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04(목)
흥하는 자와 쇠하는 자의 차이(삼하 3:1)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니라(삼하 3:1)
이월은 일년 중에서도 가장 짧은 달이라 처음부터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뭘 하고 보냈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하게 한 달을 지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무작정 세월을 보내는 분은 안계신지요? 오늘을 보내면서 다시 한번 보람찬 한 달을 살기 위한 계획을 세워보는 것도 좋으리라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좋은 대조를 이루는 두 집안이 소개되고 있으니 곧 다윗과 사울의 집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기골이 장대하고 준수하여 한때 인기가 높았던 사울 왕의 집은 점점 쇠약해가고, 반대로 이새의 막내아들로 일개 목동이었던 다윗의 집은 점점 강성해간다는 말씀입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니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다윗은 흥하며 사울은 쇠하게 된 원인을 비교하며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가 흥왕하는 축복을 받는 비결을 배웁시다. 그러면 왜 다윗의 집은 흥성해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쇠약해 갔을까요?
1. 다윗의 마음은 넓었고, 사울의 마음은 좁았습니다.
한번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서로 마주 대하여 항오를 벌이고 있을 때, 적장인 골리앗이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블레셋 나라의 무적 장군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쳐 죽이고 목을 베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춤을 추며 창화하여 이르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라고 하자,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사울 왕의 마음은 심히 노하며 불쾌해지고 강한 질투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니까 마음이 점점 좁아지면서 그에게서 성령은 떠나고 악령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악령이 역사하니까 사울은 구국 공신이요, 자기 사위인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마음이 넓어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기 때문에 손을 대지 않고 하나님이 처리해 주실 때까지 피해 다니기만 하였습니다. 식탁에 앉은 다윗을 사울이 창을 던져 죽이려고 했으나 다윗이 그것을 피하여 살아난 때도 있었고, 누운 그를 죽이려 한 때도 있었으며, 그가 광야에 숨으면 죽이려고 광야로 쫓아다니기도 했으나, 결국 사울은 그 창에 자기가 엎드려 자살해서 죽고 말았으며 그의 아들 요나단까지 그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질투심을 절제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면 마음이 점점 좁아지고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욥 5:2에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 했고, 잠 14:30에는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롬 13:13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인 후에 인간은 누구에게나 시기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칭찬듣고 존경받는 위치에 서있는 사람일수록 시기심이 더 큽니다. 그 예로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장로들은 서민들의 지지와 존경을 한 몸에 받으시던 예수님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요셉을 보다 못하여 죽이려다가 애굽 상인들에게 팔아먹고, 아버지에게는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가지고 가서 요셉이 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했습니다. 시기심은 누구나 있는데 이런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즉시 물리치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로써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울과 같이 쇠하게 됩니다.
옛날 리비아 사막에 한 성자가 은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마귀들이 의심과 온갖 유혹으로 그 육체를 괴롭혔으나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마귀가 나타나서 방법을 바꾸어서 그 성자의 귓가에다 대고 말하기를 '그 소식 들었습니까? 당신의 형제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습니다'라고 하니까 시기심이 생겨서 그 평온하던 얼굴이 잔뜩 찌푸러지더니 악의에 찬 얼굴이 되고 말더랍니다.
유명한 주석가 M.마이어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친구인 M.캠벨 모르간 목사님(당시 유명한 설교자)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그가 성공하도록 기도해 주는 것이 쉬운 일 이었는데, 막상 그가 런던으로 돌아와서 자기 교회 가까이서 목회를 시작할 때는 문제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옛사람 아담이 머리를 들려고 했으나 발꿈치로 그 머리를 밟아 버리고 친구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하며 올바르게 행동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 교회에서 캠벨 목사님 환영식을 열고, 자기 교인들에게 양해를 얻고 주일 저녁 예배를 그 캠벨 목사님 교회로 설교를 들으러 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당시 유명한 스펄젼 목사님도 자기 옆줄에 와 앉아 있더랍니다. 결국 주님의 은혜로 그 모든 악한 감정을 이겼더니, 마이어 목사님은 그 목사님대로 교회의 부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마음을 다스리고 넓게 하는 어려운 일을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어느날 유명한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젊은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플로렌스의 큰 홀에 그림을 그리도록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때 다빈치도 잘 그렸지만 미켈란젤로의 그림도 잘 그린 것을 본 한 사람이 말하기를 '레오나르도도 이젠 늙어 가는 구먼' 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 말을 잊지 못하고 남은 생애를 우울한 상태로 지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질투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며 주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남에게 시기심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울 왕이 악신에 사로 잡혀 다윗을 죽이려 하다가 결국 망하게 된 데에는 우선 사울 자신의 책임이 크지만 그 여인들이 가볍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 그 말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의 시기심과 거부감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항상 자기를 높이거나 자랑하는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자랑을 너무 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고 은혜롭지 못한 일입니다. 옛 격언에 '성공한 사람을 미워하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완전한 패배자가 된 것는 아니다'라고 했고, '시기하지 않고 친구의 성공을 존경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의 불행을 동정할 사람이 한 명쯤 있다면 우리의 성공을 미워할 사람은 천명이나 된다'고 했으며, '시기는 다른 사람을 쏘지만 결국 상처는 자기가 입는다'고 했습니다. '자기 밑에 있는 사람을 돕기에 바쁜 사람은 자기 위에 있는 사람을 시기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마음이 좁아서 시기심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다가 점점 쇠하여져서 망했고, 반대로 다윗은 마음이 넓어서 점점 흥해졌습니다. 시기심을 조심하도록 합시다
2. 다윗은 겸손했고, 바울은 교만했습니다.
다윗은 목동 시절이나 왕이 된 후에나 하나님의 은혜를 늘 잊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다윗이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여호와의 법궤는 장막에 있음을 죄송하게 생각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할 때에, 다윗은 전쟁에서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서도 그 마음을 가상히 여겨 축복하실 때에 다윗이 말하기를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렇게 이르게 하셨나이까'하고 지극히 겸손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또 한번은 그가 법궤를 빼앗겼다가 다시 찾아올 때에 왕의 체면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힘을 다하여 기뻐 뛰며 춤을 추며 환영했습니다. 겸손이 없으면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비웃으며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같이 그 심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었도다'하고 비웃을 때에 다윗은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또 다윗이 범죄했을 때 무명 선지자 나단이 와서 손가락질하며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하고 죄를 책망할 때,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겸손히 회개했습니다. 왕의 권위로 나단을 쫓아 버리거나 투옥하지도 않았으며 체면을 생각하여 자기 죄를 변명 하거나 숨기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가 범죄 했나이다' 하며 고꾸라져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마음이 겸손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처음에는 겸손했으나 왕이 된 뒤에는 교만하고 완악해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무명의 선지자 나단의 말을 듣고도 회개했는데, 바울은 사무엘상하를 기록한 대선지자 사무엘의 간곡한 권면을 듣고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변명하면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점점 쇠하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삼상 15:23에서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하는 무서운 선언을 듣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겸손하여 점점 흥하여 갔고, 바울은 교만하여 점점 쇠하여 갔습니다. 잠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 짐의 앞잡이니라"고 했고, 약 4:6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잠 29:23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느니라"고 한 말씀대로 교만하면 낮아지고 쇠약해집니다.
3. 다윗은 용서의 사람이었고, 바울은 복수심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대해같이 넓어서 남의 잘못을 잘 용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은 반역가여 왕위를 빼앗고 아버지를 죽이려한 불효막심한 아들이었지만,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며 대성통곡했습니다. 아무리 자식이지만 그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갈 때 시므이가 언덕 위에 서서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하며 돌을 던지며 저주할 때 당장 죽일 수도 있었으나 용서해 주었고, 승리하고 돌아올 때 시므이가 길가에 엎드려 용서해 달라고 빌 때도 그는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고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다윗의 집은 점점 흥왕해 갔습니다. 엔게디 굴속에 있을 때에도, 십 황무지에 있을 때에도 바울을 죽여 위험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복수할 기회가 있었으나 옷자락만 베거나 창과 물병만 가지고 나오거나 하면서 절대로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마음이 좁고 완악하여 걸핏하면 사람을 파리 목숨처럼 죽이고 심지어 하나님의 종인 제사장까지 몰살시켜 버렸습니다. 심지어 자기 아들 요나단까지도 자기 말대로 안했다고 칼로 쳐 죽일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사람 다윗은 점점 흥하여 가고, 복수의 사람 사울은 점점 쇠약해져 갔습니다.
빌 4:3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오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면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절대로 '원수를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갚으실 것이므로 우리 성도들은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순간에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고 못박는 원수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고 크게 부르짖는 기도가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는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그 결과 핍박하던 사울이 변하여 대사도 바울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완전히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용서받은 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값없이 용서받았듯이 다른 사람도 용서해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수심에 차서 원수 갚기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흥왕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용서하시기를 즐겨하시고 우리에게도 서로 용서해 줄 것을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거스리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4.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사울은 하나님이 떠난 사람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점점 강해진 다윗과 점점 약해진 바울의 가장 큰 차이점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삼하 5:10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늘 함께 하셨으므로 환난을 당할지라도 점점 강성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년 다윗이 적장 골리앗을 쳐부순 것도 그가 돌팔매질을 탁월히 잘했거나 그 물맷돌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담대히 나섰던 다윗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삼하 7:9에도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말씀한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으므로 그는 존귀해지고 강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종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회개치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이 버리시고 떠나 버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리에 악령만 역사하여 시기심만 작동하고 복수심만 가득차게 되므로 점점 쇠약해지다가 비참하게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어찌하든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여 하나님 편에 서시고, 마귀 편에 서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사람이 되십시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보다 더 큰 비극이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시기를 버리고 넓은 마음을 갖도록 하시고, 항상 겸손한 사람이 되시며 복수가 아니라 용서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어 점점 흥왕해 가는 가족과 사업과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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