. 이들은 그들의 믿음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고 죽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살아 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다가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떠나가는 것이 세상을 좇다가 잃어버린 바 되는 것보다 낫다.” 4장 6절과 3장 19-20절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며, 또한 사후에 잃어버린 자를 위한 제 2의 기회가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죄와 고난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취하신 바와 같은 태도로 “자신들을 무장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만일 신령한 태도를 갖지 못한 채 고난을 맞게 된다면, 그 고난은 우리를 순전하게 하는 대신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2. 고난은 교회를 결속시킨다 (벧전 4:7-11)

 

베드로는 “근신하라, 진지한 마음을 지니라”고 권면하기를 좋아한다(1:13/5:8). 그는 그리스도께서 곧 오실 것과(5:4), 고난 가운데서도 성도들이 피차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기도는 이러한 책임들 중의 하나이다.

 

열심 있는 사랑도 이러한 책임 중의 하나이며, “열심으로”라는 말은 “손을 내뻗친”이란 뜻이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한계점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은 성도들을 비방하는 것만으로는 족하게 여기지 않으나, 성도들은 피차 비방해서도 안 된다. 사랑은 성도들의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다.

 

베드로는 그들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가정도 개방하도록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친절이 급속도로 사라져 가는 미덕으로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은사들을 발휘하며 주님을 섬겨야 할 필요가 있다. “각양”이란 말은 “여러 색깔의 다채로운”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필요에도 대처할 수 있으며 어떠한 “색상”과도 잘 어울려 되살아나게도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들을 주시며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 은사들을 사용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

 

3. 고난은 주님을 영화롭게 한다 (벧전 4:12-19)

 

1) 시련들을 기대하라(12절)-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고난은 낯선 객이 아니라, 기대되던 바였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받는 시련은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있다는 경고가 아니라 자기 백성을 온전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편이시다.

 

3) 시련 중에 기뻐하라(13-14절)-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 한 가지 예로, 시련이 올 때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당하며 주님과 함께 고난을 나눈다(빌 1:29 참조). 우리가 지금 견디는 고난은 그가 오실 때 우리가 나누어 받을 영광의 서곡일 뿐이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영은 고난받은 신자 위에 “새롭게 하는 능력으로 머물러 계신다.” 세 명의 히브리 자녀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단 3:19-30).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불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다니셨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할 때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모든 시련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은혜를 주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4) 시련 중에서 부끄러워하지 말라(15-16절)-

로마의 법은 시민들에게서 황제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을 요구하였다. 일 년에 한 번씩 시민들은 분향하며 “가이사는 주님입니다”라고 말했으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고 고백하여(3:15 참조) 가이사 앞에 엎드리는 것을 거절하였다.

 

로마의 관리가 땅이나 벽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쓰고 거기에 침을 뱉으라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만일 거절하면,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님으로써(그리스도인) 그들의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였으나, 얼마나 영광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인가! 다른 어떤 이름보다 더 높은 이름이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

 

5) 시련 가운데서 증거하라(17-18절)-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교회에 시련을 보내신다면 이것은 어느 날 잃어버린 자를 심판하시리라는 증거가 된다. 우리는 지금 시련을 당하나 후에 영광을 받는다. 그러나, 잃어버린 자들은 지금 영광을 받으나 후에는 고난을 받는다. 잃어버린 죄인이 알게 될 유일한 하늘나라는 오늘날 여기 이 땅인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집(교회)에서 시작하신다(겔 9:6 참조). 만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 시련의 시작이라면, 잃어버린 자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의로운 사람들(신자들)이 “어렵게” 구원을 받는다면 불경건한 사람들에게는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잠 11:31 참조)

 

6) 자신을 하나님께 위탁하라(19절)-

여기서 “부탁한다”는 말은 공식적인 은행 용어로서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하여 일정 금액을 예금으로 맡긴다는 뜻이다. 이 말은 1장 7절에 나오는 “금”의 예화와 절묘하게 연결된다. 하나님은 불순물을 제거하시기 위하여 불시험을 보내시며 우리는 안전하게 보호받기 위해 자신을 주님께 맡기는데, 우리는 주님이 실패하실 수 없음을 안다.

 

그런데 우리가 “선을 행하는 가운데” 이 일을 하는 것임을 주목하자. 즉, 그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을 그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것은 매일 매시간 자신을 양도하는 생활이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것이지 우리를 비난하는 잃어버린 자들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불 시험을 통과하게 되는 듯하다. 세상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은 것이며, 종교적인 상황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의 이름을 싫어해 왔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미워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자신과 동일시한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다(요 15:18-21). 만일 우리가 타협한다면 박해는 피하게 될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축복과 영광은 잃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