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05(금)
볼 것을 보는 눈을 가집시다. (마 6:22-24)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2, 23)
오늘은 '눈'에 대한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사물과 현상을 보고 이치를 따지며 판단하게 되고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따라 행동으로 옮깁니다. 또한 그 행동들이 모여 습관이 되고 습관은 곧 인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눈으로 무엇을 보며 어떻게 보는가가 중요합니다. 올바른 눈이 필요합니다. 올바른 눈을 가지고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한번 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 (백문이불여일견)는 말도 있고 어떤 일을 시도하거나 경험하여 알게 되는 경우에는 맛본다, 만져본다, 들어본다는 말처럼 보는 것과 연관시켜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한편 사람들은 눈만 좋으면 무엇이든지 볼 수 있는 줄로 생각하는데 실은 이 세상에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참으로 더 많습니다. 양자나 전자도 볼 수 없고, 전기나 전파도 이 육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양자나 전자는 계산과 추리를 통한 지식의 눈으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공기나 전파 하나도 볼 수 없는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지 않겠습니다. 고후 4:18에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한편 눈은 가시적인 현상과 사물을 보는 육안 외에도 지안 즉, 정신적인 눈과 영안 즉, 영적인 눈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물질 세계와 사물을 볼 수 있지만, 지안으로는 정신적이며 지식적인 세계를 볼 수 있고, 영안으로는 하나님과 영의 세계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영안이야말로 우리가 참으로 보아야 하는 것을 보게 하는 복된 눈인 것입니다. 그러면 복된 눈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눈입니까?
1. 멀리 보는 눈
복된 눈은 멀리 볼 줄 아는 눈입니다. 바로 가까이 눈앞의 것만 보고 무슨 일을 결단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벧후 1:9에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은 말씀이 있습니다. 멀리 볼 줄 모르는 근시안은 어떤 의미에서 소경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대원군의 쇄국 정치는 그만큼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발전을 가로막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원시 안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도요죠 히데끼는 멀리 내다 볼 줄 몰랐기 때문에 잠자는 사자같은 미국까지 침공하면서 세계적인 전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바둑이나 장기도 한 수라도 더 멀리 보는 사람이 잘 두는 것입니다. 멀리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 남보다 지혜롭게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간은 금과 은, 시날산의 고급 외투만 보았지 먼 훗날 그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크고 두렵게 다가올지를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엄중히 금하신 물건들을 탐하고 도적질하여 자기의 사랑하는 처자식까지 돌에 맞아 죽게 한 것입니다.
2. 속을 보는 눈
겉만 보지 말고 속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이다. 더욱 영의 세계는 직관적이고 영감 적이고 묵시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결과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겉만 보고 결단을 내리고 섣불리 일을 하다가는 언제나 마귀에게 속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양봉하는 사람은 아카시아 나무와 메밀꽃을 볼 때 겉을 보는 동시에 그 속에 꿀이 얼마나 들어 있는가를 본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보이는대로 행치 않고 속을 보는 눈을 가지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생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하셨습니다. 겉만 보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속을 보는 눈을 가집시다.
3. 내세를 보는 눈
참으로 복된 눈은 가시적인 현세만 보지 않고 영원한 내세를 볼 수 있는 눈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어린 아기가 이렇게 넓은 세상이 있는 줄 모르고 태어날 때 우는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100년도 채 못되는 육신의 생명과 물질적인 이 세상만 보고 영원한 내세가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9:27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신대로 사람이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서 죄사함 받지 못하고 예수를 영접하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되고,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내세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16:19-31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 부자는 물질적인 세계와 썩어질 육신의 쾌락에만 도취되어 내세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았지만 나사로는 비록 몸의 헌데를 앓으며 부잣집 대문간에서 얻어 먹고 살았으나 내세를 바라고 천국을 준비하며 살다가 영생 복락을 누린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현세만 보고 내세를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사람은 비참한 인생이요, 저주받은 인생입니다. 그러나 성도된 우리는 영원한 내세를 이미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준비하는 복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잠시 세상에 머물러 살면서 때로는 말 못할 어려움과 고통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를 바라보며 소망하고 인내하며 인생의 온갖 어려움과 위기들을 감당해 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의 삶 전부를 내세를 위해 준비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4. 영적인 실재를 보는 눈
참으로 복된 눈은 영의 눈이 열려 물질 세계와 썩어질 육신만 보지 않고 영적인 실재 즉, 하나님과 마귀와 사람의 영혼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어느 잡지에 이런 체험담을 적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는데 그의 영혼이 금방 육체 밖으로 나와서 차 밑에 있는 그의 시체를 끌어내어 차에 싣고 병원으로 가는 교통순경에게 같이 가면서 자기가 여기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더랍니다. 그러다가 어떻게 해서 그의 영혼이 다시 자기 육신으로 들어가 살아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부인은 해산하다가 죽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그녀가 죽었다고 슬퍼하더랍니다. 그녀의 영혼이 아무리 위로를 하려고 해도 도무지 모르더랍니다. 그 후 그녀의 영혼은 천사에게 이끌려 하늘나라에 가서 그 찬란한 천국의 아름다움을 구경하다가 어린 아기를 두고 온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천사에게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좋지만 집에 어린 아기를 두고 왔으니 날 좀 세상에 다시 보내달라'고 애원했더니 보내줘서, 사람들이 그녀의 시체를 놓고 장례식 하려고 준비 하던 순간 그녀의 영혼이 육체에 들어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계가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령도, 악령도, 사람의 영혼도 믿지 않습니다. 물질세계만 볼 줄 알았지 영적인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볼 것을 제대로 보는 복된 눈을 가질 수 있을까요?
첫째, 거듭나야 합니다.
요 3:3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으로 태어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으로 중생한 사람은 바람이 임의로 불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 같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다시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8).
그렇다면 어떻게 거듭납니까?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해야 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영접한 그 순간 구원 받으며 차츰차츰 영의 눈도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요 1:12;요 3:16;롬 10:10).
엡 1:17-19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해 다음과 같이 간곡히 기도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둘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이 있어도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빛이 있어야 사물을 보는 것 같이 영의 세계를 보려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은 영의 세계를 보는 눈입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영의 눈도 점 점 밝아집니다. 그리고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보고, 현세만 아니라 내세까지 보게 되며, 말로 표현은 할 수 없지만 만져본 것 이상으로 확실히 깨닫고 알게 됩니다.
셋째, 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마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깊이 회개하고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때묻지 않고 청결해져야지만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영의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심령이 깨끗해지고 영적으로 민감할수록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이 어떤 것을 기뻐하시고 어떤 것을 미워하시는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덧은 단순한 눈(single eye)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목표와 대상을 가졌다는 뜻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 다른 것을 믿거나 의지하는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뜻이요, 또한 명확하다는 뜻으로 목표를 명확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외식과 위선이 없다는 뜻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이중인격자나 위선자는 결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단순하고 깨끗하며 거짓과 위선이 없어야 그만큼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보아야 할 것을 바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께서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라는 말씀을 하시고 또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뒤에 곧이어 이 눈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릴수록 마음 눈의 비늘이 벗겨지며 밝아집니다. 탐심이 가득한 마음은 볼 것을 바로 볼 수 없으며 가치 판단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을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땅에 쌓아둔 재물을 향할 때 그 마음은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 해 목회를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믿음이 자라지 않고 그 심령 상태가 어둡고 캄캄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렇듯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줄 모르는 사람은 분명 세상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과 집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로 그러한 탐심을 버리고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칠 줄 알고 남에게 베풀 줄 알 때 자꾸자꾸 마음 눈이 밝아지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복된 눈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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