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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이정표/그리스도의 십자가

4-2. 인간의 도덕적 책임

by JORC구원열차 2009. 11. 9.

4-2. 인간의 도덕적 책임

 

어떤 사람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을 때 그를 비난하는 것은 공정한 일인가? 우리는 참으로 우리의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가? 우리는 자유로운 행위자이기보다는 다른 행위자의 제물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며, 그리하여 죄를 짓기보다는 죄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우리는 온갖 속죄양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의 유전자, 화학적 성질(잠정적인 호르몬의 불균형), 유전된 기질과 체질, 유년 시대의 부모의 실수, 성장 과정, 교육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 등이 속죄양이 될 수 있다.

 

개인의 책임이라는 전통적 개념을 침식하기 위하여 시도하는 노력들 중에서, 스키너(B.F. Skinner) 교수의 책 「자유와 존엄을 넘어서」(Beyond Freedom and Dignity)보다 더 포괄적인 시도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바르게 행동하도록 조작될 수 있다. 그러면 무엇이 장애물인가? ‘자율적인 인간’의 개념, 인간이 자기 행동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의 인간의 가정된 ‘자유’, 그리고 인간에서는 그의 업적에 따른 공로가 주어진다는 점에서의 가정된 ‘존엄성’이 바로 장애물이라고 그는 답한다. 하지만 이런 장애물들은 실은 환상이다. 이는 “과학적 분석에 의하여, 책임과 성취는 모두 환경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 사는 사람들의 행등을’ 적당하게 ‘형성하고 유지하는’ 사회적 환경 혹은 문화를 창조해 내기 위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것은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이며, 이 생존은 우리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전통적인, ‘달콤한’ 개념보다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가 물려받은 성질 곧 우리가 ‘아담 안에서’ 가지는 성질의 영향력을 매우 강조한다. 원죄의 교리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본성 자체가 자기중심성으로 인해 오염되고 뒤틀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악한 생각과 행동이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나온다고 가르치셨다(막 7:21-23). 예수님이 죄인을 ‘죄의 종’이라고 묘사하신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요 8:34). 실로 우리는 세상(공공의 행습과 의견), 육신(우리의 타락한 본성), 마귀(악마적 힘)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죄의 종 대신 그분의 종으로 삼으신 이후에도, 우리는 아직 우리의 타락한 성품의 음험한 세력들을 완전히 벗어버리지는 못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7장의 논의를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25절 하)고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성경은 이 세력의 교묘함과 힘을 인정하며, 실제로 그것은 우리의 책임을 감소시킨다. 하나님이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또한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 그분이 우리를 향하여 인내하시고, 화내기를 더디 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시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시103:10,14).

 

성경은 ‘생명과 선, 죽음과 악’ 사이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 우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우리에게 맡긴다. 성경은 우리에게 순종을 권고하며, 우리가 불순종할 때 우리를 나무란다. 예수님은 가끔 그 도시를 향하여 직접적으로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르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 23:37).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영적 우매함, 배교 그리고 임박한 심판을 그 도시의 고집 대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씀은 “너희가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는 말씀 후에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기 때문인가? 예수님은 두 가지 모두가 이유라고 가르치셨다. 이 ‘할 수 없음’과 ‘하고자 하지 않음’ 속에, 하나님의 주권과 인가의 책임 사이의 궁극적인 이율배반(antinomy)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책임은, 인간 존엄성의 양도할 수 없는 측면이다. 이 책임은 심판의 날에 마침내 드러날 것이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형을 선고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그가 위대하든지 미미하든지에 관계없이, 사회적 계급을 무론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는 억압적으로 짓눌려서 꿇어 엎드러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에 대한 최후의 존경의 표시로 각자가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